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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과 정책 제149호_박창근_토목의 공공성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6-10-23 20:37:59
  • 조회수 : 2121
현안과 정책 제149호
사회기반시설(SOC)은 도로나 항만, 철도같이 생산 활동에 직접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경제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필요한 시설물을 의미한다. 이러한 시설물에 대한 투자는 규모가 매우 크고 그 효과가 사회 전반에 미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민간차원에서 진행하지 않고 정부나 공공기관들이 국민의 세금을 재원으로 공적인 가치를 지닌 사업으로 추진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사회기반시설은 공적인 가치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져야 한다는 당위성은 사라지고, 예산낭비, 환경파괴,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본고는 여러 사례를 통해 건설회사의 그릇된 관행과 공무원의 잘못된 영향력을 중심으로 토목업계의 흔들리는 현주소를 분석한다.
 
대규모 토목사업의 변질
 
고대 로마시대에 공학은 크게 각종 병장기를 만드는 군사공학(military engineering)과 문명의 기반이 되는 토목공학(civil engineering)으로 나뉘었다. 도로, 수로(水路), 도시건설과 같은 토목사업은 천년 로마문명을 지탱하는 근간이 되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재위기간 117∼138년)의 티볼리 별장은 ‘티부르티나 가도’라는 간선도로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데, 황제는 사비를 들여 별장과 간선도로를 연결하는 개인도로를 별도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로마시대를 통 털어 권력자들의 별장 근처에 도로나 교량을 만든 사례는 찾을 수 없다. 로마인에게는 공(公)과 사(私)가 엄격히 구분되었고, 토목공사는 공적인 사업의 대표적인 예였다. 이러한 로마인들의 정신이 천년제국을 뒷받침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산업화를 압축적으로 이루었다. 당시에는 도로 등과 같은 사회적 인프라가 거의 구축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일부사업에는 상당한 부작용이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하더라도 나름대로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22조원이 낭비된 대국민사기극 4대강 사업, 돈 먹는 하마가 된 시화호 사업, 17일 동안의 잔치 후 흉물로 남을 게 분명한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장들, 유령 공항이 되거나 개장도 하지 못한 지방공항, 지역공동체를 파괴하는 댐 사업, 극한의 갈등을 겪은 송전탑 사업, 가치의 대결이 된 제주 강정마을 항만사업 등과 같은 수많은 토목사업은 예산낭비, 환경파괴, 사회적 갈등을 일으켰다. 우리사회는 잘못된 국책사업을 하느라 막대한 국민세금이라는 수업료를 납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전혀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 토목사업은 산업발전을 뒷받침함과 동시에 국민생활의 편리함을 도모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토목사업이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토목 본연의 갈 길을 못 찾는 이유를 살펴보자.
 

 
토목사업의 변질의 원인
 
사회기반시설은 공적인 가치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져야 한다는 당위성은 불행히도 우리사회에서는 사라졌다. 공공을 위한다는 허명으로 포장한 각종 토목사업은 가치판단을 유보한 채 돈벌이에 혈안이 된 건설업계와 탐욕스런 정치권의 합작품이다. 많은 기초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이 개인 건설회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군·구 내에서 발생하는 각종 토목/건축사업에 깊숙이 관여하여 이권을 챙길 개연성이 있고, 건설회사를 가지지 않더라도 건설공사에서 각종 공법을 선정하는데 관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느 기초지자체 하천정비사업의 사례를 살펴본다. 1km 하천공사라면 400m는 군수, 200m는 건설국장, 200m는 담당과장, 200m는 담당자가 (비공식적으로) 추천한 공법으로 설계하여 공사를 하였다(편의상 길이는 임의로 설정함). 만약 특허공법을 선정하였다면 최대 30%까지 공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 매년 연말만 되면 국회의원들은 예산부서에 소위 ‘쪽지예산’을 전달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토목공사를 청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의 능력은 얼마나 많은 예산을 확보하는가에 달려 있고, 국회의원은 예산확보를 자신의 치적으로 여긴다. 유권자들은 그 토목사업 예산이 타당하고 지역에 꼭 필요한가는 논외로 여긴다. 19대 순천·곡성 보궐선거에서 이정현 후보는 ‘세금폭탄’을 선물하겠다고 공약했고, 그리고 당선되었다. 정치인들이 토목사업이란 미끼로 교묘하게 유권자를 유혹하고 유권자들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정부정책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정치권에서 비롯된 잘못된 의사결정을 뒷받침하는 것은 영혼 없는 공무원, 곡학아세하는 전문가, 그리고 정치에 휘둘리는 사법부다. 첫째, 영혼 없이 조직의 이익만 추구하는 공무원이 문제다. 예를 들면 경인운하는 그동안 수차례 관 속에 들어갔던 사업이었는데, 어느 한 순간 관에서 벌떡 일어나 걸어 나왔다. 공무원들의 서랍에 수많은 사업목록이 있고 정치상황에 따라 그에 적합한 사업을 식탁에 음식을 차리듯이 내놓는다. 이때 내놓은 사업의 경제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환경파괴적인 사업을 ‘친환경 댐 건설’, ‘가장 안전한 원자력발전소’와 같은 말장난으로 오히려 친환경으로 포장하며 사회적 갈등이 예견되어도 개의치 않는다. 조직 유지를 위해서는 어떤 사업이든 지속적으로 해야겠다는 관료들이 만드는 비극이다.

둘째, 전문가들의 곡학아세다. 황당한 사업에 대해 왜곡된 이론을 제공한 전문가들이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여 공무원들에게 면죄부를 준다. 그 대가로 전문가들은 훈·포장을 받고 정부 연구용역을 수행한다. 이런 사례는 이미 4대강 사업에서 수없이 확인했다. 실패한 사업으로 판명 난 4대강 사업에 대하여 그 전문가들은 이왕 만들어진 토목시설물에 대한 평가는 소모적이므로 유지관리를 어떻게 잘 하느냐에 집중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참으로 편리한 변신이다. 우리사회가 이런 전문가들에 대하여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공무원들은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억지춘향 논리를 바탕으로 제2의, 제3의 4대강 사업을 준비하고 추진할 것이다.

셋째, 사법부의 정치적 판단이다. 사회적 논란이 되었던 토목사업에 대해 사법부는 언제나 정부의 재량권 일탈남용이 아니라는 기조를 유지해왔다. 정치적으로 시작한 잘못된 사업에 문제가 발생해도 사법부로부터 면죄부를 받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는 공무원들은 거리낌이 없다. 부산고등법원에서 낙동강 보를 건설할 때 예비타당성조사를 하지 않은 것은 국가재정법 위반이라는 판결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에서는 ‘예비타당성조사 미실시는 예산 편성의 하자이지 4대강 사업의 절차상 하자가 아니다’라는 논리로 고등법원의 판결을 뒤집었다. 이것은 사법부가 스스로 위신을 실추시킨 것에서 멈추지 않고 토목 관료사회를 더 공고히 하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
 

 
건설산업의 비정상적 관행
 
건설산업2)은 민간영역에서 건설회사(건설업)와 설계회사(건설용역업)으로 대별할 수 있고, 공사감리분야는 설계회사가 담당하고 있다. 이들 회사들은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정부, 지자체, 공공기관으로부터 건설공사를 수급하여 적정이윤을 남긴다. 정상적인 회사운영을 통한 이윤창출은 보장해야 하지만, 각종 불법과 탈법으로 얼룩진 현실을 진단하면 우리사회의 지속가능성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불법 재하도, 유령회사 운영, 단가 후려치기, 공사금액 부풀리기 등과 같은 비정상적인 시스템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건설산업에 팽배해 있다. 이러한 잘못된 관행은 한번 대기업은 영원한 대기업이고 실력 있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건설산업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고착화되고 따라서 건설업계에 역동성이 사라지고 현실에 안주하게 되면 건설산업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침체해질 것이다.

건설회사의 잘못된 관행 중 대표적인 것들로는 ①불법 하도급(재하도, 공사비 부풀리기/후려치기) ②공동도급 지분 포기 ③유령회사 운영 및 외국회사 공사비 과지급 등을 들 수 있다. 낮은 공사비로 인한 부실공사 방지와 공사장 안전 확보를 담보하기 위하여 건설산업기본법은 원칙적으로 재하도급을 금지하고 있다. 원도급자는 관리비와 이윤을 제한 나머지 금액을 하도급자에게 지불하게 된다. 원도급자 → 하도급자 → 재하도급자로 건설공사가 넘어가는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관리비와 이윤 명목으로 약 10∼20%(지분포기금액)를 책정하고 있는데, 재하도급자는 당초 공사비의 약 65∼80%로 공사를 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비율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만, 재하도하는 과정에서 하도 공사비의 20∼40%까지 지분포기금액을 책정하는 사례도 있다.

건설공사를 공동도급을 할 경우 각 회사마다 지분율이 있는데, 공동도급에 포함된 어떤 회사가 그 지분을 포기할 경우 통상적으로 지분율에 해당하는 공사비의 약 10∼20%를 지분포기금액으로 책정한다. 특히 지방경제를 살린다는 취지로 지방의 건설공사일 경우 중앙의 큰 회사와 지방의 작은 회사들이 공동도급을 한다. 대부분의 경우 지방회사들은 지분포기금액을 받고 큰 건설회사에 공사를 일임하는데, 4대강 사업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지방회사에 누가 힘을 실어주느냐에 따라 지본포기금액은 달라진다. 또한 원도급자가 유령회사(paper company)를 하도급자로 선정했음에도 별도로 작업반장을 고용하여 하도급자가 해야 할 일을 하게 하는 재하도급 관행이 널리 퍼져 있다. 하도급 회사는 통장을 통해 공사비 출납만 담당하고, 원도급사가 작업반장을 직접 관리하는 직영체제를 운영하는 불법 재하도급 관행은 지방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사례1) 농어촌공사 오봉댐 여수로 사업
 
2002년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덮쳤을 때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지역 중의 하나가 강릉이다. 하루 860mm라는 기록적인 강우가 발생하여 오봉댐이 붕괴 위험까지 가는 등 강릉 전역이 극심한 홍수피해를 입었다. 오봉댐 관리주체인 농어촌공사는 2008년부터 치수능력 증대사업으로 댐마루 높이를 약 5m 증고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농어촌공사는 최초 공사비 461억원에서 95억원(당초 공사비의 20%)이 증액되어 현재 556억원으로 설계 변경하였다. 국가재정법 제38조(예비타당성조사)에 의하면 공사비가 500억원 이상이면 예비타당성조사를 받아야 하는데, 당초 공사비가 500억원 이하였기 때문에 예비타당성조사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볼 때 공사비가 556억원이라면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사업이다. 당초 공사비 기준으로 20%가 증액된 사업이기 때문에 사업을 구상할 때 예비타당성조사를 받지 않기 위하여 공사비를 줄여 사업을 시작하고, 사업이 진행될 때 사업비를 증액시켰다는 의혹이 있고, 이러한 점은 국가재정법을 무력화시킨 사례라 판단된다.

또한 농어촌공사는 불법 재하도급을 묵인하고 공사장 관리를 부실하게 하여 2011년 1월 거푸집 붕괴사고가 발생하여 4명이 숨졌다. 2011년 사고 당시 공사현장을 부적절하게 운영한 농어촌공사는 2016년 현시점에서도 역시 공사장운영에 불법성이 있고 투명성이 매우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2016년 9월 오봉댐 공사현장의 불법성을 밝힌 기자회견문3)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요약 정리한다.

농어촌공사는 오봉댐 치수능력 증대사업을 하기 위하여 S건설과 도급4) 계약을 했고 S건설은 T건설과 하도급 계약을 했다. 여수로방수로 구조물공사(여수로 벽체, 바닥 등)를 한다는 명목으로 2015년 5월경 L 작업반장5)은 원도급사인 S건설과 이행각서를 작성하였다. 이행각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주요공정은 ‘철근조립과 콘크리트 타설’로 이루어져 있고 각 공정별 단가가 명시되어 있다. 일종의 계약서로 볼 수 있다. 또한 이행각서에는 ‘공사 대금과 관련한 적자나 손실이 발생되는 경우라도 귀사에는 공사대금 보전 및 일체의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을 서약합니다.’라는 문구도 포함하고 있다. 공사를 진행하면서 필요한 자재를 구매하기 위하여 작업반장이 직접 필요한 자재의 견적서와 세금계산서를 작성하여 S건설에 제출하면 하도급업체인 T건설이 구매대금을 지급하였다. 또한 작업반장이 고용한 일용직에 대한 임금을 지불하기 위해서 T건설이 ‘일용노무비지급명세서(2015년 7월분)’라는 서류를 만드는데, 이 서류에 대한 결재는 담당과 소장이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담당은 S건설 안전관리자였고, 소장은 역시 S건설 현장소장이었다. 현장 근로자에 대한 노무비를 지급하기 위해 하도급업체인 T건설이 노무비 지급명세서를 작성하였지만 의사결정권은 S건설에 있었고, T건설은 단지 공사비를 기계적으로 지출하는 역할만 하고 있었다. 또한 T건설은 공사현장에 현장소장을 포함한 어떠한 직원도 파견하지 않았다. 이런 논란이 발생하지 2016년 8월 S건설 소속 직원(P 공사과장)을 T건설 현장소장으로 부임시켰다.

건설산업기본법 제29조에 의하면 “하수급인은 하도급 받은 건설공사를 다른 사람에게 다시 하도급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재하도급을 금지하는 법적 취지는 다음과 같다. 재하도급을 할 경우 하도급 업체는 관리비(통상 공사비의 10∼18%)를 제한 금액을 재하도하기 때문에 재하도급 업체는 그만큼 공사비가 줄어들게 된다. 결국 재하도급 업체는 인건비를 줄일 수밖에 없고 공사장의 안전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이런 관행이 결국 공사부실로 이어지고 인명사고로 직접 연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11년 4명의 인명사고가 발생한 주요원인은 불법 재하도급과 그로 인한 품질저하와 안전불감증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농어촌공사는 잘못된 관행을 고치지 않고 불법 재하도를 묵인하고 있다.

 
공무원의 그릇된 영향력
 
다음으로 각종 공제조합, 협회 등에 공무원의 영향력을 살펴본다. 먼저 건설공제조합이 법률적으로 어떻게 국토부에 종속되어 있고, 공무원의 입김이 강할 수밖에 없는지를 살펴본다. 건설산업기본법에 의해 설립된 건설공제조합의 운영위원회는 이사장 후보자를 총회에 추천하는 등 실질적인 최고의결기관인데, 운영위원장은 국토부장관이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15년 10월 29일 건설공제조합은 임시총회에서 박승준 이사장을 선임하는 안건을 통과시키자, 건설공제조합 노조는 ‘이번 선임은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한 밀실, 낙하산 인사’라고 반발했다6). 노조는 ‘운영위원회에서 이사장 후보자를 추천하면 조합원 총회에서 선임하는 절차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운영위원회는 국토부가 내정한 사람을 총회에 추천하는 거수기 역할만 해왔다’고 주장했다. 건설공제조합은 건설산업기본법에 의해 설립된 특수법인으로 건설산업에 필요한 보증, 융자, 공제(보험)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건설공제조합은 종합건설사 약 1만 1천개사가 조합원으로 자본금은 약 5조2천억원이며 정부의 출자금은 0(zero)원이다. 건설공제조합에 출자금이 한 푼도 없는 국토부는 퇴직공무원 또는 정치권 인사들을 이사장을 비롯한 임원으로 내정하고, 형식적 절차를 거쳐 내정자들은 이사장과 임원에 임명된다.

또한 국토부는 수많은 협회를 관련법에 의한 법정단체로 인가하고 협회의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다. 한 사례로 한국하천협회는 하천법에 근거하여 설립되었고, 하천법은 한국하천협회의 정관의 기재사항과 협회의 감독에 필요한 사항 등은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협회가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하여 하천법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그 업무를 협회에 위탁하는 경우에는 위탁업무의 수행에 드는 경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예산의 범위 안에서 지원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협회가 수의계약 형태로 각종 위탁업무를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공무원들의 협조 없이는 예산확보가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다. 따라서 협회는 국토부의 낙하산 인사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7) 국토부의 잘못된 정책을 홍보하는 기관으로 전락할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사례 2) 1조 1200억원의 농업용저수지 도수로 사업 : 제2의 4대강 사업
 
4대강 사업으로 확보한 물을 활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녹조가 발생하여 식수원에 심각한 악영향이 생긴다는 비난의 여론이 드세다. 이에 국토부는 또 하나의 꼼수를 고안했다. 4급수에 미치지도 못하는 금강의 물을 펌핑하여 도수로를 통해 보령댐으로 보내는 사업이다. 2015년 말 사업을 시작할 때 국토부는 2016년 3월이면 보령댐 물이 말라버리는 긴급상황이 발생한다는 논리로 국가재정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예비타당성조사를 받지 않고 공사를 강행했다. 100년 빈도 가뭄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수로 공사를 완료한 2016년 3월 보령댐은 마르지 않았고 24% 저수율을 기록했다. 약 800억원의 국민세금을 낭비한 ‘만들어진 가뭄’이었다.

한편 농림부는 2016년 5월 ‘하천수활용 농촌용수공급사업 사전예비타당성검토 전체사업 보고서’를 작성하였는데, 4대강 사업으로 만든 보에 저장한 물을 이용하기 위하여 농경지 20개 지구를 선정하였고 각 지구마다 도수로를 만들어 보의 물을 농업용댐에 공급하는 계획을 담고 있다. 필요한 예산이 무려 1조 1200억원이고, 현재 충남 예당저수지 도수로 사업을 포함한 3개 지구에서는 예비타당성조사를 하지도 않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농림부가 개발한 논리는 황당하기 이를 때 없다.

보고서를 살펴보면 2012년 서해안지방에 104년 빈도에 해당하는 최악의 가뭄이 발생했고, 2014년 중부지방에 80∼200년 빈도 가뭄이 발생했다. 지하수 관정을 파는 등 긴급가뭄대책을 추진한 결과, 가뭄피해액은 없었다. 한발빈도 10년 가뭄에 대비하여 농업용수를 개발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말 그대로 극심한 가뭄이 발생했음에도 가뭄피해가 없었다는 사실은 경이적이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농업용수가 충분히 개발되어 있는 상태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농림부는 4대강 수계에 있는 전체 답면적(48만 ha)의 42%, 전체 수리시설(40,819개소)의 62%가 10년 미만의 가뭄이 발생하면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다고 분석했다.

100년 빈도 이상의 가뭄이 발생하더라도 국부적으로 긴급대책을 시행한 결과 가뭄피해가 없었는데, 고작 10년 빈도 가뭄이 발생하면 우리나라 농토의 절반 가까이 가뭄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4대강 보건설로 확보한 물을 활용하는 방안으로 4대강 물을 펑핑하여 도수로를 통해 산중턱에 있는 농업용댐에 공급하겠다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사업을 20개 지구에서 추진할 계획이고(3개 지구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음) 필요한 예산은 1조 1200억원에 이르는데, 그 기대효과는 기괴하다. 이 사업을 하면 10년 빈도 가뭄에 농업용수가 부족한 농경지(422,296ha)의 2.8%, 4대강 수계에 있는 물부족 농경지(202,239ha)의 6.1% 정도가 10년 빈도 가뭄을 극복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나라 물부족 농경지 모두를 10년 빈도 가뭄에 견딜 수 있게 하려면 산술적으로 약 40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지난 70여년간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무용지물이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4대강 사업으로 추진했던 110여개의 농업용저수지 증고사업(예산 약 3조원)은 효과가 없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국토부가 2015년 작성한 ‘전국 수리권 일제조사 및 하천수 관리방안’이라는 보고서가 현재 농림부가 진행하는 도수로 사업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 하지만 자기 조직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악마와의 거래’도 마다하지 않는 그 집요함이 보인다. 또 다른 사기극에 ‘억지춘향 논리’를 제공한 전문가 집단의 뻔뻔함에 전율을 느낀다. 만들어진 가뭄을 해결하는 것이 국가 긴급상황이기 때문에 예비타당성조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던 정치인들의 무식함에 더 이상 실망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22조원의 국민세금을 낭비한 4대강 사업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졌음에도 "4대강사업 좀 더 두고 봐야"하고 "역사가 평가해 줄 것"라는 괴변을 늘어놓는 4대강 사업 추진세력들에 대하여 우리사회는 어떠한 책임도 묻지 못했다. 그러한 대국민 사기극을 펼친 공로로 정부 훈·포장을 받았던 1157명이 아직도 우리사회 각 분야에서 중추적 역할을 한다. 해방이 되었을 때 일제에 부역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어두운 그림자가 21세기에도 사회 곳곳에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4대강 사업에 대한 단죄를 하지 못한 결과, 4대강 추진세력들은 1조 1200억원이 낭비되는 제2의 4대강사업을 진행한다. 우리사회가 무관심하면 그들은 제3의 4대강 사업을 은밀하게 준비할 것이고, 머지 않는 장래에 그 황당한 모습을 보일 것이다.

 
토목의 공공성 회복을 위하여
 
이제 새로운 토목의 방향을 고민할 시점이다. 4대강 사업이후 토목/건축에 대한 신뢰가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필자가 주장하는 ‘좋은 토목’, ‘착한 토목’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는 토목이나 건설 인프라는 이미 충분히 구축돼 있다. 여기에 타당성이 부족한 대규모로 사업을 자꾸 벌이는 것은 ‘나쁜 토목’이다. 이제는 필요한 부분만 늘리는 ‘작은 토목’, ‘좋은 토목’을 지향해야 한다. 농촌에 가면 적게는 20가구 많게는 100가구가 모여 산다. 한 300명이 모여 산다고 가정하자. 지금 정부가 하려는 것은 이 작은 마을을 한 단위로 묶어서 큰 댐을 건설해 물을 공급하겠다는 방식이다. 그 자체가 무리한 계획인 데다 사업의 타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보고서 내용을 왜곡하고 갖가지 자료나 근거를 고무줄처럼 잡았다 늘리기도 한다. 그렇게 ‘나쁜 토목’만 지향하다 토목분야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내년 예산은 사상 처음으로 400조원을 돌파할 계획인데, 사회기반시설(SOC) 예산은 8% 줄어든 22%를 점하고 있다8). 지난해 4.5% 감축에 이어 올해도 SOC 예산이 2년 연속 대폭 줄어들어 사실상 토목/건설 중심의 예산편성은 종언을 고했고,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측된다. 문제는 한꺼번에 줄이느냐 아니면 서서히 줄이느냐 하는 것인데, 규모를 줄이면 어차피 기존 인력은 남아돌게 되고 기왕이면 ‘작은 토목’, ‘좋은 토목’을 통해 연착륙 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작은 토목’은 일자리를 보다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 지금 정치인들이 내놓는 토목사업계획은 너무 거대하고 황당한 게 많다. 그건 토목이 경착륙 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1000억 원짜리 사업을 하나 하면 관리하기는 쉽다. 그러나 대개 기계를 동원해 일을 해버리니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자리는 적을 수밖에 없다. 반면 100억 원짜리 사업 10개를 하면 같은 돈으로도 보다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같은 효과를 내면 금상첨화다. 좋은 토목과 나쁜 토목의 차이는 그것이다. 또한 같은 예산으로 토목사업을 하더라도 다목적 효과를 낼 수 있는 사업을 발굴해야 한다. 예를 들면 지하차도를 30년 빈도 홍수 때 일시 저장하는 홍수방어시설로 활용하는 다목적 토목을 도입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나아가 토목시설은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지속가능성의 요체는 유지관리가 쉬워야 하고 유지관리비용은 적어야 한다.

결국 문제는 정치이다. 토목사업을 하면 땅값이 오른다는 인식이 전국토를 공사판으로 만들고 있다. 그 결과는 이미 우리가 목도한대로 환경파괴와 국민세금 낭비로 이어졌다. 토목사업을 유치하면 지역이 발전하고, 그것은 정치인의 능력이고 표로 직접 연결된다는 소아적 발상은 이제 버려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정된 국가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토목정책이다. 하지만 토목정책으로 경쟁하는 선거가 아니라 묻지마 토목사업을 쏟아내는 선거가 우리사회를 더 암울하게 만들어 왔다. 토목사업은 공공사업이며 말 그대로 공(公)을 최우선으로 삼아야한다는 기본원칙을 지금 다시 되새길 필요가 있다.

  • 시오노나나미(2002), “로마인 이야기 제10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르면 "건설산업"은 건설업과 건설용역업을 말한다. "건설업"은 건설공사를 하는 업(業)을 말하고, "건설용역업"이란 건설공사에 관한 조사, 설계, 감리, 사업관리, 유지관리 등 건설공사와 관련된 용역("건설용역")을 하는 업(業)을 말한다.
  • 강릉 성산면 자생단체 협의회/강릉환경운동연합 자회견문(2016.09.27.), “강릉 오봉저수지 증고공사 불법 하도급”
  • "도급"이란 원도급, 하도급, 위탁 등 명칭에 관계없이 건설공사를 완성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그 공사의 결과에 대하여 대가를 지급할 것을 약정하는 계약을 말한다. "하도급"이란 도급받은 건설공사의 전부 또는 일부를 다시 도급하기 위하여 수급인이 제3자와 체결하는 계약을 말한다.
  • 일정한 작업을 하기 위하여 조직된 반의 우두머리, 통상적으로 토목현장에서는 작업반에는 10여명이 노무자들이 참여함. 현장에서는 십장(十長)이란 말로 사용함.
  • 오마이건설뉴스(2015.03.24.), 건설공제조합, 이참에 ‘다 바꿔’ 건설경제(2015.10.30.), <데스크갈럼> 건설공제조합 새 이사장에 거는 기대
  • 현재 한국하천협회장은 국토부 수자원국장, 원주지방국토청장 등을 역임한 노재화 회장이다.
  • 머니투데이(2016.08.30.), “내년 예산 400조 돌파... SOC 줄이고 일자리 증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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