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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의 부침과 경제민주화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4-02-25 13:10:46
  • 조회수 : 2129

한겨레신문[세상 읽기] 지난주에 비트코인(bitcoin)의 거래가격이 120달러 수준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한창 각광받던 지난해 11월의 고점 대비 거의 십분의 일 토막이 나고 말았다. 투자자들에게는 낭패지만, 언젠가는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온라인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은 중앙은행과 같은 발행기관을 두지 않고 누구나 복잡한 수학 암호를 푸는 소위 ‘채굴’ 과정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익명성과 거래의 편리성 때문에 상당한 인기를 모았다. 특히 전체 통화량이 한정되어 있고 채굴량이 늘어날수록 채굴의 난이도는 더욱 높아지도록 되어 있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상승하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 커다란 매력으로 작용하였다. 그런데 최근 각국 정부의 규제와 해킹으로 인한 도난 등 비트코인 결제 시스템의 기술적 결함 노출로 가치가 폭락한 것이다.


화폐란 모름지기 교환수단의 기능과 함께 가치저장의 기능을 갖추어야 하는데, 비트코인의 경우 투자자의 기대가 무너졌을 때 가치의 폭락을 막아줄 아무런 장치도 없다. 과거 금본위제에서 금은 그 자체가 본원적인 가치가 있는 물건이었고, 현대의 신용화폐제도에서는 통화증발을 억제하고 물가안정을 달성하겠다는 통화당국의 정책의지에 의해서 화폐의 가치가 보전된다. 물론 금도 가격이 출렁거리고 신용화폐는 인플레 위험에 노출된다. 하지만 비트코인의 경우에는 이런 불완전한 가치보전 장치마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비트코인의 매력은 환상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은, 특히 화폐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부자들이거나 보수적인 시장주의자일수록, 정부가 화폐발행을 통제하는 것이 불만이다. 특히 경기부양을 목표로 통화를 증발하여 인플레를 유발하고 화폐가치를 훼손하는 것을 증오한다. 이들은 흔히 금본위제 부활을 주장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금본위제는 금의 수급이라는, 거시경제 상황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변수에 의해 통화 공급을 결정함으로써 인플레와 디플레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심각한 경제불안정을 야기했다. 금본위제에 집착하느라고 대규모 은행 연쇄파산을 방치하여 대공황에 이르렀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쌓아놓은 돈이 없어 일자리가 필요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경제안정을 위한 적극적인 통화정책은 인플레 방지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며, 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금본위제는 최악의 화폐제도다. 그래서 일찍이 케인스는 금본위제를 “야만적 유물”이라 하였고, 아이켄그린은 “민주주의와 금본위제는 양립할 수 없다”고 하였던 것이다. 사실 금본위제 철폐와 신용화폐제도의 수립은 경제민주화의 역사에서 중대한 이정표였다. 

비트코인은 아무런 본원적 가치를 지니지 않기에 결코 금과 같은 지위를 누릴 수 없다. 그러면서 마치 금본위제처럼 통화제도와 정책을 정치와 규제로부터 독립시킨다는 환상을 추구한 것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이 앞으로 기술적 결함은 보완할 수 있을지 몰라도 공동체의 규제를 벗어나는 길은 없을 것이다. 그냥 두면 탈세와 범죄와 돈세탁의 온상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경제를 정치에서 분리하고, 시장을 공동체에서 해방한다는 것은 애초에 환상일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꼭 일년이 되었다. 대선 과정에서 최고의 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는 자취를 감추었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줄푸세’의 합성 같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세상일에는 모두 부침이 있으니 경제민주화의 일시적인 후퇴를 보면서 결코 낙담할 일은 아니다. 비트코인이라는 계책이 신용화폐를 무너뜨릴 수 없듯이 박근혜 정부의 일탈이 경제민주화라는 역사적 흐름을 멈출 수는 없을 것이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원장

 

한겨레신문 등록 : 2014.02.24 1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