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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과 정책 제52호_김학진_노벨과학상-선진국으로서의 척도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4-10-20 10:15:45
  • 조회수 : 2555
금년 노벨물리학상은 일본의 물리학자들이 청색 LED를 구현한 공로로 수상하였다. 인간의 눈에 보이는 모든 색은 빨강, 초록, 파랑 3개 빛을 혼합하여 만들 수 있다. 세 빛 중 에너지가 가장 커서 안정적으로 만들기가 어려웠던 청색 LED는 이 분야의 오랜 난제였다. 화학상은 분자 1개의 거동을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분해능을 가진 현미경을 개발하여, 분자에 대한 미시적 이해를 확장한 공로로 미국과 독일의 과학자들이 수상하였다. 개별 분자는 뭉치로 존재하는 분자들과는 질적으로 다르게 거동한다. 영국과 노르웨이의 과학자들이 수상한 생리의학상은 뇌의 위치 인식 시스템을 구성하는 세포들에 관한 연구에 대하여 주어졌다. 뇌의 작동 방식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환자의 CT 사진을 판별하는 것처럼 사람은 쉽게 인식하는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컴퓨터 알고리즘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금년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과 유룡교수가 한국 과학자 최초로, 과학 관련 미디어 정보 관련 업체인 톰슨 로이터에서 예상하는 수상자 명단에 포함되면서 노벨과학상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더욱 컸던 것 같다. 이 글에서는 노벨과학상과 연관하여, 과학을 지원하는 사회적 환경과 노벨과학상의 가능성을 품고 있어야 할 교육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아주 가끔 제3세계 국가 출신의 과학자가 노벨과학상을 수상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들이 교육받고 활동하는 곳은 거의 모두 선진국이다. 근래에는 드물지만, 어떤 해에는 노벨과학상 수상자 중에 미국인이 한 사람도 없기도 하는데, 그 자체가 뉴스가 되기도 한다. 최근 일본은 목표로 하는 노벨 과학상 수상자의 수를 발표하면서 국가적으로 과학자들을 독려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노벨과학상 수상이 선진국임을 보여주는 척도라는 인식과 연관된다.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국가는 과학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면에서 선진국이라 해도 큰 과장이 아니다.

흔히 이야기하듯이, 노벨과학상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이다. 노벨과학상은 올림픽과 달리, 정해진 규칙에 따라 경쟁하고, 결과를 비교하여 수상 여부를 결정하지 않는다. 객관적인 수상 기준은 없다는 편이 정확하다. 금년 물리학상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실패해온 분야에서 돌파구를 만든 연구에 대해 수여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과학 전반에 큰 영향을 준 새로움에 대한 평가이다. 새로움은 나타난 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야 그 가치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세간에서 노벨과학상을 수상할만한 주제라고 말할 때에는 이미 그에 관한 연구들은 꽤나 진행되어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벨과학상을 수상한 많은 연구를 처음 시작하였을 당시에는 그 가능성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많은 실패로 좌절한 상태이기 쉽다. 이런 가능성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이 이루어지는 국가, 사회 분위기가 새로움을 추구하는 데 우호적이고, 그를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국가에서 노벨과학상을 수상한다. 이런 사회 분위기와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과학자가 노벨과학상을 수상하더라도, 그를 이을 수상자를 꾸준히 배출할 확률은 별로 없다.
 
 
어느 분야나 정치와 완전히 독립하여 존재할 수는 없지만, 각 분야의 고유한 특성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정치적 독립성을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한다. 과학의 중요한 존재 이유는 사고(思考)의 이득을 위한 지식 체계로서의 역할인데, 기술과 같이 그 목적성이 강해지면, 로마 시대의 과학처럼 존재가 미미해질 수 있다. 한국 과학의 정치적 독립성은 그다지 높지 않은데, 이는 과학 활동에 대한 지원이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기 하고, 과학 내부의 요구보다 정치적 요구에 부응하는 과학 활동을 자청해 온 한국 과학의 전통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정치적 의존성은 과학 내부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하는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장애로 작용한다. ‘바람’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정치적 분위기에 휘둘리는 상황은 IT 산업의 거품과 황우석 사태에서 경험하였듯이, 크고 작은 부작용을 만든다.

과학의 정치적 독립성이 약한 상황에서 과학에 대한 지원과 평가는 균형감을 잃기 쉽다. 정부의 관련 부처 관료들이 과학에 대한 경제적 지원 규모는 물론 세부 내용까지 결정하고, 일부 과학기술자들이 정책적인 가이드라인 속에서 주로 자문과 같은 보조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과학 내부의 요구를 충실하게 반영하는 지원이 이루어지 못한다. 과학에 대한 경제적 지원 규모가 커짐에 따라 지원 범위를 농부가 씨 뿌리듯이 넓은 영역으로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한때 유행하였던 ‘선택과 집중’에 따라 좁은 영역에 국한되어 대형화하는 추세를 보인다. 소수의 인원이 연구비 대부분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거꾸로 선 피라미드 구조는 가능성을 키우고 과학 활동의 저변을 넓히는 데 역행하는 구조로, 절대적 빈곤 해결과 직결된 연구가 시급한 후진국형 과학 지원 구조라 할 수 있다.

이런 과학에 대한 지원 구조는 직접적으로는 관료 사회의 특성과 관련된다. 연구 지원 예산의 효율성에 대한 평가는 정치권력에 의해, 연구 지원을 계획한 관료들에 대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정치적 평가를 잘 받을 수 있는 가시적 성과에 민감한 정치인과 관료들은 장기보다 단기 연구에, 가능성보다 전시효과가 큰 결과에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예산 분배에 대한 권한을 관료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자문역을 하는 과학기술자들은 의뢰자의 희망에 부응하는 분석과 해법을 내놓는 컨설턴트처럼, 정치적 요구에 부합하는 자문을 한다.

과학 발전을 위해 좀 더 나은 지원 시스템은 과학자들이 과학 지원 예산의 세부 내용을 결정하고, 예산 사용에 대한 평가 결과를 과학 지원을 담당하는 관료들에 대한 평가 자료로 사용하지 않는 상황, 관료들은 예산과 관련된 권한과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예산이 원활하게 깨끗하게 집행될 수 있도록 서비스만 하는 시스템이다. 이 경우 예산 사용, 즉 연구 결과에 대한 평가에는 과학에 대한 관심과 지식을 가진 일반 국민들의 참여가 바람직하며, 이를 위한 홍보도 필요할 것이다. 어느 분야나 아마추어의 수준이 높아지면 프로의 수준은 저절로 높아지듯이, 일반인들이 연구 결과를 이해하고 객관적인 검증 의견을 낼 수 있는 상황이 되면 과학 발전은 가속되고, 노벨과학상에 접근하는 과학자는 늘어날 것이다.
 
 
과학 발전과 관련되어 중요한 부분은 교육이다. 과학에는 다른 분야와 구별되는 특징들이 있기도 하지만 공통적인 부분도 많다. 과학자를 통해 과학을 생각해보고, 한국 교육과 관련된 개선 방향을 살펴보자.

“좋은 과학자는 모든 것을 알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하나만 알면 된다”는 말이 있지만, 밀물처럼 만들어지는 지식의 습득은 새로움 - 이것 역시 지식인데 - 창조에 필수적이다. 따라서 과학자들 역시 지식을 배우는데, 즉 연구가 아니라 공부를 하기도 하는데, 이를 위해,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책이나 논문을 읽거나, 강의를 듣는다. 연구비가 충분한 과학자들은 자신을 위해 일하는 연구원이나 학생들을 통해 – 자신이 원하는 바를 공부하도록 하고 그들로부터 배우기도 한다.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대화를 통한 배움은 단위 시간당 옮겨지는 정보량이나 효율성 면에서 매우 뛰어나다. 세계적인 과학자들은 논문으로 발표되는 중요한 내용을 논문이 발표되기 전에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접할 수 있는 네트워크에 포함되어 있다. 노벨과학상 수상자의 일상생활 역시 이런 쌍방향 소통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연구와 관련되어 홀로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동료, 학생들과 토론하는 데 보내며, 그 과정 중에 생각하며, 그 폭과 깊이를 키운다.

아는 내용과 모르는 내용이 겹치는 영역에서만 가능한 질문하기는 과학 활동에서 매우 중요하다. 질문은 매우 효율적으로 무지를 제거할 수 있는 배움의 방식인 동시에, 스스로 생각하고 정리하는 능력을 길러 새로움을 만드는 출발점이 된다. 따라서 우리나라 교육 현장 전반에 걸쳐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질문 없는 교실이다. 강의 도중 질문하기는 여러 가지 능력이 한꺼번에 작용하여야 - 읽기, 듣기를 병행하면서 이미 가지고 있는 지식과 비교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또한 질문, 나아가 토론은 협동을 위한 기본 조건이기도 하다. 과학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동료 과학자들의 협조와 인정이 중요하다. (한국의 일부 과학기술자들은 정부 관료들의 협조와 인정이 현실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활발한 질문과 토론이 오갈 수 있는 교육 방식이 정착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드는 데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런 교육 환경 없이 미래의 노벨과학상은 없다.

그런데 교육 환경과 방식은 우리 사회 전체의 거의 모든 이해관계가 집약되어 만들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질문과 토론이 활발한 교실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현하기 어려운 이유는 대학 입시에 인생 전체를 걸어야 하는 우리 사회 구조 때문이다. 교육과 관련되어 두 가지 예를 살펴보고, 시도하기 쉽지 않지만 그 대안을 생각해보자.
 
 
대학 입시를 위해 예비고사나 학력고사를 보았던 세대들은 현재 시행되는 수학능력(수능) 시험 문제가 예전에 비해 어렵다고 생각한다. 수능 이전의 문제들은 단순한 지식을 묻는 경우가 많고, 문제의 지문도 그리 길지 않았다. 수능 문제는 그 명시적 목적에 걸맞게 복합적이어서 분명히 이전보다 어렵다. 따라서 이런 어려운 문제들을 짧은 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요즘 학생들의 수학능력이 예전보다 우수한 것으로, 공부를 많이 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실제 대학 입시와 관련된 학업에 쏟는 많은 시간은 예전에 비해 훨씬 길어졌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이 체격은 커졌지만 체력은 약해졌다는 느낌처럼, 수능 시대 학생들의 실제 수학능력이 예전보다 나아졌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수능 문제는 그 내용에 익숙하더라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렵다. 하지만 객관식이라는 출제 방식은 학생들을 내용보다는 문제 유형에 익숙해지도록 유도한다. 이는 요즘은 사라진 초등학교 소풍 행사인 보물찾기에 가깝다. 객관식 문제의 풀이 방식에 익숙한 요즘 학생들은 보물 쪽지를 숨겨 놓은 장소들을 빠르게 잘 찾던 학생들을 떠오르게 한다. 수능 관련 EBS 강의들은 내용보다 유형별 풀이 방식을 강조하는 느낌을 주는데, 이는 문제 풀이 기술과 관련된 사교육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과학 활동은 보물찾기와 같이 이미 존재하는 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다. 과학을 배우는 동안 이미 알려진 답을 찾는 교육을 받지만, 실제 과학 활동은 많은 동료 과학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답을 만드는 과정이다. 따라서 과학 활동은 보물찾기보다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가깝다. 이런 상황은 과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어느 분야에서나 기본 지식은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창의력이라고 부르는 새로움에 대한 상상력이다. 새로움은 스스로 생각하고, 소통하고, 또 생각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나타나는 부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5개 답안 중에 존재하는 답을 가려내는, 빠르고 효율적인 방식의 습득은 창의력에 도움이 되기보다 해롭다.
 
 
불확정성의 원리로 유명한 독일의 물리학자로,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하이젠베르크의 자전적 글, ‘부분과 전체’를 보면, 일과 시간 중에 가끔 기숙사로 피아노 연주를 하러 갔다는 대목이 나온다. 요즘 과학자나 학생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낭만이 느껴지는 대목인데, 이런 여유는 초·중·고등학교 시절에 배워 평생 가져야 할, 과학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공자의 말씀처럼 좋아서 즐기면서 하더라도, 스트레스는 생기며, 크고 작은 좌절을 겪는다. 스트레스와 좌절을 극복하는 건전한 방법들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면, 지속적인 성과를 낼 수 없다. 실패 후에도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제도적으로 마련되어야, 새로운 일을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다. 또한 개인은 각자에게 적합한 스트레스 극복 방법을 어린 시절부터 배워야 한다. 작은 좌절들을 어릴 때 겪을수록 극복 방법을 쉽게 터득한다.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는 가운데 스트레스와 좌절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하는 것은 너무 늦고 좋은 방법을 배우기도 어렵다. 마약과 도박에 빠지는 연예인, 프로골프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울 것 같다가 불미스러운 일로 슬럼프에 빠진 후 재기하지 못하고 있는 타이거 우즈, 전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전 제주 지검장 모두 스트레스 극복 방법을 올바르게 배우지 못한 것 같다. 수많은 좌절과 분노를 극복하고 연구하였기 때문에 금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는 일본 물리학자의 기사를 보면, 그는 분명 좋은 스트레스 해소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예체능을 소홀히 하고, 주요과목에 집중하는 현상은 단기적인 효과를 높일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비효율을 초래할 것이다.
 
 
실수 없는 문제 풀이에 익숙해지기 위한 반복이 아닌, 토론하며 탐구하는 가운데, 풍요로운 인생을 위한 여유를 배울 수 있는 교육에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이런 교육이 이루어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 사회에서 대학 입시가 인생의 서열을 결정하는 최종 과정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졸업하는 대학이 그 후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하며, 두 번째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인식과 사회 구조 속에서 대학 입시는 그 전까지의 모든 교육을 왜곡하며, 왜곡된 교육 환경에서 자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대학 교육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기 힘들다. 대학 입시 방식의 변화는 새로운 사교육 시장만 만들어낼 뿐 현재의 사회 구조를 바꿀 수 없다.

몇 년 전 일부에서 논의되었던 서울대 학부 없애기는 이런 배경에서 제기되었던 것인데, 대학을 학벌, 학연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대학 입학의 사회적 의미를 바꿀 수 있는 변화는 이미 굳어진 사회적 인식이 달라져야 가능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대학 입학의 사회적 의미가 유지되는 가운데 시도되는 변화는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 다음 제안은 실천 불가능하고 단점도 많다고 느낄 수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논의하고자 한다.

한국의 모든 대학이 세계 수준의 연구를 수행할 정도는 아니지만, 일부 대학들의 수준은 매우 높은 편이다. 한국의 모든 대학의 서열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정해져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꾸준히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대학의 수가 포화 상태에 넘어선 만큼, 몇몇 대학들을 비슷한 수준이라고 묶을 수도 있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대학들을 몇 개 그룹으로 묶고, 대입을 원하는 학생들에 대해 개별 석차를 통해 한 줄로 세우는 평가가 아닌, 대학 그룹의 수 정도로 느슨한 평가하고, 그룹 내에서 추첨에 따라 배정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추첨이라는 방식은 개인의 선택권을 제약하는 단점이 있지만, 다른 이점들이 이 단점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학생들을 개별 석차가 아닌 느슨하게 평가하는 것은 중고등학교 시절을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대학이 그룹으로 묶여지면, 대학 교육이 좀 더 내실 있게 달라질 것이다. 개인의 능력을 사회적으로 보다 세밀하게 평가하는 시점을 고등학교 졸업에서 대학 졸업으로 늦춤으로써 보다 충실하고 다양한 자기 개발이 가능해질 것이다. 대학 그룹 내 교류가 활발해지면 대학의 인적 물적 자원의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다. 대학생들의 경쟁이 훨씬 다양해지고 가열될 것인데, 이 경쟁은 고등학생들의 문제 풀이 경쟁보다 사회 전체의 활력을 높이고 경쟁에 소요되는 비용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여러 가지 면에서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으면서 사회의 활력을 잃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선진국을 벤치마킹하는 식으로는 선진국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시도들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런 변화 없이 한국 과학자의 노벨과학상 수상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