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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역사’는 거기 없었다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5-01-05 14:02:10
  • 조회수 : 1697

경향신문 [유종일의 내인생의 책](1)_뜻으로 본 한국역사 | 함석헌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이셨던 강연희 선생님은 특별한 분이셨다. 성함과는 달리 강직한 성품과 엄격한 태도 때문에 범접하기 어려운 총각 선생님이셨다. 박정희 군사독재를 은유적으로 비판하셨고, 사회정의를 열정적으로 설파하셨다.

 

가끔은 제자들에게 남모르게 정을 주셨다. 선생님께서는 소풍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내 손에 당시 보기 어려웠던 오렌지를 쥐여주시기도 했고, 학년을 마치고 종업식을 한 후에는 두꺼운 책을 한 권 주셨다. 함석헌 선생님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였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선생님은 함 선생님의 제자셨다.

 

왜 내게 이런 책을 선물해주셨을까? 선생님께서는 내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이미 정치적으로 상당히 각성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신 것일까?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단숨에 책을 읽어 내려갔다. 책은 내게 강렬한 충격을 주었다. 역사교과서에서 배운 역사와는 딴판이었다. 우리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왜곡된 역사에 대한 격정적인 분노가 펄펄 넘쳤다. 한국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요, “세계사의 하수구”이며, 한국 민중은 수난의 여왕이요, “갈보였던 계집”이라는 함 선생님의 통곡에 어린 나는 숙연해졌다. 이런 고난에는 반드시 ‘뜻’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어린 나의 마음에 담았다. 당시 대한민국은 유신독재 암흑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나는 어렴풋이나마 개인적 성취보다 역사적 변화에서 의미를 찾는 삶을 예감했다.

 

그로부터 40여년이 흐른 지금도 이 땅에 고난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경제성장으로 물건은 넘쳐나지만 민중의 고난은 여전하다. 아직도 분단의 고통과 빈곤의 고통이 엄연한 현실로 존재하고, 세월호의 아픔과 쌍용자동차의 아픔이 둔감해진 우리 가슴을 후빈다. 오늘 다시 고난의 뜻을 새겨본다. 


경향신문 입력 : 2015-01-04 21:59:12ㅣ수정 : 2015-01-04 22:0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