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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세습자본주의와 창조경제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4-05-23 12:35:48
  • 조회수 : 1702

한겨레신문[세상읽기]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에서 악당 보트랭은 라스티냐크에게 세상 사는 법을 한 수 가르치면서, 아무리 성공하고 출세해도 부잣집 딸과 결혼하는 것만 못하다고 일러준다. 토마 피케티가 계산한 바에 의하면 이 조언은 19세기 유럽의 현실을 매우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상속재산 상위 1%가 놀고먹으며 버는 재산소득만 해도 상위 1% 임금의 2.5배가 되었다고 한다. 이런 게 바로 세습자본주의다.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하는 사람보다 상속자들이 훨씬 많은 부와 특권을 누리는 사회다.

 

피케티는 <21세기 자본론>에서 서구 선진국들의 소득불평등이 점점 악화되어 세습자본주의를 향해 가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이러한 끔찍한 일을 막기 위해 강력한 자본과세를 실시하자고 주장한다. 미국에서는 현재 상위 1%의 전체 소득에서 재산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40%이고, 상위 0.1%만 보면 재산소득의 비중은 70%에 이른다. 근래에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어 앞으로 최상위 소득계층의 재산소득 비중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노력이나 사회에 대한 기여와는 관계없이 상속에 의해 소수의 부자들이 특권을 누리는 세습자본주의는 능력주의와 민주주의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진정한 재앙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미 세습자본주의와 다를 바 없다. 우리나라의 최고 부자들은 자신의 손으로 부를 일군 경우가 별로 없고 대부분 선대의 재산을 물려받은 사람들이다. 재벌닷컴이 올해 집계한 ‘대한민국 상장사 100대 주식부자’(4월15일 종가 기준) 중에서 85명이 세습재벌 가문이었다. 게다가 우리나라 재벌들은 재산만 상속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권까지 상속한다. 그래서 이들 상속자들은 거대한 기업집단을 거느리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 때로는 법을 무시하고 멋대로 이익을 도모하기도 하고, 때로는 법을 자기 입맛에 맞게 만들어내기도 한다. 한국의 재벌 세습자본주의는 단단한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어서 좀처럼 새로운 대기업이 출현하기 어렵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초우량 대기업과 초대형 부자가 쑥쑥 튀어나오는 미국 경제와는 사뭇 다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져서 의식을 잃은 지 열흘이 지났다. 항간에는 여러 소문이 무성하고, 삼성그룹의 후계체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이는 몹시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계열사별로 혹은 그룹 차원에서 경영을 이끌고 갈 최적임자가 누구인지 논의하지 않는다. 삼성그룹의 경영권이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 부회장에게 이양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단지 계열사 간 지분관계가 어떻게 정리되고 이 부회장이 어떻게 지배 지분을 확보할 것인가에 관해서만 여러 가지 추측이 나돌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포천> 500대 기업에서 14위를 차지한 세계 굴지의 기업이다. 이런 기업에서 경영권이 세습되는 것은 지극히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일이다.

 

정부는 창조경제를 주창하고 경제혁신을 도모하고 있다. 과거에 선진국 ‘따라잡기 성장’을 할 때와 달리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이제는 전문경영인이 최고경영자가 되어야 한다. 또한 혁신적인 기업이 기존 재벌을 제치고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세습기득권 체제가 경제를 지배하는 한 창조와 혁신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창조경제는 세습자본주의 청산에서부터 시작할 일이다. 편법적인 상속 및 증여, 그리고 재벌의 횡포와 불공정 행위를 철저히 차단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원장


한겨레신문 등록 : 2014.05.19 1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