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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과 정책 제34호_김선수_파업권 행사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제한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4-06-02 10:22:41
  • 조회수 : 3222
2014년 5월 19일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 국제노총)은 세계 139개국의 노동권 현황을 조사해 세계노동자권리지수(GRI)를 발표했다. 한국은 중국, 인도, 나이지리아, 방글라데시, 라오스, 필리핀, 터키, 짐바브웨, 이집트, 그리스, 과테말라, 스와질란드, 잠비아 등 23개국과 함께 최하위 5등급으로 분류됐다. 5등급은 ‘노동권이 지켜질 거란 보장이 없는 나라(No guarantee of rights)'를 의미한다. 국제노총은 2006년 11월 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ICFTU)과 세계노동연맹(WCL)이 통합한 세계 최대 노동조합단체로서 현재 155개국 1억7천500만 명의 노동자가 가입해 있다. 국제노총은 시민 자유, 노동조합 설립, 노동조합 활동, 단체교섭, 파업권 등 다섯 부문에서 97개의 세부항목을 점검하여 권리 침해의 경우 1점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점수를 합산했다. 5등급은 35점 이상을 받은 나라들이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등록 거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파업에 나선 철도노조 조합원 대량 해고, 노동조합 상대 손해배상 청구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파업을 이유로 노동조합과 노동조합 간부를 상대로 천문학인 액수의 손해배상을 인정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노동권 보장과 관련하여 핵심 현안으로 되고 있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네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2003년 1월 두산중공업 배달호씨 분신자살, 2003년 10월 한진중공업 노동조합 전 위원장 김주익씨와 세원테크 노조위원장 이해남씨 자살, 2012년 12월 한진중공업 노동조합원 최강서씨 자살. 모두 노동조합 간부로 파업에 참여했다가 회사가 천문학적인 액수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면서 재산과 급여를 가압류하고 소송을 제기하자 그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4. 1. 24. 기준 민주노총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진행 중인 불법파업을 이유로 노동조합 또는 노동조합 간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금액은 합계 약 1,128억 원에 이르고, 가압류는 약 168억 원에 달한다. 이 자료는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만을 대상으로 집계한 것이므로, 민주노총에 가입하지 않은 사업장이나 민주노총이 파악하지 못한 조합원 개인을 상대로 한 소송까지 감안한다면 그 규모는 더 커질 것이다. 청구금액 순으로 문제가 된 사업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1)
  회사 청구액 사건요지 배상액 진행상황
1 KEC 301억 2010년 교섭결렬로 공장점거 등 1심 진행 청구액 156억으로 감축
2 MBC 195억 2012년 공정방송 요구 파업 0 사측 항소
3 코레일 162억 2013년 민영화 반대 철도파업 1심 진행 116억 가압류
4 한진중 158억 2010년 정리해고 반대파업 59억 항소심 진행
5 코레일 150억 2006년 철도파업 69억 2011. 확정
6 쌍용차 100억 2009년 정리해고 반대 평택공장 옥쇄파업 33억 항소심
7 현대차 90억 2010년 비정규직 울산공장점거 90억 항소심
8 코레일 87억 2009년 철도파업 1심 진행 청구액 38억으로 감축
9 코레일 75억 2003년 철도파업 24억 2006. 확정
10 현대차 70억 2010년 비정규직노조 울산공장점거 1심 진행 파업참가자 323명 상대
대한민국 헌법은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포함한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노동자가 단체행동권을 행사하여 파업을 하면 업무방해죄로 형사처벌 받고, 회사에서 해고되고, 그것도 모자라 평생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부족한 엄청난 액수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 시달려야 한다. 신원보증을 해준 친지의 재산을 비롯하여 당장 생계를 위해 필요한 급여를 가압류해 놓고 장기간 소송이 진행된다. 그로 인해 인간관계는 파탄 나고, 가족들의 생활은 만신창이가 된다. 재판 결과 엄청난 액수의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이 내려지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회사가 꼭 손해배상을 받겠다는 목적보다는 노동조합 간부들을 조합원들로부터 분리시키고 노동조합 활동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제기되기도 한다. 해고투쟁을 포기하면 취하해주겠다면서 해고투쟁에 대한 대응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결국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은 헌법에 글자로만 존재한다. 사회현실로 나오면 업무방해죄라는 철퇴가, 해고라는 몽둥이가, 그리고 손해배상과 가압류라는 최후의 일격이 가해진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는 한 이 땅에서 파업을 할 수 없다.
 
 
개인이 불법행위를 해서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가했다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헌법상 기본권을 행사한 경우라면 비록 그로 인해 손해를 입은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감수해야 한다. 헌법이 노동3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한 것은 파업을 이유로 민사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이나 업무방해죄 등을 적용하여 형사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의미다.

그런데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이라 약칭함) 제3조는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재산적 손해에 대하여 노동조합 및 근로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라고 하여 ‘이 법에 의한’ 즉, 엄격한 요건을 갖춘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해서만 손해배상 책임을 면제하고 있다. 문제는 ‘정당한’ 파업의 개념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해석한다는 것이다. 노조법과 대법원은 주체, 목적, 시기와 절차, 수단과 방법의 모든 측면에서 엄격한 요건을 갖추어야만 파업이 정당하다고 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노동조합이 정당한 파업을 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만큼이나 힘들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어느 하나의 요건을 통과하지 못하면 손해배상 폭탄을 맞아야 한다.

정당성 요건과 관련해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목적의 정당성이다. 법원은 사용자가 법률적으로나 사실적으로 직접 처리할 권한이 없는 사항을 목적으로 한 쟁의행위, 좁은 의미의 근로조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는 소위 경영사항에 관한 사항이나 정책사항에 관한 사항을 목적으로 한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부정한다. 구체적으로 정리해고나 구조조정, 인력감축과 근로조건의 악화를 초래할 공기업 민영화, 담당업무의 공공성을 훼손하는 정책 등에 반대하는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부정함으로써 노동조합의 역할을 극도로 축소시키고 있다. 위 사항들은 조합원들의 이해관계에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의미를 가지므로 조합원들의 총의를 집행할 수밖에 없는 노동조합 간부들로서는 위와 같은 사항의 관철을 위해 파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이를 목적의 정당성 요건을 구비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은 국제노동기구나 프랑스 등의 경우 ‘직업적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파업의 정당성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것에 비추어 노동조합의 활동 폭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다.

절차적 요건은 공익과의 조화, 조합 민주주의적 요청, 노동위원회에 의한 조정 기회의 제공이라는 행정서비스 제공 등을 위해 인정되는 것이므로 그 절차 위반에 대해서는 본래의 취지 달성에 필요한 행정적 조치를 부과하는 것으로 족하고 그로 인해 당연히 파업 전체의 정당성이 상실된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절차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부당하다.

법원은 노동조합의 총의에 따라 파업이 결의되고 진행된 경우에도 이를 기획․주도했다는 이유로 노동조합 간부들 개개인에 대해 전체 손해에 대한 배상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노동조합과 간부들이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전체 손해에 대해 각자 전부를 배상할 책임이 있고, 각 부담부분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구상할 관계라는 것이다. 그러나 쟁의행위가 조합원 찬반투표 등에 의하여 조합원 총의로 결정된 경우 그 집행행위는 단체로서의 노동조합에 귀속하고 노동조합 간부는 조합원 총의를 집행할 수밖에 없으며, 단체행동권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이라는 점 등을 고려하면 노동조합 간부의 개인 책임은 부정되어야 한다. 적어도 책임범위가 제한되어야 한다. 즉, 전체 조합원의 파업 참가로 인해 발생한 손해 액수를 파업 참가 조합원수로 나누어 산정한 1인당 부담해야 할 책임 액수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

법원은 손해배상 책임의 범위와 관련하여 영업이익의 상실․감소, 고정비용의 지출, 쟁의행위 기간에 대응하는 인건비의 지출, 쟁의행위에 수반된 행위에 의하여 발생한 물품 훼손 등의 적극적 손해와 신용․명예 등 무형적 이익의 침해 등 쟁의행위와 상당인과관계 있는 모든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노동자들의 파업 참가로 인해 입은 사용자의 생산 또는 영업 손실, 고정비 손실까지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근로계약관계의 핵심은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노무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지급받는 것이다. 노무를 제공하지 않으면 임금을 지급받지 못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노동자에게는 사용자에 대하여 이익의 배분을 요구할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노동자에게 사용자의 영업이익 창출에 협력할 의무도 인정되지 않는다. 노무제공 거부라는 단순한 채무불이행에 대해 반대급부인 임금지급 의무를 면제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생산 또는 영업 손실에 대한 배상책임까지 인정하는 것은 노무를 제공하고 그 대가인 임금을 지급받을 목적으로 취업한 노동자에게 근로의무를 강제하고 사용자의 이윤 창출에 협력할 의무를 강제하는 것으로 부당하다.
 
 
가. 해석론
 
법원의 해석론을 통해서도 현재와 같은 야만적인 상황을 개선하는 데 진전을 이룰 수 있다. 단순파업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노동조합 간부 등 개인의 책임을 부정하고, 영업 손실과 고정비 손실을 손해배상의 범위에서 제외하고, 파업의 위법성과 손해와의 인과관계를 엄격하게 심사하며, 사용자의 과실을 평가하여 파업권 행사를 위축시키는 효과를 갖지 않을 정도로 대폭적으로 과실상계를 하면 상황이 크게 나아질 것이다.

도진기 부장판사는 ‘실질적 형평성’이라는 관점에서 신의성실 원칙상 이루어지는 책임제한 법리를 유연하게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기업과 노동조합의 경제적인 능력 차이, 액면대로의 배상을 명하는 것이 기업의 수익에서는 큰 비중이 못 되지만 노동조함과 조합원에는 존립과 생계를 위협할 수 있는 거액이라는 사정, 외부의 힘에 의한 통상의 손해와는 다른 사건의 성격 등을 감안해서 생산 또는 영업 손실과 고정비 손해의 경우 노동조합 측의 책임을 현실적인 액수까지 떨어지도록 낮게 책정하는 것이다.2)
 
나. 국제노동협약의 비준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의 남용은 국제노동기준의 관점에서 보면 수치스런 상황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기본적인 국제노동협약의 비준이 필요하다. 국제노동기구(ILO)가 66년 전에 채택하였고 또한 결사의 자유 보장을 위한 기본협약으로 지정한 제87호 협약(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 1948)과 제98호 협약(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의 적용에 관한 협약, 1949년) 등을 조속히 비준해야 한다.
 
다. 입법적 개선
 
파업의 정당성이 부정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목적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는 노조법이 단체교섭 및 노동쟁의 대상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규정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노조법 제2조 제5호를 개정해서 노동쟁의에 대해 “근로조건의 유지·개선”뿐만 아니라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모든 사항이 노동쟁의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또한 노조법 제29조 제1항을 개정하여 단체교섭 대상사항에 대해 “근로조건 및 근로조건과 밀접하게 관련된 사항의 유지·개선, 노동조합 활동·단체교섭 및 쟁의행위 등 집단적 노사관계,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에 관한 사항”이라고 명시하여야 한다.

노조법 제3조를 개정하여 쟁의행위를 이유로 한 민사책임의 제한을 명확히 하여야 한다. 폭력이나 파괴행위가 동원되지 아니한 쟁의행위는 그 자체가 기본권의 행사인 동시에 헌법질서에서 예정하고 있는 행위이므로 그로 말미암은 소극적․적극적 손해 등 재산적 손해에 대해 원칙적으로 배상책임을 부정해야 한다. 3)노동조합의 의사결정에 따라 쟁의행위를 한 경우에는 노동조합 임원을 비롯한 조합원들의 행위는 다수결의 원리에 의하여 형성된 단체의사에 구속되므로 간부를 포함한 조합원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도록 명시하여야 한다. 폭력이나 파괴행위로 인해 배상책임을 지는 경우 폭력이나 파괴행위와 직접적으로 인과관계를 갖는 통상적인 손해로 그 범위를 제한하고, 파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영업 손실 및 제3자와의 채부불이행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해는 제외하여야 한다. 신원보증인의 경우에는 개인의 업무상 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담보할 것을 예정한 것이므로 처음부터 예상 밖의 범위에 속하는 집단적 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까지 그 담보책임을 확장하여서는 아니 된다. 파업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의 경우 가압류를 금지하여야 한다.
 
라. 노동법원의 도입
 
현재 사법체계는 노동사건을 전문법원에서 담당하지 않고 일반법원에서 담당한다. 그로 인해 법원이 노동법의 특수성에 눈감은 채 시민법 원리를 적용하여 실질적 정의에 반하는 판결을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따라서 노동사건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특별법원으로서 노동법원을 설립하는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 노동법에 정통한 법관을 배치하여 장기간 근무하도록 하고, 노사 대표를 참심관으로 참여시켜 전문성을 제고한다면 상황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 오마이뉴스 2014. 2. 20.자 “연봉 4천 직장인 2822년치 월급, 이 정도다 [손배소에 가로막힌 노동3권 ①] 사측 청구액수와 손해배상액 분석”.

2) 시사인, 2014. 4. 4. 입력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9822. 다만 생산시설의 파괴나 상해 행위에 대하여는 이와 같은 책임제한을 도입할 수 없다고 한다.

3)조경배 교수는 파업에 대한 책임 제한을 면책적 관점이 아니라 권리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면서 “노조법 제3조(손해배상 청구의 제한) : 사용자는 단체교섭권 또는 단체행동권의 정상적인 행사로 인하여 입은 통상적인 손해에 대하여는 근로자 또는 노동조합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개정안을 제시하고 있다. (조경배,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의 해석론 및 입법론의 재검토”, 『민주법학』 제51호, 2013. 3, 39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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