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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집착증·자본 로비에 발목… 구조개혁 방향 잃었다” 경향신문 유종일 KDI 교수 인터뷰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5-01-21 10:02:58
  • 조회수 : 1953

"성장 집착증이라는 고질병이 구조개혁의 방향을 흐리고 있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57)는 “성장 집착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구조개혁을 해야 하는데, 거기에 세뇌돼 있고 어떻게든 돈 벌 기회를 만들려는 자본의 로비가 있다보니 구조개혁의 방향과 맞지 않는 정책들이 나오고 있다”면서 이같이 지적했다. 

 

유 교수는 지난 16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의 구조개혁에 대해 “경기 부양에 치중해온 정부가 구조개혁을 강조한 건 늦었지만 환영한다”면서도 “기득권과 기존 질서를 바꾸는 게 쉽지 않은데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진 상황에서 제대로 될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규제개혁의 ‘골든타임’이 이미 지났다고도 했다. 그는 “규제를 완화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면 경제성장을 하고 소득과 일자리가 늘어날 거라 기대하는 건 한여름 밤의 꿈”이라며 “구조개혁의 핵심은 분배구조의 개혁”이라고 강조했다. ‘땅콩 회항’으로 표면화된 재벌가의 전횡을 근절하기 위한 지배구조 개혁도 주요 과제가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 교수는 진보적 목소리를 내온 대표적 경제학자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지난 16일 경향신문사 여적향에서 인터뷰를 갖고 “박근혜 정부는 경제성장 집착에서 벗어나 분배를 위한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 규제완화 통한 성장은 착각
기업들 투자 이끌어내려면 분배 확대로 수요 창출해야
삼성 3남매 수조원 상장이익… 편법 상속·증여 차단은 필수


▲ ‘낙하산’이 공공기관 망쳐… 이사회에 시민 대표 참여를
‘쉬운 해고’ 추진 노동시장, 유연성 아닌 안정성에 문제
초기업노조 활성화가 중요


- 정부가 구조개혁을 올해 경제정책의 핵심 목표로 내세웠는데.

“최경환 경제부총리 취임 후 경기 부양에 나서다가 최근 들어 구조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구조개혁을 위한 골든타임은 이미 지난 것 같다. 정권 초기에 했어야 하는데 대통령 지지율도 떨어진 상황에서 제대로 추진하기는 쉽지 않을 거다. 더 큰 문제는 구조개혁의 철학과 방향이다. 분배구조를 개혁하는 게 핵심이다. 한국은 이미 고소득 국가에 속하는데도 국민들이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분배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공약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만들기였다. 그런데 집권 초기에 경제민주화 입법 몇 개 한 뒤 경제활성화로 돌아섰다. 경제민주화와 경제활성화가 상충되는 게 아닌데도 경제민주화 의제를 접어버리고 구태의연한 경기 부양 정책으로 돌아서 규제 완화, 부동산 띄우기를 한 거다.”

- 세계적으로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고, 한국도 저성장이 불가피한 상황 아닌가.

“2013년 국내총생산(GDP)이 3.0% 성장했고 2014년 잠정집계로 3.3% 성장했다. 이는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에 근접한 수준이다. 생산가능인구는 앞으로 줄어든다. 경제성장률을 단순하게 나눠보면 생산성과 노동이다. 선진국에서 경제성장률이 높다는 독일과 미국도 생산성 성장률이 1.5%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은 인구증가율이 제로이지만 선진국을 추격하는 입장이고 여성 고용률을 올릴 여지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잠재성장률이 3~3.5%가량 나온다. 그런데 정부도 난리고 국민도 아우성이다. 이는 구조가 잘못됐기 때문이지 성장률을 올려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 박근혜 정부가 규제 완화에 부쩍 신경 쓰고 있다.

“성장률에 집착하다보니 자꾸 무리한 정책을 펴는 것 같다. 대표적인 게 부동산 대출 규제, 분양가 규제를 완화하면서 금리는 낮춰 빚내서 집 사라고 부추기는 거다. 그럼에도 서민 경제가 활발히 돌아간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그러면서 가계부채는 굉장히 늘려놨다. 규제 완화를 하면 당장 막혔던 것을 할 수 있으니 부양 효과가 전혀 없진 않겠지만 규제 완화로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염려스러운 부분은 의료영리화다. 의료영리화에 관심 있는 자본들이 있겠지만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겠는가. 정부가 최근 ‘핀테크’(금융과 기술의 융합)를 강조하는데 이것도 보안심의나 금산분리 완화 등 규제 완화 얘기로 흘러간다. 하지만 산업 진흥 차원에서만 접근해 지켜야 될 원칙을 허물면 나중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 현 정부 초반 내걸었던 경제민주화는 이제 사라지고, 기업편향적인 논리만 득세하고 있는 것 같다.

“2012년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의 제1공약이 경제민주화였다. 여야 모든 후보가 이구동성으로 경제민주화를 얘기했다면 굉장한 국민적 합의가 존재했다고 봐야 한다. 김대중 정부는 1998년 외환위기 여파로 마이너스 성장을 했음에도 집권 기간에 평균 5.1% 성장을 했고 노무현 정부는 4.3% 성장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경제성장을 못했다며 ‘7·4·7’(7% 성장,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강국)을 내놨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평균 2.9% 성장에 그쳤지만 이것도 (잠재성장률에 비춰보면) 못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영업자, 서민들 생활은 형편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 얘기가 나오니 반향이 있었던 거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니 들어가버렸다. 경제활성화가 규제 완화하고 세금 깎아주고 기업들 비위 맞춰 되는 게 아니다. 기업들이 투자하고 생산해 팔 수 있으려면 수요 창출을 해야 하는데 분배구조가 이러니 내수 기반이 취약한 거다.” 


- 최근 정부가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특정 대기업을 위한 편법 지원이고 중소기업을 역차별하는 정책이다. 그동안 세금 깎아줘 대기업들이 사내유보금을 엄청나게 쌓아놓고 있는데 더 지원해줘야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편법으로 단기적인 것만 보고 나가면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에 바람직하지 않다.”

유 교수는 인터뷰에서 경제활성화를 위해서도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구조개혁의 주요 과제로 유 교수는 “지배구조 개혁”을 제시했다. 기업들이 나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도록 견제장치를 둬야 한다는 것이다. ‘땅콩 회항’ 사건 등 재벌가의 전횡이 화제에 오르자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유 교수는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 등 삼남매가 삼성SDS와 제일모직 상장으로 수조원의 평가차익을 얻은 것에 대해선 “희대의 사기”라고 혹평했다.

- 대기업 갑질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재벌을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할 것 같은데.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오너리스크 얘기가 나왔다. 총수 일가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능력·품성·리더십에 상관없이 높은 자리에서 마구 횡포 부릴 수 있는 지배구조의 황당함을 바꿔야 한다. 종업원 대표, 노동조합이 이사회에 참여해야 한다. 기업의 의사결정 기구 안에서 나쁜 짓을 막을 수 있는 메커니즘이 만들어져야 한다. 다른 하나는 편법 상속·증여에 대한 철저한 차단이 필요하다. 경쟁 메커니즘에 의해 전근대적 사고방식이 강한 기업들은 도태돼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한국의 재벌들은 상당 정도 독점적 파워를 구축하고 있어 시장경쟁의 압력에서 좀 떨어져 있어서 이런 일들이 마구 벌어지게 된다.”

- 공공부문 개혁은 어떤 식으로 풀어가야 하나.

“공공기관이 설립 목적에 부합되게 운영돼야 하는데 가장 큰 문제가 낙하산 인사다. 지난해 공기업 개혁 얘기할 때 이 문제가 거론됐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계속 낙하산 인사를 하면서 쏙 들어가버렸다. 공공기관은 시민 대표가 이사회에 들어가야 한다. 세금이 공적 목표에 맞게 쓰이고 있는지, 방만 경영이 어느 정도인지 기준이 있어야 한다.”

- 정부가 노동시장 개혁도 강조하고 있는데.

“고용의 유연안정성이 좋은 대표적인 나라가 덴마크다. 덴마크에선 실직을 하면 연봉의 70~90%를 4년 동안 받는다. 그 정도의 안정성을 우리나라에서 상상할 수 있겠나. 한국은 비정규직이 많아 유연성이 높은 건 말할 것도 없고, 정규직만 놓고 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고용보호가 낮은 수준이다. 유연성이 아니라 안정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강조하고 싶은 건 노조의 역할이다. 노동시장 개혁은 필요하다. 성장이 안되고 있으니 고용 시스템을 바꾸는 건 당연한데 어떤 목표와 수단을 갖고 할 것이냐에 있어 노조가 역할을 해야 한다. 중소기업 노동자들도 노조를 쉽게 조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한국은 기업별 노조 시스템이다보니 대기업 아니면 노조를 만들기도 어렵다. 따라서 초(超)기업 노조가 중요하다. 노조가 생겨 권리를 지키고 압력을 넣고 해야 중소기업이 하청을 받더라도 단가를 올릴 수 있고 산별 교섭이 활성화돼 임금격차를 줄일 수 있다.” 

- 증세에 대해 정부는 꿈쩍 안 하고 있다. 재정건전성은 염두에 두지 않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은 17%대로 OECD 국가 중 압도적으로 낮다. 복지도 효율적으로 돈을 써야 한다. 무상보육에 엄청난 돈이 들어가지만 부모들이 믿고 맡기지 못한다. 국공립 시설을 더 확충하고 부모가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냥 돈만 준 거다. 효율적으로 돈을 써야 복지를 확대할 수 있다. 사람들이 안심하고 연애, 결혼하고 애를 낳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한 미래의 투자이고 이를 위해 증세를 해야 한다는 건 수없이 해온 얘기다. ‘증세 없는 복지’야말로 포퓰리즘이고 사기다.”

 

이주영 기자 young78@kyunghyang.com

 

경향신문 입력 : 2015-01-20 19:13:14ㅣ수정 : 2015-01-20 21:5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