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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 정상화, 산업용 요금 인상이 핵심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6-09-29 11:48:41
  • 조회수 : 1310

경향신문 오피니언 [유종일의 경제 새판짜기]

 

한반도가 이상하다. 여름 내내 기록적인 폭염이 지속되더니, 요즘은 생전에 겪어보지 못한 강도 높은 지진이 발생하고 있다. 폭염은 가정용 전기요금의 누진제로 인한 전기요금 폭탄 논란을 불렀고, 안정적인 전력공급에 관한 우려를 키웠다. 지진은 재난에 대처하는 박근혜 정부의 무능을 다시 한 번 부각하는 한편,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에 관한 우려를 전면화했다. 원전 밀집지역에 활성단층이 다수 존재할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시민사회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신규 원전 건설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기요금 정책과 전력수급 정책은 서로 맞물려 있으며, 당장의 살림살이뿐만 아니라 나라경제의 미래도 결정하는 중대한 문제다. 세계 최고의 전기 다소비 국가를 향해 달려온 이제까지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앞으로 어떤 재앙을 맞이하게 될지 모른다. 원전 건설 없이는 늘어나는 전력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게 정부의 주장이지만, 그렇게 수요가 마구잡이로 늘어나게 방치하는 것이 바로 잘못된 전기요금 정책이다. 수요 억제는 경시하고 공급 증대에 방점을 찍은 전력수급 정책은 갈수록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원전의 안전성 문제뿐 아니라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미세먼지 문제와 온실가스 문제도 심각하다. 게다가 부안 방폐장 사태나 밀양 송전탑 사태에서 경험한 것과 같이 사회적 비용도 갈수록 커질 것이다.


전력정책 새판짜기의 핵심은 산업용 전기요금의 대폭 인상이다. 이는 우리 경제의 전력수요를 크게 줄이고, 에너지 효율성을 크게 향상시키며, 새로운 성장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고, 복지재원 마련에도 도움을 주는 일석사조(一石四鳥)의 정책이 될 것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가정용 전기요금의 누진제 개편도 전력수요를 늘리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당장 전기료가 부담이 되니 요금을 내리라는 식의 포퓰리즘 정책은 경계해야 한다.


우리나라 전력수급의 문제가 공급부족보다는 수요 과다에 있다는 사실은 전기 사용량의 국제비교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1인당 전기 소비량은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며 이미 독일과 일본을 추월한 지 오래고, 조만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전기 다소비 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더군다나 독일, 일본, 미국 등은 모두 향후 전력 소비를 과감하게 줄이려는 계획을 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원전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등 공급증대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기 소비가 우리보다 소득수준이 높은 나라들보다 많은 까닭은 산업용 전기가격이 너무 낮고 따라서 산업의 전기 소비가 과다하기 때문이다. 반면 가정용 전기는 강력한 누진요금 때문에 부유한 선진국들에 비해 1인당 소비가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가정은 전기를 아껴 쓰지만 산업이 너무 펑펑 쓰니 전체 전기 소비가 많은 것이다.


유럽 국가들의 절반 남짓에 불과한 산업용 전기요금은 산업분야에서 엄청난 전력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 전기료가 워낙 싸니 석유와 가스 대신에 전기를 사용한다. 제철소에서 쇳물을 전기로 녹이고, 염전에서 바닷물을 전기로 말리는 황당한 일들이 벌어진다.


과거에 소련에서 인민의 필수품이라고 빵의 가격을 매우 낮게 책정한 결과 농민들이 빵을 사료로 썼다는 것과 비슷한 어이없는 비효율이 발생하는 것이다. 누진제의 압박을 받는 가정에서는 노후한 가전기기를 신형의 고효율 기기로 교체하고, 전등을 LED 조명으로 바꾸는 등 효율 개선에 적극 투자하고 있지만, 싼 전기요금의 혜택을 누리는 기업들은 에너지 효율 개선에 별 관심이 없다.


값싼 산업용 전기 공급은 사실상 매년 수십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산업보조금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전체 전기소비자의 1.2%가 전체 전기의 64%를 사용할 정도로 전기 소비는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산업용 전기요금을 정상화하는 것은 소수 전기 다소비 기업들에 대한 부당한 보조금을 철폐하는 일이고, 대다수 기업에는 그다지 충격이 되지 않는다. 전기요금 인상으로 마련된 재원의 일부를 사용하여 에너지 인프라 혁신사업을 추진하면 된다. 전기를 절약해주는 새로운 기술과 공정, 제품으로 교체하도록 보조금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전기의 단가는 올라도 전기 소비량이 줄어서 전기요금 부담은 궁극적으로 증가하지 않으며, 에너지 고효율 기술과 제품의 시장이 확대되고 경제 전반의 에너지 효율성과 국가경쟁력이 올라갈 것이다. 이렇게 하여 전력수요가 감소하면 발전설비 증대에 따르는 경제적, 환경적, 사회적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가정용 전기요금의 누진제는 수요 억제에 기여하고 있으나 조정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특히 소량 소비자에 대한 요금이 지나치게 싸서 전열기구로 난방을 하는 등 낭비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1인가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런 문제는 앞으로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저소득층에 대한 에너지 복지는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으로 마련되는 재원을 활용하여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과거에 호주는 우리나라와 더불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가장 전기요금이 싼 나라였으나, 2008년부터 전기요금을 급격하게 인상하여 전기요금 상위권 국가가 되었다. 그 결과 꾸준히 증가하던 전력수요가 2010년부터 감소로 전환되었고, 태양광 발전 시스템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면서 호주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었다.


이처럼 전기요금 인상은 전력수급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신재생에너지 분야와 혁신적인 에너지 기술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할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녹색성장’이다.


우리 정부는 원전을 건설하여 ‘녹색성장’을 하겠다는 발상을 하고 있지만, 이는 원전을 감축하거나 폐기하고 있는 선진국의 추세와 어긋날뿐더러 진정한 녹색성장의 싹을 자르는 일이다. 더구나 원전이 집중된 지역에 강도 8.3의 지진이 날 수도 있다는 연구보고서 등을 감안할 때, 원전 확대 정책의 위험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엊그제 “한국은 파리협정의 단순한 이행을 넘어 기후변화 대응이 경제의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도록 에너지 신산업 확대 등에 힘을 쏟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산업용 전기요금 정상화 없이는 되지 않을 일이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경향신문 (입력 : 2016.09.22 22:35:00 수정 : 2016.09.22 22:41:1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9222235005&code=99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