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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파업과 일본의 교훈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4-06-17 09:55:58
  • 조회수 : 1683

한겨레신문 [세상읽기] 지난 주말 일본에 다녀오는 길에 일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새삼 새겨보게 되었다. 거품(버블) 붕괴 이후 지난 사반세기 동안 일본은 장기적인 침체를 겪고 있다. 매년 엄청난 적자를 내고 있는 간사이공항에서 아직도 남아있는 거품의 후유증을 확인할 수 있었고, 삼성 휴대폰을 샀더니 일본 친구들이 ‘불쌍한 소니 거 사주지 왜 안 그래도 잘나가는 삼성 거 샀냐고 뭐라 하더라’는 한 동포의 농담에 일본인들의 어려움이 묻어나왔다. 소위 ‘해석개헌’을 통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꾀하는 움직임도 일본 경제의 장기적 침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본 경제의 문제는 무엇인가? 거품의 후유증도 있었고, 엔화 강세로 인한 제조업 경쟁력 저하도 있었고, 누적된 재정적자로 인한 미래에 대한 불안심리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그다지 커다란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 거품 붕괴는 까마득한 옛날 얘기고, 환율은 부침이 있었으며, 거대한 재정적자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국채금리는 지극히 안정되어 있다. 규제가 많아서 문제니 규제완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지난 20년 동안 수도 없이 외쳤고, 아베 내각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규제완화를 통해서 경제성장이 눈에 띄게 올라갈 리 만무하다. 사실 일본이 엄청난 거품경제에 휩싸이게 된 까닭이 바로 80년대 중반 나카소네 내각의 무분별한 규제완화였던 것을 상기하면 이러한 규제완화론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일본 경제문제의 핵심은 인구문제다. 인구 정체와 고령화에 의해 잠재성장률 자체가 매우 낮아졌다. 인구문제를 빼고 보면 일본 경제의 성과가 나쁘지 않다. 1990년부터 2007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15살에서 64살까지의 경제활동인구 1인당 소득의 증가율은 1.2%로서 여느 선진국보다 못하지 않다. 2008년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의 타격이 심했던 만큼 최근의 회복세도 강하다. 다시 말해 일본 경제가 오랫동안 침체되어 보이는 것은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지 이들의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일본처럼 인구가 정체되고 고령화가 진행된다면 온갖 경기부양이나 성장정책이 먹혀들 여지가 없어진다.

 

한국은 과거 일본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으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마침 이런 고민을 하는 가운데 귀국하여 처음 접한 뉴스가 “한국 출산율 세계 최하위”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건 조금 선정적인 헤드라인이고, 그 내용은 16일 발표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월드팩트북(The World Factbook)에 따르면 올해 추정치 기준으로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25명에 그쳐 분석 대상 224개국 중 219위였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는 한국이 꼴찌였다고 한다. 일본은 1.40명으로 208위를 차지해서 우리보다는 조금 나았다.

 

그럼 도대체 어떤 나라들이 출산율이 낮은 것일까? 크게 보아 소득수준이 올라가면 출산율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일정한 소득수준을 넘어선 나라들 사이에서는 문화와 정책의 차이에 의해 커다란 편차가 나타난다. 우리보다 출산율이 낮은 나라들은 싱가포르, 마카오, 대만, 홍콩으로서 이들이 모두 동아시아의 부유한 경제라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사회복지가 부실하여 아이 낳아 기르기가 부담스럽고, 여성차별 때문에 출산과 자아실현을 동시에 이루기 어려운 나라들이다. 젊은 여성들이 출산파업으로 항의하고 있는 것이다.

 

새 경제팀이 경제의 활력을 살리겠다고 한다. 출산파업을 해결하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일 것이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지식협동조합좋은나라 원장

 

2014.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