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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라도 경제민주화의 길을 가야 한다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4-05-12 11:07:11
  • 조회수 : 1773

경향신문[세월호와 한국사회-국가, 존재의 이유를 묻는다](3)

아프다. 너무나도 아프다. 바닷물 속으로 잠겨가는 배 안에서 어린 학생들이 보내온 문자와 사진, 동영상들은 맨 정신으로 볼 수가 없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엉터리 같은 세상에서 어른들의 덫에 걸려 꽃다운 목숨들이 스러져갔다. 세월호 참사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비극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규제 완화, 선박개조, 선장과 선원의 보고 묵살, 청와대 신문고 제보 묵살 등등 수많은 있을 수 없는 일들의 연속으로 세월호 침몰사태가 야기됐다. 배가 본격적으로 기울기 시작한 이후에도 있을 수 없는 일들의 연속으로 죄 없는 승객들이 속절없이 죽음으로 내몰렸다. 그래서 더 아프다.

 

우리는 분노해야 한다. 이유도 까닭도 없는 죽음을 양산해내는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패와 타락에 분노해야 한다. 정부와 일부 지도층 인사들이 보여준 무능, 무책임, 무공감의 3무현상에 대해 격분해야 마땅하다. 법적, 정치적 책임이 있는 자들에게 엄중한 벌을 가하고 책임을 지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그쳐서는 안된다. 누구를 손가락질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다시는 이런 참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면밀히 분석하고 치열하게 개혁해야 한다. 이것만이 희생자들의 목숨을 헛되게 하지 않는 길이다.
 
서해훼리호, 삼풍백화점, 씨랜드, 대구지하철… 있을 수 없는 참극이 반복되는 원인이 무엇인가? 기업의 위험관리 소홀, 안전관련 경고 무시, 업계와 공무원들의 유착 등이 단골메뉴다. 결국 모든 게 돈 때문이다.

 

OECD 회원국이 무슨 소용이고 국민소득 3만달러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필자는 경제발전의 요체를 한마디로 “사람값 비싸지고 물건값 싸지는 것”이라고 정의하는데, 대한민국은 아무리 경제발전을 해도 사람을 싸구려 취급하고 돈을 섬기는 시스템을 유지해 왔다. 이 시스템을 개혁하지 못하면 참극은 계속될 것이다. 이 시스템은 정권이 바뀌고 또 바뀌기를 몇 번을 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1998년 말 경기도 화성군청 사회복지과의 이장덕 부녀복지계장의 지옥 같은 두 달이 시작되었다. 그가 화재에 취약하다며 관내 청소년 수련시설의 진입로 허가 처리를 반려한 후, 군청 간부들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허가를 내주라고 압력을 넣었고 심지어 깡패들까지 찾아와 협박했다. 군청은 이 계장을 좌천시키고 곧바로 문제의 청소년 수련시설에 허가를 내줬다. 그리고 1년도 안돼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콘크리트 1층 건물 위에 컨테이너 수십 개를 얹어놓은 가건물 안에서 유치원생 19명을 포함해 23명이 화마에 목숨을 잃은 씨랜드 화재사건이었다. 화성군청 관계자들이 줄줄이 구속되었고, 동료들을 배신했다는 따가운 시선을 힘겨워하던 이장덕 계장은 이듬해 명예퇴직을 했다. 김대중 정부의 규제 완화 드라이브와 공무원과 업자들 간의 유착,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공무원은 살아남지 못하는 공직사회의 현실이 어우러져 빚어낸 참극이었다. 그래도 변한 것이 없다.
 
지난 6일 지방을 다녀오느라 KTX를 탔다. 여승무원의 모습이 유난히 마음에 걸렸다. 열차에서 내려서서 비굴에 가까운 표정으로 공손하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에게 과연 직업윤리를 기대할 수 있을까 자문해보았다. KTX가 처음 개통할 당시 여승무원을 모집하면서 1년 계약 이후 정규직을 약속하였지만, 철도공사는 이 약속을 파기하고 승무원들을 홍익회 소속 비정규직으로 만들어버렸고 과도한 감정노동을 강요했다. 여승무원들의 파업에 대한 답변은 고발, 해고, 전투경찰 투입에 의한 폭력진압이었다. 이 사태는 2006년 노무현 정부하에서 있었던 일이다. 우리 사회는 승무원들을 이렇게 대하면서, 안전사고가 났을 때 이들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승객들의 대피를 위해 헌신해주기를 바란다면 어불성설 아닐까?

 

필자는 과거에 대한민국 개조를 위해 이것 하나만은 고치자는 취지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직업윤리 확립에 관해 쓴 적이 있다. 열차나, 배 혹은 항공기 등의 승무원은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입장이어서 직업윤리가 매우 중요하다. 남의 돈을 관리하는 금융업이나 남의 송사를 맡아주는 변호사 등도 마찬가지다. 공직자나 교직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직업윤리는 자신의 책무에 대한 자긍심과 책임감에서 비롯된다. 이는 적절한 대우와 신분보장, 그리고 일정한 권한이 주어질 때만 성립한다. 우리나라는 그저 기업들 돈 벌기 좋게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사람을 싸구려로 만드는 비정규직화를 광범위하게 용인했다. 이번 세월호 침몰 과정에서 보여준 선장 이하 대다수 비정규직 승무원들의 천인공노할 행태는 우리나라에 만연한 직업윤리 상실의 한 단면일 따름이다.
 
공무원과 업계의 유착에 관해서는 너무나도 많은 얘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소위 관피아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명심해야 할 것은 이 유착구조의 정점에는 재벌과 관료 및 정치권과 학계의 유착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특권성장동맹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돈을 섬기고 사람을 업신여기는 이데올로기와 시스템의 본부가 바로 이것이다. 이 본부를 제대로 개혁하지 않는 한 모든 개혁조치들은 지엽말단에 그치고 대한민국의 부패와 타락은 모습만 달리해서 지속될 것임이 틀림없다.
 

특권성장동맹의 이데올로기는 성장지상주의와 시장만능주의다. 시장의 논리가 민주적 결정보다 우위에 있고, 자본의 탐욕이 사람의 생명보다 존중받는다. 경제는 성장하는데 민생은 갈수록 피폐해지는 모순, 기업이윤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실질임금과 가계소득은 바닥을 기는 모순이 바로 이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규제 완화 문제도, 비정규직 문제도, 관피아와 유착의 문제도 결국 다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이데올로기는 철도민영화, 의료영리화, 규제개혁의 이름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다.
 
2년 전 박근혜 후보는 돈(소득)이 아닌 행복을 목표로 제시했고,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외쳤다. 그런데 관련 공약들은 줄줄이 수정되고 파기됐으며, 이제는 더 이상 립서비스도 없다. 재벌들은 투자를 지렛대로 경제민주화 조치를 거부했고, 경제관료들은 복지예산 편성을 사보타주했다. 박근혜 정부도 결국 특권성장동맹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이 강력한 동맹은 경제민주화야말로 진정한 경제활성화 정책임을 절대 비밀에 부친다. 필자는 세월호 참사가 마치 경제민주화 공약파기에 대한 응징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제라도 우리는 경제민주화의 길을 가야 한다. 돈보다 사람이 중요한 세상, 시장의 논리보다 민주적 결정이 우위에 서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유종일 |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원장
 

경향신문 입력 : 2014-05-11 20:59:31ㅣ수정 : 2014-05-11 21: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