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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과 정책 제72호_윤석구_안전 불감증, 경각심 고취만으로 인재형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없다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5-03-16 10:38:16
  • 조회수 : 3414
지난 2014년은 너무도 안타까운 인재형 사고들이 많이 발생한 해로 기억된다. 특히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세월호 침몰, 판교 테크노밸리 환풍구 붕괴 사고는 대다수 국민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안겨주었다. 눈이 내렸다고 체육관 천정이 내려앉고, 광장옆 환풍구에 올라갔다고 안전철망이 붕괴되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던 단원고 학생들은 세월호 안에서 구조될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 방송만 믿고 있다가 참변을 당했다.

2014년 이전에도 2014년에 발생한 사고와 유사한 대형 사고들은 있었다. 1993년 인원초과 승선으로 인한 서해 페리호 침몰, 1994년 부실시공에 의한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1999년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가 대표적인 사고들이다. 이런 사고들의 가장 커다란 문제점은 불가항력의 자연재해가 아닌 안전시스템 또는 유지관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발생된 인재형 사고라는데 있다. 2014년 서울시와 서울연구원이 주최한 한 포럼에서 “위험사회” 저자인 울리히 벡은 “한국은 유럽이 150년에 걸쳐 달성한 근대화를 50년 만에 압축적으로 이뤄냈기 때문에 다양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1).  또한 그는 “문제는 예기치 못한 위험 요소 앞에 일종의 ‘조직화된 무책임성’이 발생하는 경우 국가 기관이나 제도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고, 신뢰를 잃으면 위험은 더욱 배가 된다”라고 말했다. 인재형 사고들이 지속되고 있는 우리의 현주소를 뼈아프게 지적한 것이다.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와 비슷한 유형의 인재형 사고들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발생될 것이다.

실제 우리 사회는 급속한 근대화 과정 속에 안전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가,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이후 비로소 자리 잡기 시작했다. 성수대교 붕괴사고 이듬해인 1995년 “시설물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이하 시특법)”의 제정과 함께 시설물 유지관리를 위한 “시설안전기술공단”이 설립된 사례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시특법이 제정된 그 해 비록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지만, 그 이후 지금까지 시특법에 규정된 시설물(1종, 2종 시설물)에서 붕괴와 같은 대형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또는 판교 환풍구와 같이 현행 시특법에 규정되지 않은 많은 시설물은 안전점검을 받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다양한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

불가항력의 자연재해가 아니라면, 사회기반 시설물의 인재형 사고는 보다 합리적인 안전관리시스템(또는 유지관리시스템)이 작동된다면 사고 발생 빈도를 낮추거나, 사고 발생 시 피해 규모를 감소시킬 수 있다. 위험사회에 직면한 우리의 현주소를 토대로 보다 안전한 미래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전문가 중심의 시설물 안전관리시스템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먼저 다양한 시설물 별 안전담당 전문가를 배정한 후 그들이 직접 그리고 장기적으로 각 시설물들의 안전점검을 수행할 수 있는 안전관리시스템의 도입이 필요하다. 이런 시설물 안전관리시스템은 영연방국가들과 유럽 국가들에서 주로 적용하고 있으며, 의료분야 주치의제도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경북대병원 윤창호 가정의학과 교수는 주치의제도를 “한 사람의 의사가 특정 지역사회의 일정한 수의 세대를 맡아 포괄적이고도 지속적인 의료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포괄적인 의료’에는 병이 생겼을 때 치료해 주는 측면뿐만 아니라 예방을 해주는 측면까지 포함한다. ‘지속적인 의료’는 병이 있을 때만 치료하는 일회적인 진료가 아니라, 건강할 때도 지속적으로 건강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의미다”라고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2).

주치의가 진료를 통해 사람의 건강을 책임지는 것과 유사하게 교량, 터널, 항만, 댐, 상하수도, 건축물 등 다양한 시설물별 전문가는 자신에게 할당된 시설물에 대해 장기적이고 주기적인 안전점검을 통해 인재형 사고를 예방하게 된다. 전문가에 의한 안전관리시스템이 주치의제도와 다른 점은 시설물은 움직이지 못하고, 또한 어디가 아픈지 스스로 말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전문가는 시설물을 직접 찾아가 사고 위험성이 높은 취약 부위를 일일이 점검한 후 안전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전문가에게는 안전점검 시 시설물 취약 부위에서 급박한 위험성이 발견되면 시설물의 손괴와 인명사고를 막기 위한 긴급한 조치를 시행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이 동시에 주어진다. 이런 측면에서 전문가는 시설물 관련 풍부한 과거 경험과 함께 안전 관련 전문 지식을 갖춰야 한다. 시설물별 안전점검 전문가는 주치의제도의 의사를 생각하면 큰 무리가 없다.

시설물 유지관리 경험이 오래된 유럽과 미국은 시설물 안전 및 유지관리를 전담하는 안정적인 전문가 조직을 구축하고 있다. 이 전문가들은 각종 시설물을 전담해 관리하며 안전에 대한 책임과 함께 권한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의 고속국도를 담당하고 있는 Highway agency(한국도로공사와 유사한 조직)의 경우 교량의 붕괴, 사고 또는 사고 시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중요 부재들에 대한 안전점검은 Highway agency 소속 교량전문가(Bridge inspector)가 직접 수행한다3). 사고 발생시에는 Highway agency 소속 교량 책임기술자(Bridge chief engineer)가 직접 조사한다. 또한 민간부문에 종사하는 전문가들도 중요 부재를 Highway agency와 번갈아 점검하며 Highway agency의 안점점검 결과들과 비교 검토를 통해 신뢰도 향상을 꾀한다. 민간부문 전문가도 책임기술자 또는 10년 이상 안전점검 경험을 가진 고급기술자들이며 이들이 중요 부재들은 직접 점검한다. 영국 지자체도 Highway agency와 유사한 방식의 안전전검시스템을 운용한다. 영국의 교량 개수는 총 65만개 정도이고, 안전점검 전문가 한명이 담당하는 교량 개수는 500개에서 2,000개 정도라는 것을 고려하면 영국에 교량 안전점검 전문가가 몇 명인지 어림짐작이 가능하다.
 
 
시설물 안전점검을 전담하는 전문가 중심의 안전관리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민간부문 전문가와 공공부문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해야 한다. 또한 시설물 안전점검 업무가 전문가들에게 매력적인 직업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전문가 중심의 또는 사람 중심의 안전관리시스템 구축하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들이 많이 있다.

현행 시특법은 1994년 성수대교 사고와 같은 대형 참사를 방지하기 위해 시설물 관리주체(공공관리주체와 민간관리주체)에게 안전점검과 유지관리를 강제하고 관련 규정들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 관리주체 또는 책임기술자에게 제재를 가하는 징벌적 특별법이다. 교량, 터널, 항만, 댐, 상하수도, 건축물 등 다양한 중요 시설물(1종과 2종 시설물)에서 안전점검 부실로 시설물에 중대한 손괴를 야기하여 공중의 위험이 발생하면 징역, 벌금, 과태료 등 벌칙을 부과된다. 시설물 안전관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시기에 제정된 이 특별법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징벌적 벌칙으로 강제하기 때문에 공공부문 및 민간부문 전문가들에게 안전점검 분야는 매력적이지 못하다. 안전점검이 전문가들에게 매력적인 직업으로 다가갈 수 있게 전문가 중심의 안전관리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의 법 규정에 대한 벤치마킹이 필요하다.

시특법 제정 후 중요 시설물(1종과 2종 시설물)에서 특별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사실4)로부터 시특법이 안전에 기여한 바가 큼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징벌적 벌칙에 기반한 시특법으로 인해 시설물 유지관리가 합리적으로 수행되지 못할 수 있다는 측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먼저 오래된 시설물은 부수고 다시 건설하는 파괴적 유지관리 정책이 적용되고 있는지 의심해볼 필요성이 있다. 2012년 국토해양부에서 발표한 “제3차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 기본계획(2013~2017)”에 따르면 시특법으로 관리하는 59,559개 시설물중 공용수명이 21년 이상 되는 시설물은 8%, 31년 이상 되는 시설물은 3% 수준이다. 또한 현행 설계 기준으로 평가 시 양호한 시설물(A, B 등급)이 전체 95% 수준이다. 사회기반시설 건설 역사가 50년 된 국가에서 31년 이상된 시설물 비중 3%는 매우 비정상적인 수치다. 산업화 및 자연재해 증가에 따라 시설물 설계 규정들이 계속 강화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양호한 시설물(A, B 등급)이 전체 95%라는 수치 또한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안전성만 생각하고 사회기반시설과 건축물 등이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라는 인식이 결여돼 있을 수 있다.

두 번째는 공공관리주체가 안전점검과 정밀안전진단을 자체적으로 수행하지 않고 민간에 위탁할 수 있어 시설물 안전과 관련된 일차적 책임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악용될 수 있다. 울리히 벡이 지적한 ‘조직화된 무책임성’과도 깊이 연관된다. 이는 필연적으로 공공관리주체가 민간에 위탁한 사업만 관리하고 자체적으로 전문가 양성을 소홀하게 만들 수 있다. 현행 시특법에는 <표 1>과 같이 시설물의 안전등급에 따라 정밀점검과 정밀안전진단을 주기적으로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공공관리주체는 DㆍE등급 시설물도 민간 안전진단업체에 위탁할 수 있다. 위험성이 높은 시설물일수록 민간 위탁보다는 공공관리주체가 직접 안전점검을 책임지고 있는 유럽국가들과 많이 다르다.
 
<표 1> 정밀점검 및 정밀안전진단의 실시 주기
※ 국토교통부, 시설물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2014
 
세 번째는 시설물 안전관리 관련 국내 기술 수준이 매우 낮다. 국토해양부는 우리나라의 기술수준이 미국, 유럽, 일본에 비해 76% 수준이고, 기술격차도 4.3년이라 평가한다. 한국시설안전공단은 관리주체뿐만 아니라 민간 안전진단기관의 기술 수준도 전반적으로 보통 이하라 평가하고 있다. 안전점검 업무를 외부에 위탁할 수 있는 관리주체의 기술 수준이 낮은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민간 안전진단업체의 기술수준이 보통 수준 이하라는 것은 안전사회를 생각하면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면에서 국토해양부도 현행 시설물 관리체계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징벌적 벌칙에 근거한 현행 시특법을 보다 합리적으로 개정하지 않으면 각 분야 전문가들의 자발적 참여가 어렵고 기술 수준 향상도 쉽지 않으리라 예상된다.
 
<표 2> 시설물 안전 및 유지관리 분야 지능형 기술수준 비교
※ 국가 R&D 기술산업정보서비스에서 발췌(’10년)
 
 
<표 3> 분야별 기술수준(7점 만점)
※ 한국시설안전공단, 시설물 관리주체 안전 및 유지관리 실태조사 ’10. 11월
※ 7점 척도: 매우 높다(7점), 보통이다(4점), 매우 낮다(1점)
 
 
2004년 시특법에 따라 안전진단을 받아야 하는 시설물 수는 3만6000여개에서 10년 뒤인 2014년에 6만5000여개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4).  시특법으로 관리되지 않는 시설물은 10년 동안 얼마나 늘어났는지 통계치를 확인하기 힘들만큼 많다. 모든 시설물 안전관리시 현행 시특법을 적용한다면 안전점검과 정밀안전진단 결과 보고서만 매년 수십 만권이 될 것이다. 그 이유는 국토해양부에서 제정한 “안전점검 및 정밀안전진단 대가(비용산정)기준”에 따른 대가를 받기 위해 안전진단업체는 자신들이 수행한 일들을 증명할 수 있는 두꺼운 보고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시특법으로 관리되지 않는 시설물까지 확대한다면 시설물 안전점검을 책임지는 전문가는 보고서 작성 업무에 파묻혀 시설물을 점검할 시간조차 내기 힘들 것이다. 영국의 교량 전문가(Bridge inspector)는 많은 경우 2,000개의 교량을 담당하는데 어떻게 2,000권의 보고서를 작성할까 매우 궁금하다.

현행 시특법 규정들을 준용하여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 업무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면, 민간 안전진단업체의 매출은 매년 증가돼야 정상이다. 하지만 안전진단 관련 국내 시장 규모는 2009년 1,600억 원 을 최고점으로 최근 2010년 이후 1,000억 원 대 부근에서 정체하고 있다5). 그 이유를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 관리주체가 일정 시설물만 외부로 발주하거나 증가되는 시설물을 자체적으로 점검하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아니면 최소한의 비용만을 지불하는 형식적인 수준에서 시특법 규정을 따르고 있을 수 있다. 만약 시특법으로 관리되지 않는 시설물까지 확대된다면 소규모 시설물의 민간관리주체들이 현행 시특법을 준용하여 비용을 지출할 지 의문이다. 국토해양부는 2014년 “소규모 안전점검 운영지침“을 제정하여 한국시설안전공단이 소규모 시설물을 안전점검 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현행 시특법이 기반한 이 지침을 민간관리주체가 얼마나 호응할 지 두고 볼 일이다.

주치의제도를 도입한 유럽 국가들의 의사들은 지역사회 주민들 개개인의 건강과 생명을 전담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지역 사회 소규모 민간 시설물들의 안전점검도 공공기관에 소속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담당한다. 위험이 발견되면 민간관리주체에게 통보하여 안전사고를 미리 예방하고 있다. 소규모 시설물들의 안전을 민간관리주체들의 자발적 유지관리에 일임하지 않고 있다. 인재형 대형 사고는 판교 환풍구와 같이 소규모 민간 시설물에서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난 50년 동안 우리는 수많은 시설물들을 건설하였다. 늦었지만 대규모 인재형 사고를 경험하면서 1995년 시특법 제정과 함께 중요 시설물의 안전관리도 시작하였다. 나름 커다란 성과도 있었지만, 다양한 시설물에서 예기치 못한 인재형 사고들은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또한 안전점검이 필요한 시설물은 앞으로도 계속 증가될 것이다. 인재형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관리시스템뿐만 아니라 건설된 시설물을 지속가능한 우리 사회의 자산으로 인식6)하는 종합적인 시설물 유지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시설물 유지관리에 투자하는 비중이 건설투자의 30%대 수준인 유럽 국가들과 달리 8%대 수준에 머물러 있는 우리나라가 앞으로 어떤 정책들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지속가능한 안전사회 건설의 가능성 여부를 미리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1)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8659

2)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2763&yy=2015#ixzz3U4fVQ16B

3) http://www3.hants.gov.uk/roads/highways-policy/structures/structures-inspections.htm

4) www.cnews.co.kr/uhtml/print.jsp?idxno=201405141112298660875

5) 국토해양부, ‘제3차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 기본계획 (2013~2017년)’, 2012.

6) 강산혁, 이영환, ‘영미 선진국 인프라 평가체제의 이해와 국내 도입방향’, 한국건설산업연구원,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