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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과 정책 제67호_이성현_중국 시진핑 체제의 성격과 한국의 대응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5-02-02 10:21:15
  • 조회수 : 6561
 
흔히 집단지도체제의 중국 공산당은 현 지도부가 다음 지도부로 바톤터치를 할 때 미리 정책을 결정하여 정권의 안정성을 기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론에 지나치게 의지하면, 연못에 유유자적 떠있는 것처럼 보이는 오리가 수면 밑에서 바쁘게 발을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정권교체기에서 중국 위정자들이 보이는 숨가쁜 행보를 놓칠 수 있다. 후진타오를 중심으로 한 소위 '4세대 지도부'에서 시진핑 중심의 '5세대 지도부'로 권력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중국 중상위급 관료의 약 70%가 자리이동을 했다.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은 것이 기적이다’라는 말이 중국 내부에서 나왔다. 중국 관방언론이 양회(兩會)를 마치며 '평화적 정권 교체'를 강조한 것은 의례적인 인사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함의를 주목한 해외 관찰자들은 의외로 많지 않았다.

사실 후진타오로부터 시진핑으로의 권력 이양 기간을 공산당 내부 인사들은 가슴 졸이며 보냈다. 이 기간은 중국 권력의 ‘공백기’였다. 2012년 말 시진핑이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됐지만, 후진타오가 2013년 3월 양회까지 여전히 ‘국가주석’ 자리를 맡고 있어, 국가 지도자 두 명이 공존하는 ‘어색한 동거‘가 지속되었다.1)  양제츠(楊潔簾)의 뒤를 잇는 신임 외교부장으로 발탁될 인물이 당시 장즈쥔 (張志軍) 외교부 부부장이라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막상 외교부장으로 낙점된 이는 왕이(王毅)였을 정도로 치열한 내부권력암투가 진행되었던 시기였다.2)

관찰자들이 이런 물밑 움직임을 놓친 이유는 관심이 새 지도자에게 집중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와 마찬가지로 이 기간은 새 지도자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소위 '허니문 기간'이다. 중국의 새 지도자도 이 황금 시기를 잘 활용해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하고, 그래서 이후 자신의 정책을 펼치는 데 용이한 국내 환경을 조성하려고 한다.

시진핑은 '서민 행보' (群眾路線) 전략을 썼는데 이것이 후진타오 측의 심기를 거슬렸다. 남쪽 지방 순찰시 차량행렬 교통관제를 하지 않았고, 혁명 원로인 아버지 시중쉰(習仲勳)의 휠체어를 밀며 공원을 산책하는 가족사진을 관방언론을 통해 공개했다. '패밀리 맨'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이런 인간미 물씬 풍기는 행보는 표정 없는 ‘포커페이스’ 후진타오와 확연히 다른 스타일이었다. 3)  선임 지도자가 아직 정식으로 완전히 물러나지 않은 가운데, 후임이 벌써부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한 행동이라는 지적이 나왔음은 유의미하다.
 
 
시진핑체제 출범 이후 열린 첫 중국 양회(两会)에서 중국 지도부는 공산당 전체 차원에서 노력해야 할 목표와 당면한 문제점을 제시했다. 목표라고 하지만 해결하지 않으면 중국 사회의 불안정을 가져오는 숙제인데, 1) 부패 척결과 2) 도시화가 핵심이다. 하나는 정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문제다. 중국 공산당의 최대 목표는 공산당 정권을 최대한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이다. 부패 척결은 쉽게 이해가 되면서도 '도시화'가 공산당 체제 유지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바로 이해가 잘되지 않을 수 있다.

국가지도자를 국민의 선거로 뽑지 않는 공산당은 항상 '정권의 정당성'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인민의 불만을 잠재우고 공산당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유일한 길은 매년 8% 이상을 달성해온 고속 경제성장을 유지하는 것 이라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고 인민들의 생활수준이 끊임없이 나아지는 한 인민들이 공산당 독재를 지지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한참동안 공산당의 각종 문건에서 보였던 경제성장 '8%' 목표치는 어떻게 나왔을까?

중국 13억 인구 중에서 매년 대학을 졸업하는 600 만 명을 포함해 새로 직장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매년 1,000만 명이다. 공산당은 기계처럼 매년 1,000만 개의 일자리를 어떻게 하든 뚝딱 창출해야 하며 이걸 가능케 하려면 매년 GDP가 8% 수준으로 경제가 성장해야 가능하다는 것이 공산당 내부 계산의 결과였다. 여기서 공산당에게 심리적으로 중요한 ‘8%' 경제성장 수치가 등장했다. 세계경제의 침체로 지금까지 수출 주도의 경제를 운영해온 중국으로서 이 수치가 떨어진다면 큰일이다.4)  수출이 안 된다면 중국은 국내에서 물건을 팔아야 하며, 이를 사줄 국내 소비자도 필요하다. 국내 소비를 촉진하여 경제 성장 목표치를 유지해야 한다. 공산당은 '도시화'에서 이 난국을 타개할 해법을 찾았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에 따르면, 도시화는 그 과정에서 필요한 기초산업 건설을 통해 경제활동을 촉진하고, 농민이 시골의 '생산자'에서 도시생활의 '소비자'로 바뀌어 생기는 파급효과를 일으켜서, 앞으로 적어도 20년 동안 매년 8%의 고속 경제성장을 지속하게 한다. 도시화가 공산당 생존을 다시 20년간 보장해 줄 정치보험이라는 것이다.5)  따라서 중국은 도시화에 막대한 자금을 퍼부을 준비가 되어있다. 2012년 12월에 발표된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보고서에 의하면 중국은 또한 앞으로 10년 동안 도시화를 통해 40조 위안(한화 약 6.844조원)의 투자를 유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투자 기회가 바로 중국의 도시화인 셈이다. 한국을 비롯한 외국까지 중국 도시화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은 도시화율을 높여 더 많은 소비 능력을 갖춘 중산층 확보에 주력하려고 한다. 중국 13억 인구 중 2020년에 중산층만 4억 명에 도달할 것이란 예상치가 나왔다.
 
 
공산당이 도시화를 통해 중산층을 늘이려는 것은 또한 중산층이 공산당의 집권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다. 중산층이 사회 안정을 촉진한다고 본다. 이 부분은 서방 학자들과는 정반대의 견해다. 서방학자들은 고등교육을 받고 경제적으로 더 잘살게 된 중국의 중산층이 물질적인 혜택뿐만 아니라 언론의 자유 등 정신적인 가치의 추구로까지 요구사항이 확대되리라고 본다. 그래서 중국에 얼마만한 정도의 중산층이 형성되어 있는가를 따져보는 것이 앞으로 중국의 정치개혁이나 민주화가 가능할 지 가늠할 수 있는 잣대로 보기도 한다. 즉, 서방학자들은 중국의 중산층이 민주화를 촉진할 주체 대상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공산당은 이와 정반대로 생각한다. 공산당이 보는 중산층은 중국개혁개방의 수혜자다. 돈을 벌었다. 더 잘살게 되었다. 공산당 체제에서 생활수준의 향상을 경험한 당사자고 그런 이유로 공산당을 지지할 것이라는 것이다. 공산당은 또한 이들이 민주화를 원치 않을 것이라고 본다. 중국이 만약 민주화가 되면, 국가복지 차원에서 중산층은 저소득층을 위해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하는데, 누구든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따라서 중국의 기득권으로 등장한 중산층은 민주화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다. 서양의 중산층과 달리 중국의 중산층은 보수성을 지녔다고 주장한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공산당의 생각이 맞아 떨어져가고 있다.

요즘 해외 학자들 다수가 '10년 후에도 공산당이 지배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화두로 삼고 있다. '중국붕괴론'도 몇 차례 나왔다. 중국에서 공산당 집정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빈부격차, 기회의 불균등 등 중국인민들은 불평을 많이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실체를 잘 관찰해야 한다. 공산당 내부 통계에 의하면 중국인들의 70%는 공산당을 지지하고 있다. 어떤 해외학자들은 이 통계가 왜곡되었다고 주장한다. 공산당이 시행했으니까 수치가 왜곡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수치가 실제 중국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 공산당에 대한 중국인민들의 이중적 심리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공산당에 대해 불평하면서도 공산당이 그들을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음의 끈을 놓지 않는다. 중국의 SNS인 ‘웨이보(微博)’에 들어가 보면 공산당에 대한 온갖 불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가슴이 조마조마할 지경이다. 인민들의 특히 부패관료에 대해 인민들이 얼마나 분노하는지 알 수 있다. 아랍 민주화 운동인 ‘재스민혁명'에서 SNS가 발휘한 신속한 전달력, 군중동원력 때문에 중국 민심을 측정하는 해외 학자들도 웨이보를 주시한다. 직접 중국인들과 만나 대화를 해 보아도 공산당에 대해 공개적인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관찰을 통해 공산당에 대한 중국 인민들의 지지율이 위험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본다면 오판이다. 중국정부는 중국 인민들에게 공산당이 중국을 지켜주지 않으면 호시탐탐 중국을 노리는 서방에 넘어갈 것이라고 어릴 적부터 주입시켜왔다. 아편전쟁을 겪으면서 중국이 서방열강에 수모를 겪은 '100년간의 굴욕'로 요약되는 이 사상교육은 매우 효과적이다. '공산당이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도 서방보다는 낫다'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역사적 피해의식의 그늘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중국인들이 공산당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공산당을 지지하지 않는구나라고 판단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들은 공산당이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불평하는 것이지, 공산당이 물러나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
 
 
중국 '5세대 지도부'의 분석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시진핑에 대한 분석이다. 그는 과연 개혁파인가 아니면 보수파인가? 이것을 판단하기 위해 시진핑의 성장과정, 그의 박사학위 논문, 공개 연설문, 그를 아는 사람들과의 인터뷰, 그가 속해있는 '태자당' (중국 혁명 원로들의 자녀들)에 대한 분석 등 여러 가지 시도가 행해졌다. 심지어 그의 딸이 하버드에 유학한 배경을 들어 그가 '친미파'일 것에 방점을 두는 분석도 있다.6)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진핑은 ‘공산당 사명’에 충실한 공복 (公僕) 이다. 다소 추상적이지만 이 말의 함의는 매우 중요하다. 그는 공산당의 생존과 번영에 대한 충성심을 인정받아 보시라이, 조용캉등 ‘호랑이’들을 제거했지만 공산당 원로들의 두터운 지지를 받고 있다. 같은 기준은 또한 왜 상당한 부패혐의를 받고 있는 후진타오 시절의 원자바오(溫家寶) 전 중국 총리나 정치국 상무위원이었던 자칭린(賈慶林) 전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등이 왜 무사한지를 설명해 준다.

시진핑은 혁명 원로의 자녀로 태어나 이제 공산당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최고의 'CEO' 자리에 올랐다. 그는 부패로 얼룩진 공산당의 위상을 바로 잡고 공산당 권력 유지를 위해 노력할 것이며, 민생문제에 대한 필요한 조치를 세우고,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에 대한 국민의 열망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감 넘치는 '세계적 지도자' 이미지를 내세울 것이다. 미국 대통령처럼 그의 해외 순방 때 더욱 자주 그의 부인이 그를 동반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절대로 자신을 좌파나 우파로 성격을 규정하려는 노력이 성공할 수 있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등소평은 집권 초기에 마오저뚱에 대한 비판으로 자신을 차별화 시킴으로써 본인의 개혁 이미지를 구축했다. 시진핑은 다르다. 이미 좌·우의 지지를 다 받고 있고, 좌·우가 서로 '시진핑은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는 탄탄한 권력기반을 가지고 있는 그로서는 한쪽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입지를 좁게 만드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시진핑이 총서기로 등극한 후에 중국의 대표적 진보 성향 주간지 '난팡주말' 기자들이 정부의 언론 검열에 맞서 집단 파업을 일으켰을 때 이 사건을 처리한 시진핑의 태도다. 해외에까지 주목을 받은 이 사건은 중국 개혁파와 보수파로 갈라진 중국 시민들이 파업 신문사 주위에 몰려들어 서로 '시진핑은 우리를 지지한다'고 우기는 진풍경을 빚기도 했다. 이 사건은 시진핑의 정치 성향을 시험하는 첫 관문이었다.

시진핑은 지난 2012년 12월 연설에서 '법치주의'를 강조했다. 막 공산당 새 지도자의 입에서 나온 '법치주의' 용어는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중국 헌법에도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혁파들은 시진핑이 법치주의와 언론의 자유를 허용할 것이라고 보았다. 기자들이 '용감히' 파업을 선택한데는 이처럼 뭔가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수파들은 파업에 참여한 기자들과 그 지지자들을 서방세력에 동조하고 있는 '매국노'로 매도했다. 양쪽이 서로 시진핑이 자기편이라고 우기는 가운데 양쪽 모두 사건 처리를 '당(黨)의 처분'에 맡겼다. 시진핑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자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진핑은 어느 한쪽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파업에 참가한 기자들을 해직시키지도 않았고, 기자들이 퇴진을 요구한 광둥성 검열당국 책임자를 파면하지도 않았다. 이게 시진핑 스타일이다.

흔히 중국의 현대역사를 '개혁 전의 30년'과 '개혁 후의 30년'으로 나누는데 시진핑은 여기서도 '중립' 을 지켰다. 그는 "개혁 전의 30년이 개혁 후의 30년을 부인할 수 없고, 개혁 후의 30년이 개혁 전의 30년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하며 비켜나갔다. 그는 개혁파도, 보수파도 아니다. 공산당파다.
 
 
이상에서 2년차를 끝낸 시진핑 체제와 사회 배경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시진핑 정부는 중국의 30년 개혁개방 과정에서 발생한 국내 민생문제의 해결과 사회양극화 문제에 해결에 주안점을 두면서 안정적인 국력의 성장을 도모할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2020년까지를 '전략적 기회의 시기’(戰略機遇期)로 본다. 국내적으로 내실을 키우는 기간으로 목표를 정한 것이다. 이는 5년 임기를 무난히 중임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진핑 집권기 (2022년까지)와 대부분 겹친다. 이것은 또한 중국의 부상이 미국과 전면적 대결구도로 나가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적어도 당분간은 말이다. 중국이 일본과 영토분쟁을 일으키면서 동북아 정세가 출렁대고 있지만 파도가 얼마나 솟구칠지 예측하려면 이런 큰 그림을 읽어야 한다.7)

중국에서 10년에 걸쳐 진행될 '도시화'는 한국에 큰 기회다. 중국 도시화는 투자확대와 내수 확대의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현재 한국의 대중 수출은 현지법인을 경유한 가공무역 중심의 구조인데, 여기서 벗어나 중국의 국가전략에 맞춰 내수소비재 중심 수출로 방향을 전환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일찍이 한국정부는 내부보고서에서 대중국 수출이 2012년을 기점으로 하향곡선을 그릴 것이라는 예측을 했다. 운이 좋아 조금 지체됐지만 그 트렌드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한국 대외수출의 4분의1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이 더 이상 ‘효자 시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근 북한이 중국 외교의 '딜레마'로 등장했다고 보는 시각이 있지만, 위에서 살펴본 시진핑의 성향을 보면 시진핑이 북한문제에 있어서 한국이 기대하는 식의 전격적인 정책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한국을 들뜨게 만들었던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것이다’라는 담론은 한국과 미국이 추구해야할 정책 목표로 의제설정에서는 성공했는지 몰라도 정책적인 면에서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 한국은 '천안함사건' 후에 중국이 한국편을 들 것이라는 큰 전략적 오판을 이미 한 전과가 있다.

흔히 중국의 부상이 한국에게 ‘기회’와 ‘도전’이 동시에 되고 있다고 하지만, 전략적인 면에서 앞으로는 ‘도전’이 더 많아질 전망이다. 덩치가 커졌지만 미국과 직접적인 대결을 피하는 기본전략을 구사하는 중국이 한국 등 미중사이에서 ‘등거리 전략’을 취하는 중소국가들을 상대로 자신의 영향력을 시험해 볼 충동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나오는 중국 외교에 관한 분석들 중에는 중국의 국내정치·사회·민생문제에 대한 고민을 고려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이는 불리하다. 중국이 외교적으로 어떤 보폭을 취할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힌트는 종종 중국 국내정치의 행보를 찬찬히 관찰하는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1) 중국 지도자는 세가지 지위를 다가져야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가 된다. 공산당 총서기, 중앙군사위주석, 그리고 국가주석. 마지막 ‘국가주석’이 영어로는 ‘대통령’ (President)이라고 번역된다. 이것은 기독교에서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를 다 갖는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2) 당시 직급상으로 볼 때 장즈준이 되는 것이 순서였다. 장즈쥔은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중국특사로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인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인물이다. 그는 외교부내에서 당시 ‘부부장’(차관)급이지만, 정식직급은 ‘상무부부장’ (常务副部长)이다. 중국정부의 영어 웹사이트는 그의 직함을 ‘executive vice-foreign minister’이라고 표기했다. 당시 중국외교부에 차관은 7명이었는데 그중에서 서열1위라는 의미이다. 동시에 주목할 점은 그가 외교부 내부의 공산당 조직구조에서 서열 1순위인 ‘당서기’직을 겸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3) 서방언론은 표정이 없어 심중에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노출하지 않는 후진타오를 ‘포커페이스’ (poker face), ‘수수께끼’ (enigma) , ‘침국의 통치자’ (silent ruler)등으로 불렀다.

4) 2013년 중국경제성장률은 이미 8%에서 미끄러진 7.7%였고 2014년 수치 집계도 8%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공식 수치는 2015년 1월 말에 공표된다.

5)이 주장을 하는 인사로는 세계은행 부총재를 역임한 중국의 대표적 경제학자인 린이푸(林毅夫) 베이징대 국가발전연구원 명예원장이 있다. 2012년 아시아판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보아오포럼에서 롱용투(龍永圖) 중국 국무원 상무부 전 부부장이 린이푸 박사에게 ‘8% 성장은 너무 이상적이다’며 반박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6) 시진핑이 정식으로 권력을 잡은 후 그의 외동딸 시밍쩌(習明澤)는 중국으로 귀국하였다.

7) 중국의 부상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점은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