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물PUBLICATION

이슈페이퍼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연구원의 발간물입니다.

현안과 정책 제85호_유종성_표현의 자유 억압하는 명예훼손법제 개혁해야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5-06-22 10:00:42
  • 조회수 : 3345
 
조희연 교육감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로 1심에서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5백만원의 유죄 판결을 받은 후 해당 법조항에 대한 위헌성 논쟁이 일고 있다. 낙선목적 허위사실공표죄와 후보자비방죄는 형법상의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를 선거공간에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유엔 인권위원회는 오는 10월-11월에 있을 한국의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이행상황 점검을 앞두고 최근 한국 정부에게 명예훼손에 대한 “광범위한 정의”를 개정하고 명예훼손을 “비형사범죄화”할 계획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해왔다.1) 명예훼손 비형사범죄화의 국제적인 흐름과 이에 역행하는 한국의 현실을 비교해보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명예훼손 법제개혁의 방향을 제안하고자 한다.

대한민국은 명예훼손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한 정의(진실적시 및 허위사실 명예훼손죄, 모욕죄, 후보자비방죄, 낙선목적 허위사실공표죄 등)와 가장 가혹한 형벌 조항(최대 7년 징역형)을 가지고 있으며, 가장 많은 형사처벌을 하고 있는 나라이다.2)
또한 명예훼손 형사소송을 권력비판 봉쇄 등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대표적인 나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형사법상 명예훼손죄는 폐지 또는 거의 사문화되었고, 유엔을 비롯해 유럽안보협력기구, 미주기구, 아프리카 인권 및 민권위원회, 세계은행 등 여러 국제기구들이 각국에 명예훼손 비형사범죄화를 촉구하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등지를 방문해서 명예훼손 비형사범죄화를 촉구하였다. 이에 따라 지난 10여 년 간 영국, 뉴질랜드 등 20여 개국이 비형사범죄화를 하였고 프랑스 등 여러 나라가 자유형을 폐지하였으나 한국은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 정면으로 역행하고 있다.3) 이는 한국이 국제적인 언론과 표현의 자유 평가에서 낮은 평가를 받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4)

매년 세계 각국의 언론자유지수와 순위를 발표하는 프리덤하우스는 한국을 2011년부터 “자유국가”에서 “부분자유국가”로 강등하였고, 2015년 한국은 전체 199개국 중 67위, OECD 34개국 중 30위를 기록했다.5)  프리덤하우스는 한국에 대한 부정적 평가의 중요한 이유로 PD 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보도 관련 명예훼손 재판, 정봉주 전의원의 이명박 당시 대선후보 BBK 의혹제기로 인한 징역 1년 복역 등 명예훼손의 형사처벌과 정치적 남용을 지적하고 있다. ‘국경없는 기자회’도 2015년 한국의 언론자유 순위를 조사대상국 180국중 60위로 낮게 평가했는데, 주진우, 김어준씨 및 산케이신문의 가토 서울지국장등 언론인들에 대한 명예훼손 형사소송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꼽고 있다.6)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프랑크 라 뤼는 2011년 한국의 표현의 자유 실태에 대한 장문의 보고서에서 PD 수첩 사건과 국정원의 박원순씨(현 서울시장)에 대한 명예훼손 민사소송 등을 들어 명예훼손죄의 남용을 비판하고 비형사범죄화를 권고하는 한편 민주사회에서 공직자나 공공기관은 명예훼손 민형사소송의 주체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였다.7)  같은 해 유엔 인권위원회는 일반권고에서 “(자유권 규약의) 모든 당사국들이 명예훼손의 비형사화를 고려해야 한다”고 권유하며, “어떤 경우에라도 형사법의 적용은 가장 심각한 경우로만 한정해야 하며, 특히 자유형은 절대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8)
 
 
선진국들에서는 명예훼손에 대한 피해구제책으로 형사소송보다는 피해자의 적극적인 반론권 행사와 민사소송 및 선거소송에 의존하고, 특히 공직자, 공직선거후보자와 넓은 의미의 공인에게는 민사소송도 어렵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유사한 사례를 비교해 보자.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세월호 사건 조작설 등 “허위 글”을 올린 모씨는 해경청장과 대원들의 명예를 훼손한 죄로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으며,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 발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신상철씨는 국방부장관과 민관합동조사단장 등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5년이 지나도록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9) 반면 미국에서 9.11 테러사건에 대해 미국정부의 자작극이라는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에 대해 부시 대통령과 9.11 조사위원회 위원 등의 명예를 훼손했으니 처벌하자는 얘기를 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왜냐? 민주사회에서는 누구나 정부 발표를 믿지 않을 자유가 있고 다른 의견을 표현할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에 대한 모욕이 도를 넘었다"고 발언한 다음날 검찰은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팀'을 꾸렸고, 최근 박근혜 전단지를 제작, 배포한 사람이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놀라운 일은 법원이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승인해준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북한처럼 대통령 비판도 하지 말라는 건가”라는 항변에 공감이 간다.10) 과거 긴급조치 9호와 국가보안법의 역할을 명예훼손죄가 대신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할까.
 
 
선거공간에 있어서 후보자에 대해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것은 명예훼손일 뿐 아니라 선거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는 헌법재판소가 전기통신기본법의 허위사실유포죄에 대해서는 위헌 결정을 내린 반면 공직선거법의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해서는 합헌 입장을 유지한 논리적 근거이기도 하다. 일견 그럴 듯하지만, 이것도 선진국들의 추세와는 정반대일뿐 아니라 자유선거의 원리에 반한다.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와 관련한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며, 진실과 허위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은 검찰이나 법원이 아닌 유권자의 몫이어야 한다. 공직선거 후보자에 대한 명예훼손에 대해 민사적인 책임추궁과 선거무효 소송을 넘어서서 형사처벌을 허용하는 것은 자유선거를 위축시킬 뿐 아니라 검찰권의 남용을 초래하고 법관의 정치적 편향성에 판결이 영향을 받게 된다.11)유럽안보협력기구 내 민주적 제도와 인권을 위한 사무소에서 펴낸 선거법 검토 지침서도 “후보자를 비방하거나 (허위사실로)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에 대해 형사처벌을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다.12)

미국에서 2008년과 2012년 대선기간에 보수논객 등이 오바마 대통령은 하와이가 아닌 케냐 출생으로서 미국시민이 아니므로 피선거권이 없다는 주장을 했다. 이에 대해 2008년 대선 시 오바마는 하와이 출생 입증서류를 공개했으나 조작된 문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2012년 대선시기에는 정부 문서창고 깊숙이 보관되어 있던 출생증명서 원본까지 공개했지만 여전히 조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미국에서 이런 사람들에 대해 형사는커녕 민사소송도 하지 않는 것은 선거공간에서의 공방에 대해서는 결국 유권자가 판단할 몫이라고 보는 것이다.

1964년 뉴욕 타임스 대 설리반 명예훼손 민사소송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많은 나라에서 통용되는 “현실적(실제) 악의” (actual malice) 법리를 수립하였다. 허위사실로 명예를 손상당한 피해자가 공적인 인물인 경우 가해자에게 피해배상 책임을 물으려면 우선 자신에 대해 공표된 사실이 허위임을 입증해야 하며, 또한 가해자가 허위임을 알았거나 진위를 알아보려면 허위임을 쉽게 알 수 있었는데도 일부러 알아보지 않고서, 즉 “실제 악의”를 가지고 공표한 경우에만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연방 형법과 선거법에는 명예훼손죄나 허위사실공표죄가 없고 일부 주법에 이러한 죄목이 남아있지만 대부분 연방 대법원에 의해 위헌판결을 받아 폐지되었거나 거의 사문화되었다.13) 필자가 일하고 있는 호주의 경우에는 과거 선거법에 한국의 낙선목적 허위사실공표죄와 유사한 조항이 있었지만, 이 조항이 표현의 자유와 충돌한다는 이유로 2007년에 완전 폐지하였다.14)
 
 
선진국들과 달리 한국처럼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후진적인” 정치문화, 선거풍토에서는 허위사실 공표에 대한 엄격한 형사처벌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표현의 자유와 후보자 검증도 중요하지만, 근거 없는 의혹제기를 마냥 허용하면 유권자의 판단을 오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근거하여 검찰은 선거사범 단속에 있어 금품 관련 못지않게 소위 “흑색선전” 사범을 단속하는 데 검찰력을 동원해왔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선거사범 단속은 매표행위 등 부정한 행위에 집중하는데 반해 우리 검찰은 후보자비방과 허위사실공표 등에 더 심혈을 기울이는 듯하다.

선진국 중 명예훼손과 선거 시 허위사실 공표에 대해 형사처벌을 활발하게 하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의 경우에도 실제 형사처벌 건수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2010년도에 일본 검찰에 선거법 위반으로 입건된 435명 중 허위등록, “허위선전", 허위투표, 투표의 위조, 증감, 대리투표 등이 26명 (6%)이었다고 하니 이중 허위사실공표에 해당하는 "허위선전" 관련자는 소수라고 보인다.15) 대만에서도 지난 10년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은 사람 중 93.8%가 금품 향응 관련이었고, 허위사실 공표로 인한 것은 3.6%에 불과했다. 그러나 한국은 지난 19대 국회의원 총선거시 선거사범 입건자 중 금품 향응 등은 32.5%에 불과한 반면, 허위사실공표와 후보자비방 등 소위 흑색선전이 25.7%나 된다.16) 이러한 차이가 대만의 선진적인 선거문화에 비해 한국의 후진적인 정치문화에 기인한 것일까, 아니면 검찰의 법집행 우선순위의 차이일까? 단연코 후자라고 본다. 대만도 권위주의적인 일본 법제의 영향을 받아 선거법에 허위사실 공표죄를 유지하고 있지만, 허위임을 알고서도 악의적으로 행한 경우가 아니면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 판례를 확립했다. 반면 한국의 법원은 검찰의 입증책임을 사실상 피고의 입증책임으로 전환시키는 이상한 판례를 만들어왔다.
 
 
우리는 흔히 네거티브 선거운동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고, 특히 확인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네거티브에 대해 엄중 단속해야 한다는 검찰의 논리를 수긍하기가 쉽다. 조희연 교육감이 국민참여 재판에서 배심원 전원일치로 유죄를 받은 것은 이러한 논리에 우리 국민 상당수가 동의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물론 다른 국민참여재판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왔고, 또 조교육감 경우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네거티브는 민주주의 선거에서 불가결한 것이다. 호주 최고법원은 허위사실공표죄 폐지의 계기가 된 로버츠 대 바스 사건 판결에서 “후보자의 정치적인 평판에 손상을 가하고 그를 낙선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홍보를 하는 것은 민주적인 선거과정에서 핵심적인 것”이라고 하였다. 정치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네거티브 운동이 포지티브 운동보다 더 정확한 정보에 근거하려고 애쓰며, 네거티브는 후보자간 상호 대응을 통해서 유권자들에게 보다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17) 근거가 박약한 네거티브는 역효과를 불러올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네거티브 운동 시에 보다 정확한 사실적 근거를 제시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또 네거티브 공격을 받은 후보는 최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를 가지고 반박하려고 하게 되기 때문에 후보자간 상호공방을 통해 유권자들은 보다 풍부하고 질 높은 정보를 접하게 된다. 오히려 포지티브는 과장되고 사실적 근거가 약한 것이라도 후보자간의 공방이나 상호검증과정 없이 그냥 넘어가기가 쉽다. 이런 점에서 후보자 자신의 재산, 병역, 납세, 전과기록과 학경력 등을 허위로 게재, 발표하는 경우 명예훼손은 아니지만 허위임을 인식하고서도 고의로 할 가능성이 크고 낙선목적 허위사실 공표보다 선거의 공정성을 해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일정한 형사적 제재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본다.18)

명예훼손과 후보자에 대한 낙선목적 허위사실공표의 형사범죄화는 최종적으로 법원에 의해 무죄판결을 받게 되는 경우라도 조사를 받고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당사자가 당하는 고통은 이루 말할 나위가 없다.19)  특히 허위의 인식이 확실하지 않은 경우 또는 진실임을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까지 형사처벌을 하는 것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진실이거나 진실일 가능성이 크다고 믿는 것도 법정에서 방어할 자신이 없으면 말을 하지 않게 되는 “위축효과”를 발생시킨다. 이렇게 되면 공직부패에 대한 감시나 공직후보자에 대한 검증은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처럼 사실상 검사의 입증책임을 피고인에게 전환하는 경우 위축효과는 더욱 심각해진다. 특히 조희연 교육감 1심처럼 의혹에 대한 해명요구에 대해서 제기한 의혹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으므로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에 다름 아니라는 이상한 논법으로 유죄판결이 내려지는 상황에서는 확실한 증거 확보 전에는 일체의 의혹 제기를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 더욱 큰 문제는 검찰의 정치적 선택에 의한 차별적 기소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명예훼손죄는 약자보다는 강자의 명예를 보호하는 데 더 많이 이용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유엔의 권고와 국제적 추세에 발맞추어 명예훼손에 대한 지나치게 광범위한 정의를 축소하고, 선거법상 낙선목적 허위사실공표죄를 포함한 명예훼손을 비형사범죄화하거나 형사처벌 요건을 엄격하게 하는 한편 민사소송 남용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 명예훼손에 대한 지나치게 광범위한 정의를 축소해야 한다. 한국은 일본의 권위주의적인 명예훼손법제를 수입하여 허위사실뿐 아니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 등을 형법에 규정하고 일본 선거법의 허위사실공표죄를 베껴왔을 뿐 아니라 일본을 포함, OECD 어느 나라에도 없는 후보자비방죄까지 설치하여 세계적으로 가장 광범위하게 명예훼손죄를 정의하고 있는 나라이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모욕죄, 후보자비방죄 등은 민형사상 완전 폐지해야 마땅하다.

둘째,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와 낙선목적 허위사실 공표죄는 국제적인 흐름에 발맞추어 완전 비형사범죄하는 것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피해당사자의 적극적인 반론권 활용과 민사소송 또는 선거소송으로 피해를 구제할 수 있다. 최소한 형사처벌은 심대한 사안에 대해 허위임을 알면서도 악의적으로 공표한 경우로 한정하는 한편 이를 친고죄화하고 자유형은 폐지해야 한다. 벌금형도 5백만원 이상으로 규정한 선거법은 아무리 경미한 사안이라도 유죄가 확정되면 자동 당선무효에 선거보전액 몰수까지 감안하면 실제로는 엄청난 벌금에 해당하는 것이 되므로 하한선은 없애야 한다. 다만, 재산, 병역, 납세, 전과기록과 학경력 등 후보자 자신의 정보를 고의로 허위로 발표하여 유권자를 기만하는 당선목적 허위사실공표죄의 경우는 상대후보도 잘 모르고 간과할 가능성이 큰 만큼 형사제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셋째, 민사소송도 악용되지 않도록 국가,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은 명예훼손소송의 원고가 될 수 없도록 하며, 공무원과 공직선거 후보자등 공인은 허위사실 공표로 인한 피해의 정도가 심대하고 가해자에 대해 실제 악의를 입증하는 경우에 한해 손해배상의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재벌 등이 고액의 민사소송으로 언론과 시민단체의 비판과 감시에 재갈을 물리고자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도 필요하다.

넷째, 사인간의 프라이버시 침해나 종교, 인종, 출신지역, 성적 지향성 등을 이유로 한 차별과 혐오에 대해서는 일정한 형사제재를 가하거나 기존의 명예훼손 개념이 아닌 별도의 입법으로 대응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자유형은 피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법제 개혁을 누가 하느냐이다. 국회가 조속히 이러한 법제개혁을 해주거나 헌법재판소가 현행 법제에 대해 전향적인 위헌심사를 해주면 좋겠지만, 무엇보다 시민사회의 관심이 우선적으로 요청된다. 그리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에 대해서는 진영 논리를 넘어서야 한다.

명예훼손과 허위사실유포죄의 정치적 남용이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들어와서 더욱 심각해지긴 하였으나 그 전에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프리덤하우스의 2002년, 2004년 한국 언론자유 보고서는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비판적 언론인에게 명예훼손 민형사소송을 하고 법원이 자유형을 선고하기도 한 것,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언론을 상대로 명예훼손 민사소송을 한 것을 비판하기도 했다. 필자는 김대중 대통령을 허위사실로써 용공좌경분자로 비난했던 보수논객을 김대중 대통령 집권 중에 검찰이 뒤늦게 명예훼손죄로 기소하여 처벌한 것은 불필요한 일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당시 김대중정권이 언론탄압을 한다고 비판했던 보수언론이 천안함 사건 정부발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자에 대해서는 엄벌에 처하라고 한 것은 자기모순이다. 또, 진보진영 일각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모욕하는 일베 회원들을 민사책임 추궁을 넘어 형사처벌하자는 데도 찬성하기 어렵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반대파나 소수자의 의견이 옳은 것일지도 모르며, 허위의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게 하면 왜 그러한 의견이 허위인지를 이성적인 토론을 통해 드러나게 할 기회를 봉쇄하여 진실이 죽은 도그마가 되기 때문에” 허위의 의견에 대해서도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설파한 바 있다. 표현의 자유는 자기 편이나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주장보다 오히려 반대편이나 자신이 보기에는 허위임이 명백한 주장에 대해서도 존중해주어야 한다. “나는 당신이 하는 말을 찬성하지 않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권리에 대해서는 죽기까지 방어할 것이다”라고 한 볼테르의 명언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1) UN Human Rights Committee, 2015, List of issues in relation to the fourth periodic report of the Republic of Korea, para. 24.

2) “제19조”(Article 19)라는 단체에 의하면, 2005-2007년간 5명 이상 형사처벌한 나라는 스페인 외에는 다 후진국이다. 한국은 조사대상에서 빠졌지만, 기소인원(약식기소 포함)은 연간 1만명을 넘고 정식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는 인원수가 매년 1천명을 넘으며 그 수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3) 유럽안보협력기구의 15개 회원국(Armenia, BiH, Cyprus, Estonia, Georgia, Macedonia, Ireland, Kyrgyzstan, Moldova, Montenegro, Romania, Russian Federation, Tajikistan, Ukraine, UK)과 뉴질랜드, 가나, 스리랑카,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사모아가 형법에서 명예훼손을 완전 삭제했으며 (러시아는 푸틴 재집권 후 부활), 프랑스,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는 자유형을 폐지하였다. 박경신, 2012, “국제인권법상 표현의 자유 및 대한민국 법제의 평가.” 홍익법학 13, 3: 87-121; 손태규, 2012,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폐지: 한국과 세계 각국의 비교연구.” 공법연구 41, 2: 377-406; 유종성, 2013, “명예훼손 관련 법제개혁 시안,” <대한민국 표현의자유 보장방안을 제시한다> 공청회 (9월 2일) 자료집, 15-35.

4) 스테판 해거드, “한국의 언론자유 순위가 하락하는 이유.” 중앙일보 2015. 03. 21; Haggard, Stephan and Jong-sung You, 2015, “Freedom of Expression in South Korea,” Journal of Contemporary Asia 45(1): 167-179.

5) 2011년 보고서는 2010년에 대한 평가이므로, 한국이 부분자유국으로 강등된 것은 사실상 2010년부터이다. Freedom House, “Freedom of the Press” (annual reports).

6) Reporters without Borders, “2015 World Press Freedom Index: South Korea”and “World Report: South Korea.”

7) UN Special Rapporteur on Freedom of Opinion and Expression, Frank La Rue. 2011. “Report of the Special Rapporteur on the Promotion and Protection of the Right to Freedom of Opinion and Expression: Addendum, Mission to the Republic of Korea (A/HRC/17/27/Add.2),” paras. 25-28, 89. Human Rights Council, United Nations (March 21).

8) U.N. Human Rights Committee, General Comment No. 34, CCPR/C/GC/34 (12 September 2011), para. 47.

9) You, Jong-sung, 2015, “The Cheonan Incident and the Declining Freedom of Expression in South Korea.” Asian Perspective 39(2): 195-219.

10) 박중엽, “박근혜 대통령 비판 전단지 제작한 시민 구속돼.” 뉴스 민, 2015.04.30.

11) Day, Terri R., 2009, “Nasty as They Wanna Be Politics: Clean Campaigning and the First Amendment.” 35 Ohio NUL Rev 647.

12) OSCE Office for Democratic Institutions and Human Rights, 2013, Guidelines for Reviewing a Legal Framework for Elections, 20.

13) Wagner, A. Jay and Anthony L. Fargo, 2012, ”Criminal Libel in the United States.” A Report for the International Press Institute.

14) Twomey, Anne, 2011, “Freedom of Political Communication and Its Constitutional Limits on Electoral Laws,” in J Tham, B Costar and G Orr eds., Electoral Democracy: Australian Prospects (Melbourne University Press), 194-207; 유종성, “호주의 허위사실공표죄 폐지.” 한국일보 2015.4.21.

15) 平成23年版 犯罪白書 第1編/第2章/第2節/5.

16) You, Jong-sung and Jiunda Lin, 2015, “The Causes of the Different Electoral Campaign Regulations in South Korea and Taiwan,” Draft.

17) Geer, John G. 2006. In Defense of Negativity: Attack Ads in Presidential Campaigns. Chicago: Univ. Chicago Press; Mattes, Kyle and D. P. Redlawsk, 2014, The Positive Case for Negative Campaigning. Chicago: Univ. Chicago Press.

18) 김종철, 2012, “공직선거법 제250조 제2항(낙선목적 허위사실 공표죄)와 관련한 대법원 판결에 대한 헌법적 검토.” 법학연구(연대 법학연구원) 22, 1: 1-32.

19) 필자도 이런 경험을 하였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15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