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소개ABOUT IGG

언론보도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연구원의 소개입니다.


관치금융의 망령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3-09-11 12:26:18
  • 조회수 : 1665

한겨레 오피니언[세상 읽기] 관치금융의 망령

재계 서열 13위의 에스티엑스(STX)그룹 부실 사태가 수면 위로 드러난 지 6개월이 지났다. 그사이 산업은행을 필두로 한 채권단은 무려 4조9000억원의 돈을 쏟아부었지만, 경영 위기는 심화되고 그룹은 공중분해될 처지에 놓였다. 에스티엑스팬오션과 에스티엑스건설은 법정관리 상태고, 에스티엑스에너지는 일본계 금융회사에 팔렸으며, 지주사인 ㈜에스티엑스를 비롯해 조선해양·중공업·엔진·포스텍 등의 계열사가 채권단 자율협약에 들어가 있다. 앞으로 계열사들은 생존을 위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며, 채권단은 그동안 쏟아부은 돈을 얼마나 회수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기 그지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렸던 강덕수 회장은 어제 열린 에스티엑스조선해양 이사회에서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았고, 채권단의 계획에 의하면 그룹의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어야 할 처지에 몰렸다. 구조조정의 칼바람 앞에 서게 된 에스티엑스그룹 계열사 임직원들의 처지는 어떤가. 이들이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할 것인가 생각하면 안쓰럽기 그지없다. 채권단이 주도하는 기업회생의 가능성을 믿고 투자했던 투자자들도 큰 손해를 보았다. 지난 6개월간 5개 계열 상장사의 시가총액 8500억원이 증발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에스티엑스그룹 몰락의 원인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밀어닥친 해운업과 조선업의 불황이고, 이에 대한 사전 예측이나 사후 대책이 미흡했던 탓이다. 미래는 언제나 불확실한 것이고, 시장경제에서 부침은 늘 있는 일이다. 경영이든 취업이든 투자든 자기 책임의 원칙 아래서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고, 성공에 따른 보상과 실패에 따른 후과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채권은행들의 손실은 좀 다른 얘기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구조조정을 지연하고, 불투명한 방법으로 금융지원을 추진함으로써 필요 이상으로 손실을 키웠기 때문이다. <연합뉴스>의 기사에 의하면 한 채권은행 관계자는 “에스티엑스는 지난해 구조조정에 착수해야 부실이 줄었을 텐데 대선을 앞두고 있어 미뤄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비협약채권인 회사채 투자자 구제에 자율협약 채권단이 자금을 넣도록 당국이 압박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렇게 해서 자율협약 채권단에 속하지 않는 회사채 투자자는 채권단의 돈으로 투자금을 손실 없이 회수하게 되었고, 이는 채권자들 사이의 심각한 불평등을 야기했다.
채권금융기관들이 손실에 대비하여 쌓은 충당금이 올해 상반기에만 1조원이 넘고, 이는 은행 경영수지 악화의 주원인이었다. 그나마 충당금을 제대로 쌓았다가는 건전성이 위협받을 지경인 일부 은행이 충당금을 과소 책정한 결과라고 한다. 이러고서 은행 경영수지 개선을 위해 수수료 인상이 필요하다고 하니 힘없는 국민만 봉이 되는 꼴이다. 특히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산업은행, 우리은행 등의 손실은 결국 국민 부담이 되기 때문에 절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사실 정치적 판단에 의한 구조조정의 지연, 편법에 의한 채권자 간 불공평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랜 관치금융의 유구한 전통이다. 아이엠에프(IMF) 위기 이후 개혁을 통해 관치금융을 청산했다고 했으나 실상 관치금융이 펄펄 살아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금융감독을 장악한 모피아가 금융기관에 대해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정치권력은 모피아를 이용하여 금융을 제 입맛에 맞게 주무른다.
경제민주화란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다. 민주적 의견 수렴과 투명한 법제도를 통해 시장을 통제하는 것이다. 관료의 자의적 판단과 그 배후에 작용하는 정치권력의 입김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관치와는 전혀 다르다. 경제민주화는 관치금융 청산을 시급하게 요구한다.

한겨레 등록 : 2013.09.09 1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