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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쌓기는 그만! 정치로 ‘곳간’을 털자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4-05-23 12:32:36
  • 조회수 : 1629

경향신문[정동칼럼] 세월호 참사는 신자유주의 사회가 낳은 비극이다. 그런데 그러한 비극은 매일 일어나고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 자리를 9년째나 지키고 있는 ‘살기 싫은’ 나라다. 2011년에만 1만5681명이 자살했다. 하루에 43명꼴이다. 대부분의 경우가 무한경쟁 사회에서 불안과 낙담, 좌절과 포기를 거듭하던 끝에 벌어진 일이라니 한국의 자살은 가히 ‘사회적 타살’이라 불릴 만하다. 하루 43명, 7일에 301명이 자살로 내몰리니, 일주일에 한 번씩 세월호 참사와 같은 규모의 사회적 타살이 자행되고 있는 셈이다. 10대에서 30대 사이의 한국인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통계가 일러주듯, 그러한 희생자들의 상당수가 아직 채 살아보지도 못한 젊은이들이다.
 
이 잔혹한 현실을 알기 때문일까. ‘밀리면 죽는다’는 각오로 우리 젊은이들은 각자 자신들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산과 열정을 바쳐 스펙 쌓기에 몰두한다. 신자유주의는 공동체를 파괴하고 모두를 각자도생의 장으로 이끈다는 일반법칙이 정확히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명심해야 한다. 그리 가다간 신자유주의의 또 다른 일반법칙, 즉 신자유주의 심화에 따른 공동체 붕괴는 사회구성원 대다수의 몰락과 궁핍, 그리고 죽음으로 귀결된다는 것 역시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음을!
 
생각해보자. 스펙을 그렇게 열심히 쌓아서 소위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가. 작금의 한국사회에서 비교적 안정적 삶을 영위하기 위해선 물려받은 재산이 넉넉하든가 아니면 대기업 정규직 사원, 공무원, 전문직 종사자 등이 돼야 한다. 통계를 보면 20대 동년배들 중 그리될 수 있는 사람은 20%도 안 된다. 80%가 넘는 절대다수의 젊은이들은 평생을 불안하고 심지어는 비참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게다가 그러한 삶은 십중팔구 그들의 자식세대에까지 이어진다. 자신만은 그 절대다수에 포함되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낙관론에 빠져있다면 이제라도 제 살 깎기 식의 스펙 쌓기는 중단하길 권한다. 대신 그 젊은 에너지를 복지공동체 건설에 집중 투여하길 바란다. 그게 오히려 80%의 젊은 약자들이 품위 있고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효과적이고도 빠른 길일 공산이 크다.
 
복지국가는 기실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곳간 털기’ 작업의 축적과 그 제도화의 소산이다. 한국엔 복지국가 만들기에 필요한 충분한 돈이 있다. 2012년도 국내총생산(GDP)은 1조1295억달러,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1273조원으로 세계 15위의 규모다. 문제는 그 많은 돈이 대기업이나 부자들의 ‘사적 곳간’에 몰려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2014년 4월 말 현재 10대 그룹의 사내 유보금만 보더라도 물경 444조원이 넘는다. 그에 비하면 사회구성원 전체를 위한 ‘공적 곳간’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2012년도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중은 9.3%로 OECD 최하위에 속하는바, 그 액수는 약 118조원을 조금 넘을 뿐이다. 10대 그룹 내부유보금의 26.6%에 불과한 액수다. 사적 곳간을 털어 공적 곳간을 채우는 것 외에 현재의 복지 열악 상태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사회지출 비중을 OECD 평균(21.8%) 수준으로만 올려놔도 젊은이들은 지금의 신자유주의 굴레에선 벗어날 수 있다. 교육, 주거, 의료 등의 복지강화로 사회안전망이 튼실하게 되면 그들의 가처분소득과 여유는 크게 늘 것이며, 숙련노동 중심의 중소기업 육성과 사회공공부문의 대규모 확장은 안정적인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것이다.
 
유럽 선진 복지국가의 청년들은 그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이유 하나로 사회경제적 불안과 공포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고 당당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복지공동체는 ‘시장에 맞서는 정치’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유럽의 복지체제는 모두 진보적 자유주의나 사민주의 세력들의 ‘정치적 작품’이다. 우리 청년들도 이제 정치적 해법 모색에 나서야 한다. 1970년대와 80년대의 젊은이들이 민주국가를 염원하며 그리했던 것처럼, 지금은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청년들이 정치적 열정을 모아주어야 한다. 그게 살길이다.

 

최태욱 |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경향신문 입력 : 2014-05-22 21:36:24수정 : 2014-05-22 21:3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