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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원은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4-01-14 10:06:20
  • 조회수 : 1824

한겨레신문[세상읽기] 며칠 전 미국에서 황당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퓨연구소의 발표에 의하면 공화당원들 사이에서 인류의 진화를 믿는 비율이 2009년 54%에서 2013년 43%로 크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민주당원들의 경우에는 64%에서 67%로 약간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얼핏 생각할 수 있는 종교의 영향이나 당원 구성의 변화 때문은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폴 크루그먼은 흑인 민주당 대통령에 대한 반감으로 공화당원들의 진영 논리가 더욱 극단화되면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진영 논리에 의해 과학적 견해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2010년도 갤럽 조사에 의하면 인간에 의해 기후변화가 초래되고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의 비율이 공화당원들 사이에서는 31%에 불과했고 민주당원들 사이에서는 66%였다고 한다. 묘한 것은 1998년도 조사에서는 두 집단 간에 이 비율이 차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사이에 기후변화에 관한 과학적 증거는 엄청나게 강화되었기에 더더욱 기묘한 일이다. 두 집단 사이에 과학 능력 격차가 발생한 것은 결코 아니었으며, 과학 능력이 높은 사람들 사이에서 두 집단 간의 견해차가 더욱 커졌다는 놀라운 연구도 나왔다.

 

문제는 기후변화 이슈가 과거에는 그냥 과학적 판단의 문제였는데,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교토의정서에 반대하면서 이를 민주당과 대립하는 정치적 이슈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공화당원들 사이에서는 기후변화를 부정해야 자기 진영에 충성도가 높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기후변화를 사실이라고 인정하며 걱정하면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불편함이 발생한 것이다. 과학 교육을 많이 받은 엘리트일수록 전문가의 판단과 진실에 대한 존중보다는 자신이 속한 진영 내부에서의 심리적 편안함과 사회적 인정을 추구했다.

 

물론 인류의 진화나 기후변화는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압도적 다수가 사실로 믿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과학 이슈에 대하여 대체로 전문가의 견해를 별다른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과학적 판단의 문제도 일단 정치적 이슈가 되면 전문가의 견해를 근거도 없이 무시하고, 진영 논리에 휩쓸려서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게 된다. 편가르기 싸움이 벌어지면 객관적 사실과 증거에 입각한 합리적 토론은 사라지고 진실은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미국인 과반수가 테러의 주범이 오사마 빈라덴이 아니라 사담 후세인인 것으로 믿었던 어처구니없는 사실이 한 극적인 사례다.

 

우리나라에서도 진영 논리는 큰 문제다. 대부분의 정책 이슈가 정치 이슈로 전환되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 형성이 어렵고 정부 대 반정부의 대결로 이어진다. 주된 책임은 정부에 있다. 이해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과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정책을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철도 파업이 간신히 봉합되었는데 또 의사 파업이 예고되었다. 민영화다 아니다 하는 외침만 난무하고 정책 목표와 수단에 대한 구체적이고 진지한 토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진영 논리에 눈이 멀면 4대강 사업도 찬성하고,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오류투성이 교과서도 좋다고 한다. 편가르기 버릇은 진보 진영도 다르지 않다. 필자가 ‘반값등록금’에 반대하는 논지를 펼쳤을 때 구체적인 논거에 대한 반론은 없고 전선을 교란하지 말라는 구박만 받았던 씁쓸한 기억도 있다.

 

진영 논리는 황당하고 위험한 결론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전문가를 존중하고, 합리적인 연구와 사회적인 합의를 지향하는 토론을 진작해야 한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한겨레신문 등록 : 2014.01.13 1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