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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과 정책 제7호_김양희_TPP참가, 급할수록 돌아가라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3-11-11 10:11:50
  • 조회수 : 8354
미국이 한국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Trans-Pacific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 참여를 요구하고 나섰다. 필자는 한미 FTA 발효 이전인 2011년 11월에 이미 “미국, 한미 FTA 발효되면 TPP 참가 요청할 것”(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111130142157&Section=05)에서 이를 예측하고 나아가 TPP는 한중 FTA와 한중일 FTA 그리고 한일 FTA를 촉발시킬 것이라는 글을 기고한 바 있는데, 그것이 이미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TPP 참여 여부에 대한 우리 정부 입장은 여전히 모호하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서두르기보다 신중히 결정하겠다고 하나 외교부와 기획재정부는 참가로 기운 듯하다. 이 와중에 산업부가 11월 15일 공청회 개최를 밝히니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한국의 통상절차법은 FTA 참여선언 이전에 공청회를 열도록 규정하고 있어 이를 위한 사전정지작업 아니냐는 의구심이 생긴다. 산업부는 공청회 개최 사실이 알려지기를 꺼리는건지 적극 홍보에 나서질 않는다. 이처럼 한국 정부가 TPP 참가 여부를 두고 설왕설래하는 현 상황은 그만큼 이에 대한 결정이 어려움을 말해준다. TPP를 어찌해야 할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TPP의 특징과 전망, 작금의 통상환경 변화, TPP를 바라보는 중국의 시각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아울러 TPP 참가를 둘러싼 국내 찬반양론도 꼼꼼히 짚어봐야 한다. 이를 토대로 결론부터 말해두자. <논어> 자로편에는 ‘욕속부달(欲速不達)’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온다. ‘급히 서두르다보면 일을 이루기 어렵다’는 뜻이다. 장기적으로 TPP 참가는 불가피하나 이를 위한 대내외 여건 조성과 전략 수립이 훨씬 중요하다. 급할수록 돌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TPP란 무엇인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TPP는 전 품목 관세철폐, 예외품목의 사전제시 금지, 투자와 서비스 시장 자유화, 제반 무역규범의 조화를 추구하는 높은 수준의 FTA다. 미국은 이를 ‘21세기형 무역협정’으로 간주하며 장차 아태지역의 표준으로 삼고자 한다. 이것이 TPP의 첫 번째 특징이다. 둘째, TPP의 매우 독특한 점은 APEC 회원국으로 참가자격을 제한하여 궁극적으로 이들간의 FTA(FTAAP)를 도모한다는데 있다. 아태지역 4개국(싱가포르, 뉴질랜드, 칠레, 브루나이)이 출범시킨 협정(P4)에서 출발하여 현재 12개국으로 늘어났으며 앞으로도 회원국을 확대하려는 ’살아있는 협정(living agreement)’이다. 태국, 필리핀,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등이 참가를 희망하고 있다고 전해지나, 아직 참가 여부를 밝히지도 않은 한국도 자주 언급된다. 이는 일치감치 FTA를 체결한 한미관계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의 TPP 합류를 가정사실화하는 해외 시각이 우세함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세 번째 특성이 파생된다. 셋째, TPP는 한미 FTA를 모델(template)로 삼는 협정이다. 미국에게 한미 FTA란 세계경제의 견인차인 동아시아의 경제통합에 간여하기 위한 교두보다. 그것이 바로 필자가 한미 FTA 이후 예정된 수순으로 한국에 대한 미국의 TPP 참여 요구를 전망한 근거다. TPP의 마지막 특징은 ‘고약함’에 있다. TPP의 철저한 비밀주의와 후발 참가국의 기존 합의사항 엄수 의무는 곧잘 비난의 대상이 된다. TPP의 ‘고약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간 동아시아 경제통합 과정에서 드러난 중국의 주도권을 역외국인 미국이 빼앗으려니 중국은 뒷통수를 세게 맞은 격이다. 이처럼 고약한 협정 추진에 일조한 것이 일본이다. 일본은 그간 중국과 벌인 지역통합의 주도권 다툼에서 자신의 자리를 미국에 내주고 말았다. 일본의 TPP 참가 선언이 결과적으로는 그리 만들었다. 이는 역내 경제통합의 구도가 중일관계에서 미중관계로 전환되고 메가 FTA의 도미노를 발생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데 그 이면에는 후술하게 될 ‘이중 세력전이’와 ‘협력공간의 다층화’가 자리하고 있다.

TPP 협상을 10월 APEC 정상회의 시 타결하려던 참가국의 의도는 참가국수 증가와 산적한 쟁점으로 인해 불발됐다. 국내정치에 발목잡힌 오바마 대통령의 TPP 정상회의 불참도 일조했고, 미국의 TPA 만료도 걸림돌이 되어 연내 타결 목표 달성은 어려워 보인다. 혹자는 일본 합류로 2년 정도는 걸릴 것이란 관측을 내놓는다. TPP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조차 자동차(일본), 유제품(뉴질랜드), 설탕(호주), 섬유제품(베트남) 시장 개방에 난색을 표하고 있고, 일본은 농수산물 5개 품목 제외를 원하며 말레이시아는 말레이인우대정책과 국민자동차정책을, 호주는 투자자-국가소송제 제외를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처럼 TPP 협상의 난제는 시장접근 분야(농업과 섬유, 의약품 등), 규범(특히 지재권, 경쟁정책, 원산지규정, 투자, 노동 및 환경 등) 전 분야에 걸쳐있다고 알려진다. 단, 이러한 정보는 어디까지나 간접적으로 문헌과 인터뷰 등을 통해 얻은 것일뿐 예의 비밀주의로 인하여 정확한 사실확인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밝힐 필요가 있다.
 
 
1995년 WTO 설립 전후로 봇물을 이뤘던 FTA 체결 붐은 대체로 지역내 거대경제 일국이 주도하는 ‘바퀴축-바퀴살(hub-and-spoke)’형 FTA이거나 인접하는 중소규모 경제간에 이뤄지는 것이었다. 반면 최근의 몇몇 FTA는 지역을 넘어 거대경제권이 복수로 참여하며, FTA체결국들이 중복 혹은 확대된 형태로 체결한다는 점에서 전자와 구별된다. 이에 필자는 전자를 FTA 1.0시대로, 후자를 FTA 2.0 시대로 구분하고 ’메가(mega) FTA'로 칭한다.

FTA 2.0 시대로 전환되어 글로벌 차원의 메가 FTA 시대를 처음 연 행위자는 다름 아닌 한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 흐름을 가속시킨 주요 행위자로 기존의 세력전이의 당사국간 균형을 깨뜨린 일본을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된 배경으로 필자는 경제통합론에서 말하는 수출시장에서의 경쟁관계에 더해 Organski(1958)가 처음 제시한 세력전이(power transition)를 원용한 ‘이중 세력전이(dual power transition)’라는 동아시아적 특성을 추가한다. 그것이 결국 일본이 한국의 한미 FTA에 자극받아 메가 FTA를 초래하는 대응에 나섰고 따라서 ‘다층적 협력공간(multi-layered cooperation arena)’이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동아시아는 글로벌 차원(미국→중국)뿐 아니라 지역 차원(일본→중국)에서도 이른바 ‘이중 세력전이’가 존재하는 독특하고 복잡한 지역이다. 따라서 이들 중 누군가가 기존의 역학관계의 균열을 초래할 경우 다른 한 나라가 민감히 반응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는 독일과 프랑스가 안보와 경제 양 면에서 굳건한 협력관계를 맺은 유럽통합 여정에서도, 미국의 패권이 공고했던 NAFTA에서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 결과, 동 지역은 크게 안보와 경제의 협력공간이 상이하다. 안보 분야에서는 중국 부상에 대응해 미국이 MD와 TPP를 전면에 내세우며 동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 전략으로서 아시아로의 전략축 이동(pivot to Asia)을 시작한 것이다. 경제분야에서는 ‘이중 세력전이’로 인하여 금융부문과 실물경제부문의 협력공간이 상이하게 나타난다. 금융부문에서는 외환위기라는 공통의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중국과 일본이 길항작용을 하면서도 협력에 나섰다. 반면 실물경제에서는 이와 같은 경험이 일천해 양국이 두 개의 원심력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금융부문의 협력공간인 ASEAN+3이 실물경제 협력공간에서는 형해화되고 그 자리를 ASEAN+6의 16개국으로 확대된 RCEP이 대체하며 이도 모자라 TPP로 분화되는 등 FTA의 도미노가 초래되었다 (그림 참고).
[그림 1] 메가 FTA의 도미노
자료:필자작성

한국이 2006년 미국과 한미FTA(KUSFTA) 협상이 개시를 선언하자 이를 시발점으로 기존 균형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이리하여 한중FTA(KCFTA), 한-EU FTA(KEUFTA), 일본의 TPP 참가, 일-EU FTA(JEUFTA), 한중일 FTA(CJKFTA), RCEP의 협상 도미노가 만들어진다. 급기야 세계무역의 절반을 점하는 미국과 EU의 TTIP가 그 대미를 장식한다. 이상과 같이 미국, EU, 중국, 일본, ASEAN 등 세계 거대경제권이 급작스럽게 메가 FTA의 도미노에 휩쓸리기까지 일차적으로 상호의존도가 높은 거대경제권간의 관계가 경제적 유인이 작용했겠으나 그 못지않게 ‘이중 세력전이’도 한 몫 했다고 본다. 미중 경쟁관계와 중일 경쟁관계가 기민한 상호작용을 이끌어 낸 것이다. 이렇게 하여 세계적으로 현재 다섯 건의 메가 FTA가 진행 중인데 그 중 하나가 TPP이다.
 
[표 1] 메가 FTA의 비교
자료:필자작성

 
메가 FTA로서의 TPP를 재조명해 보면 TPP는 세계 1위와 2위 경제대국 미국과 일본을 포함하여 전 세계 GDP의 38.4%, 무역의 25.9%를 점하는 FTA다. 게다가 TPP에는 선진국과 개도국이 고루 분포되어 있어 TPP에서 제정할 제반 무역규범이 향후 WTO에서 개도국도 수용할 만한 표준이 될만한 유리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중국이 가입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한다.

초기 미국의 TPP 추진을 자국봉쇄전략으로 받아들이고 학계를 중심으로 매우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던 중국이 점차 이에 대해 정공법으로 맞서고 있는 듯하다. 중국 정부 관계자들이 2013년 5월 이후 TPP에 긍정적 반응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다. 예컨대 최고 지도자 시진핑(Xi Zinping) 주석은 6월에 열린 미중 정상회담시 오바마 대통령에게 협상 진척시의 투명성 확보와 협상정보의 제공을 요청하였다. 티엔 더어유(Tian Deyou) 상무부 국장은 중국정부가 TPP 재평가의 필요성은 인식했으나 금융, 환율, 국유기업 문제 등은 중국의 핵심이익을 침해하므로 참여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제시하였고 션단양(Shen Danyang) 상무부 대변인은 중국 정부가 관련연구 및 공평과 상호이익 원칙에 입각하여 참여 여부를 분석할 것이라는 논평을 내놨다. 이렇듯 중국에게 TPP는 지금 당장은 어려우나 가입 여부가 아니라 가입 시기를 저울질하는 문제로 변화하고 있다.

중국 지도자들은 이른바 ‘國退民進’ 전략으로 불리우는 시장경제로의 연착륙과 개혁의 지렛대로 대외개방을 바라보고 있어 자신들이 언제든 준비가 되면 TPP 협상을 개시하겠다고 말한다(China Daily, 2013. 11. 1). WTO 가입을 통해 개방을 경험한 이들의 자신감이 묻어난다. 중국이 EU와 양자간투자협정(BIT)을 추진한다는 소식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투자의 자유화, 원활화, 투자/투자자 보호를 중핵으로 하는 BIT는 관세철폐 위주의 FTA와 달리 국내규제의 자유화를 요구하는 까닭에 중국은 그간 높은 수준의 BIT를 꺼려왔다. 한중일 BIT가 장기교착상태를 겪다 가까스로 체결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중국이 이르면 11월 북경에서 열리는 중국-EU 정상회담에서 2년내 타결을 목표로 BIT 협상개시를 선언할 전망이다. 이것이 성사되면 EU가 역외국과 FTA와 무관하게 BIT를 맺는 첫 사례가 된다. 중국이 한국과 마찬가지로 EU 주요 회원국들과 BIT를 맺었으나 EU 전체와 별도의 BIT를 맺는 것은 EU 기업의 투자유치를 넘어서 EU와의 FTA 나아가 TPP의 예행연습이라는 전략적인 행보로 읽힌다. 양자간에 이미 모종의 합의를 만들어낸 것인지 EU측은 대놓고 중국이 BIT에서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FTA 협상은 힘들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처럼 중국은 미 주도의 TPP에 대응하여 한편으로 이미 시작된 중미 BIT 협상을 통해 TPP 가입을 준비하고 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중국은 이 협상에서 미국의 ISD 요구에도 응할 만큼 적극성을 띠고 있다고 한다. 다른 한편 중국은 미 주도의 TPP의 맞은 편 저울에 또 하나의 메가 FTA로서 중국-EU FTA를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바로 그 전단계로 BIT를 체결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듯 중국은 차근차근 TPP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

만일 TPP에 중국이 참여하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이 경우 TPP는 미국, 중국, 일본이라는 세계 3대 경제대국이자 우리의 3대 무역상대국들이 모두 참가하며 전 세계 GDP의 절반을 포함하는 메가 중의 메가 FTA가 된다. 글로벌 통상질서의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TPP는 비단 시장의 통합만이 아닌 광활한 생산 네트워크의 출현을 의미한다. 전 세계 투자자에게 족히 매력적인 광역지역통합체가 되는 것이다. 이를 한국이 외면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TPP 참가 여부를 둘러싸고 국내에서는 여전히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먼저 찬성론을 살펴보자. 찬성론자들은 미국과 일본이 참여하고 추후 참여국도 늘어나 아태지역에서 광역 경제블록이 형성되고 누적원산지규정 등 무역규범의 조화․통일을 추구하는데 이에 합류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크다고 주장한다. 또한 TPP 협상이 완료되면 이후 참가하는 나라들은 기존 합의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므로 기왕이면 조속히 참가하여 우리의 입장을 관철시켜야 하며 현실적으로 12개국과의 개별협의 기간을 감안할 때 참가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한다. 일견 일리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신중론 혹은 반대론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TPP가 한미 FTA의 연장선상에 있으되 다수국이 참가하기 때문에 그보다 높은 수준이 되기 어렵고, 뉴질랜드, 호주, 캐나다 등의 농업강국들이 한미 FTA 수준의 농산물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있어 농업계의 타격이 큰 반면 이들 내수시장은 적어 수출증대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또한 TPP는 '우회(back-door)'하는 한일FTA로서, 국내 제조업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크다고도 한다. TPP는 우리 수출의 1/4을 점하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포위망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아직 한중 FTA도 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미 FTA에 더해 TPP에 가입할 경우 치러야 할 비용도 지적한다. 북핵문제, 개성공단 정상화 등 꼬일 대로 꼬인 남북관계를 푸는데 중국의 도움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당분간 한중 FTA 및 RCEP에 주력하자는 견해도 있다. 그렇다면 찬반 양론간에 접점은 없을까. 양측 주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각기 방점이 다른 곳에 찍혀 있어, 전혀 접점의 여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우선 찬성론의 거품을 걷어내고도 남는 TPP 참가의 이점을 취하면서 반대측이 제기하는 문제점의 최소화 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겠다.

우선 찬성론자들이 강조하는 광역 FTA의 잇점을 짚어보자. 사실 메가 FTA라고는 하나 TPP 참가국 중 한국의 FTA 기체결 7개국이 우리 수출의 20%, 수입의 15%를 점하는 반면 FTA 미체결 5개국(일본,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멕시코) 중 일본(수출 7.1%, 수입 12.4%)을 제외한 나머지 4개국을 모두 합해도 우리 수출과 수입 각각의 4.5%, 6.2%에 불과하다. FTA 체결의 무역창출효과가 이들 나라들에서는 협소한 내수시장으로 인해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TPP 가입의 이중적 의미도 간과해선 안된다. TPP 가입은 7개국과의 중복 FTA인 동시에 5개국과의 신규 FTA 체결도 의미한다. 그런데 이들은 공통적으로 농산물, 제조업 등의 민감품목으로 인해 장기 교착상태가 이어진 나라들이다. 충분한 실익확보에 자신이 없는 것이다. 특히 일본은 경제 및 외교 안보 모든 면에서 중요한 상대국이다. 일본에 대해서는 적어도 대일정책 전반에 대한 큰 그림 하에서 양자 FTA는 엎질러진 물인지, 일본도 참여하는 한중일 FTA, RCEP, TPP 중 가장 높은 수준의 TPP에서 먼저 일본을 만나는 게 이득인지, 가뜩이나 아베노믹스로 인해 일본기업과 경합하는 국내기업이 불리한 여건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자칫 이들에게 TPP가 이중고를 안기는 것은 아닌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특히 찬성론자들이 강조되는 TPP의 단일원산지규정 및 누적원산지규정(회원국내에서는 타국 생산품을 일정비율까지 자국내 생산품으로 간주)의 이점도 점검해 보자. 이런 원산지규정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12개국간에 파격적으로 통일/누적 조항이 적용되는 그런 꿈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미국과 베트남간에 벌어지고 있는 섬유 원산지규정을 둘러싼 첨예한 이해대립만 봐도 알 수 있다. 게다가 국내기업 중 TPP 참가국을 모두 활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적어 TPP 단일원산지규정의 혜택은 생각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 TPP 불참비용이 크리란 주장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 건가. 한국은 한미FTA와 한EU FTA의 서비스․투자 분야에서 ‘미래 최혜국대우’ 조항을 포함시켰다. 즉 미국이나 EU가 한미 FTA와 한EU FTA 이후 제3국과 체결하는 TPP, TTIP, 일-EU FTA에서 만일 한국보다 TPP, EU, 일본에 더 높은 수준으로 개방할 경우 우리에게도 적용되므로 미국과 EU 시장에서 입을 손실은 크지 않다. TPP의 모델이 한미 FTA란 점도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더욱이 12개국이 참가하는 TPP가 한미 FTA보다 높은 수준이 되기는 어렵다. TPP는 우리가 기체결한 한미 FTA의 유사품이되 다소 낮은 수준이 되리라고 전망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TPP의 잇점은 무엇보다도 메가 FTA로서의 무게감이다. 특히 FTA 네트워크가 형성해 낼 생산 네트워크와 장차 WTO의 표준이 되길 노리는 제반 무역규범의 제정은 거부하기 힘든 요소다.
 
 
아직 TPP 가입예정이 없는 중국을 의식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나, 필자는 중국도 언젠가는 TPP에 가입하리라고 본다. 단 중국이 TPP에 가입할 때는 TPP 자체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이다. 중국이 합류한다면 현재보다 더 협상은 더디게 진행될 것이며 TPP의 개방도도 현재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한중 FTA의 전략적 의의를 재확인해야 한다. 한중 FTA는 한국에게 광활한 중국시장을 선점한다는 의의를 지니나 중국 입장에서는 TPP의 템플릿이 된 한미 FTA를 통해 TPP의 모의실험이라 할 수 있다. 한중 FTA는 중국이 역내에서 과연 TPP를 수용할 수 있을지를 판가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는 것이다. 급격한 자본이동에 취약한 금융 시스템 등으로 인해 개방 적응력은 미약하고, 산업구조도, 경쟁력과 소득수준도, 경제사회시스템도 제 각각인 이 지역에 OECD 회원국인 한국도 버겁게 체결한 한미FTA를 그대로 적용하는 건 당분간 무리다. 그것이 현재 TPP 협상이 지지부진한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한중 FTA를 역내 FTA 템플릿을 위한 교두보로 전략적으로 자리매김하고 한미 FTA를 동아시아적 특성에 맞게 변용시키고자 창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한국 정부가 내세우는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중개자(linchpin) 역할 아니겠는가. 행여 우리는 한미FTA를 했으니까 손해 볼 것 없다는 계산을 한다면, 중개자라는 모토는 조용히 내려놓는 게 좋다. 이에 필자는 한중 FTA를 매개로 중국과의 긴밀한 공조를 이어가며 양자간 충분한 공감대 하에 한국이 TPP에 가입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우리에겐 여전히 동아시아가 중요한 협력공간이라는 점이다. 동아시아의 성장 잠재력 활용, 그간 구축된 긴밀한 무역투자 네트워크의 효율 증대, 귀중한 금융통화협력의 제도화 진전 등 동아시아 경제통합의 필요성은 익히 논의된 것들이다. 이에 더하여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조성은 타 지역과는 공유하기 힘든 동 지역의 공공재이다. 한반도의 평화는 동아시아 특히 동북아에는 사활이 걸린 실존의 문제이다. 개성공단을 역외가공지역으로 인정받은 FTA(싱가포르, EFTA, ASEAN 등) 상대국의 개성투자와 개성산 제품의 FTA를 활용한 자국으로의 역수출 지원 등을 통해 동지역의 생산 네트워크로 북한이 편입되는 것을 도와 남북갈등의 비용을 높여야 도발이 어려워진다. 이러한 고민을 담는 한중일 FTA와 RCEP을 설계해야 한다.

그렇다고 중국변수만 해결되면 TPP에 가입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단지 대외여건이 조성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보다 중요하게 국내여건 조성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Putnam(1988)은 '2단계 협상이론(two-level game)'을 통해 국제협상에는 대외협상과 대내협상 양 측면이 있어 그 결과는 전자뿐 아니라 후자로부터도 제약 받는다고 강조한다. 굳이 그의 이론에 기대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은 이제 대외협상이 불가피해졌다고 해서 대내협상을 무시해도 될만한 그런 나라는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또한 대기업과 달리 취약한 중소기업의 원산지증명 관련 인프라 구축,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무역구조조정지원제도 개선 등 그간 체결한 FTA의 국내 이행기반 마련, 한미 FTA와 충돌하는 국내 지자체 법규의 정비,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관련 ISD 제소의 향배 등에 대비한 상시 모니터링 등 FTA의 내실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실적으로 협상이익 최대화를 위한 여건은 또 어떤가. 단적으로, 현재 진행 중인 여러 FTA 협상은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지금 최대교역상대인 중국과 한중 FTA, 한중일FTA, RCEP의 협상 테이블에서 세 번이나 만나는 희극을 보고 있다. 여기에 12개국과의 TPP 협상까지 더해진다고 생각해 보자. 이런 식의 동시다발적․중복적인 FTA 체결이 자칫 부실협상으로 이어지진 않겠는가

. 마지막으로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자. 이제는 서민경제에 보탬이 되고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는 FTA를 고민해야 한다. TPP니 RCEP이니 하는 생경한 용어들이 고용 없는 성장, 양극화, 전세난, 가계부채 등으로 시름하는 이들에게 내용적으로는 보탬이 되는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의 ‘경제영토 확장’이 소수의 전유물이 되는 건 아닌가. 메가 FTA의 격량이 거센 가운데 언젠가는 중국의 TPP 가입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어 우리의 TPP 참여도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TPP의 철저한 비밀주의로 인한 불확실한 정보에 근거해 덜컥 참가를 결정하는 것은 무모하고도 무책임하다. 역내 FTA와의 관계 설정도 그림이 잘 안 보인다. 정부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보다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성공적인 TPP 체결을 위한 국내외 여건조성 프로그램을 갖고 투명하게 추진하는데 힘을 쏟길 바란다. 실적위주의 FTA 체결을 지양하자며 우여곡절끝에 외교부에서 산업부로 통상기능을 이관하지 않았나. 결과적으로는 잘한 일이라고, 산업부가 칭찬받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