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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덩어리 규제라고?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4-03-21 22:09:42
  • 조회수 : 1979

한겨레신문 [세상 읽기] 박근혜 대통령이 연일 과격한 언사를 동원하여 규제 완화를 부르짖고 있어서 화제다. 투자와 고용창출을 막는 “쓸데없는” 규제는 “암 덩어리”, “우리가 쳐부술 원수”와 같다며 “불타는 애국심”으로 규제를 혁파하자고 한다. 규제 혁파는 대한민국이 계속 발전하느냐 여기서 주저앉느냐를 결정하는 관건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연목구어요, 아닌밤중에 홍두깨다. 기업 투자와 일자리 창출이 저조한 까닭은 실질임금의 정체와 소득 불평등 확대에 따른 내수 부진인데, 이참에 소원수리 하고 싶은 재계의 속삭임에 넘어가 규제가 적이라는 것이다. 

 

해보면 알겠지만 쓸데없는 규제라는 게 생각처럼 많지 않다. 역대 정부 중에 규제와 전쟁을 하지 않은 정부가 있었던가?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에 따라 규제개혁위원회를 설치한 김대중 정부는 규제를 반으로 줄였다고 자랑했으며, 노무현 정부는 규제총량제를 들고나왔고, 이명박 정부는 전봇대를 뽑는다며 설쳤다. 그런데 이 기간 중 등록 규제 수는 오히려 늘어났다. 아이엠에프 위기 초반에만 규제가 실제로 줄어들었으며 이후 꾸준히 증가한 것이다. 규제의 증가는 사회 발전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개인이 멋대로 하게 놓아두지 않고 더욱 복잡하고 정교한 규제를 통해 사회적 협력 체제를 구축한다. 

 

물론 공무원들의 행정편의주의 때문에 불필요하게 민간을 귀찮게 하는 일들은 많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규제는 필요해서 존재한다. 규제의 합리화가 필요한 부분은 많이 있다. 하지만 함부로 규제를 없애거나 완화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러다가 외환위기와 카드사태도 맞았고, 부동산 투기라는 망국병에 걸렸으며, 각종 안전사고와 환경 피해도 일어났다.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만든 개인정보 유출 사태도 업계의 편의를 위해서 규제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정부의 탓이다. 

 

지속적인 투자와 고용 창출을 원한다면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한다. 지나친 불평등이야말로 성장의 걸림돌이라는 인식이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올해 초 열린 다보스 포럼이 대표적인 경우다. 포럼이 발표한 연차보고서는 소득 불평등이 향후 10년간 세계경제에 가장 큰 위협 요인이 될 것이라 주장하고 이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포럼과 마찬가지로 과거에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신자유주의를 전파하던 아이엠에프도 마음이 변했다. 소득 불균형이 세계경제 성장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보고서, 재분배가 성장을 해치지 않는다는 보고서 등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소득 불평등의 심화가 우리의 미래를 위협하는 가장 핵심적인 위협 요인이다. 날로 심화하는 소득 불평등으로 인한 내수 부진이 저성장과 고용 문제의 핵심적인 원인이다. 미약한 수준이나마 소비 증가와 경제성장이 이루어진 것은 가계가 부채를 누적하면서 소득 수준 이상으로 소비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미 우리나라의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위험 수준을 넘은 지 오래며, 갈수록 증가하는 이자비용 때문에 소비 수요의 전망은 더욱 어둡다. 중산층과 서민의 소득을 증대시키기 위한 경제민주화 정책이 시급한 까닭이다. 

 

경제민주화는 규제의 강화를 요구한다. 경제민주화를 하겠다고 공약해서 정권을 잡은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는 내팽개치고 이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규제 완화 타령을 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무분별한 규제 완화로 외환위기와 민생 위기를 초래했던 뼈아픈 역사의 교훈을 잊고 신자유주의라는 흘러간 옛 노래를 다시 불러서는 안 된다. 경제민주화를 잘하면 성장이 따라온다. 하지만 규제 완화를 잘못하면 성장이 아니라 위기가 온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원장

 

한겨레신문 등록 : 2014.03.17 1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