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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과 정책 제114호_금태섭_야권의 총선전략 - 살아남기와 교두보 쌓기 -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6-01-25 10:20:53
  • 조회수 : 1873
20대 총선을 석 달 앞둔 현재 야권의 선거전망은 어둡기 짝이 없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열된 세력은 총선 이후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서 새누리당보다는 서로를 제1의 타깃으로 놓고 경쟁할 가능성이 크다. 그 과정에서 새누리당이 압도적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것은 ‘감수해야만 할 전략적 손실’로 여겨질 공산도 크다. 그러나 신생 정당인 국민의당이나 기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모두 생존전략을 짜는 데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국민의당의 경우에는 높은 기대치를 만족시킬 수 있는 후보들을 발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안철수 의원 개인에 대한 의존과 정체성의 문제, 선거에서의 연대 문제라는 해결하기 힘든 난제를 안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인적 쇄신, 진영논리에 물든 당내 문화, 그리고 선거에서 야권후보의 난립 대응의 어려움 등의 문제가 있다.
향후 선거가 가까워지고 선거구별로 후보의 우위가 뚜렷해지면 단순히 생존 경쟁을 벌이는 수준을 넘어서 야권 전체가 내세울 수 있는 전략을 도출해야 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정당의 쇄신(인적 쇄신과 문화의 변화), 의제의 제시, 장기적 인재양성 방안의 제시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2012년 총선, 2014년 지방선거 등 전국 선거를 전략이나 컨셉트도 없이 나눠먹기, 임기응변식으로 치름으로써 결국 백서조차 만들지 못한 전례를 이번 총선에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2016년 1월 17일 현재 야권의 총선전망은 어둡기 짝이 없다. ‘혁신’이라는 구호를 놓고 대립해오던 새정치민주연합 내 주류와 비주류의 기 싸움은 직전(直前) 대표를 지낸 안철수 의원의 탈당으로 파국을 맞았다. 양측의 재결합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안 의원이 추가로 탈당한 의원들과 함께 신당 창당에 나서면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현실적으로 야권의 주요 세력이 하나의 대오로 선거에 대응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워졌다.

최근의 선거마다 시도되었던 ‘야권연대’는 두 가지 이유로 이번 총선에서는 불가능하거나 혹은 훨씬 어려워졌다. 첫째는 유권자들이 무조건적인 연대에 식상했다는 점이다. 공유하는 가치를 분명히 하지도 않고 심지어 절차의 정당성마저 무시한 채 단지 선거승리를 위한 전략으로서의 의미만을 가지는 연대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미 2012년 총선 당시에도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저질러진 부정과 불공정, 뚜렷한 정책적 대안도 없이 단지 야권이 하나로 뭉쳤다는 것만으로 승리를 자신했던 오만함은 국민들로 하여금 야권에 염증을 느끼게 했고 결국 선거에서 예상치 못한 패배를 가져온 주요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두 번째는 연대의 한 당사자가 되어야 할 국민의당 대표 주자인 안철수 의원의 야권연대에 대한 반감이다. 당내에서 다른 목소리가 종종 흘러나오기는 하지만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기존의 제1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연대하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걷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다른 조건을 제외하고 이 점만을 놓고 보더라도 이번 총선에서 야당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일대일 구도가 되어도 진보 혹은 야권이 불리하다는 것이 정설인데 기존의 제1 야당이 둘로 쪼개져서 각각 따로 후보를 내는 상황에서 새누리당 후보를 꺾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더욱이 현실적인 정치논리로 볼 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1차적 타깃은 새누리당이 아닌 서로가 될 확률이 높다. 설사 새누리당이 압도적인 의석을 차지하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야권의 대표주자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탈당 의원 숫자나 영입 인사의 면면을 놓고 양측이 일희일비하는 것도 어떻게 해서든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절박함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야권의 대표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경쟁에서는 논리적으로는 두 가지의 시나리오를 그려볼 수 있다. 하나는 총선 결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비교적 대등한 수준의 의석수를 차지하면서 새누리당과 함께 정립하는 구도가 만들어지는 경우다. 이것은 외형상 무승부로 보일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국민의당의 완승으로 보아야 한다. 수십 년간 온존해오던 양당체제가 깨지면서 중도를 표방하는 정당이 생명력을 갖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소수의 진보정당을 제외하면 야권 거의 전부를 대표하는 제1야당으로서 갖던 이점을 완전히 상실하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정권교체’라는 구호로 야권 내의 차별성을 무력화하고 표를 달라고 할 수 있던 지위를 잃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더불어민주당 혹은 국민의당 어느 한쪽이 상대적으로 대승을 거두는 것이다. 만일 더불어민주당이 큰 격차로 제1 야당의 지위를 유지하고 국민의당이 미미한 의석을 얻는 데 그친다면 제3당으로 나아가려던 안철수 의원을 비롯한 세력의 시도는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고 우리는 계속 양당 체제를 유지하게 된다. 만일 국민의당이 상대적으로 다수 의석을 갖게 된다면 사실상 제1 야당의 교체가 일어나게 된다. 이 경우에는 기존 야당의 인물들이 신당에 흡수되는 과정을 거쳐 결국 양당 체제로 귀착될 것이다.

그러므로 현 단계에서 양당의 총선전략은 ‘승리’가 아닌 ‘생존’을 목표로 짜이게 된다1). 일단 경쟁 상대인 다른 야당을 이기고, 그 후에 가능한 한 새누리당과의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새누리당이 190석을 차지한 상태에서 더불어민주당이 80석, 국민의당이 15석, 나머지 진보정당이 15석을 차지한다면 더불어민주당은 선전(善戰)한 것인가. 내놓고 말은 못 하겠지만,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원 중 많은 수는 이것을 차선이라고 여길지 모른다. 19대 의회에 비해서 여당에 30석 이상 더 헌납한 셈이지만, 어쨌든 제1야당으로서의 지위는 지켜냈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야권 전체의 의석이 아무리 줄어들더라도 자신들이 30~40석 이상을 얻으면 대성공으로 여길 것이다. 특히 한상진 창준위원장의 발언 등을 통해서 엿보이듯이 총선을 망치더라도 야권의 재편을 이루어내야 한다는 것이 국민의당의 제1 목표라고 본다면, 국민의당은 새누리당에 상당한 수의 의석을 더 빼앗기는 상황을 감수하고서라도 더불어민주당을 무너뜨리고 제1야당 혹은 확고한 기반을 갖춘 제3당의 지위를 차지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위의 어느 경우에도 새누리당이 압도적인 다수 의석을 차지한다는 결과에는 차이가 없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상호 생존을 위해서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집권 여당에 대항하는 참신한 의제를 제시하거나 혹은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등 총선국면에서 반전을 시도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어려운 이슈, 예를 들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와 같은 것은 논의 자체가 아예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야권 내에서조차 논란이 벌어질 주제는 접어두고 반박근혜, 반새누리를 외치는 단순한 선명성 경쟁에 그칠 개연성이 높다. (신당이 중도를 내세운다는 점에서 기존의 야당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데 그래도 증세나 노동시장 개혁 같은 이슈를 정면으로 들고 나오기는 어렵다고 본다. 한상진 교수의 ‘이승만 국부’ 발언 이후 보여준 혼선으로 알 수 있듯이 ‘새누리당 2중대’라는 비판에 갈팡질팡하기 쉽고 결국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합리성’, ‘진영논리 타파’ 등의 구호로 더불어민주당과 차별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야권 전체의 총선 전망을 암울하게 만들고 총선전략을 예상하기 힘들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각각의 입장에서 생존을 목표로 한 전략을 짜고 수행하기에도 여러 가지 심각한 장애물이 있다. 지금부터는 새로 만들어지는 국민의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순서로 각각 예상되는 문제들을 간략히 나열해보려고 한다. 그 다음으로 지금과 상황이 달라지는 경우에(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은 반드시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야권이 추구해야 하는 전략을 얘기해보려고 한다.
 
 
1) 기대치와 후보군의 절대적 부족

안철수 의원이 탈당하고 신당 창당을 선언하는 과정에서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일반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지지율을 보였다. 특히 호남에서는 제1 야당을 제치는 모습까지 나타났다. 이러한 지지율은 다수의 의원들이 동반 탈당을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대권주자로서 위상이 추락해가던 안 의원 개인에게도 반전의 동력이 되어줄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한 꺼풀만 벗겨보면 이렇듯 높은 지지율이 오히려 선거 국면에서 초창기 정당에게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쉽게 알 수 있다.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우리 사회에는 기존 정치권의 인물들과 행태에 대해 혐오에 가까운 반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인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기만 하면 그 내용에 관계없이 높은 기대를 받는다. 문제는 그 이후다. 지지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기대를 만족시켜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신생 정당이 참신성과 무게감을 동시에 갖춘 후보를 250개 안팎의 지역구 대부분에 선보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안철수 의원이 등장한 초기, 구체적으로 2013년 ‘새정치추진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신당을 추진하던 때는 이런 어려움을 어느 정도 극복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준비기간이 짧았다는 변명도 통할 수 있었고 기대치와 현실과의 괴리를 설명하기는 것이 지금보다는 쉬울 수 있었다. 당시 창당을 한 후 2014년 지방선거에서 소수 정예의 후보를 내고 17개 광역단체장 중 1곳 또는 2곳만 차지했더라도 정치권 전체를 흔들어놓을 수 있었고, 그 이후 행보에 강력한 추진력이 생겼을 것이다. 지금은 다르다. 총선에서 유권자들 앞에 ‘찍어줄만한’ 후보를 다수 내지 못한다면 신당은 맥을 못 추고 조기에 몰락할 가능성도 있다.

신당 주변에서는 지역마다 ‘숨어있는’ 인물들이 있고 이들을 발굴하면 전국 모든 선거구에 후보를 내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는데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독자적인 당선 가능성이 보일만큼 인지도나 무게감이 있는 후보들을 출마시키지 못하고 단순히 야당 표를 분산시켜서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을 용이하게 만들어줄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면 국민의당은 엄청난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묻는다면, 총선을 석 달도 남겨놓지 않은 지금 과연 국민의당은 서울 48개 선거구에 내세울만한 인물을 몇 명이나 확보하고 있는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인지도를 높이려고 하는가. 이 문제에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는지에 신당의 운명이 걸려 있다. 구체적인 실적 없이 기대치에 기반을 둔 높은 지지율은 현실에서 오히려 독이 된다.

2) 정체성의 문제, 개인에 대한 의존과 내부갈등 요소

또 하나의 문제는 정당으로서 기본적인 정체성의 문제다. 국민의당에 참여하는 인사들은 하나같이 “안철수 의원이 달라졌다.”라는 말을 한다. 안 의원 본인도 ‘강철수(강한 안철수)’라는 별명을 좋아한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 한명의 성격 변화가 이렇듯 강한 조명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정당 내에 공유되는 가치관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다양한 면모의 탈당 의원들이 참여함으로써 국민의당의 정체성은 더욱 모호해졌다.

물론 안 의원이나 국민의당 측은 안 의원이 대표를 맡지 않겠다고 하는 등 사당화(私黨化) 논란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총선을 불과 두 달 앞두고 창당하는 국민의당이 공당으로서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기는 어렵다. 현실적으로 신당에 대한 지지율은 안 의원 개인에 대한 기대에 힘입고 있는 부분이 크다. 정말 안 의원이 권한을 모두 내려놓는다면, 탈당한 현역 의원들의 영향력이 그만큼 커지게 될 텐데 과연 지지자들이 그런 모습을 환영할 것인가. 총선 국면에서 ‘안철수당’의 모습을 어느 정도까지 유지할 것인지는 신당이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하물며 역사와 사회를 보는 큰 틀에서의 시각, 경제문제와 남북문제 등 중요하고도 민감한 이슈에서 결이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사실상 쉽지 않을 것이다.

3) 연대의 문제

가장 현실적인 고민은 역시 연대의 문제다. 기존의 야당에서 나오는 후보들을 압도할 수 있는 인물들을 등장시킨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야권 지지자 전체로부터 엄청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신당의 공천을 받아서 실제로 선거를 치러야 하는 후보들로부터도 상황을 타개해달라는 요청이 빗발칠 것이다. 아직까지 국민의당 측은 “연대는 없다.”는 원칙만을 내세울 뿐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총선 전에 이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하지 못한다면 국민의당은 창당의 명분 자체를 잃거나 혹은 야권 참패의 주된 원인 제공자로서의 책임을 피해가기 힘들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총선을 불과 서너 달 앞둔 시기에 별다른 준비 없이 갑자기 창당을 시작한 일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1) ‘지겨움’의 문제

기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문제는 신당인 국민의당의 문제와 정확히 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탈당 사태 이후에도 100명이 넘는 소속 국회의원 수를 자랑하는 더불어민주당에는 유권자들의 귀에 익은 출마 예상자들이 넘쳐난다. 공당으로서의 체계도 갖추고 있고 오랜 기간 정치를 함께 해온 국회의원들은 각종 사안에 대해 비슷한 논조로 발언을 한다. 문제는 유권자들이 이런 모습을 너무나 지겹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신생 정당인 국민의당이 안고 있는 각종 불안 요소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제1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을 넘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정치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그 얼굴 좀 그만 봤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이 수십 년째 주역의 자리에서 내려올 줄을 모른다.

정치인이 여론조사에서 넘어야 할 첫 번째 벽이 ‘인지도’라면 두 번째이자 결정적인 벽은 ‘선호도’라고들 한다.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정치 지망생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을 알려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호감을 주어야 한다. 피로도가 쌓이고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정치인이 위상을 회복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더불어민주당은 인지도는 높지만 선호도는 매우 낮은 정치인과 비슷한 신세다. 매번 선거마다 당 안팎에서 ‘물갈이’ 주장이 높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표가 주도하는 인재 영입이 상대적으로 여론의 관심을 받으면서 일정한 성과를 내고는 있지만 여전히 보다 근본적인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2) 문화의 문제, 산토끼의 격분

더민주의 문제는 단순히 인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흔히 ‘진영논리’로 표현되는 문화가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야당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논리 중에 하나가 ‘집토끼, 산토끼론’이다. 산토끼(여당 지지층)에게 아무리 호소를 해봐도 표를 얻기는 불가능에 가까우니 집토끼(야당 지지층)를 상대로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야권 지지층을 똘똘 뭉치게 하고 최대한 선거일에 투표소에 나오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한다.

표면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집토끼만을 상대로 한 활동이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또 하나의 효과를 간과하는 논리적 잘못을 안고 있다. 바로 ‘산토끼들의 격분’이다. 박근혜 대통령이나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심각한 도덕적 결함이 있다고 보는 시각, 도덕적 우월감을 바탕으로 유권자들을 가르치려는 태도는 ‘어차피 야당을 찍을 사람들’을 결집시키는 효과가 있는 딱 그만큼, ‘어차피 여당을 찍을 사람들’을 격분시켜 투표소로 향하게 만든다. 투표율이 높으면 야당에 유리하다는 과거의 통념과 달리 최근 선거에서 투표율이 높았음에도 야당이 패배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화의 문제는 보다 복잡한 사안에 부딪히면 야당이 본래의 정체성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2년 전 박근혜 정부가 시도했던 연말정산 제도개편에 대한 반대다. 실질적으로 ‘부자증세’에 해당하는 것이었는데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은 강하게 반대했다.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한다는 당의 기조와 상반되는 행보를 한 셈이다. 이런 일들이 쌓이면 유권자들은 야당에 대해 ‘자기들만 옳다고 한다’ ‘정략적인 차원에서 반대를 일삼는다’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된다. 이것이 선거에서 어떻게 작용할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최근 김종인 박사를 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하는 등 기존의 진영 문화를 탈피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진짜로 변했다고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키려면 과감하고도 계속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3) 연대의 문제

더불어민주당에 있어서도 총선을 앞두고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야권연대의 문제다. 무조건적인 연대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이제 야당 내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국민의당에서 후보를 내는 상황에서 새누리당 후보를 이기는 것은 산술적으로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국민들이 식상해하는 단일화, 연대 타령을 하지 않으면서도 야권의 힘을 모으는 것이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에 주어진 가장 크고 힘든 숙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예리하게 각을 세우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야권의 총선전략을 상세히 논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별 의미도 없다. 더민주와 국민의당 각각의 운명이나 관계가 어떻게 될지 이 시점에서 알 수 없고 언급하기도 조심스럽다. 개인적인 예상으로는, 전체적인 당 지지도는 몰라도 구체적인 선거구에서는 후보에 따라 한쪽으로 쏠리게 될 것이라고 본다. 유권자들은 인지도와 호감도가 높고 참신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전략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고 그 과정에서 당선 가능성이 미미한 후보는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다. 그렇게 정리가 이루어지는 중에 야권 전체가 내세울 수 있는 전략도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든지 반드시 추구해야 할 몇 가지 포인트를 지적해두려고 한다.

1) 정당의 쇄신 - 인적 쇄신과 문화의 변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모두 야당의 모습을 확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한다. 야권에 대한 국민의 실망은 이제 논리나 설득으로 뒤집을 수 있는 단계를 훨씬 넘어섰다. 새로운 얼굴과 간판을 등장시키지 않고 과거의 인물들이 그대로 남아있으면 아무리 정부, 여당의 실정을 공격해도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권자들이 야당에 대해 떠올리는 첫 번째 이미지가 ‘지겹다’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항상 옳다’는 태도와 문화도 반드시 변화시켜야 한다. 아무리 옳은 말을 썼다고 해도 ‘연판장’을 돌리고 있는 야당 의원의 모습을 보면서 호감을 느끼는 유권자는 이제 없다.

2) 의제의 제시

‘반박근혜’ 구호를 내세우는 전략은 야권이 이번 총선에서 참패하는 가장 분명한 길이다. 시일이 많이 남지 않았지만, 다음 4년간 고민해야 할 의제를 제시해야 한다. 정보와 자원이 부족한 야당이 구체적인 대안을 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 사회가 직면한 중요한 문제들이 무엇인지, 향후 어떤 일들을 논의해야 하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여당이 될 자격이 없다.

3) 장기적 인재양성 방안의 제시

이것은 당장 총선에서 효과가 없을지 모른다. 실제로 후보로 등장시키고 여론의 관심을 받으려면 이미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인사들을 영입해서 발표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깜짝 놀랄 인재’의 영입으로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국지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 뿐이다. 젊은 청년들이 정당 내에서 훈련받고 정치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유지, 발전시키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은 ‘인재영입’이라는 임기응변에 매달려야 하는 초라한 모습을 보이는 데 대해서 유권자에게 보여줘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고, 야당도 장기적인 플랜을 만드는 신뢰할 수 있는 조직이라는 믿음을 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하다.
 
 
몇몇 식자들이 더불어민주당의 인재 영입에 대해 아쉽다고 표현하는 것이 보인다. “성공한 사람들만 보인다” “정당에서 성장한 인물이 없다”고들 한다. 정책적 대안이 없다는 비판도 많다. 100퍼센트 동의한다. 그러나 그것이 현재의 야권의 수준이다. 야당이 키운 인물을 보여주거나 제대로 된 정책을 보여줄 능력이 없다. 지금 야당이 ‘살아남기’ 전략을 짜고 있는 것은, 그 동안 수없이 많이 주어진 기회에도 불구하고 변화하지 못한 채 허송세월을 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근 언론에서 지적받은 것처럼 야당의 정치인들은 정말 어디 가서 변호해주기 힘들 정도로 앞뒤가 맞지 않는 발언을 해왔다. 이상돈 교수를 영입하려 할 때는 지도부 퇴진 투쟁을 벌이겠다고 했다가 김종인 교수를 영입할 때는 환영일색인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유권자들이 외면하는 것도 당연하다. 경직된 진영논리조차 극복하지 못 하고 있으니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이 깊지 못 했던 것은 당연하다. 지금 야권이 필승의 전략을 낼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우리 모두의 상식에 반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론 희망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번 총선은 내년 대선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길목이다. 단번에 역전을 도모할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의 교두보는 쌓아야 한다. 야권의 힘이 분산되는 것을 막고 어떻게든 공통된 지점을 찾아서 외연을 넓혀나가는 것이 그 첫 번째 발걸음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총선에서 야권이 ‘백서’를 쓸 수 있는 선거를 했으면 한다. 야당은 2012년 총선에서도 백서를 못 썼고, 안철수 의원이 합류해서 치른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백서를 못 썼다. 선거를 맞는 전체적인 전략과 컨셉트가 없이 나눠먹기식, 임기응변식의 선거를 했기 때문이다. 백서를 쓰려면 최소한 선거 전반에 대응하는 분석과 대응 전략이 있어야 한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야당이 “우리는 이런 전략으로 선거를 치르겠다.”라고 말할 수 있고, 결과에 상관없이 그 전략이 어떤 성과를 얻고 어떤 좌절에 부딪혔는지 말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것이 가능해질 때에 지금의 지리멸렬한 야당이 수권정당으로 변화하는 첫 발을 뗄 수 있을 것이다.
 
1) 이 글에서는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정당의 총선전략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