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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꿈, 유럽의 꿈, 한국의 꿈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7-04-07 17:14:44
  • 조회수 : 1285

경향신문 오피니언[유종일의 경제 새판짜기]

 

취임 후 2개월을 겨우 넘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거듭된 거짓말과 러시아 커넥션 의혹의 증폭, 그리고 건강보험 법안을 둘러싼 공화당 내분 등으로 위기에 처했다. 임기 초 지지율은 연일 사상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으며, 시민단체들이 진행 중인 탄핵 국민 청원은 벌써 100만명 넘는 서명을 모았다. 개방과 세계화를 선도하던 미국이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치하에서 보호무역과 고립주의에 빠져 오히려 세계화를 위협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세계 질서의 중심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가치와 라이프 스타일까지도 세계인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미국의 꿈,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인들을 넘어 세계인들의 꿈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미국은 누구에게나 자유와 기회를 보장하는 나라라고 인식되었다. 그러나 이제 미국에서 자유는 위협받고 있으며, 1980년대 이래 불평등이 증가한 결과 노력을 통한 계층상승의 기회는 사라져가고 있다. 2012년 오바마 대통령 경제자문회의 의장이던 앨런 크루거는 소득불평등과 세대 간 계층이동성의 국제비교를 통해 양자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위대한 개츠비 곡선’이라 명명했다. 그는 소득불평등이 심한 미국은 계층이동성이 유럽 국가들에 비해 훨씬 낮은 것을 보여주었다. <불평등의 대가>를 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를 비롯해서 많은 이들이 미국의 꿈은 이제 신화에 불과하다고 지적했고, 2015년에 펑크 밴드인 ‘어그노스틱 프런트’는 “아메리칸 드림은 죽었다”라는 앨범을 내기도 했다. 사실 트럼프는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등장한 거짓 예언자이고 가짜 지도자일 따름이다.


엊그제 영국의 테레사 메이 총리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협상을 공식 개시하는 서한을 EU 상임의장에게 전달함으로써 브렉시트의 방아쇠를 당겼다. 1957년 독일, 프랑스 등 6개국이 유럽경제공동체(EEC) 결성에 합의하는 로마조약에 사인한 지 60년이 흘렀고, 이를 기념하여 27개국 유럽 정상들이 같은 장소에 모여 “유럽은 우리 공동의 미래”라는 로마선언문에 사인한 직후였다. 6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EU 붕괴론이 거론되었다. 브렉시트의 충격 이후, EU의 핵심 4개국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에서조차 EU 탈퇴 여론이 증가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2차 대전의 참화에서 막 벗어난 유럽을 경제적으로 묶어 평화와 번영을 이루자는 취지로 추진되었다. 관세동맹과 시장통합, 단일화폐까지 이루어내면서 유럽 역사상 가장 긴 평화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경제를 이룩하는 데 성공하였다. 나아가 국가 간의 협력을 통해 평화롭고 이성적인 국제질서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20세기 말엽 미국의 꿈이 점차 사그라들 때에 유럽은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1993년 MIT 경영대학원장이던 레스터 서로는 21세기의 경제적 주도권을 위한 경쟁의 승자는 유럽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고, 2004년 제러미 리프킨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천으로 유명해진 <유러피언 드림>이라는 저서에서 개인적 부의 축적으로 안정과 행복을 추구하는 미국의 꿈보다 사회적 연대와 인권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한 유럽의 꿈이 21세기의 도전에 더 잘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모든 기대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와 2010년 유로존 위기 이후 불안과 좌절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EU 국가들은 상호 협력 모드에서 경쟁 모드로 전환했고, 중동 난민의 유입과 테러는 국가주의에 기름을 부었다. 영국 가디언지는 최근 상황을 1930년대 대공황 속에서 파시즘이 횡행했던 시절과 비교하기도 했다.


어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뇌물죄 등 14개의 죄목으로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그를 탄핵에 이르게 한 촛불시위는 민주주의와 정의를 염원하는 세계인들의 찬사를 받았고 한국에 민주주의가 살아 있음을 증언하였지만, 기괴하고도 광범위한 국정농단이 그렇게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는 사실은 한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주었다. 새 대통령을 뽑기 위한 절차가 진행되고 있지만, 과연 새 지도자가 연인원 1500만명이 넘는 국민을 촛불광장에 나오게 한 분노와 좌절을 기쁨과 희망으로 바꿔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20세기 후반 한국은 기적의 나라였다.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안은 채 지독한 가난의 굴레를 탈출하여 산업화를 이루었고, 독재와 억압의 사슬을 끊어내고 민주화를 이루었다. 2차 대전 후 신생 독립국들의 우상이 되었고, 개도국 경제발전의 모델이 되었다. 한국의 꿈, 코리안 드림은 고도성장을 통해 가난뱅이가 부자 되는 것이었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라고 노래하며 끊임없이 성장을 추구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1인당 국민소득 목표로 이 꿈을 구체화했다. 박정희가 제시한 목표는 1000달러였고, 김영삼은 1만달러, 노무현은 2만달러, 이명박과 박근혜는 4만달러를 목표로 정했다. 그런데 김영삼의 1만달러 달성은 외환위기로 귀결되었고, 노무현의 2만달러 달성은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했다”는 논란을 낳았다. 성장은 결코 행복의 보증수표가 아님을 깨달은 국민은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갈망했으나 한국 경제는 방향전환에 실패했고, 더 이상 성장도 하지 못하는 경제가 되었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4만달러는커녕 아직 3만달러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다. 고도성장의 신화는 죽은 지 오래고, 4차 산업혁명의 물결에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미국의 꿈, 유럽의 꿈, 그리고 한국의 꿈이 모두 무너지고 있다. 21세기는 절망과 비관의 시대가 되고 말 것인가? 칼 폴라니는 <위대한 전환>에서 사회를 시장의 규칙에 종속시키려는 시장화와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사회의 자기보호’라는 이중운동으로 근대 역사를 분석했다. 미국에서 발호한 신자유주의, 유럽의 단일시장과 단일화폐, 한국의 성장지상주의는 모두 사회적 요구를 억압하고 시장의 논리를 강요하는 시장화 운동의 형태였다. 이는 결국 경제위기를 낳았고, 시장에 대한 반감을 증폭시켰다. 하지만 시장의 파괴와 고립은 답이 아니다.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통해서 사회의 자기보호를 실현하는 것이 과제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경향신문 입력 : 2017.03.30 21:03:00 수정 : 2017.03.30 21:05:33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3302103005&code=990100#csidxcdc645203b5c91691eef7276559b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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