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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모리셔스, 그리고 한국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3-10-05 18:23:41
  • 조회수 : 1781

한겨레 오피니언 [세상 읽기] 미국 연방정부가 일시적으로 문을 닫을 처지에 놓였다. 의회에서 새 회계연도 예산안 처리가 불발했기 때문이다.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과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한 상원 사이에 막판 극적인 타협이 없다면 상당수 연방정부기관이 문을 닫고, 핵심 서비스를 제외한 모든 공공서비스 제공이 중단된다. 과거에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곤 했으나 누가 봐도 한심한 노릇이다.
영화 <식코>를 통해 많이 알려졌듯이 미국의 의료제도는 형편없다. 의료비가 굉장히 비싸고, 국민의 20% 가까이가 의료보험을 못 가지고 있다. 이 잘사는 나라에서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선진국 중에 전국민 의료보장이 없는 유일한 나라다. 극단적으로 자유시장을 신봉한 하이에크조차도 무슨 나라가 이러냐고 불평했을 정도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이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한 정책이 의료보험 개혁이다. 공화당의 발목잡기로 상당히 약화되긴 했지만 여론의 지지를 동원하여 모든 국민이 의료보험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이젠 공화당이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 편성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에 모리셔스라는 나라가 있다. 마다가스카르 동쪽 인도양에 있는 작은 섬나라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모든 교육이 무상이고, 의료도 무상이다. 이 나라가 엄청 부자라서 이런 정책을 시행하는 건 아니다. 1인당 국민소득은 우리나라의 3분의 1 정도다. 아프리카치고는 괜찮은 편이지만 결코 소득수준이 높다고 할 수는 없다. 사실 반세기 전 모리셔스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미드는 매우 비관적인 전망을 하면서 정책조언을 제공했었다. 그런데 모리셔스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을 이룩해냈다.
모리셔스가 돈이 많아서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시행하는 것이 아니듯이, 부자나라 미국에 돈이 없어서 대학교육과 의료가 세계 최고로 비싼 것은 아니다. 미국이 전국민 의료보장을 실시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은 보험회사들이 뿌리는 돈의 영향력과 복지 확대에 반대하고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공화당의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복지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다.
한국 정부는 기초연금 공약을 수정하면서 공약대로 하고 싶었지만 돈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건 근본적으로 틀린 얘기다. 나라에 돈은 넘쳐난다. 정부가 필요한 만큼 걷으면 되는 것이다. 정부가 세금을 더 걷으면 그 돈이 어디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특히 기초연금과 같은 이전지출에 쓰일 경우, 그 돈은 고스란히 국민의 호주머니로 돌아오는 것이다. 물론 나가는 호주머니와 들어오는 호주머니가 다르다. 바로 그것이 복지다.
물론 세금을 아무 제한 없이 마구 걷어서는 안 된다. 세금 때문에 경제적 유인이 왜곡되어 비효율이 발생할 수도 있고, 정부가 민간보다 더 유용하게 돈을 쓸 것인가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은 정부가 과연 우리에게 걷어간 세금을 정말 효율적으로 잘 쓰는지 의구심이 많다. 비근한 예로 4대강 사업만 해도 얼마나 황당한 세금낭비를 초래했던가? 하지만 국민 호주머니로 다시 돌아오는 복지지출은 다르다. 행정적인 낭비의 소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수혜자에게 돈이 가는 것이다.
복지라고 해서 마구 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지나친 복지 또한 경제적 유인을 왜곡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복지수준이 너무 저급하고 지체되어 복지 확대가 시급하다. 이것이 국민적 합의다. 누구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러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데 앞장섰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미망을 어서 빨리 떨치고 충실하게 공약 이행에 나서주기 바란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한겨레 신문 등록 : 2013.09.30 18:36수정 : 2013.10.01 1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