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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주자들의 성장담론과 경제민주화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6-10-25 11:52:45
  • 조회수 : 1259
경향신문 오피니언 [유종일의 경제 새판짜기]

 

최근 차기 대권 주자들이 경쟁적으로 성장담론을 제기하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혁신성장론을 주장하는 유승민 의원이 문재인 전 대표의 국민성장론을 비판하고 안철수 의원의 창업국가론을 추켜세워 세간의 주목을 끌기도 하였다. 저급한 패거리 정치가 판을 치는 한국 정치에서 유력 정치인들이 정책의 방향과 내용을 둘러싸고 논쟁하는 것은 참으로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이들의 담론과 논쟁이 과연 삶의 무게에 짓눌려 신음하는 서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헬조선에서 탈출하고픈 청년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을까?

 

필자가 경제 새판짜기 칼럼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주장한 것이 바로 혁신성장이다. 선진기술모방과 자본축적극대화에 입각한 개발연대의 성장패러다임은 시효가 벌써 지났으니 혁신주도 성장으로 성장체제를 전환해야 한다고, 이를 위해서는 자본축적에 목을 맬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권추구와 같은 손쉽고 불공정한 돈벌이를 억제해야 혁신을 고취할 수 있으며, 압박과 쥐어짜기가 아닌 여유와 안정이 혁신의 토대임을 지적했다. 창업이 혁신성장을 위해 중요하다는 유 의원의 언급도 당연히 지지한다. 그러나 그가 국민성장론에 대해 “기존의 소득주도성장을 벗어나지 못한 분배론일 뿐, 성장의 해법이 아니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고 비판한 것은 그야말로 아쉬움이 크다.


과거 경제학의 주류는 ‘형평성’과 ‘효율성’, ‘분배’와 ‘성장’ 사이에 상충관계를 상정하고 두 가지 가치를 조금씩 희생하면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는 불평등이 별로 심하지 않았던 시대의 이론이었고, 불평등이 심화된 최근에는 오히려 상보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시장경제에서 어느 정도 불평등은 불가피하고 이를 과도하게 축소하려고 하면 효율성과 성장을 저해하지만, 불평등이 지나치게 커지면 이 또한 효율성과 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 좋은 계획을 가진 사람은 돈이 없어 투자를 못하거나 돈만 많다고 마구잡이 투자를 감행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돈이 소비할 사람들에게 안 가고 이미 너무 많은 돈을 가진 사람들에게 몰림으로써 전반적인 소비수요가 위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처럼 불평등이 매우 심한 경우 분배를 개선하는 것은 그 자체로 효과적인 성장정책이다.


지나친 불평등이 성장을 해친다는 것은 일부 진보 학계의 주장이 결코 아니며, 근래 경제학계의 대세가 되었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에 발표한 소득불평등에 관한 일련의 연구결과는 전 세계 학자들과 정책전문가들에게 굉장한 주목을 받았다. IMF라는 기관의 권위와 중요성, 연구에 사용한 데이터의 방대함과 분석방법의 치밀함 등도 원인이었지만, 무엇보다 과거에 효율성과 성장의 이름으로 IMF는 부자감세와 복지축소 같은 보수적 재정정책, 자본자유화 그리고 노동시장 유연화 등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밀어붙이던 기관이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연구결과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IMF는 이런 정책들이 불평등의 심화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불평등의 심화는 성장률의 하락을 초래하는 경향이 있음을 밝혔다. 게다가 IMF는 정부의 소득재분배 정책이 결코 성장을 저해하지 않으며, 따라서 재분배로 인한 불평등 감소는 고스란히 성장률을 제고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고 각국 정부에 보다 강력한 재분배 정책을 권고하였다.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창업도 필요하겠지만 복지와 분배도 필수다. 지금 과연 어떤 부모가 자식에게, 어떤 선생이 제자에게 창업을 권유할 수 있겠는가? 재벌대기업이 시장을 지배하고 벤처생태계는 미비한 상황에서, 혁신형 창업의 성공확률은 너무도 낮다. 반면 사회안전망이 미비하고 한번 실패하면 재기가 지극히 어려운 상황에서 절대다수의 창업은 패기 있는 도전이 아니라 취업하지 못한 자의 불가피한 탈출구가 되어버린 실정이다. 혁신성장의 정책과제로 “경제정의와 시장개혁”을 주장한 유 의원이나 “공정한 출발과 경쟁, 재도전이 가능한 시스템”을 강조한 안 의원이나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경제정의의 핵심은 분배정의고, 재도전이 가능한 시스템은 바로 복지국가 아닌가?


안 의원이 창조경제혁신센터를 “국가공인 동물원”이라 부른 것이나, 유 의원이 “재벌개혁이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지적한 것은 공정경쟁 없이 혁신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분배정의 역시 혁신성장의 필수조건임을 인식해주면 좋겠다. 반면 문 전 대표는 소득주도성장이니 국민성장이니 다소 모호한 표현이기는 해도 분배의 중요성은 담아내고 있지만 공정경쟁의 문제를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4대 재벌의 경제연구소장들을 만나 “경제를 살리는데 여전히 재벌, 대기업이 견인차 구실을 해야 한다”며 구애를 했다. 재벌대기업이 지배하는 시장에서 혁신적 성장동력이 자라나기 어렵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문 전 대표가 한편으로는 재벌 지배구조 개혁이 국민성장론의 대표 과제라고 내세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재벌친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크게 우려되는 일이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기득권을 개혁하는 일이 투철한 의지와 뛰어난 지혜가 없이 될 리가 만무하다. 문 전 대표가 인식을 심화하고 결의를 다지지 않는다면, 그가 이끄는 정부에 재벌개혁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재벌개혁을 이룬 최초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했다가 ‘국민소득 2만 달러’ 전략과 한미 자유무역협정, 그리고 의료민영화 등 삼성그룹이 주문한 정책을 추진하여 ‘삼성공화국’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만 참여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염려된다. 경제민주화를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워 집권해놓고, 경제활성화가 우선이라는 명분 아래 경제민주화를 팽개치고 만 박근혜 정부와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혁신성장은 공정경쟁과 분배정의라는 두 기둥 위에 올리는 지붕이다. 이 두 기둥을 합쳐서 한마디로 경제민주화라고 부른다. 경제민주화는 철지난 유행이 아니다. 경제민주화는 4년 전 사회적 합의였고, 미래 혁신성장의 필요조건이다. 책임 있는 정치인들이 경제민주화는 없었던 일로 치부하고 너나없이 모호한 성장론만 내세우는 현실이 답답하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경향신문 입력 : 2016.10.19 20:21:00 수정 : 2016.10.20 17:23:14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0192021005&code=990100#csidx12398f94fb63ba1b8632ab87d434ee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