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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과 정책 제63호_유종일_인류의 미래에 관한 정초단상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5-01-05 10:21:37
  • 조회수 : 2874
2014년은 사고로 점철된 한 해였다. 그중에서도 ‘탈출하라’는 말 한마디면 살릴 수 있었던 사람들을 300명 가까이 수장시킨 세월호 참사는 참으로 끔찍한 일이었다. 휴대전화에 담긴 꽃다운 청소년들의 마지막 모습들은 우리 국민의 집단무의식 속에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 대개조’를 약속했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최경환 부총리는 경기부양에 온 힘을 쏟고 있으나 대학생들이 F학점을 줄 정도로 정부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정윤회 스캔들과 십상시의 국정농단에 관한 루머는 듣기조차 민망하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삶에는 언제나 부침이 있지만 부대끼는 가운데서도 행복은 있고, 고난을 뚫고 역사는 전진한다. 이럴 때일수록 멀리 보고 크게 보아야 한다. 결코 내일을 향한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희망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2015년 정초를 맞이하여 그야말로 거시적인 관점에서 인류의 역사와 운명을 돌아보고, 지식협동조합의 사명을 숙고해본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공상과학영화 <인터스텔라>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고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 영화는 가족 사랑이라는 씨줄과 상대성이론이라는 날줄로 구성되어 있다. 난해한 상대성이론이 뼈대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과 부성애를 중심으로 한 멜로드라마틱한 요소가 영화의 호소력을 더해주는 것 같다.

<인터스텔라>의 배경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을 정도로 황폐화되어 있는 지구다. 우주에 식민지를 개척하는 것만이 인류의 멸종을 회피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인류가 살아갈 수 있을 만한 조건을 갖추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잠재적 식민지 후보들이 있다. 하지만 머나먼 행성까지 어떻게 탐사를 다녀올 것이며, 어떻게 지구의 인류를 이동시킬 것인가? 별들 사이의 거리는 너무나 멀기 때문에 특별한 방법이 아니면 여행은 불가능하다. 웜홀(worm hole) 이론이 여기서 등장한다. 종이 한 장의 한쪽 구석에서 다른 한쪽으로 이동을 하려고 할 때, 종이를 접어서 출발지점과 목표지점이 맞닿게 한 후에 구멍을 뚫고 간다면 실질적인 이동거리는 거의 0으로 단축될 수 있다. 웜홀이란 게 이런 것이다.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중력에 의해 시공간이 휜다. 엄청난 중력을 지닌 블랙홀이 회전하면 이러한 휨이 극단적으로 되어 웜홀이 생겨나고, 블랙홀 근처의 모든 물질은 여기로 빨려 들어갔다가 블랙홀의 반대편 화이트홀로 튀어나온다는 게 웜홀 이론이다. 그런데 웜홀이나 화이트홀은 상대성 이론을 토대로 계산하여 이론적인 가능성만 제시되었을 뿐 블랙홀처럼 실제로 관측된 적이 없다. 설사 웜홀이 존재하더라도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매우 불안정한 현상이어서 이를 통한 여행은 불가능하다. 영화는 외계인들이 목성 근처에 안정적인 웜홀을 만들어 주었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을 한다.

그런데 과연<인터스텔라>의 스토리를 그저 황당한 공상과학 영화이야기일 뿐이라고 치부해도 좋을까? 최근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지구가 1000년 내에 멸망할 것이며 이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경고했다. 따라서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우주를 식민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 호킹 박사는 웜홀을 통한 시간여행 따위 허황된 이야기 대신에 화성 등 태양계 행성에 자급자족이 가능한 식민지를 건설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과연 지구를 떠나 삭막한 우주에 식민지를 개척하는 것이 인류의 운명일까? 호킹 박사의 말이 맞는다면, 우리가 향후 1000년 이내에 우주 식민지 개척을 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인류는 종말을 고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호킹 박사는 인류의 태양계 정복을 낙관한다. 심지어 그는 우리가 지구와 멀리 떨어진 우주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말로 우리가 우주에 식민지를 개척해야만 하고, 또 정말로 우리 인류의 능력이 그 정도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거대한 운석이나 소행성과의 충돌, 거대한 화산 폭발, 빙하기의 도래 등 우리가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지구가 더 이상 인류의 보금자리가 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지구는 과거에 이런 일들을 가끔 맞이했고, 그로 인해 대규모 멸종 사태를 겪기도 했다. 운석충돌에 의한 공룡의 멸종은 가장 잘 알려진 한 가지 사례일 뿐이다. 물론 호들갑을 떨 문제는 아니다. 우주 식민지 개척을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을 기울이고 얼마나 투자할 것인가는 지구상에서 인류의 생존이 불가능해지는 사태의 발생확률에 따라 결정할 문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투자해도 현재 우리가 가진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우주여행은 물론 호킹 박사가 말하는 태양계 정복도 아직은 꿈같은 얘기다.

과연 인류의 능력은 어디까지 발전할 것인가? 발전의 개념을 수량화하려는 이안 모리스(Ian Morris)의 시도가 흥미롭다.1) 그는 포괄적인 사회발전을 “자신의 물질적 및 지적 환경을 지배함으로써 일을 성취하는 집단의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인류가 한 집단으로서 일을 성취하는 능력이 더 향상되어야 우주 식민지 개척은 가능할 것이다. 모리스는 이러한 총체적 능력의 네 가지 속성으로 에너지 포획, 사회 조직, 전쟁수행능력, 정보기술을 꼽는다. 그리고 이를 수량적으로 측정하기 위한 지표를 고안했다. 에너지 포획은 인간이 생존과 활동을 위해 환경에서 얻는 1인당 열량으로, 사회조직은 가장 큰 도시의 크기로, 전쟁수행능력은 병력, 화력, 무기의 속도, 병참 능력 등의 요소를 고려한 복합지표로, 정보기술은 정보기기의 능력과 활용정도로 각각 측정하여 0점에서 250점까지의 점수를 매긴다. 이렇게 총 1000점 만점으로 기원전 8000년부터 서기 2000년까지 1만년동안 사회발전을 측정한 결과 인류가 이룩한 발전의 거의 대부분은 지난 200년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1800년에 50점도 채 되지 않았던 발전지수가 2000년에는 736(동양 565, 서양 906)으로 증가한 것이다. 9800년 동안 50점도 증가하지 못했는데, 불과 200년 동안 700점 가까이 증가했다. 이런 식의 발전 추세가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인류의 집단적인 능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빠르게 향상될 것이고, 우주에 식민지를 개척하는 일이 결코 머나먼 미래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과연 모리스가 보여준 바와 같은 기하급수적 발전이 미래에도 지속될 것인가? 반드시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 같다. 모리스의 발전지수와 관련하여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지난 1만년동안 발전지수와 세계인구의 움직임은 거의 동일했다는 것이다. 세계인구 역시 지난 200년 사이에 폭발적인 증가를 한 것이다. 그런데 인구증가율은 이미 정점을 찍었고, 21세기에는 점차 인구증가율이 내려가 결국 인구감소가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인구처럼 발전지수가 감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와 같은 기하급수적 발전 속도가 유지될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상당한 논쟁이 존재한다. 모리스는 증기기관을 중심으로 한 제1차 산업혁명이 200년 전에 시작된 기하급수적 발전을 불러온 변곡점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저명한 경제학자 로버트 고든(Robert Gordon)은 1870~1900년 사이에 전기‧내연기관‧실내배관 등을 중심으로 일어난 제2차 산업혁명의 중요성을 부각하면서, 이러한 혁신의 효과가 소진됨에 따라 1970년 이래 기술혁신의 속도가 저하되었고 향후 전망은 더욱 어둡다는 논문을 발표하여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2) 반면 에릭 브린욜프슨(Erik Brynjolfsson)과 앤드류 맥아피(Andrew McAfee)는 <제2의 기계시대>에서 정보통신기술이 과거의 증기기관이나 전기 등과 같은 범용기술의 속성을 가졌고, 무한한 기술의 재조합에 의한 기하급수적 기술발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주장한다.3)

미래의 발전 속도야 어쨌든 과학의 발전과 기술의 혁신은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류를 구원할 것인가? 이제까지 과학기술은 인류에게 큰 혜택을 가져다주었다. 산업혁명 이래 경제성장을 촉발하여 많은 인간들이 생존을 위한 버거운 투쟁에서 해방되어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해주었으며, 정보통신혁명은 정치적인 민주화뿐만 아니라 지식과 정보 습득을 민주화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류의 멸망을 재촉할 커다란 위험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위험을 직시하고, 이를 통제할 힘을 키우는 것은 우주 식민지 개척보다 훨씬 시급한 과제다.
 
 
<인터스텔라>는 황폐화되어 농사도 지을 수 없게 되어버린 지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무슨 까닭으로 지구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는다. 소행성 충돌이나 화산 폭발과 같은 자연재앙이 원인이었는지, 인류가 스스로 만들어낸 문제가 원인이었는지 침묵한다. 반면 1000년 이내에 지구가 망할 것이라고 예측한 호킹 박사의 경우는 핵전쟁과 지구온난화가 주범이 될 것으로 본다. 인류미래연구소(Future of Humanity Institute)도 호킹 박사처럼 자연재앙보다 인류가 스스로 만들어낸 문제가 인류의 생존에 더 큰 위협이라고 평가한다.

핵전쟁은 그렇다 치고, 지구온난화가 그 정도로 심각한 문제인가? 이들 보다 더 심각한 위협은 없을까? 인류의 멸망에 대한 예측은 그야말로 불확실성의 바다에서 추측으로 발견한 몇 개의 섬들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수많은 연구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위협들이 있다. 모두 과학기술이 낳은 재앙들이다. 첫째는 핵전쟁을 포함하여 치명적 무기를 동원한 대규모 전쟁이다. 영화 <그날이 오면(원제:On the Beach)>이 그리는 지구의 종말 시나리오다. 많은 과학자들은 핵무기뿐만 아니라 나노기술이나 바이오기술을 동원한 무시무시한 무기가 인류를 끝장낼 수도 있다고 본다. 모리스가 말하는 전쟁수행능력은 인류가 우주 식민지를 개척하는데 도움이 될지 모르겠으나, 자칫 인류를 멸망으로 인도할 수 있는 무서운 능력이다. 21세기에 이런 파괴적인 전쟁이 발발할지 여부는 중국과 다른 BRICS 국가들의 급격한 부상으로 미국중심의 세계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이 평화적으로 관리될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꼽는 또 하나의 문제는 지구온난화를 포함한 환경파괴다.4) 지구온난화에 따른 다양한 위험에 관해서는 제법 알려져 있지만 그 심각성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지구온난화는 해수면 상승이나 기상이변의 증가를 초래함은 물론, 생물다양성과 식량생산시스템을 위협한다. 온난화가 온난화를 촉발하는 가속메커니즘이 발동하여 <인터스텔라>의 지구처럼 황폐해지거나 심지어 금성처럼 뜨거워질 수도 있다고 한다. 최근 세계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과학전문매체인 네이처(Nature)가 주관한 연구에서 다가오는 2200년에 지구상에 6번째 ‘대멸종’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과거의 대멸종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약 2억 5천만 년 전의 제3차 대멸종으로, 해양 동물의 96%가 멸종되었다고 한다. 위의 연구는 2200년에 양서류의 41%, 조류의 13%, 포유류의 25% 등이 멸종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인류의 지나친 개입 및 개발로 인한 서식지 유실 및 파괴가 6번째 대멸종의 가장 큰 원인이며, 지구온난화도 중요한 요인이라고 한다. 이미 동물이 멸종되는 속도는 장 큰 원인이며, 지구온난화도 중요한 요인이라고 한다. 이미 동물이 멸종되는 속도는 6천만 년 전보다 무려 1000배나 빠르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 결국 인류를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벌과 박쥐의 수가 급감하여 결국 식량생산시스템이 무너질 것이라는 경고도 있다.

마지막으로, 그러나 어쩌면 가장 현실적으로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것은 로봇이다. <제2의 기계시대>는 최근 수년 사이에 로봇의 기능이 질적인 도약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로봇을 포함하여 과거의 기계는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신해줄 뿐이었는데, 최근의 로봇은 인지능력과 판단능력까지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와서 인간의 정신노동을 대체하기에 이르렀음을 지적하고 그 기술적, 경제적, 사회적 의미를 논하고 있다. 이렇게 정신적 능력을 갖춘 로봇, 인공지능이 발달해서 언젠가 인간에게 이용당하고 착취당하기를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킨다면 어찌될 것인가? 인간에게 반항하는 로봇은 1968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만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처음으로 영화에 등장하였고, 1984년 제임스 카메론이 감독한 <터미네이터>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실제로 로봇이 자의식을 획득하고 인류와 전쟁을 벌이는 게 가능한 일인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로봇뿐만 아니라 인간이 만든 기술과 우리가 행하는 실험이 통제불능 상태가 되어서 엄청난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은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문제다.
 
 
로봇이 가장 현실적인 위협이라고 한 것은 로봇의 반란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로봇이 육체노동은 물론 웬만한 정신노동까지 대체해버리면 우리는 일자리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이는 기우일 수도 있다. 과거 산업혁명기에 육체노동을 대체하는 기계들의 도입에 저항하는 러다이트(Luddite) 운동이 일어났었지만, 운동의 실패가 일자리의 부족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계화는 생산성의 증가와 새로운 일자리의 창출을 낳았다. 로봇이 정신노동을 상당부분 대체한다고 해도 여전히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일들은 많이 남아있을 것이며, 로봇의 기능을 잘 이용하는 직종들도 많이 생겨날 것이다. 그러나 로봇이 진화하면서 너무나 많은 직종이 사라질 위험에 처하게 되면 상황이 매우 심각해질 수 있다. 벌써 운전자 없이 주행하는 자동차가 나오고, 드론을 이용한 배달이 이미 시작되었다. 최근 한 연구는 미국에서 대출심사요원, 세무사, 상점 점원, 법무보조원, 택시운전수 등 무려 47%의 일자리가 사라질 위험이 크다고 평가했다.5)

대규모 일자리 소멸은 살아남은 일자리로 구직자들이 몰리면서 임금하락을 유도할 것이다. 로봇경제에서 고급노동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들과 로봇에 의해 대체되거나 혹은 대체된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의 격차는 엄청나게 벌어질 수 있다. 미래의 로봇은 심각한 고용과 분배의 문제를 불러올 것이다. 우리는 성장을 통해 고용을 창출하고 고용을 통해 분배를 이룬다는 사고방식에 익숙해있지만, 이런 해법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21세기는 20세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성장시대가 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최근 전 세계 지성계를 뒤흔든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도 이러한 전제 하에 불평등의 심화에 정면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을 전개한다.6) 위에서 언급했듯이 인구성장은 20세기 후반에 이미 고점을 찍었고 일인당생산의 증가도 21세기에 낮아질 가능성이 높아질 가능성보다 훨씬 크다는 전망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대세를 이루고 있다.

피케티의 핵심적인 주장은 ‘돈이 돈을 버는 속도’라고 볼 수 있는 자본수익률이 ‘일을 해서 돈을 버는 속도’라고 할 수 있는 경제성장률보다 크기 때문에 자본을 많이 소유한 사람에게 부가 점점 더 집중되는 ‘부익부’의 동학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20세기에는 양차대전과 대공황을 겪으면서 자본의 대량 파괴와 대대적 재분배정책이 이루어져 자본수익률은 하락한 반면 인구폭발과 산업화의 확산으로 경제성장률은 매우 높았기 때문에 분배가 비교적 잘 이루어졌는데, 21세기에는 성장률이 하락함으로써 자본수익률과의 격차가 벌어지고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어 세습자본주의가 도래할 것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해서 중요한 논쟁거리는 과연 자본축적이 계속되는데도 자본수익률이 높게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자본이 많아질수록 노동수요가 증가해서 임금이 오르고 따라서 자본수익률은 떨어진다. 그런데 만약 노동 대신 자본을 사용하여 생산하는 것이 용이하다면 자본수익률의 저하는 제한적일 것이다.7) 향후 로봇이 발달하면서 자본으로 노동을 대체하는 일이 점점 더 용이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발전 혹은 진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모리스와 같이 과학기술과 생산능력의 발전, 즉 물질적 발전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이는 치명적 결함을 내포하고 있다. 인류공동체를 위하여 과학기술과 생산능력을 잘 활용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면 자칫 그러한 발전은 엄청난 재앙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 핵전쟁이나 환경파괴로 종말론적 재앙이 닥칠 수도 있고, 당장 고용과 분배의 문제가 현실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후자는 정치적 갈등을 고조시킴으로써 전자의 위험을 키우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모리스가 사회조직을 발전의 한 요소로 고려하고 있지만 이는 단지 집단적 과제수행능력을 의미할 뿐이고, 어떻게 일자리와 자원을 분배할 것인가, 어떻게 서로 다른 집단들이 평화적으로 공존할 것인가 등의 문제에 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국가 내부에서 뿐만 아니라 지구적 차원에서까지 갈등을 관리하고 협력을 구축하는 정치적 능력을 발전시켜야만 해결할 수 있다. 기술적·물질적 발전이 인류의 삶을 위협하지 않고 풍요롭게 하도록 하려면 도덕적·정치적 발전이 병행되어야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뛰어난 협동 능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진화과정에서 형성된 공감능력과 다양한 감정, 앞을 내다보는 이성적 판단, 그리고 사회규범과 평판에 의해 유지되는 호혜적 관계 등에 의거해서 타인과 연대하고 협동한다. 하지만 항상 협동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경쟁이라고 하는 인간관계의 다른 원리가 함께 작용하기 때문에 협동은 깨질 수 있다. 특히 진화과정에서 형성된 협동 능력은 한 개인이 속한 집단 내부에 국한되기 때문에 작은 집단일수록 협동이 잘 되고 집단의 규모가 커질수록 협동은 어려워진다.8) 따라서 공동체의 규모가 매우 커지면 강제력에 기초한 다양한 제도가 필요하다. 이렇게 해서 경쟁(competition)과 협동(cooperation)과 강제(coercion)가 적절하게 배합된 정치적 공동체가 형성된다. 구성원들 사이의 연대와 협동이 더 잘되고 규모가 더 큰 정치적 공동체를 이루는 것을 정치적 발전의 척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서로 다른 정치적 공동체들 사이의 경쟁은 과거에 무수한 전쟁을 낳았다. 아직도 전쟁은 끊이지 않지만 과거에 비해 전쟁의 빈도나 전쟁으로 인한 사상자수 등을 보면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9) 사람과 정보, 상품과 자본의 흐름이 증가하면서 세계는 점점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각국의 번영이 세계의 번영에 의존하고, 각국의 생존이 지구온난화와 같은 지구적 차원의 위협을 해결하는 데 달려있다. 국제적 협력의 필요성을 갈수록 커질 것이며, 우리는 지구적 차원에서 효과적인 정치공동체를 이룩해야 하는 역사적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문제는 기술적·물질적 발전과 도덕적·정치적 발전 사이의 경주다. 전자는 달려가고 날아가는데 후자는 걸어간다. 위험과 위협은 눈덩이처럼 커져 가는데 위험을 통제하고 위협에 대처할 우리들의 능력은 뒤처진다면 사태는 심각해진다. 유전적으로 결정된 집단우선주의를 극복하고 보편적인 연대와 협동의 도덕을 확산시키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또한 이런 도덕적 기초 위에서 국내적으로나 지구적으로 연대와 협동의 질서를 강화해나가기 위해서는 사회과학적 이해 정책지식이 필요하다. 의도만으로 정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와 운명이라니, 지금 우리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우리는 자식들과 자식세대의 복리에 관심을 갖는다. 우리 자식세대는 또 그들의 자식세대가 잘되기를 바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따져보면 우리 자손들이 맞이할 미래는 우리의 관심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거시적 시각이 관조로 그쳐선 안 된다. 멀리 보는 것은 방향을 잘 잡기 위함이요, 행동은 ‘지금 여기에서’ 해야 한다.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다. 한국이야말로 과거와 뚜렷이 대비되는 저성장 시대에 적응하여 고용과 분배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기술적·물질적 발전과 도덕적·정치적 발전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 시급한 상황이다. 북핵문제를 포함하여 한반도 주변정세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잠재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기에 바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들의 문제와 씨름하는 것이 인류사적 과제에 대한 최선의 응답이다. 이것이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의 숭고한 임무다.
 
1) Ian Morris, Why the West Rules – For Now: The Patterns of History, and What They Reveal About the Future, New York: Farrar, Straus and Giroux, 2010.

2) Robert J. Gordon, “Is U.S. Economic Growth Over? Faltering Innovation Confronts the Six Headwinds”, NBER working paper 18315, Aug. 2012.

3) 에릭 브린욜프슨‧앤드류 맥아피 지음 | 이한음 옮김, 『제2의 기계시대』, 청림출판, 2014

4) Jared Diamond의 저서 Collapse는 환경파괴로 멸망한 사회들의 사례를 풍부하게 제공하고 있다.

5) Carl Benedikt Frey and Michael A. Osborne, "The Future of Employment: How Susceptible are Jobs to Computerisation?" OMS working paper, Oxford University, 2013.

6) 토마 피케티 지음 | 장경덕 외 옮김, 『21세기 자본』, 글항아리, 2014.

7) 자본이 노동을 대신할 수 있는 용이성을 자본과 노동의 대체탄력성이라고 부르며, 이것이 1보다 클 때 자본축적은 전체소득에서 자본의 몫을 증가시킨다.

8) Joshua Greene, Moral Tribes: Emotion, Reason, and the Gap Between Us and Them, Penguin Press, 2013.

9) Steven Pinker,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 Why Violence Has Declined, Penguin Books,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