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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과 정책 제33호_선학태_새누리당-박근혜 정부, 조세-복지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4-05-26 10:01:32
  • 조회수 : 2631
 

작금 정치권과 학계에 증세-복지의 당위론이 풍성하다. 그러나 증세-복지국가를 정치적으로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담론은 빈곤하다.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최근 국회 대표연설에서 재정(조세)-복지의 사회적 대타협을 위한 초당적인 ‘비전 2040위원회’ 설치를 통해 지속가능한 ‘한국형 복지모형’을 설계하자고 제안했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 시절엔 복지-조세부담 간극에 따른 갈등해결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금년 신년기자 회견에선 노사정 대타협을 주창한 바 있다. 이러한 제안은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정치적으로 민감한 조세-복지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매우 시의 적절한 문제의식의 발로로 평가할 만 하다. 일견 새누리당-박근혜 정부가 조세-복지의 정치학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적 대타협이란 시민사회-시장-국가 사이를 유기적으로 조합하는 수평적 의사결정 패러다임이며, 이익집단-국가 간의 정치적 교환(political exchange)을 통해 노사 등 이해집단들의 이익·가치 갈등을 조정하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새누리당이 제안한 ‘비전 2040위원회’는 조세-복지 갈등을 조정 관리하기 위해 그 이해주체(사실상 전 국민)들이 참여하는 정책 네트워킹-파트너십에 기초한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한국형 복지-조세모형을 설계하려는 협의체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런데 사회적 대타협은 정당정치 패턴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즉 단순화하면 양극단적으로 경쟁하고 단일 이념정향 정당(연합) 단독으로 정부 구성을 추구하는 정당정치에선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은 불안정·해체되는 반면, 정당 간 연합정치와 연동되는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은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이 글은 새누리당-박근혜 정부의 정책의지에도 불구하고 현행 우리의 정당정치 동학을 고려할 때 한국형 조세-복지모형을 견인하는 ‘비전 2040위원회’라는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작동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한국 사회에서 왜 조세-복지 정치를 위한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이 필요 하는가를 논의하며, 마지막으로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작동은 어떤 정당정치 패턴을 요구하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주지하듯이 현행 사회적 협의체인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임금체계나 근로시간 단축 등 노사정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양대 노총의 외면에 직면하고 특히 그동안 노사정위를 명목상 유지해 준 한국노총마저 불참 선언으로 사실상 ‘식물위원회’로 전락한지 오래다. 기존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실상이 이럴진대, 과연 조세-복지 정치의 ‘비전 2040위원회’라는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며, 설령 설치된다고 해도 그것이 안정적이고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은 자못 회의적이다. 여러 구조적 요인이 존재하지만 그 가장 핵심적 이유는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정상적 작동을 유인할 정당정치의 부재에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무릇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정상적 작동은 시장경제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노동을 대표하는 정당정치를 전제한다. 그러나 현행 새누리당-새정치민주연합이 지배하는 탈계급적 탈계층적 지역분할 양당 독과점 정치에서 노동은 ‘비전 2040위원회’에 참여할 매력을 갖지 않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도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았다. 당시 지역(구)중심의 거대 양당 독과점 체제가 노동의 이익과 관점을 치열하게 주요 정책의제로 공론화하여 정치적으로 대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 민주정부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이라는 정책비전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재벌중심 성장일변도 발전모델에 입각한 신자유주의적 노동독트린으로 경도되었고 지역(구)중심의 거대 양당정치는 이를 효과적으로 견제하거나 노사정 정치-국회 관계 설정에 속수무책이었다.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된 사회협약(social pacts)이 국회의 입법화 과정에서 지역(구)중심의 거대 양당정치의 제동에 걸려 노동에게 더 불리한 방향으로 변질되거나 부결되었으며, 심지어 국회에 입법의제로 상정조차 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곤 했다. 결국 반노동적인 지역(구)중심의 거대 양당정치는 두 민주정부 하에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기구로 변질된 노사정위원회에 노동참여를 독려할만한 아무런 정치적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못했고 노동의 거리정치(street politics)를 일상화시키는 주된 요인이었다.

현재의 정당정치도 안철수세력-민주당 통합으로 인해 변하면 변할수록 옛 모습으로 고스란히 복원되고 있다. 노동대중을 대표하는 진보좌파 세력이 승자독식 선거제도로 인해 유의미한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새누리당-새정치민주연합, 지역(구)중심의 양대 패권정당은 국회의석을 싹쓸이하고 있다. 거대 양당 국회의원들은 차기 선거 재당선을 위해 국가재정과 지역(구) 주민 사이의 정치브로커·로비스트 행세를 하며 지역 토건·서비스사업 유치에 몰입한 나머지, 입법 등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결정권을 잠식할지 모르고 노동의 협력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사회적 대타협 정치엔 체질적으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심지어 거대 양당의 보수성향 정치인들은 정당한 노동운동을 노동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하면서 노사정위원회가 자유시장경제의 원리에 반하고 세비만 축내는 무용지물 기구로 평가 절하하는 등 무식의 극치를 드러내기도 한다. 요컨대 노동의 상대적 절대적 박탈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는, 세계 유례가 없을 정도의 기형적인 지역(구)중심의 반노동적 거대 양당 정치지형은 노동에게 ‘비전 2040위원회’라는 사회적 협의체에 참여할 동기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나아가 자유주의 진보세력인 새정치민주연합을 포함한 야권 정당블록과의 양극적 경쟁관계에 있는 자유주의 보수블록 새누리당-박근혜 정부는 조세-복지 정치를 위한 ‘비전 2040위원회’에 사용자단체의 참여를 견인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를 갖는다. 사용자단체는 ‘비전 2040위원회’ 참여보다는 자신들과 이념적 정향을 공유한 새누리당-박근혜 정부와의 직접적인 담판·로비를 통해 이익을 관철하려는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릇 양극단적으로 경쟁하는 정당정치 속에서 특정 이념정향의 정당(연합) 단독으로 정부가 구성되는 경우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안정적 작동은 위협 받는다. 노사정 파트너십의 유럽 아이콘이고 조세-복지국가의 세계 챔피언이던 스웨덴의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 퇴조·해체 현상이 이 가설을 경험적으로 입증한다. 스웨덴 정당정치는 보수우파 정당연합의 집권(1976~82)을 계기로 이념블록 간 양극화 속에서 순수 우파정부연합 혹은 순수 좌파정부 구성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이런 정당정치의 좌우 양극적 경쟁과 종(縱)적으로 연결된 노사 이익단체도 양극단적 갈등의 늪에 빠진 형국이다. 마치 양당제 국가에서 발생하는 양극적 정당정치-갈등적 노사관계 현상이 악화된 것이다. 따라서 스웨덴 노사 이익집단들은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에의 참여보다는 이념적으로 동질적이고 정치적으로 우호적인 정당정부를 상대로 로비정치(lobbyism politics) 전략을 선호한다. 이런 의미에서 1991년 초 스웨덴 사용자단체(SAF)가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종언을 선언하고 국가노동시장위원회(NLMB)를 비롯한 여러 3자 협의체에 파견된 대표를 철수시킨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당시 보수우파 정당연합의 선거승리가 확실시 되고 두 번째로 집권한 보수우파 연립정부(1991~94)의 정책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여 자신들의 이익관철 확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역으로 보수우파 정당연합과 양극적으로 경쟁하는 사민당(SD) 소수정부(1994~2006)는 내각연합 구성 대신 의회 차원에서 좌파당(Left Party) 혹은 녹색당과의 연합을 통한 입법화 전략을 선호하는데, 이러한 적녹(赤綠)연합의 좌파블록에 대해 스웨덴 사용자단체는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며 사민당 소수정부-노조와의 협상시스템에 연연하지 않았다. 결국 스웨덴의 양극단적 정당경쟁-단일 이념블록의 정당정부가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안정적 작동을 방해한 족쇄가 된 것이다. 스웨덴의 이 같은 양대 이념블록 정당정치와 사회적 대타협 퇴조·해체 사이의 인과성은 한국 정당정치-사회적 대타협의 관계를 예측하는 데 유익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런 문제인식에서 볼 때 자유주의 보수블록의 새누리당-박근혜 정부가 조세-복지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을 설립하거나 안정적으로 작동시킬 확률은 낮다. 야권 정당블록과의 양극적 경쟁관계에 있는 새누리당-박근혜 정부는 단독으로 법안통과를 위한 안정적 과반의석을 점유하고 있는데, 이 지점은 (비록 ‘국회선진화법’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전경련·경총 등 재벌대기업 이익을 집약·표출하는 사용자단체에겐 대단히 우호적인 정치지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념적 정치적 정향을 달리하는 야권 정당블록의 정치력을 견제해야 할 절박함을 가질 필요가 없는 재벌-사용자단체는 ‘신자유주의 성장동맹’의 중심축이고 신자유주의적 가치와 규범을 공유한 새누리당-박근혜 정부를 상대로 한 로비정치를 통해서 이익관철을 달성하는데 커다란 정치적 장애물은 없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필연적으로 노동에 대한 양보-화답을 강요할 것으로 예측되는 조세-복지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 설립 자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기 마련이다. 사실 국가경제를 지배하는 스웨덴의 수출 대자본(중화학공업)도 중소기업 중심의 덴마크의 사용자들과는 달리 적어도 1990년대 이후엔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에 대해 조건반사적으로 거부 반응을 보이곤 했음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새누리당-박근혜 정부가 대선 당시 공약했던 재벌개혁-복지정책을 축소 내지 파기하고 경제활성화를 내세우며 규제 ‘암 덩어리’와의 전쟁을 선언 한 것은 자본스트라이크(capital strikes, 투자·고용축소, 생산기지 해외이전 등) 위협을 압박 무기로 활용할 위치에 있는 재벌-사용자단체의 집요한 유무형 대(對)정부 로비정치에 기인한다. 재벌 대자본은 대학·싱크탱크·언론매체를 소유하거나 재정적 지원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가치와 규범을 확산시킨다. 또 그들은 청와대비서진-장차관-고위관료-유력정치인과의 혼맥·학맥·지연 혹은 고위공직자 역충원(reverse recruitment)에 의한 ‘관피아’ 등 거미줄 같은 휴먼네트워크와 ‘끼리끼리 커넥션’을 구축하여 자금력·정보력·조직력을 총동원, 새누리당-박근혜 정부의 정책결정-집행 과정에 직간접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를 유리하게 이끌어낸다. 이러한 유리한 권력자원(power resources)에 입각한 자본-권력 유착구조 속에서 왜 재벌-사용자단체가 한가롭고 ‘천진난만’하게 노조를 비롯한 다른 이익단체들과 지루한 협상을 해야 하는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에 참여할 동기를 갖겠는가? 그들에겐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이란 시장경제의 자유경쟁 원리와 규범에 근본적으로 반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새누리당-박근혜 정권 그 자체 또한 그렇다. 그들은 법안통과를 위한 안정적 과반의석을 점유하고 있는 터라 정책추진과 국정운영을 지체시킬지도 모를 정부 밖의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에 의존할 매력이 별로 없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부의 재정과 정권의 업적이 국가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재벌대기업이 이룩한 실적에 의존하는 현실에서, 서유럽 국가들의 좌우블록 연립정부와 달리 새누리당-박근혜 정부는 재벌-사용자단체를 압박하여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에의 참여를 강제하는 데 숙명적인 한계를 갖는다. 결국 자유주의 보수블록 새누리당-박근혜 정부는 구조적으로 자본친화적인 법제도를 만들고 정책을 결정·집행할 수밖에 없다. 노동이 새누리당-박근혜 정부의 조세-복지 사회적 대타협 제안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며 외면하는 단적인 이유이다.

요컨대 재벌대기업-사용자단체의 막강한 구조적 힘(structural power)은 자신들과의 동질적인 이념정향을 갖는 새누리당 단독으로 집권한 박근혜 정부의 도구적 구조적 정책자율성을 무력화시켜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구축 혹은 안정적 작동을 불가능하게 한다.
 
 

우리 사회에는 복지-조세 갈등이 상존한다. 우선 복지를 바라보는 두 관점이 대립한다. 하나는 복지가 조세부담에 따른 기업의 투자의욕 저하를 초래해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린다는 논리이다. 이 보수우파적인 관점은 자산·소득에 따라 차등적으로 급여하는 ‘선택적’ 복지체제 선호로 이어진다. 다른 하나의 관점은 촘촘한 사회안전망이 노동운동 온건화,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노동시장 유연화와 기업구조조정을 원활하게 하여 국가경제의 생산성·효율성향상을 도모하는 인프라로 인식한다. 이 진보좌파적인 관점은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같은 수준의 복지 혜택을 주자는 ‘보편적’ 복지논리로 발전한다. 동시에 복지재원의 마련을 둘러싼 조세 대립도 만만치 않다. 대규모 세수를 안정적으로 담보하는 간접세 중심의 역진적 조세체계냐 혹은 ‘능력 세금부담 원칙’에 의거 고소득층에 대한 직접세 중심의 누진적 조세체계냐, 증세냐 감세냐, 조세부담률, 복지세·부유세 신설 등에 접근하는 이해관계 집단 간의 상이한 관점과 논리가 항상 부딪친다. 우리 사회의 복지-조세 담론 과정에서 이처럼 이해관계 집단 간, 보수우파블록과 진보좌파블록 간의 대립과 갈등이 첨예하게 분출한다. 그런데도 만일 복지-조세 이슈가 정책 이해당사자들(사실상 전 국민)의 참여를 배제 소외시키고 청와대-집권당-관료-전문가 중심의 위계적 하향식 방식에 습관적으로 익숙해 있는 권위주의적인 폐쇄적 정책결정 회로에 맡겨지면 복지-조세 갈등과 충돌의 확대재생산은 필연적이고 불가피해진다.

복지와 조세는 동전의 양면이다. 복지국가 구축을 위한 세금인상 정책이슈는 정권의 운명을 뒤흔드는 잠재적 시한 핵폭탄이다. 1991년 캐나다 보수당 정권은 연방소비세를 인상했다가 2년 후 총선에서 기존 169석이 단 2석 획득으로 대참패하는 ‘쪽박’을 차고 결국 다른 정당에 흡수통합 돼버렸다. 일본 민주당도 보편적 복지국가 ‘장밋빛’ 로드맵을 제시하고 소비세 인상을 추진하다가 불과 3년 만에 자민당에 정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박정희 정권의 몰락도 사실은 1977년 부가가치세 도입이 그 씨앗을 잉태했다는 시각이 있다. 이처럼 복지국가 증세는 정권의 명운을 가르는 폭발성을 지니기에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하고 인기 없는 정책이슈다. 따라서 새누리당-박근혜 정권에게 복지국가 증세를 요구한 것은 적어도 그들의 입장에선 어쩌면 정권을 내 놓으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정치적 협박으로 비쳐질지 모른다. 그렇다면 증세-복지국가와 같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정책의제가 어떻게 풀릴 수 있을까?  

게르만·노르딕유럽 국가들의 조세-복지 연계정치(politics of linking taxation and welfare)는 사사하는 바가 크다.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그들 국가의 복지국가-조세 연계는 노사정 간 정치적 교환으로 작동한 사회적 대타협의 산물이다. 노동은 자본의 투자촉진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며 기업부담이 되는 무리한 임금인상을 자제했다. 국가는 연대임금을 수용하는 노동에게 촘촘하고 관대한 복지정책으로 보상했다. 임금인상 자제로 여유가 생긴 자본 측의 투자 드라이브는 복지국가의 재정적 토대를 제공하고 임금억제를 양보한 노동에게 일자리 창출과 경영참여의 제도화로 화답했다. 이처럼 게르만·노르딕유럽 국가는 나라에 따라 다소의 편차는 존재하지만 대체로 양보-보상-화답 사이클이 작동하는 노사정 대타협 메커니즘을 통한 지속적인 사회협약정치(social pact politics)를 매개로 하여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국가를 제도적으로 연계시켜 생산과 분배,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이끌어냈다. 아울러 특히 노르딕유럽의 복지국가 조세체계의 주축인 간접세 중심의 역진적 조세정책 또한 국가-이익집단 간의 정치적 교환을 특징으로 하는 사회적 대타협의 산물이다. 그들 복지국가의 사회적 대타협 조세정치는 우파와 노동이 각각 선호하지 않는 법인세와 임금소득세의 인상 대신, 두 집단의 이해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일반소비세의 증세를 통해 대규모 세입을 늘리고, 복지세출을 통해 불평등을 완화하는 전략을 실행한 것이다. 이처럼 게르만·노르딕유럽의 사회적 대타협에 의한 복지-조세정치는 계급·계층 간의 정치적 타협을 전제하기 때문에 세금부담이 특정 집단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낮고 복지-조세 갈등을 조정하는 기제로 작동했다.

게르만·노르딕유럽 국가들의 복지-조세 연계정치가 던지는 메시지는 이해집단-국가 간의 정치적 교환에 기초하는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작동을 통해서만이 복지-조세 갈등을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환언하면 한국의 조세-복지 연계정치를 통한 증세-복지 갈등의 제도화는 이익·시민단체-기업-전문가집단-여야정당-중앙부처-청와대 대표들이 참여하는 포괄적인 정책 네트워크-파트너십이 작동하는 복지-조세 거버넌스 시스템 구축을 요구하고 있다. 복지-조세 거버넌스는 저(低)세입-저(低)복지(low revenue, low welfare), 중세입-중복지, 고세입-고복지 등 세 가지 메뉴를 상정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한국형 증세-복지 프로젝트의 로드맵(증세-복지국가 5개년계획 등)이 디자인되어야 한다. 예컨대 앵글로색슨 자유주의 복지국가 수준의 조세부담-공공사회서비스, 게르만 기민주의 복지국가 수준의 조세부담-관대한 사회보험, 종국적으로 노르딕 사민주의 복지국가 수준의 조세부담-보편적 포괄적 공공사회서비스 등 단계별 혹은 부분적 동시성 발전경로가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을 통해서 설계될 수 있다.

요컨대,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조세-복지갈등을 조정 관리하는 제도적 지렛대이고 정치적 동력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이야말로 증세-복지정책의 대표성·정당성을 증대시키고, 사회경제적 파트너들과 정치적 파트너들 모두에게 증세-복지정책의 책임성과 정치적 리스크를 공유시키며 증세-복지의 혜택과 비용을 분산시킴으로써 우리 사회의 증세-복지 정책이슈를 둘러싼 계급·계층과 집단의 반발과 저항을 관리 흡수하는 유일한 갈등관리(conflict management) 기제이다. 증세-복지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필요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형 조세-복지모형을 설계하는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은 어떤 정당정치적 조건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가? 서유럽 국가들에서 사회적 대타협 정치는 정당 간 연합정치(coalition politics)와의 유기적인 연동을 통해서 작동했음을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정당정치가 지향하는 연합정치 패턴은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안정적 작동 여부를 좌우하는 독립변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합정치는 정당명부 비례대표 선거제도가 유인하는 정당체제를 전제한다. 즉 어느 정당도 단독으로는 국회 과반의석 점유와 정부구성이 불가능한 진보좌파-중도-보수우파 블록의 다당제를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한국 정당정치가 이와 같은 제도적 매트릭스에 입각하는 정당 간 연합정치 패턴이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작동에 미치는 한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 있다. 즉 한국 정당정치가 이념블록을 뛰어넘는 연합정치의 제도화를 추구하는 조건에서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은 안정적으로 작동할 확률이 높아진다. 초이념블록 연합정치는 노사 이익단체-행정부-국회 간 유기적 협력을 촉진하는 강력한 연결고리이며, 따라서 사회적 대타협에 의해 설계된 한국형 조세-복지모형이라는 사회협약이 국회 입법화과정에서 변질·부결되는 정치적 공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정책협약의 입법화 과정에 의해 초이념블록 연합정치-사회적 대타협 정치는 제도적 기능적으로 연동된다. 초이념블록 연립정부는 특정 이익단체에게만 편파적으로 우호적이거나 특혜를 일방적으로 부여할 수 없고, 상대적으로 중립적 입장에서 재정적 행정적 정책수단에 의한 압력·권고·지원 등을 통해 이익단체들을 협상테이블에 견인하는 정치적 동력을 갖는다. 노사 이익단체들 또한 초이념블록 연립정부 내 특정 우호적인 정당을 상대로 하는 로비정치를 통해 일방적으로 이익관철을 시도하는 것이 연정파트너 정당 간의 역학관계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초이념블록 연립정부의 노사 계급·계층적 중립성을 신뢰하고 조세-복지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에의 참여를 회피하지 않는다. 게다가 노사 이익단체들은 과반의석 정당이 부재한 초이념블록 연립정부에선 자신의 우호적인 정당이 이념적 정책적 차별성을 가진 다른 정당과의 정책조정·타협을 하지 않고서는 안정적인 연합 집권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각기 상대방 이익단체와의 협상-타협으로 행동전략을 바꿔 조세-복지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에의 참여를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서유럽국가들의 사회적 대타협 정치는 이념블록 간 교차(cross-bloc)하는 연립정부에서 부활 혹은 활성화되었다. 덴마크의 경우 군소 중도정당(사회적 자유당 등)은 좌파정당과 우파정당 사이를 오가며 자신의 지지 정당을 선택하면서 연립정부를 형성하곤 했으며, 이러한 초(超)이념블록 연합정치가 사회적 대타협 정치시스템의 작동을 부활·안정화시킨 제도적 버팀목이었다. 네덜란드의 사회적 대타협 정치도 중도정당인 기민당이 보수자유당과의 연정에서 복원되었고, 노동당/D'66/보수자유당 초이념블록 연립정부에서 제도화되었다. 핀란드의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도 실업·저성장 등 경제위기 국면에서 사민당/국민연합당/스웨덴인민당/좌파동맹/녹색당 초이념블록 ‘무지개’ 연합정치와 절묘하게 맞물려 안정적으로 작동했다. 독일의 사회적 대타협 정치도 비록 사민당/녹색당 좌파블록 연정에선 정체되었지만 사민당/자민당, 사민당/기민당 등 초이념블록 연정 하에선 활성화되었다. 이런 서유럽 경험적 사례들은 좌-중도-우를 교차하는 초이념블록 정당연합이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안정적 작동을 유인하는 정치적 동력이 되고 있음을 웅변한다.

서유럽 국가들의 초이념블록 연합정치-사회적 대타협 정치의 인과관계에 비춰 보건대, 한국 정당정치가 중도정당/진보좌파정당 혹은 보수우파정당/진보좌파정당 등과 같은 초이념블록 연립정부의 제도화를 추구할 때 증세-복지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은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초이념블록 연립정부는 노동과 자본을 동등하고 균형적으로 대표하는 정치적 공간을 확장하여 노사 대타협을 유인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제도 개혁으로 특히 진보좌파정당이 국회에서 유의미한 의석을 점유하고 그 출신이 청와대 수석비서관으로 입성하거나 사회경제부처 장관으로 입각하는 초이념블록 연립정치 지형에선 재벌-사용자단체는 보수우파정당에 대한 로비정치를 통해 일방적으로 이익관철을 시도할 수 없으며, 따라서 습관적으로 익숙해 온 대정부 로비·압박 정치를 철회하고 정부-노동과의 협상전략으로 나오는 것 외 다른 옵션 카드가 없다. 재벌-사용자단체의 협상전략이란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에 의한 한국형 조세-복지모형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노동에게 부여하는 그들의 조세부담·투자확대·일자리창출·교육훈련강화 등과 같은 양보-화답 스탠스를 의미한다.

역으로 초이념블록 연합정치는 노동대중을 대표하는 진보좌파 정당의 양보-화답을 끌어낼 수 있다. 진보좌파 정당 소속 국회의원-장관들은 정당의 이념적 정체성에 입각하여 전면무상의료·재벌해체 등 자신들의 특정 급진적인 정책만을,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식으로 고집할 수 없고 다른 연정파트너인 중도정당 혹은 보수우파 정당들과의 조세-복지 정책조율·교환 협상과정에서 임금인상 자제, (노사 공동결정체계에 입각한) 재벌대기업 경영권 보장, 노동시장의 내부-수량적 혹은 기능적 유연화(internal numerical or functional flexibilization) 등 친기업적 신자유주의 정책을 일정 부분 수용할 수밖에 없다. 진보좌파 정당의 양보-타협 조치가 없으면 연정갈등(coalition conflicts)으로 인해 초이념블록 연립정부는 더 이상 존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대중-진보좌파정당의 탄력적인 양보-타협정책이야말로 재벌-사용자단체를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으로 견인하는 강력한 인센티브로 작용하여 노사정 간 조세-복지 일괄타결(package-deal)을 이끌어내는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시나리오는 브라질 룰라 대통령에 의해 실행된 바 있다. 그는 과격한 노동운동 경력의 좌파골수 지도자였지만 집권한 후 비례대표제로 인해 자신의 노동자당(PT) 의석점유율이 늘 20%를 밑돌자 좌우 초이념블록 연정을 구성하고 한편으론 빈민-서민 복지정책을 확대하고, 다른 한편으론 매우 흥미롭게도 자신의 좌파브랜드에 걸맞지 않게 보수우파 연정파트너 정당들의 친기업적 신자유주의 정책을 과감하게 수용 발전시켜 종국적으로 노사정 대타협을 유도하곤 했다. 대통령제 국가인 브라질 사례에 비춰 보건대, 주류 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한국 대통령제 하에서도 진보좌파 정당은 중도정당 혹은 보수우파 정당과의 연정협약에서 한편으론 자신의 정치고객인 노동대중의 이해관계를 대표하고, 다른 한편으론 노동대중의 양보를 끌어내고 ‘길거리-광장 정치’ 유혹을 자제시켜 정책협상 테이블에 참여하도록 설득하는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 시나리오는 서유럽 국가들의 경험에서도 여실히 검증되었다. 즉 노동과 사회취약계층의 이해관계·정책선호가 진보좌파블록 정당들이 참여하는 연립정부의 정책 협상테이블에서 여과 없이 대표되었으며, 이는 노조로 하여금 산업현장의 과격한 투쟁전략을 피하고 ‘온건과 절제’라는 행동전략에 의해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에 참여하도록 유도했다. 예컨대 스페인·네덜란드·아일랜드의 사회적 대타협 정치는 노동우호적인 정당 혹은 사민주의 진보좌파 정당이 자유주의 보수우파 정당과의 연합정치를 통해서 한때 극도로 과격했던 노동운동을 잠재우는 등 노조들의 절제와 타협적인 스탠스를 이끌어내는 동력이 되었다.
 
 
 
현행 지역(구)중심의 거대 양당 독과점정치의 동학과정을 고려할 때 유감스럽게도 이 글이 상정하고 있는,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안정적 작동을 유인할 수 있는 초이념블록 연합정치 시나리오는 어쩌면 잡을 수 없는 정치적 신기루에 불과하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정당정치 패러다임이 바꿔지지 않는 한 새누리당-박근혜 정부가 제안했던, 한국형 복지-조세모형 설계를 위한 ‘비전 2040위원회’라는 사회적 대타협 운운은 그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는 한낱 정치적 레터릭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사회적 대타협 시스템의 정상적 안정적 작동은 노동과 자본을 균형적으로 대표하는 정책경쟁-협력 사이클이 작동하고 과반의석 정당이 부재한 진보좌파-중도-보수우파 블록의 다당제와 연합정치로 이어지는 정당정치의 제도화를 필수적으로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패턴의 정당정치 패러다임으로의 교체는 권력배분·구성 방식인 선거제도의 혁신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즉 현재의 권력독점 단순다수대표제에서 권력분점 비례대표제로의 전환이다. 대한민국 ‘새정치’가 대장정에 오르는 유일한 출발 지점이다.

이런 문제인식에서 정치인 안철수는 정치개혁 의제설정의 ‘번지수’도 ‘문패’도 완전히 잘못 짚었음을, 이 글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다음 시대를 고뇌하는 ‘정치가’의 길보다는 다음 선거를 고민하는 ‘전략가’로 변신했다. 안철수세력-민주당의 통합은 한국정치의 역주행과 적신호를 알리는 조종(弔鍾), 아니 한국민주주의에 ‘악마의 독배’가 될 것만 같은 불안감이 깊어지고 있다. 그래서 정치판을 갈아엎으라는 국민적 열망이 투영된 이른바 ‘안철수 현상’은 이제 일장춘몽의 ‘안철수 환상’으로 추락하는 느낌이다. 그토록 절규했던 ‘새정치’가 봄날 벚꽃처럼 피려다가 벚꽃처럼 떨어져버린 것이다. 더욱이 새정연이 연출하는 저간의 작태를 두고 볼 때 ‘새정치’ 깃발은 세간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이런 경고성 관찰이 초야에 묻혀 사는 한 범부의 착시이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국민주주의의 진일보를 위한 총총한 발걸음을 멈출 수 없다. 대한민국의 자화상이 집약적으로 응축된 참으로 비극적인 ‘세월호’ 대참사. 바라건대, 도도히 분출하는 사회적 분노의 에너지와 국민적 비탄이 초이념블록 연합정치-사회적 대타협이 연동하는 정치시스템 구축을 통해 세상의 기본 틀을 바꾸기 위한 권력분점 ‘선거제도 개혁 국민운동’으로 승화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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