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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한 현실에 나도 맞서다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5-01-08 16:41:40
  • 조회수 : 1638

경향신문 [유종일의 내인생의 책](2) 객지 | 황석영

 

내게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은 특별한 시간이었다. 대학생이 된 형이 소위 운동권 서적들을 추천하며 진로에 대해서도 재고하라고 권유했다. 리영희 선생님의 <전환시대의 논리>,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에릭 프롬의 <건전한 사회>, 김지하 시인의 <황토> 등을 읽었던 것 같다. 당시에 읽었던 책들 중에서 나를 가장 강렬하게 사로잡은 것은 황석영의 소설집 <객지>였다. 소설 <객지>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알려주었고, 함께 실린 <한씨연대기>는 분단의 비극에 눈뜨게 했다.
 
어린 시절부터 부당한 권력과 맞서는 경험을 했던 나는 특히 <객지>의 주인공 동혁에게 끌렸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성적을 이용해 우리들에게 돈을 뜯어내던 담임선생에 맞서 싸우기도 했고, 동아·조선일보 광고탄압 사태가 벌어진 고1 때는 학교에서 모금을 하여 격려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동혁은 나를 민중의 세계로 안내했다. 공사장 인부로 일하던 동혁은 형편없는 임금과 공사장 감독의 착취에 맞서 싸우기 위해 쟁의를 준비하고, 이를 눈치챈 회사에 의해 해고된 후 산에 올라가 농성을 벌인다. 사측의 회유로 동료들이 떠나간 후 홀로 투쟁의 각오를 다진다. 동혁의 투쟁과 실패가 두렵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에게 매료되고 그와의 일체감을 느끼는 나 자신을 어쩔 수 없었다.
 
사실 고교 시절 내가 가장 흥미를 느낀 과목은 물리와 수학이었고 당연히 이과를 선택했다. 그러나 2학년 여름방학의 독서 이후, 특히 <객지>를 읽은 후에 내게는 이런 순수과학이 사치처럼 느껴졌다. 사회의 구조적인 악에 맞서 싸우려면 우선 사회과학을 공부해야 할 것 같았다. 학교에서 전과를 허락하지 않아 이과를 졸업하긴 했지만 대학 진학 시에는 사회계열을 택했고 결국 경제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경향신문 입력 : 2015-01-05 22:17:22ㅣ수정 : 2015-01-05 22:2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