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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미래] 여론조사 경선의 참을 수 없는 황당함_새전북일보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4-05-29 16:07:07
  • 조회수 : 1934

지난 15일 저녁 늦은 시간에 연구실에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기초의원 후보자 경선을 위한 여론조사였다. 이미 후보등록이 시작되었는데 여론조사 경선을 그때서야 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응답률이 낮은 것을 알기에 나라도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에 꼬박꼬박 지시대로 버튼을 눌러주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전화에서 흘러나오는 여론조사는 학교가 위치한 지역의 경선이지 내가 사는 지역의 경선이 아니었던 것이다. 후보자가 누군지도 모르겠거니와 타 지역 주민이 경선에 투표하는 게 옳지 않은 것 같아서 전화를 도중에 끊었다. 그러고 나서 생각하니, 만약 내가 그냥 투표했으면 그대로 유효표였을 것 같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여론조사 경선의 한 어이없는 단면을 경험한 셈이다.

전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여론조사로 선거결과를 결정한다는 얘기는 찾아볼 수가 없다. 여론조사 경선은 정당의 존립의의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다. 정당이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비전에 기초해서 책임을 지고 후보자를 선택해서 국민에게 내놓아야 마땅한데, 누가 되었든 국민들에게 인기가 있는 사람을 후보로 정하겠다고 하는 몹시 기회주의적이고 무원칙한 행위인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하려면 아예 정당도 없애고, 국회나 지방의회도 없애버려야 할 것 아닌가? 여론조사로 정책도 결정하면 될 터이니 말이다.

선거는 후보자의 운동과 유권자의 참여가 어우러져 공론의 장이 확장되고, 갈등과 이견이 표출되며,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다. 여론조사는 원칙적으로 민주적 선거의 한 부분이 될 수 없다. 처음엔 뒤처지던 후보가 역전을 할 수도 있어야 경선의 의미와 재미가 있을 것이다. 여론조사경선은 그런 가능성을 거의 차단해버린다. 이제 곧 월드컵 축구대회가 열린다. 여론조사 경선은 마치 월드컵 대회를 여론조사로 하는 것과 같다. 그러려면 이미 국제축구연맹(FIFA)이 정해놓은 세계랭킹에 따라 상을 주면 되는 것 아닌가? 실제로 공을 차야 축구하는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것 아닌가?

여론조사 경선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고 이번에도 엄청난 시비를 불러일으켰다.“엉터리 여론조사 속출…막장 치닫는 기초공천”, “민심 삼키는 숫자정치…편법 여론조사 백태”, “시간·비용 한계 탓 엉터리 우후죽순”, “질문지 왜곡한 여론조사 조작 혐의도”, “중앙선관위, 전화 착신전환 등 여론조사 왜곡 사례 검찰에 첫 고발”, “착신전화만 잘 잡으면 의원도 되고 군수도 된다” 등은 최근 언론에 보도된 수많은 기사들 중 제목만 몇 개 뽑아본 것이다. 구체적인 문제들을 따지고 들어가 보면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다반사다. 여론조사 경선은 또한 기득권 강화라는 문제를 야기한다. 여론조사 경선은 상당한 정도로 인지도 겨루기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현역이나 기타 유명인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며, 정치신인의 진출을 가로막는다.

이러한 까닭에 여론조사로 경선을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비판이 과거 선거에서도 무수하게 제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 경선이 사라지거나 축소되기는커녕 점점 더 확대되고 이젠 아주 당연한 일처럼 되어버렸다. 도대체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필자의 판단으로는 각 정당에서 당권을 잡은 사람들이 당의 정체성을 잘 확립하고 공직후보자 선출을 위한 공정한 절차를 수립하려는 데는 별 관심이 없고, 어떻게든 자기 사람을 챙기고 심어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에 우선순위를 두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으로 보인다. 그 때문에 일관된 원칙이 없이 누구나 자기편에 유리한 경선방식을 고집하다보니 막판까지 경선 규칙에 관한 합의가 어렵고, 결국 마지막에 가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여론조사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여론조사 경선으로 상징되는 우리나라 정치의 파행성은 결국 OECD 최저의 투표율로 나타나는 정치적 냉소주의를 낳았다. 양대 정당은 스스로 이를 고칠 능력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니 우리도 독일처럼 정당의 공직후보 선출방법을 법으로 정해야 할 것이다.  

 

유종일/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원장

 

새전북일보 2014년 5월 26일(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