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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과 정책 제31호_정한중_범죄보도의 자유와 공정한 형사절차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4-05-12 10:37:21
  • 조회수 : 2727
 
오늘날 언론기관은 매일 범죄보도에 상당한 시간과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특히 국민들의 주목을 끄는 연예인의 범죄나 중대한 범죄가 발생한 경우에는 언론기관의 보도 시간이 단기간에 걸쳐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며 보도 분량도 대량적이다. 이러한 언론의 범죄보도는 시기적으로 수사에서 공소제기 전의 단계, 즉 확정판결 전에 집중되는 경향이 강하고, 또 보도내용도 대부분이 수사기관의 보도자료 등을 토대로 하여 수사기관의 관점과 동일하게 피의자를 범인으로 단정하는 소위 ‘범인화보도’가 대부분이다. 또 피의자의 사생활을 포함하여 인격적 비난을 함으로써 공판시작 전에 이미 ‘언론 재판(Medeia Trial)’을 해버리는 경향이 있다.1)

그런데 범죄보도는 ‘표현의 자유’와 공공적 정보에 대한 시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순기능을 가지는 동시에, 피보도자의 명예권, 인격권 및 ‘적정절차’, ‘무죄추정 원칙’ 및 ‘공정한 재판’을 침해하는 역기능도 일으킨다. 즉 공판 전의 범죄보도로 인하여, 백지상태에서 범죄사실의 존재 여부를 판단해야할 법관이나 배심원들에게 유죄의 예단을 심어줌으로써, 피의자나 피고인의 공정한 형사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할 위험성이 높다.2)

전통적인 언론의 자유론의 입장에서는 언론에 대한 국가의 어떤 규제도 표현의 자유를 훼손한다고 보았지만, 오늘날 언론기관의 형태는 과거와 많이 다르다. 거대한 소수 미디어가 정보를 독점하고, 유통하는 내용까지 좌우할 수 있는 입장에 있고, 대다수의 국민은 사실상 정보의 단순한 ‘수취인’의 지위에 놓여 있다. 왜곡된 정보제공 위험성이 일상화된 오늘날 과거처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관점을 그대로 유지해야 할지는 의문이다.
 
 
우리도 최근 연예인 박시후 사건,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등 유명사건에 대한 언론보도를 보면 간략한 수사결과나 공소장 내용을 넘어서 거짓말탐지기 결과나 수사기관이 수집한 녹취록 등이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하였다.

최근 세월호 사건에 대한 보도가 많다. 그런데 이 사건 보도는 앞서 언급한 유명사건에 대한 언론의 범죄보도와 다르다. 먼저, 세월호 사건 보도는 선장 등 당사자들도 대부분의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있어, 법정에서 쟁점으로 그들의 행위에 대하여 살인죄 혹은 유기치사죄를 적용할 것인가 등 법률판단의 문제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후자는 피의자들이 범죄사실을 부인하고 있어 사실관계 자체에 다툼의 여지가 많은 사건이다. 두 번째, 선박침몰관련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을 다른 범죄사실로 희석시키려는 의도 아래 세월호 사건 자체에 대한 범죄보도는 별로 없고, 어떤 면에서는 침몰사건과 무관한, 실소유자 관련 회사의 횡령, 탈세 등에 대한 보도가 많다.

그런데 이석기 사건의 경우, 사법경찰관인 국정원이 법정에서 검사가 제출할 증거인 녹취록 내용 등을 언론에 대대적으로 제공하면서 수사착수를 발표한 후, 검찰에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였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경우도 국정원에서 검찰에 영장을 청구하면서 기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여 보도되기 시작하였고, 연예인 박시후 사건의 경우에도 거짓말탐지기검사 결과가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등 사건 자체에 대한 범죄보도라는 점이 차이가 있다. 세 번째는 세월호 사건은 기본적으로 재난보도이므로, 그 사건 자체에 대한 보도는 수사기관에 의존하는 면이 적다. 따라서 세월호 사건을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현장의 사실보도라면 당연하다 할 것이므로 이를 근거로 앞에서 언급한 다른 유명사건의 범죄보도가 바람직하다 할 것은 아니다. 또한 세월호 사건의 본질과 관계없는 관련회사에 대한 횡령 등 사건은 아직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수사기관의 일방적인 발표에 의존하는 언론보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재난보도에 충실하게 침몰원인, 구조의 문제점 보도에 충실하여야 한다.

우리나라도 2008년 이후 ‘국민의 형사재판참여에 관한 법률’의 시행으로 중대한 범죄사건에 대해서 시민인 배심원이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이 실시되고 있다. 위 법률 개정안3)에 따르면 국민참여 형사재판은 피고인의 신청주의를 기본적으로 유지하면서도 피고인의 신청이 없는 경우에도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투명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법원의 직권 또는 검사의 신청에 따른 법원의 결정으로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등 국민참여재판의 대상범죄를 크게 확대하였다. 개정안은 배심원 평결에 법관이 사실상 구속되도록 하였기 때문에 유죄, 무죄에 대한 배심원의 사실인정 권한이 강화될 예정이다. 따라서 일반시민이 종래보다 더 많은 공판에서 수사기관의 정보에 의존하는 범죄보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유죄의 예단을 가지고, 사실인정을 하는 한명의 배심원으로 형사절차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4)

그런데 미국의 실증연구들은 공판 전 범죄보도가 ‘적정절차’나 ‘공정한 형사재판’을 침해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따라서 언론기관의 범죄보도와 공정한 형사재판 운영에 대한 미국에서의 논의와 노력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이 되기 때문에 먼저 미국의 논의를 살펴보자.
 
 
가. 공정한 형사절차 위반의 사후적인 구제책으로 유죄판결의 파기

미국에서는 1950년대부터 언론기관의 범죄보도를 통해서 피의자나 피고인에게 보장된 적정절차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문제의식이 생겼다. 인디애나 주의 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 레슬리 어빈에 대해서 언론기관은 공판 전에 피의자의 자백, 전과 및 가석방 위반자 등으로 대대적인 비난보도를 했고, 변호인은 여러 번 ‘관할의 변경’과 ‘공판연기’를 신청했지만 기각되어 유죄판결을 받았다. 연방대법원은 어빈 사건 판결5)에서 언론의 범죄보도가 실제로 당시 배심원의 공평성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입증되었기 때문에 유죄판결을 파기했다.6)

연방대법원 2년 후 리도 사건 판결7)에서 구치소에 감금된 리도와 보안관의 면담장면이 촬영되고, 그것이 TV에 3번이나 방영되었는데, 리도가 보안관에게 은행강도와 살인죄를 범했다고 자백하는 장면이 포함되었다. 변호인은 관할의 변경신청을 했지만 기각되고 루이지나 주 대법원은 유죄판결을 내렸다. 연방대법원은 개개의 배심원이 실제로 예단을 가졌는가 또 어느 정도로 예단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묻지 않고, 예단을 유발할 수 있는 일반적 행태가 있으면, 그것이 실제적으로 유발한 예단의 평가나 입증 없이 적정절차를 부정하는 ‘일반적 예단(inherent prejudice)’ 법리8)에 근거하여 유죄판결을 파기하였다.
어빈 판결과 리도 판결 이후 논점이 범죄보도와의 관계에서 ‘일반적 예단’ 혹은 ‘현실적 예단’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여부로 옮겨갔다.

그러나 예단적 범죄보도로 불공정한 재판을 사후적으로 시정하는 형태인 유죄판결의 파기라는 극단적 사례는 1971년 ‘셰퍼드 사건 판결’9)이후에는 없고, 이 예단의 법리가 형사절차의 공정성을 보장하는데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도 있다.10)유죄판결의 파기라는 사회적 충격 때문에 1970년 이후의 판결추세는 언론의 범죄보도를 통한 예단을 사전에 억제하는 수단을 모색하는데 중점이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수단의 선택에 사실심 법원11)에 광범위한 재량권을 인정하기 때문에 아직도 그 재량판단의 기준으로 예단법리는 중요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나. 사전적 예단 방지 수단의 모색

1960년대 후반 연방대법원은 범죄보도에 의해서 적정절차가 침해되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는 방법도 검토하게 되었다. 그 효시로 된 것이 셰퍼드 판결이다.

이 판결은 대대적인 공판 전 보도와 공판의 텔레비전 취재 ․ 방영에 노출된 피고인이 공평한 재판을 받을 수 없었다고 하여 예단법리의 적용을 청구했던 사안이다. 대법원은 유죄판결을 파기하면서, 사실심 법관이 취할 수 있는 사전적인 예단방지수단에 대해서 구체적인 검토를 했다.
그 판결에서 제시된 수단을 보면, ① 보도에 접촉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배심원을 격리하거나, ② 증인이 보도에 영향을 받는 상태에서 증언하지 못하도록 증인의 격리도 가능하다고 했다. ③ 또한 “…사실심법원은 셰퍼드가 신문과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거부했다는 것, 셰퍼드가 수사관에게 했던 모든 진술, 예상된 증인의 신원과 증언할 내용, 유죄ㆍ무죄에 관한 의견 등 예단을 일으키는 사실을 공표하려는 검사, 변호인, 당사자, 증인 및 법원 직원의 공판정 밖에서의 발언을 금지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한다. ④ “공판전의 예단에 찬 보도가 공정한 재판을 방해할 합리적인 가능성이 존재하는 경우, 법원은 그 위험이 완화될 때까지 소송을 연기하든지 보도에 오염되지 않은 다른 카운티로 관할을 변경해야 한다”고 하였다.

셰퍼드 판결이 제시했던 예단방지수단의 실효성 여부, 그 수단과 표현의 자유의 충돌 위험성에 대해서 논란은 많다. 그러나 이 판결은 각종 예단방지수단의 제시를 통해서 적정절차 침해의 ‘사후적 구제’에서 침해의 ‘예방’으로 관점을 전환시킴과 동시에, 침해방지를 위한 적절한 수단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기 위한 소재를 제공했던 점에서 의의가 있다 연방대법원은 1976년 네브래스카 기자 협회 판결12)에서 결국 보도기관에 대한 가장 강력한 사전억제의 수단인 보도금지명령을 검토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판결은 언론기관의 보도의 자유가 피고인의 적정절차를 받을 권리보다도 더 중하며, 보도기관에 대한 사전제약은 당시의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 기준인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13)에 입각하여 사실상 절대적으로 금지된다는 것을 표명하여 보도금지명령이 위헌임을 지적했다. 이 판결 이후 미국에서는 보도기관에 대한 사전억제 이외의 다른 대체수단의 필요성 등이 검토되었다.
 
다. 사전억제 이외의 대체수단에 대한 논의

언론기관의 피의자에 대한 편향적인 보도가 사실인정권자14)에게 예단을 준다는 것은 단순한 경험칙의 차원이 아니라, 페인15)이나 스튜드베이커16) 등의 실증연구를 통해서 입증되었고, 특히 실증연구들은 언론보도의 정보내용 중 피고인의 자백이나 전과기록은 특히 유죄판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언론의 범죄보도에 의해서 배심원 등에게 예단을 줌으로써 피고인의 적정한 형사절차를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인식아래, 미국에서 예단의 사전적 방지수단으로서 ‘배심원선정절차에서 후보자에게 상세한 질문17)을 통한 기피제도’, ‘관할 변경’, ‘공판 연기’, ‘배심원 격리’, '재판장의 배심원 설시할 때 지시'18)등 형사절차 내에서 활용하는 방법과 ‘형사재판의 비공개’와 ‘소송관계인19)의 정보제공금지’ 등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약이 수반되는 방법, 그리고 이들을 조합하는 방법 등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형사절차 내에서의 여러 예단방지 수단의 실효성에 많은 학자들이 부정적이고, 특히 언론의 자유를 제약할 위험이 있는 수단들은 ‘표현의 자유’와 시민의 ‘알권리’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은 네브래스카 가지 협회 판결이 언론기관에 대한 사전억제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했고, 수사를 포함하여 형사절차의 비공개(비보도)를 인정하는 기준이 매우 엄격하여 그 사용에 신중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라. 피고인이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를 언론에 알릴 권리를 보장하자

지금까지 미국에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언론보도의 자유와 공정한 재판은 서로 상반된 것이라는 것을 전제하였다. 그러나 프리드먼과 스타우드20)는 표현의 자유와 공정한 재판은 결코 대립하는 것이 아니고, 표현의 자유, 특히 피고인 측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 공정한 재판에 도움이 된다는 접근방법으로 네브래스카 기자협회 판결을 평가하고 있다.

즉 검사는 공소장 등을 통해서 피고인에 대한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사실을 공표하는 특권이 주어져 있는데, 검찰 측의 이러한 부정의(不正義)에 대해 피고인 측의 침묵이 강요된다면, 사법의 오류를 예방할 보도기관의 기능도 심각하게 손상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지적하였다. 수정헌법 6조21)는 공정한 재판을 국가가 아닌 피의자ㆍ피고인에게 보장하는 것이고, 피고인의 수정헌법 1조22) 권리행사는 피고인의 위 6조의 권리보장과 모순되지 않는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피고인은 검사의 기소에 대해서 발언할 수 있는 수정헌법 1조의 권리를 가지고, 시민은 형사사법의 무오류성에 대한 계속적인 관심에서…피고인 측의 항변을 들을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프리드먼과 스타우드은 피고인에게 불리한 정보와 예단에 찬 수사기관의 정보에 근거한 언론의 범죄보도는 피고인의 적정절차를 받을 권리를 침해할 수 있음에도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절대적으로 보호하면서, 피고인이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를 발언하는 것은 피고인 자신의 적정절차를 받을 권리를 침해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더 많은 제한을 받는 문제점을 비판한 것이다. 이것은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 정보규제를 받아야 하는 편은 수사기관이거나 수사기관의 정보에 근거한 언론기관이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변호사협회(ABA)는 1983년 형사재판기준과 별도로 ‘MODEL RULES OF PROFESSIONAL CONDUCT’(표준행동준칙23))을 제정하여, 특정한 형사절차와 수사에 관여하고 있는 법률가의 발언 제한은 소송계속 중인 절차에 예단을 일으킬 ‘실질적 가능성’24)의 기준을 채택하였다. 그 후 ABA는 1994년 피고인 측의 ‘반론권(Right to reply)’도 규정하였는데, 특히 ‘준칙 3.6 재판보도’ 부분에서 법정 밖의 발언25) 이 규제되는 법률전문가의 대상범위가 사건의 수사 혹은 재판에 관여하고 있는 법률가에 한정되는 것을 명확히 하고, 또 법률전문가가 불공정하고 불이익한 보도로부터 의뢰인을 보호하기 위하여 법정 밖에서 필요한 반론을 하는 것은 허용된다는 예외규정이 추가되었다.

한편, ABA는 경찰과 검사의 언론에 대한 범죄정보제공이 피의자나 피고인을 유죄시하는 분위기를 발생시킬 위험이 있다는 것을 강하게 인식하고, 매우 철저하게 수사기관의 행동을 규제하기 위해서 표준행동준칙 3.8 ‘검사의 특별책임’ 부분을 규정했다. 즉 준칙 3.8은 검사의 피의사실에 대한 공표 행위의 성질과 범위는 시민에게 알려주기 위한 필요한 발언과 정당한 법집행의 목적에 적합한 발언에 한하며, 그 외에 피의자에 대한 시민의 비난을 가중시킬 ‘실질적인 가능성’이 있는 법정 밖의 발언을 삼가지 않으면 아니 된다고 한다.26)
 
 
우리의 경우에도 미국에서 인정되고 있는 소송관계인의 언론기관에 대한 정보제공의 금지 기준을 어느 정도 유효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언론기관에 제공되는 예단에 찬 정보는 대부분 수사기관에서 제공된 정보가 많다는 점에서 피의자 측의 변호인이 제공하는 정보와 수사기관이 제공하는 정보를 동일한 평면에서 제약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서울시 간첩 사건에서 재판장이, 수사기관의 범죄정보 제공을 토대로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언론보도에 대하여, 검사에게는 아무런 지적을 하지 못하면서 변호인의 방어적인 기자회견에 대하여만 질책한 것은 어처구니없는 재판진행이고, 이석기 사건의 경우도, 유ㆍ무죄를 떠나 국정원의 수사발표와 언론의 보도는 법관에게 예단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공정한 재판을 받은 피고인의 권리를 침해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의 경우도 자백 여부와 현장검증, 거짓말탐지기 결과, 영장청구 등 유죄의 예단을 강하게 심어주는 정보의 원천이 대부분 수사기관인데, 수사기관의 이러한 행위를 방지하기 위하여 우리 형법은 피의사실공표죄를 규정하고 있으나 사실상 사문화되어 수사기관의 수사발표에 대하여 위 죄로 기소한 예가 없는 실정이다.27)언론기관의 범죄보도가 공정한 형사재판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표현의 자유의 척도로 판단한다면, 피고인의 적정절차를 통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당연히 후퇴하지 않을 수 없지만 미국에서 추구했던 예단 방지수단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대단히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에서 다른 수단에 비해 비교적 실효성이 있다고 평가받는 관할 변경 신청의 경우에도 중앙집중적인 우리나라 언론 환경에서는 실효성이 없을 것이다.

국민의 형사재판참여에 관한 법률 제28조 제2항에는 ‘법원은 ... 배심원후보자가 불공정한 재판을 할 우려가 있는지 여부 등을 판단하기 위하여 배심원후보자에게 질문을 할 수 있다. ...’고 규정하고, 같은 조 제3항은 ‘법원은 직권 또는 검사ㆍ피고인 또는 변호인의 기피신청에 따라 당해 배심원후보자에 대하여 불선정결정을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여 소위 이유부 기피신청28)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배심원후보자가 보도기관에 노출되었다는 주장만으로 법원이 불공정재판을 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여 그 배심원후보자를 배심원에서 배제할 가능성을 별로 없다. 그렇다면 피고인 측은 같은 법 제30조에 규정된 무이유부 기피신청29)을 활용하여야 하는데, 무이유로 기피할 수 있는 후보자 수가 현저히 적어 실효성이 없을 수 있다.30)

여기서 헌법상의 중요한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후퇴시키지 않고, ‘표현의 자유’와 ‘적정절차를 통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조화시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형사절차에서 ‘실질적 당사자주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양 당사자(검사와 피고인)에 대등한 보도를 적극 활성화하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31)즉 피의자 측의 유리한 정보와 ‘반론권’에 대해서 규제와 제약보다는 ‘개방’하는 방법도 고려되어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언론기관은 첫째, 범죄보도를 할 경우 수사기관 측의 주장만이 아니라 피의자 측의 주장도 동시에 병렬적으로 보도해야 하고, 둘째, 양 당사자의 주장은 주장에 불과하고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보도해야 하며, 셋째, 양 당사자의 주장을 보도하는 부분과 언론기관의 주관적 의견을 피력하는 부분을 분명히 구분하여 보도하고, 넷째, 이를 위하여 각 검찰청이나 경찰서 등 수사기관의 브리핑룸도 피의자 측이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법원- 변호사회- 수사기관- 보도기관 자율협정을 체결하고, 필요한 경우 외국의 예를 참조하여 수사기관에 대한 범죄정보 제공의 한계를 규정하고 이를 어기는 경우 법정모독죄로 처벌하고,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도록 형법, 민사법, 형사소송법 관련법을 제ㆍ개정하여야 할 것이다.
 
1) 김태홍, 수사기관의 언론에 대한 범죄정보제공의 제한, 동아법학(제61호, 2013.11),89면 이하

2) 이하는 주로 정한중, 미국에서의 범죄보도의 자유와 공정한 형사절차, 미국헌법연구(제24권 제1호, 2013.4), 362면 이하를 참고하여 작성된 것임

3) 대법원이 국민참여재판의 최종 형태로 마련한 개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4) 최근 서울시 간첩사건의 1심 재판 중 피고인의 변호인들이 기자회견을 하자, 재판장이 이를 법정에서 공개적으로 경고를 하였는데, 이는 법관 스스로도 언론보도에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자인한 셈이기 때문에 법관재판에서도 범죄보도와 공정한 형사재판의 문제는 제기된다.

5) Irvin v. Dowd, 366 U.S. 726-728(1961).

6) rvin 사건은 현실적 예단의 기준에 입각하여 공정한 재판침해를 인정하여 유죄판결을 파기한 최초의 사례이다. 여기서 예단이 구체적이며 실제로 재판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입증되는 ‘현실적 예단(actual prejudice)’ 법리에 기초하여, 지나치게 편향적이며 피의자를 유죄로 취급하는 언론보도는 비록 피고인의 유죄가 확실할지라도 공정하지 못한 형사절차 때문에 유죄판결을 파기하였다. 현실적 예단 기준은 범죄보도가 실제로 법관이나 배심원에게 준 영향에 근거하기 때문에 적정절차침해의 판단에 있어서 배 심원 등이 예단 때문에 실제로 공정한 판결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을 피고인이 입증해야 하며, 또한 법원이 예단적 보도로 오염된 곳에서 관할을 변경하려고 했는지, 범죄보도 로부터 공판 간의 시간적 간격이 얼마나 되는지, 예단을 가진 배심원후보자의 실제 차지하는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게 된다. 그러나 이 기준에 입각할 때 배심원이 현실적으로 예단을 가졌는지를 입증하기란 상당히 곤란할 것으로 보인다.

7) Rideau v. Louisiana, 373 U.S. 723(1963).

8) 본래적 예단으로 번역할 수 있으나 ‘보도를 통해 정보를 얻은 측의 심리 면에 영향을 묻지 않고, 예단을 유발할 수 있는 일반적 행위, 즉 실제적으로 유발한 예단의 평가나 입증 없이, 보도된 내용과 성질, 보도행태 등 보도기관의 행위로부터 객관적으로 예단발생 유무를 판단하여 권리침해 여부를 인정하는 것’이므로 일반적 예단으로 번역하였 다.

9) Sheppard v. Maxwell, 384 U.S. 333(1966).

10) Joanne Armstrong Brandwood, Note, You Say "Fair Trial" and I Say "Free Speech": British and America Approaches to Protecting Defendant's Rights in High Profile Trials, 75 New York Univ. L. Rev. 1412, 1429, 1444(2000).

11) 우리나라의 경우는 1심과 2심을 말한다. 미국은 주로 1심이다.

12) Nebraska Press Association v. Stuart, 427 U.S. 539(1976).

13) 이 원칙은 ‘언론이 직접 해악을 초래하는 현재의 위험이 있을 경우, 또한 그러한 해악을 유발할 의도로 행하는 경우’에만 언론에 제한을 가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다.

14) 법관재판의 경우에는 법관, 배심재판의 경우는 배심원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국민참여 형사재판을 제외하면 주로 법관이다.

15) S. Fein은 심리학과 학생들을 3개의 구룹으로 나누어 공판 전 보도가 배심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조사한 결과, 유죄판단 비율이 언론 정보를 가진 그룹이 언론 정보 를 접하지 못한 그룹 훨씬 높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S. Fein, Mcclosky and Tommlinson, Can the Jury Disregard That Information? -The Use of Suspicion to Reduce the Prejudicial Effects of Pretrial Publicity and Inadmissible Testimony, 23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1215(1997).

16) C. Studebaker 등은 인터넷조사방법을 통해서 재판과 동시에 조사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 공판 전 보도는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예단을 생기게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입증했다. C. Studebaker, Robbennolt, Penrod, Pathk-Sharma, Groscup, and Devenport, Studying Pretrial Publicity Effects: New Methords for Improving Ecological Validity and Testing External Validity, 26 Law and Human Behavior 19(2002).

17) 범죄보도를 알고 있는지, 그 결과 유죄라고 생각하는지 등을 배심원에게 질문하여 배심원 선정이 되지 아니하게 하는 방법

18) 재판장이 증인신문 등 공판이 끝나고 배심원들이 평의에 들어가기 전에, 증거능력이나 무죄추정의 원칙 등의 의미에 대하여 배심원들에게 설명하는 것

19) 판사, 검사, 피고인, 변호인, 증인 등 소송에 관여하는 사람을 총칭하는 말이다.

20) M. Freedman/J. Starwood, Prior Restraints on Freedom of Expression by Defendants and Defense Attorneys : Ratio Decidendi v. Obitter Dictum, 29 Stanford L. Rev. 607, 613(1977).

21) 형사절차에서 피고인의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22) 표현의 자유 등을 규정하고 있다.

23) 한인섭 외6인, 법조윤리, 박영사, 2012, 37면의 번역을 따랐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ABA의 위 준칙 등 각종 기준이나 규칙들은 각주의 법원규칙으로 채용되어 공정한 재판 침해의 위법성 판단의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http://www.americanbar.org/groups/professional../model_rules_of_professional_conduct.html).

24) Press-Enterprise Co. v. Superior Court of California, 478 U.S. 1 (1986) 등에서 연방대법원이 ‘법원은 심리절차에서 피고인이 공정한 재판청구권이 보도에 의하여 왜곡될 실질적 개연성이 있고, 보도하지 않는 것이 편견을 방지하고, 그러한 목적을 위해 다른 합리적 대체수단이 없는 경우에 한하여 재판의 비공개가 허용된다’고 재판의 비공개 와 관련하여 제시한 원칙이다.

25) 예단을 일으킬 구체적인 정보에 대해서는 (a)항 코멘트에서 ① 피고인 혹은 증인의 성격, 신용성, 평판, 전과, 신원 및 당사자나 증인의 예상된 증언, ② 피고인의 자백, 사 실인정이나 어떤 진술의 존재나 그 내용, 혹은 진술거부권 행사여부 등, ③ 어떤 시험이나 검사를 한 것이나, 그 검사결과, 피의자 등이 시험이나 검사를 거부한 사실 등, ④ 형사사건 혹은 구금할 절차에서 피의자 등이 유죄나 무죄에 대한 어떤 내용, ⑤법률가가 공판에서 증거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인식하고 있었거나 합리적으로 인식하면 공정 한 재판에 예단을 일으킬 실질적 위험을 일으킬 정보 등을 들고 있다.

26) 또한 이 준칙은 수사관, 법집행관, 직원 혹은 형사사건에서 검사에 협력하고, 혹은 제휴하고 있는 다른 인물이 준칙 3.6 혹은 본 조항 이하에서 금지되고 있는 법정 밖의 발 언을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합리적인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검사 자신이 유죄의 예단을 유발하는 발언을 하여서는 아니 될 뿐만 아니라, 검사 의 지휘를 받는 수사관계자나 수사협조자에게도 마찬가지의 발언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의무를 부담시키고 있는 것이다.

27) 영국에서도 1981년 ‘법정모독죄’를 신설하여 수사초기 형사절차의 공정성을 침해하는 언론의 범죄보도를 형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금지되는 보도내용으로서 ‘진범시하 는 표현’, ‘피의자의 사진게제’, ‘전과사실’, ‘자백’ 등이다. 이러한 내용을 보도한 언론기관뿐만 아니라, 정보를 제공한 수사관계자도 처벌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태홍, 앞 의 논문, 108면 이하).

28) 신청인이 법률에 정한 사유가 있거나 불공정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다고 하면서 배제신청을 하지만 법원이 인정해야 배심원에서 배제가 되는 신청

29) 아무런 이유 없이 배심원에서 배제가 가능한 신청

30) 미국의 경우, 대부분의 주가 무제한으로 배제가 가능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배심원이 9인인 경우는 5인, 7인인 경우는 4인, 5인인 경우는 3인까지만 기피 가능하 다.

31) 독일의 대부분의 주는「보도법」을 제정하여 수사기관의 정보제공을 제한하는 규정을 두었는데, 모범적인 북-베스트팔렌(N ․ Westfalen)의 「보도법」 제4조 2항에서 언 론에 제공이 제한되는 정보로서 ①정보제공에 의해서 계속 중인 소송의 객관적인 실시를 좌절, 곤란, 방해하거나 위험하게 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②비밀보유에 관한 규정 이 있는 경우, ③우월한 공공의 이익이나 보호해야할 사적 이익이 침해된 경우, ④정보청구의 범위가 예측 가능할 정도를 초과한 정보가 이에 해당한다. 이 한도에서 수사기 관의 법률상 비밀보호의무를 인정한 것, 혹은 언론의 수사기관에 대한 정보청구권의 제약을 인정한 것으로 이해했다. 또한 독일의 각주에서는 수사기관의 언론에의 범죄정 보제공을 통해서 발생하는 예단을 적극적으로 방지하기 위해서 피의자 측의 ‘반론권’을 규정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잘-란트의 경우에는 피의자나 변호인이 검사의 기자회 견에의 참여할 수 있도록 ‘공동기자회견 참여권’을 주 법무장관의 일반처분으로 검사에게 의무화시킴으로써, 수사기관의 언론에의 부적절하고 예단에 찬 범죄정보제공을 제약하거나 정정할 수 있는 기회를 피의자 측에 부여하는 의미있는 규정을 설정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독일에서는 사회에 예단적 분위기를 유발한 언론이나 수사기 관에 대해서 인격권과 초상권 등의 침해를 이유로 ‘손해배상청구권’이나 ‘부작위청구권’과 같은 민사법적 수단이 많이 활용하고 있다. 민사법적 수단은 형사처벌이나 재판절 차의 중단이라는 수단과는 달리 ‘완화된 쇼크’를 주기 때문에 사전유죄시적 분위기를 정정하거나 완화하는 효과를 가진 것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고 한다. (김태홍, 앞의 논문, 108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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