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물PUBLICATION

이슈페이퍼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연구원의 발간물입니다.

현안과 정책 제86호_박순성_기로에 선 남북관계:통일지향의 특수관계인가,두개의 국가인가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5-06-29 10:43:28
  • 조회수 : 2356
2015년 6월 말 현재,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통일 실현을 위한 단기적 또는 중·단기적 정책을 구상하고 정책 추진 방안을 제시하는 작업은 의미가 있는가?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이후 6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남북관계가 보여준 굴곡에 비추어볼 때, 2008년 초부터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남북관계 악화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당연히 악화된 남북관계의 현재 상황을 변경할 단기적이고 구체적인 정책을 모색하는 일은 중요할 것이다. 또한 남북한 최고지도자들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예상하지 못한 고위급 접촉과 관계 개선이 일어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러한 인식들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으면서, 이 글은 2015년 6월 현재의 남북관계가 한반도 분단 70년의 역사에서 주요한 변곡점을 통과하기 직전에 놓여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러한 변곡점에 도달하기 전에 남북관계 개선을 모색하기 위한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요구된다는 점을 주장하려고 한다.
 
 
한반도 분단이 일차적으로는 외세와 민족 사이의 세력 불균형에 의해 시작되었다면, 한반도 분단의 극복은 한반도 주변 정세, 특히 주변 강대국들의 세력관계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일어났던 세계적 차원의 냉전체제 해체는 동북아지역에서도 냉전질서를 본격적으로 해체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분단을 통해 한반도에서 세력균형을 이루려는 강대국들의 냉전적 국가전략 기조가 약화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상대적 약소국들인 남북한의 외교적 자율성이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남한 정부의 북방정책과 대북포용정책은 북한 정부의 협력을 이끌어내었으며,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고 남북관계의 실질적 변화가 일어났다.

1980년대 말부터 2010년 전후까지를 탈냉전의 시기라고 한다면, 현재는 세계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동북아 차원에서도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할 만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탈냉전 질서가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경제적·군사적 단일패권과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세계경제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면, 2007년 말 미국의 금융위기와 중국의 강대국 지위 획득은 탈냉전 질서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요인이 되었다. 탈냉전 질서 하에서 작동하던 국제규범이나 현실정치는 끊임없는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과도기적 현상들이 탈-탈냉전의 세력전이 또는 질서 전환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탈-탈냉전 질서는 한반도 분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또 어떠한 환경으로 작용할 것인가? 중국이 미국에 명시적으로 요구하였고 또 미국이 명분이나 힘으로 거부할 수 없었던 ‘신형대국관계’는 한반도와 동북아 질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이제는 ‘북한에 대한 영향력’으로 국한되거나 환원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탈냉전 시기 동북아 지역에서 작동하던 단일패권-세력불균형이 패권경쟁-세력균형으로 전환된다면, 한반도 분단은 상위에서 작동하는 거시구조의 제약으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없다. ‘한반도 분단이라는 현재 상태의 유지’와 ‘상대적 약소국에 대한 외교적 강압’은 탈-탈냉전 시기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이 한반도-동북아 지역과 관련하여 채택하고 있는 국가전략, 한반도에서 작동하고 있는 두 개의 지정학적 원리이다. 이미 한편에서는 미국이 주도하고 지배하는 동북아-태평양 군사동맹체제가 강화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의 모호한 국가전략과 외교·안보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러시아, 북한 사이의 정치·군사적 협력체제가 복원되고 있다. 탈냉전 시기 한반도를 지배했던 탈-분단의 경향이 분단의 재강화·재고착화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말부터 약 20년간 남북관계의 개선과 발전을 이끈 힘들은 주로 남한으로부터 나왔다. 탈냉전은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와 미-소 적대관계의 소멸로부터 시작되었지만,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탈냉전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국가는 남한이었다. 상대적 약소국인 남한이 동북아-한반도 국제질서의 구조에서 나타난 균열을 구조 자체의 변화로까지 이어지게 만들었다. 북한핵문제를 둘러싼 북-미 대결과 정권 변화에 따른 남한 정부의 정책 변동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말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나타난 한반도 질서 변화의 동학은 남한의 적극적인 현상 변경 외교, 미국의 수용과 지지, 북한의 소극적 호응, 중국과 러시아의 편승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1991년 12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평화 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다짐”한(필자 강조)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관계의 미래를, 한반도와 한민족의 운명을 남북한이 주도적으로 결정할 것임을,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를 전 세계에 천명한 것이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한 두 정부와 국민들의 명료한 미래 전망과 정책 의지를 담고 있었다. 너무도 당연하게, 북한핵문제로 인한 전쟁 위기, 북한의 경제위기와 체제 불안정, 두 차례의 서해교전, 북한의 핵실험 등도 경제·사회·문화 분야에서 활발하게 추진되던 남북관계 발전을 막지 못했으며, 이러한 발전은 정치·군사 분야로 확대되었다. 남북관계가 ‘통일지향의 특수관계’라는 ‘사실’은 남북한의 어느 누구도, 또한 주변 강대국들 중 어느 국가도 명시적으로 거부할 수 없는 ‘공유 인식’이 되었다.

그런데, 교류·협력을 통한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통일의 중장기적 실현이라는 ‘공유 인식’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가? 2015년 6월 말 현재 남북관계의 실상을 보여주는 주요 지표라고 할 개성공단의 유지, 무력 충돌의 통제와 평화적 분단 관리, 남북한 당국의 관계 개선 의지 발표 등은 2000년 6월 1차 남북정상회담의 민족적 열기와 2007년 10월 2차 남북정상회담의 정책적 기대를 실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가? 금강산 관광 사업의 중단, 천안함 사건의 발생, 남북한 교류·협력 사업의 중단, 연평도 폭격 사건, 북한의 2차와 3차 핵실험, 개성공단 사업의 중단과 재개, 남북한 사이의 실질적인 대화 단절 등은 단순히 남북관계의 후퇴와 정체만을 의미하는가? 이 모든 질문은 2008년 초부터 현재까지 약 7년 반 사이에 남북한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현재의 남북관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동북아 질서가 한반도 분단이라는 현상을 유지·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악화된 남북관계가 그대로 지속된다면, ‘통일지향의 특수관계’라는 공유 인식은 국제적으로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사회적 기반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탈-탈냉전 동북아 질서가 야기하는 외교·안보 차원의 긴장 때문에 북-미 대결을 해결할 국제적 계기가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관계 악화는 남북한 당국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남한 시민사회 차원에서조차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국가적·사회적 차원의 동력을 새롭게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남한 사회에서 지금까지는 단일한 민족공동체에 대한 기억과 전망이 ‘통일지향의 특수관계’라는 공유 인식을 뒷받침하는 주요한 자원의 하나가 되었지만, 남북관계 악화에 따른 대북관의 퇴행과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 심리의 위축은 통일에 대한 일종의 ‘피로감’ 또는 ‘무관심’을 만들어내었다. 공유 인식의 사회적 기반이 남한 사회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외부적으로는 탈-탈냉전 질서의 대두, 내부적으로는 남북관계의 악화, 이 두 상황이 ‘통일지향의 특수관계’라는 공유 인식의 약화를 직접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남한 사회와 관련해서는 조금 더 근본적인 세 가지 요인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본격적으로 개선되고 분단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남한 사회 내부의 냉전·분단세력은 이에 대응하여 남남갈등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내고 확산시켰다. 분단이 장기화된 상태에서 시작된 남북관계 개선은 남북한 사회 모두에 다양한 변화를 요구한다. 소위 억압체제로서의 분단체제가 해체되는 과정이 남북한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남북한 사회 내부에서도 순조롭고 평화로울 수만은 없다. 이런 의미에서 남북관계 개선이 남한 사회 내부에서 정치적·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갈등이 정치적으로 하나의 구도로 고착화되고 동시에 다른 모든 정치적·정책적 판단들을 재단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념적 잣대가 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대북·통일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은 이념투쟁의 양상을 띠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을 유지하는 다양한 공유 인식들, 가치체계들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공유 인식의 파괴는 당연히 남북한의 관계를 ‘통일지향의 특수관계’로 보는 공유 인식의 위축과 붕괴로 귀결되었다.

대북·통일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남남갈등’으로 비화하고, 정치권과 여론주도층이 정치적·이념적 목적으로 남남갈등에 몰두하고 있는 사이에, 남한 사회의 사회경제적 기초는 무너지고 있었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시작된 양극화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경향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시민들의 경제적 삶은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더욱이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자본과 기업 중시의 사회경제정책은 양극화와 불안정화를 심화시켰으며, 정치공동체 전체가 기업사회로 변질되고 말았다. 일상적 삶의 붕괴는 시민들로부터 정치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빼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민족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관심도 앗아갔다.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사회경제적 기초가, ‘통일지향의 특수관계’라는 공유 인식의 물적 기반이 남한 사회 내부에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두 경향은 역설적으로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관 주도로 ‘통일에 대한 기대’를 국민들에게 고취하는 정책을 추진하도록 만들었다. 사회경제적 조건의 개선을 통해서 국민들의 지지를 끌어올릴 수 없는 상황에서, 통일은 사회경제적 상황을 획기적으로 반전시키는 전지전능한 해결사(deus ex machina)처럼, 또는 다가오는, 따라서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 ‘천년왕국’처럼 제시되었다. 통일항아리에서 통일대박으로 이어지는 이러한 사고의 밑에는 이념적 확신이, 아니면 실제로는 일종의 정치적 무력감과 절망감이 놓여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더 심각하게는 북한 붕괴에 대한 근거 없는 기대, 흡수통일에 대한 환상이 깔려 있었다.

독일 통일에 대한 잘못된 사실 파악과 설명·이해 때문에 등장하게 된 개념이자 전망인 흡수통일은 ‘통일지향의 특수관계’라는 공유 인식을 두 가지 방식으로 부정한다. 첫째, 흡수통일이라는 개념·정책은 상대방 국가의 존재를 정치적으로 인정하지도 존중하지도 않음으로써, 상대방 국가와의 교류·협력을 통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평화 통일을 부정한다. 교류·협력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통일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국가전략·정책의 지향으로 제시되지 못한다. ‘지향’이 제시되지 못한 상태에서 ‘특수관계’는 ‘흡수’를 정당화해 주는 ‘조건’으로만 이해될 뿐이다. 둘째, 흡수통일이라는 개념·정책은 국가로서의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이미 70년 동안 별도의 정치공동체를 형성하고 살아온 북한 주민들의 자결권도 부정한다. 남한 정부는 한편으로는 북한 주민들의 자결권을 부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남과 북의 ‘관계’를 주장하는 (또한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주장하는) 모순에 빠져있는 것이다. 흡수통일이라는 개념·정책이 함축하고 있는 이러한 이중의 부정은 결국 남북관계를 파탄에 빠뜨리고, 남북한 모두에게 점진적 평화 통일이 아닌 새로운 선택을 강요하기에 이른다.
 
 
지금까지 한반도 통일정세와 관련한 세 가지 경향이 지적되었다. 먼저, 동북아는 탈-탈냉전적 질서 속으로 들어가면서 한반도 분단을 다시 강화시키고 있다. 다음으로,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통일에 관한 전망과 ‘통일지향의 특수관계’에 대한 공유 인식이 전반적으로 약화되었다. 끝으로, 1980년대 말부터 남북관계 발전을 주도했던 남한에서 2010년대 이후 통일에 대한 관심의 약화와 흡수통일에 대한 환상이 동시에 증가하면서, 남한 사회에서 현상적으로는 통일에 대한 기대가 증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통일지향의 특수관계’에 대한 공유 인식뿐만 아니라 점진적 평화 통일에 대한 전망도 약화되었다.

이러한 세 가지 경향은 2015년 6월 말 현재 한반도 평화와 한민족 통일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과연 광복/분단 70년을 맞는 한반도와 한민족에게 통일은 미래의 전망으로 제시되어야만 하는가? 국가와 시민의 미래 전망 속에 통일 자체가 들어와야만 하는가? 이 질문은 다른 방식으로도 제기될 수 있다. ‘정치기획으로서의 통일’은 현재의 국면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국가전략인가? ‘두 개의 코리아’라는 전망은 한반도 평화나 한민족 발전의 구상이 될 수 없는가? ‘역사를 공유한 하나의 민족, 평화·협력의 관계와 장기적 통합을 지향하는 두 개의 국가’라는 전망이 오히려 한민족의 미래 전망으로, 또 한국의 국가전략으로 더 적절한 것이 아닌가? 통일대박론과 통일미래론의 형태로 제시되고 있는 흡수통일의 환상이 정치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분단 극복의 새롭고도 현실적인 길을 제시할 탈-통일론에 대한 고민은 더욱 더 절실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