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세월호와 한국사회-국가, 존재의 이유를 묻는다](3) 아프다. 너무나도 아프다. 바닷물 속으로 잠겨가는 배 안에서 어린 학생들이 보내온 문자와 사진, 동영상들은 맨 정신으로 볼 수가 없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엉터리 같은 세상에서 어른들의 덫에 걸려 꽃다운 목숨들이 스러져갔다. 세월호 참사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비극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규제 완화, 선박개조, 선장과 선원의 보고 묵살, 청와대 신문고 제보 묵살 등등 수많은 있을 수 없는 일들의 연속으로 세월호 침몰사태가 야기됐다. 배가 본격적으로 기울기 시작한 이후에도 있을 수 없는 일들의 연속으로 죄 없는 승객들이 속절없이 죽음으로 내몰렸다. 그래서 더 아프다.
우리는 분노해야 한다. 이유도 까닭도 없는 죽음을 양산해내는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패와 타락에 분노해야 한다. 정부와 일부 지도층 인사들이 보여준 무능, 무책임, 무공감의 3무현상에 대해 격분해야 마땅하다. 법적, 정치적 책임이 있는 자들에게 엄중한 벌을 가하고 책임을 지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그쳐서는 안된다. 누구를 손가락질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다시는 이런 참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면밀히 분석하고 치열하게 개혁해야 한다. 이것만이 희생자들의 목숨을 헛되게 하지 않는 길이다.
OECD 회원국이 무슨 소용이고 국민소득 3만달러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필자는 경제발전의 요체를 한마디로 “사람값 비싸지고 물건값 싸지는 것”이라고 정의하는데, 대한민국은 아무리 경제발전을 해도 사람을 싸구려 취급하고 돈을 섬기는 시스템을 유지해 왔다. 이 시스템을 개혁하지 못하면 참극은 계속될 것이다. 이 시스템은 정권이 바뀌고 또 바뀌기를 몇 번을 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필자는 과거에 대한민국 개조를 위해 이것 하나만은 고치자는 취지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직업윤리 확립에 관해 쓴 적이 있다. 열차나, 배 혹은 항공기 등의 승무원은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입장이어서 직업윤리가 매우 중요하다. 남의 돈을 관리하는 금융업이나 남의 송사를 맡아주는 변호사 등도 마찬가지다. 공직자나 교직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직업윤리는 자신의 책무에 대한 자긍심과 책임감에서 비롯된다. 이는 적절한 대우와 신분보장, 그리고 일정한 권한이 주어질 때만 성립한다. 우리나라는 그저 기업들 돈 벌기 좋게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사람을 싸구려로 만드는 비정규직화를 광범위하게 용인했다. 이번 세월호 침몰 과정에서 보여준 선장 이하 대다수 비정규직 승무원들의 천인공노할 행태는 우리나라에 만연한 직업윤리 상실의 한 단면일 따름이다. 특권성장동맹의 이데올로기는 성장지상주의와 시장만능주의다. 시장의 논리가 민주적 결정보다 우위에 있고, 자본의 탐욕이 사람의 생명보다 존중받는다. 경제는 성장하는데 민생은 갈수록 피폐해지는 모순, 기업이윤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실질임금과 가계소득은 바닥을 기는 모순이 바로 이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규제 완화 문제도, 비정규직 문제도, 관피아와 유착의 문제도 결국 다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이데올로기는 철도민영화, 의료영리화, 규제개혁의 이름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다. 유종일 |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원장 경향신문 입력 : 2014-05-11 20:59:31ㅣ수정 : 2014-05-11 21: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