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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과 정책 제4호_유종일, 홍준희_기업용 전기요금의 과감한 정상화로 일석사조를!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3-10-21 08:41:18
  • 조회수 : 4526
밀양 송전탑 건설 문제로 한전과 반대 주민들 사이의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공사를 강행하는 한전의 명분은 전력대란에 대한 우려다. 전력공급 부족사태에 대한 대비가 필요함은 두 말 할 나위도 없다. 문제는 전력 생산의 증가가 유발하는 비용이다. 순수한 발전소 건설비용과 운영비용도 문제지만, 원전과 관련한 안전성 리스크와 화석연료 사용 시의 온실가스 배출도 심각한 문제다. 게다가 밀양 사태에서 보듯이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비용이 들더라도 꼭 필요한 일이라면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전력 수급 문제는 공급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수요의 과다에서 오는 것이고, 그 핵심원인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기를 지나치게 싸게 공급하기 때문이다.(한전의 현행 요금체계에서는 일반 국민이 사용하는 전기를 주택용, 기업이 사용하는 전기를 산업용과 일반용으로 구분하는데, 본고에서는 산업용과 일반용을 기업용이라 칭한다.) 정부도 문제를 인식하고 전기요금 인상안을 준비한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업의 부담을 우려하여 조금씩 인상하는 것은 그다지 효과가 없다. 우리는 향후 5년 간 매년 10%씩 기업용(산업용과 일반용) 전기요금을 인상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우리 경제의 전력수요를 크게 줄이고, 에너지 효율성을 크게 향상시키며,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복지재원 마련에도 커다란 도움을 주는 일석사조(一石四鳥)의 정책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 전력수급의 문제가 공급부족 보다는 수요과다에 있다는 사실은 전기 사용량의 국제비교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일인당 전기소비량은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며 독일과 일본도 추월하였고, 2011년에는 미국 다음으로 컸다. 게다가 독일, 일본, 미국 등은 모두 향후 전력 소비를 과감하게 줄이려는 계획을 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소비증가율만을 조금 낮추겠다는 계획이어서 조만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전기다소비 국가가 될 전망이다.
[그림 1] 주요 국가의 일인당 전기 소비량 추이
 
일반적으로 수요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소득수준과 가격임은 경제학의 상식이다. 전기소비도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많아지고, 전기가격이 낮을수록 많아진다. 우리나라의 전기소비가 급격하게 증가한 것은 소득수준의 향상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의 전기소비가 우리보다 소득수준이 높은 독일이나 일본보다 많고 심지어 미국보다 많아진다는 것인가? 전기가격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그림 2>에서 보듯이 최근 5년 동안 우리나라 산업용 전기의 가격은 OECD 유럽국가들의 반값 수준이었다. 일반용 전기요금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림 2] OECD 유럽 대비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 추이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가격은 절대적으로 낮을 뿐만 아니라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상대가격이 또한 매우 낮다. 동일 열량을 기준으로 등유와 전기의 가격을 비교했을 때, OECD 평균은 전기 가격이 등유 가격의 151%이고 전기절약을 특히 강조하는 일본의 경우는 222%인데 반해 한국에서는 61% 밖에 되지 않는다.1) 값비싼 에너지인 전기가 오히려 더 싼 것이다. 이렇게 싼 전기 값은 산업부문의 전력낭비를 초래했고 전력수요를 대폭 늘렸다. 석유와 가스 대신에 전기를 사용한다. 쇳물도 전기로 녹이고, 소금도 전기로 만든다. 전기를 절약하는 기술과 제품은 팔리지 않는다. 그 결과 우리나라 기업들의 전기생산성(에너지효율)은 OECD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고, 전력수요가 워낙 빠르게 팽창하다보니 전력수급 불안이 초래되었다.
 
 
만약 우리나라의 기업이 사용하는 전기의 가격이 OECD 유럽국가들 수준이었다면 우리 기업들은 지난 5년간 전기요금으로 무려 138조원을 더 냈어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기업들이 매년 27.6조원의 보조금을 받은 셈이다. 우리나라 GDP의 2%가 넘는 막대한 금액이다. 이런 엄청난 혜택을 누리는 기업들은 한사코 전기요금 인상에 반대한다. 전기 값이 오르면 물가가 오르고 수출이 막히며, 공장이 멈추거나 다른 나라로 이전할 것이고, 일자리가 없어져서 결국 국민이 피해를 볼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매우 과장된 주장이다. 기업들 눈치를 살피며 전기요금 인상을 자제하던 정부도 2011년 9월의 대정전을 계기로 조용히 요금인상에 나섰다. 2011년 9월부터 2012년 8월 사이 세 번에 걸쳐 각각 6%씩 총 18%를 올렸다. 하지만 멈춘 공장과 막힌 수출은 없었다.

더구나 전기소비량은 소수 기업에 극도로 몰려있기 때문에 대다수 기업에게는 전기요금 인상이 그다지 큰 충격이 되지 않는다. [그림 3]이 보여주는 것처럼 전체 전기소비자의 1.2%가 전체 전기의 64%를 사용한다. 그 중에서도 불과 30개의 기업이 전체 전기의 14%를 소비하고 있다.2) 전반적인 분포를 보면 16.5%의 상위소비자가 약 80%의 전기를 소비하며, 가정을 포함한 83.5%의 소비자가 약 20%의 전기를 소비하고 있다.
[그림 3] 전기소비량의 분포
전기다소비 기업들이 엄청난 특혜를 누리는 대신 그 경제적 폐해는 가중되고 있다. 전기가 모자라서 국민이 더운 여름에 에어컨을 못키고, 추운 겨울에 난방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전기다소비 기업들은 전기생산성 향상을 위한 설비교체나 투자는 외면하고 전기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결국 에너지 고효율 기술과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은 시들하고, 국가 경쟁력은 저하되고 있다.
 
 
2007년에만 해도 호주는 우리나라와 더불어 OECD 국가들 중 가장 전기요금이 싼 나라였다. 이 나라는 풍부한 석탄자원이 있어 전체 전력의 90%를 석탄화력으로 저렴하게 생산하기 때문에 낮은 전기 가격을 유지했다. 그러나 현재의 호주는 OECD 국가들 중 전기요금이 높은 상위권 국가가 되었다. 지난 5년간 지역별로 50~70% 정도 인상했으며, 앞으로도 30% 이상을 인상하는 로드맵이 확정되어 있다. 그 결과가 놀랍다.

첫째, 연평균 3~5%씩 꾸준히 증가하던 전력수요가 2010년부터 감소로 전환되었다. 전력수요의 감소는 단기간에 일어났다. 특히 송배전망을 통한 융통전력은 20~30% 정도나 감소하였다.

둘째, 2007년 이전에는 약 2만 개에 불과했던 태양광 발전 시스템이 2012년에 이르러서는 약 백만 개로 늘었다. 2.3GW의 태양광 발전 시스템이 신규 설치되었고, 관련 매출이 5조원을 상회한다. 태양광 부문에서만 호주 경제를 0.1% 이상 성장시킨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 낸 것이다.

호주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전기요금 인상이 전력수급 문제를 해결하는 유력한 정책임과 동시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전기요금이 올라가면 신재생에너지의 채산성이 향상되어 이 분야의 생산증가와 기술혁신을 촉진한다. 또한 고효율 설비와 혁신적인 에너지 기술에 대한 수요가 증대되어 이와 연관된 산업과 기술의 발전을 촉진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전기요금 체계는 매우 복잡하다. 여기서는 가정용, 교육용, 농업용 등의 용도별 요금체계에 관한 논의는 생략하고, 기업들에게 공급되는 산업용과 일반용 전기요금을 2018년까지 OECD 평균 수준으로 인상하는 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지금의 산업용과 일반용 종별요금을 전압별 요금체계로 전환하고, 기업이 사용하는 전기(기업용)만을 연간 10%씩 5년간 계속 인상하여 총 61%를 인상하는 방안이다.3)4)

현재 기업부문의 전기소비 중 대표적인 산업용 전기의 평균한계비용은 kWh 당 99원으로서 61%가 인상되면 160원이 된다. 이 값은 여전히 주택용의 평균한계비용 대비 30% 이상 저렴한 요금으로서 배전부문의 원가 차이에 상응하는 만큼 낮은 수준이다. 동시에 가스 및 석유가격과 동일열량 기준으로 비교할 때도 적절한 수준이기도 하다.
[그림4] 기업용 전기요금 인상안
 
이러한 요금인상의 결과 향후 5~6년간 60~70조 원 규모의 요금수입 증가가 예상된다. 이 중 일부를 한전의 재무 건전화에 투입하더라도 50조 원 가량의 정부재정을 확보할 수 있다. 현행 전기요금에 포함해서 징수하는 전력기반기금 3.7%를 전기세로 전환하고, 향후 요금인상의 대부분을 전기세 인상으로 하면 된다. 이로써 복지재원 마련의 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는 대규모 세수증대가 가능하다. 이는 정부가 당면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이다.

우리가 제시하는 방안이 다소 과격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전기요금 정상화 정책은 과감해야 한다. 단기간 내에 시장에 충격을 주는 방식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는 기업에게 전기요금 정책 전환의 의지를 알리고 미리 준비해서 선제적 투자를 실행하도록 자극하려는 것이다. 정책의 성공이 시장참여자들의 기대심리를 만들 수 있는가에 달려있기에 과감한 목표와 속도를 선언하고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2011년 9월부터 진행된 찔끔찔끔 전기요금 인상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책이 소심하고 겁을 내니 시장이 무시한 것이다.

기업들의 지나친 부담에 대한 우려를 할 필요는 없다. 전기요금 인상으로 마련된 재원의 일부를 사용하여 정부주도의 에너지 인프라 혁신사업을 추진하면 된다. 전기를 절약해주는 새로운 기술과 공정, 제품으로 교체하도록 보조금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기업의 제조원가의 상승부담을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다. 전기의 단가는 올라도 전기소비량이 줄어서 전기요금 부담은 궁극적으로 증가하지 않으며, 전기생산성 증대를 위한 에너지 인프라 투자는 정부가 보조를 해주기 때문이다.5)
 
 
전기요금을 단순히 전력수급 문제나 전력사의 적자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보는 것은 매우 좁은 시각이다. 물론 전기요금 정상화는 전력수요를 감소시켜 수급문제를 해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이는 매우 중대한 역할이다. 그런데 호주의 사례에서도 보았듯이 전기요금 정상화는 신재생에너지나 에너지효율성 관련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일으키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그야말로 ‘녹색성장’의 전략이 될 수 있다.

국가 경제에서 전력과 관련된 설비자산의 규모는 어마어마한 크기다. 이들 설비자산과 그에 관련된 금융과 파생시장이 전기요금의 영향을 받는다. 이는 전기요금 정상화 정책이 거시적으로 엄청난 시장을 창출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가천에너지연구원과 현대경제연구원이 추정한 전기요금 정상화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막대하다.6) 이 연구는 향후 5년간 매년 15%씩 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시나리오를 대상으로, 확보된 재원을 관련 산업에 재투자한다는 가정 위에 경제적 파급효과를 산출했는데, 전기요금 정상화 후 5년간의 생산유발효과는 총 176조 2,306억 원, 부가가치 유발효과는 총 52조 1,735억 원, 취업유발효과는 총 76만 1,679명으로 추정되었다. 전기장치, 에너지 관련 연구개발, 전자표시장치, 공조 및 냉온장비 등의 분야에서 특히 많은 일자리 창출이 예상되었다.

우리가 제안한 전기요금 정상화는 일반 국민에게는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다. 전기요금 정상화란 전체 전기소비자의 2%인 전기다소비 고압수용가(기업용)만을 대상으로 전기요금을 정상적인 수준으로 높이자는 것이다. 일반 국민이 사용하는 주택용 수용가인의 전기요금은 오히려 인하할 수도 있다. 저소득층을 위한 에너지복지를 강화할 수도 있다.
 
1) IEA Energy Prices and Taxes 2012, 3rd quarter 및 2007, 3rd quarter

2) 박창기, “시장원리를 이용한 전력문제 해결 방안 3가지”, <전기요금 정상화,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 실현> 국회-시민단체 토론회 발표문, 2013. 9. 4.

3) 산업용과 일반용은 주택용과 비교해서 고압이다. 다만 산업용에서도 특고압과 고압으로 두 가지이고 일반용도 특고압과 고압 두 가지가 있다. 한전의 요금체계에서는 이를 산업용 갑(고압), 산업용 을(특고압) 등으로 부르고 있다. 해외의 경우 이들을 묶어 Business & Commercial Customer라 하는 경우들이 많다. 본고에서는 기업용이라는 하나의 명칭을 사용하고 한계비용 기준의 단일 요금을 적용하거나, 이를 보완하는 수정된 요금제도가 바람직하다고 여긴다. 본고에서 이들을 다루기에는 초점이 흐려지고, 복잡할 것 같아 상세한 논의는 생략한다.

4) 연 10% 인상을 5년 간 하면 총 인상률은 50%가 아닌 61%가 된다.

5) 장기적으로 국가의 전기생산성은 전기요금에 비례한다. 우리나라와 비교할 때, 전기요금이 2.7배인 일본의 전기생산성은 2.8배, 전기요금이 1.8배인 프랑스는 전기생산성이 1.7배에 이르는데, 이는 전기요금을 올리면 전기생산성이 비례해서 향상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기업이 내는 전기요금 총액은 장기적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이는 전기요금 인상 정책이 스스로 일몰되는 특성을 가졌음을 의미한다. 높은 전기세가 소비자 스스로 전기생산성을 높이도록 강제하고, 그 결과로서 소비자가 부담하는 전기요금 총액이 줄어드는 작용이다. 대략 정책 시행 후 5-10년 사이에 일몰효과가 기대된다.

6) 가천에너지연구원, 현대경제연구원,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의 경제효과 분석, 201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