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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과 정책 제104호_노광표_노동개혁,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자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5-11-16 10:01:19
  • 조회수 : 2060
9.15 노사정 합의 이후 노동개혁 방향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과 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정부여당은 합의 이후 5대 노동법안을 제출하였고, 민주노총을 필두로 한 노동계는 정부여당의 법안을 노동개악으로 규정하고 총력투쟁으로 맞설 것을 결의하고 있다. 그런데 9.15 합의는 그 형식과 내용 모두 결격 사유를 갖고 있어 진정한 사회적 합의라 할 수 없다. 이번 합의는 사회적 대화의 요건인 ‘투명성, 대표성, 민주성’을 갖추고 있지 않다.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았고, 청년, 여성, 비정규직 등 이해관계자들의 참여가 배제되었다. 합의 내용도 노동개혁이 목표로 한 “청년고용 활성화, 이중구조 개선, 사회안전망 확충” 방안으로는 턱 없이 부족하며, 목표에 역행하는 동떨어진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노동개혁은 노동시장의 공정성 확립과 격차 해소를 목표로 하여야 하며, 노동양극화의 원인인 비정규직 축소 및 차별 완화, 저임금노동의 해소를 위한 최저임금 대폭인상 및 소득대책 방안, 기업 간 격차 해소를 위한 원·하청 공정거래 확립 및 성과공유제, 청년고용할당제의 민간기업 확대 적용, 52시간주당노동시간의 전면 실시 등을 담아야 한다. 이는 노동정책만으로 성취될 수 없으며, 낙수효과와 함께 분수 효과(trickle up effect)가 결합되는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이 병행되어야 한다.
 
’15년 9월 15일 노사정은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합의”을 도출하였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 ‘노동시장 구조개선 특별위원회’가 ’14년 9월 19일 설치된 이후 360일 만에 이뤄낸 합의이다.

하지만 1년 여 논의 끝에 이뤄낸 합의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합의 주체인 한국노총의 금속노련·화학노련·공공연맹은 노사정 합의안 폐기를 위한 반대운동에 나서고 있으며, 야당은 합의 수용 거부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1). 노사정 합의에 대해 “과거와 같은 위기 극복을 위한 사후적 조치가 아니라 다가오는 위기에 대응한 선제적 합의이며, 포괄적 패키지 합의”라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기어코 노동자 목숨 내놓으라는 노사정 야합(민주노총), 전체 여성 노동자의 삶을 위협하는 합의(여성노조),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청년유니온)”고 이번 합의가 노동자의 근로조건과 삶을 더 어렵게 할 개악이라 주장한다. 노사정 합의에 대한 찬반 의견이 대립되는 것은 논의 및 합의 추진 과정, 합의 내용에 대한 판단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합의는 사회적 대화의 요건인 ‘대표성, 투명성, 민주성’을 갖추고 있지 못해 합의 결과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 쉽지 않다. 먼저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았고, 청년, 여성, 비정규직 등 이해관계자들의 참여가 배제되었다. 그 동안 노사정 협의 틀에 취약계층 노동자의 이해가 반영되지 않아 이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법안이 제출되어 있지만 이번에도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4월 9일 노동계(한국노총)의 거부로 논의가 중단된 이후 6개월 후인 8월 27일 논의가 재개되었는데, 이때부터 모든 논의는 모두 ‘4자 대표자 회담’을 통해 이루어졌다. 대표자 회담은 회의록도 남기지 않고 실무자의 배석도 없어 논의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확보하지 못하였다. 한국노총 지도부가 왜 반대 입장을 철회하고 십여 일만에 전격적으로 합의했는가를 둘러싸고 정부의 외압설까지 회자되는 상황이다.

합의 내용도 노동개혁의 목표에 부합하지 않은 상호 모순된 정책이 혼재된 함양미달이다. 합의문은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으나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핵심인 재벌대기업의 독점적 지배체제 해소 방안은 찾을 수 없고 ‘상생과 협력’이라는 무지개 공약을 얼기설기 엮어 제시하고 있다. 합의문을 보면, 노동에 불리한 것은 입법화되지만, 경영계에 부담되는 내용은 ‘강구·노력한다.’ 등으로 ‘구렁이 담 넘어 가는’ 형국이다. 이 결과 노동자들의 합의에 대한 평가는 반대가 지배적이다. 민주노총이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만19세 이상의 임금 노동자 803명을 대상으로 한 결과를 보면 ‘노사정 합의 과정과 내용이 기업가 및 정부·청와대의 의견이 가장 많이 반영되었다’고 61.3%가 응답한 반면 ‘노동자 의견이 우선 반영되었다’는 11.8%에 그치고 있다.
 
 
노사정 합의에 대한 찬반 입장을 떠나 제기되는 근본 문제는 '노동개혁이 필요한가'이다. 누구도 현재의 고용체제가 바람직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OECD국가 중 최고 수준의 저임금노동자 비중, 기업 규모별 임금 격차의 확대,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과 비정규직 비중, 날이 갈수록 악화되는 청년실업 등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노동개혁에 대한 사회적 요구이다. 이런 점에서 노동개혁은 외면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시대적 과제임이 분명하다. 힘들고 어렵지만 사회적 대화와 합의를 통해 추진해 과제이다. 문제는 노동개혁의 목표와 방향이다. 무엇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정책 수단을 통해 고용체제의 얽힌 매듭을 풀어나갈 것인가에 있다.

우리는 개혁의 방향을 지난 대선과정에서 표출되었던 시대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박근혜대통령은 18대 대선에서 ‘늘지오 공약’을 제시했다. “일자리를 늘리고(늘)·지키고(지)·질을 올리는(오)”는 노동공약을 제시하고, 세부 정책방안으로 ‘근로시간 단축, 정리해고 요건 강화, 상시·지속적 업무의 정규직 고용, 비정규직 사회보험 적용확대,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 등을 약속하였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야당의 공약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통령의 임기가 반환점을 돌았지만 노동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일자리는 늘었지만 그 태반은 비정규직이고, 월급여가 200만원에 못 미치는 임금근로자가 전체의 48.3%를 차지하고 있다. ’16년부터 정년이 60세로 연장되지만 노동자의 평균퇴직연령은 52.3세에 머물러 있다.

‘고용의 질’ 지수를 통해 OECD 국가와 비교하면 한국 고용노동시장의 개혁 방안은 보다 명확해진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고용의 질적 수준 추정 및 생산성 파급효과 분석’에 따르면 2013년 한국 고용의 질 지수는 38.8로 OECD 27개국의 평균인 55.8에 못 미쳤다. 고용안정성 지수는 100점 기준으로 19.7점에 불과해, OECD평균(49.8)에 한참 못 미치고, 근로시간(32.5)과 산업안전(32.5), 임금(53.5) 모두 평균을 하회한다. 고용의 질 향상은 근로자의 근무여건 개선 및 삶의 질 향상뿐 아니라 노동생산성 및 경제성장률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고용의 질 지수가 1%포인트 높아지면 다음 해 노동생산성은 0.0092%포인트 높아졌다. 고용의 질 향상 방안은 “비정규직 남용 방지, 대·중소기업 및 정규직·비정규직 근로조건의 격차 축소, 사회안전망 확충”에 있다.
 
<그림1>항목별 지수(2013년)
<그림2>주요 국가의 항목별 지수(2013년)
 
자료 : 조병수·김민혜(2015), ‘고용의 질적 수준 추정 및 생산성 파급효과 분석’
 
그러나 노사정 합의는 현실을 외면한 거꾸로 된 처방전을 제시한다. 유연안정성(flexicurity)이라는 서구 유럽의 실패한 정책을 한국에 이식하고자 한다.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처럼 사회안전망과 직업훈련 등을 통해 소득과 고용의 안정성을 제공할 수 있는 어떤 대안도 마련하지 않은 채 유연성 확대가 경쟁력 강화의 길이라며 ‘일반해고’ 도입까지 주장한다. 어쨌든 한국의 고용체제는 중병에 걸려 있다. 고용-성장 간 선순환 구조가 깨지고 노동시장 내 공정성은 고용형태별, 기업규모별 임금·복지 격차 확대로 무너졌다. 이를 규제해야 할 노동조합은 10.3%라는 낮은 조직율과 기업별교섭체제 안에 포획되어 있다. 고용형태 다변화에 따른 새로운 법·제도적 규제 방안을 마련하고, 정부의 감독 강화를 통해 고용노동시장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9.15 노사정 합의는 전문과 본문을 포함하면 7쪽이나 되는 방대한 내용과 정책방안을 담고 있다. 합의의 주요 골자는 “(I) 노사정 협력을 통한 청년고용 활성화, (II)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III) 사회안전망 확충, (IV) 3대 현안의 해결을 통한 불확실성 제거, (V) 노사정 파트너십 구축, (VI) 합의사항 이행 및 확산” 등 6개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만 보면 한국 고용체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모두 열거하고 있으며 정책대안도 폭 넓게 제시하고 있다.

이렇듯 노사정 합의에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공감되었던 ‘통상임금의 정의,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 차별시정 강화’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이 법원 판결에 역행하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자의 고용불안을 심화하고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개혁에 역행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s)’는 서양속담처럼 합의 전문에 감추어져 있는 구조 개혁의 핵심 골자는 크게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표1>노사정합의문과 새누리당 법안 비교
 
법안 새누리당 법안 정부안 및 노정합의문과의 차이 쟁점
기간제법 35세 이상, 본인 희망 시 계약기간 4년으로 연장 추후 논의사항 비정규직 증가 및 정규직
사용 억제
차별시정 노조신청대리권 누락 당초 정부안 포함됐다 누락 비정규직 차별시정 권한 약화
파견법 뿌리산업에 파견 허용 정부안(55살 이상 노동자, 고소득 전문직 등은 파견 규제를 없앰)보다 파견 허용 확대 금형·주조·용접 등 파견 허용이 제조업 직접 생산 공정까지 확대
고용보험법 구직급여 수급 위한 고용보험
가입 기간 확대
노사정 논의 또는 합의 사항 아님
근로기준법 휴일근로 시 가산수당 50% (휴일근로 8시간 까지는 중복할증 없앰) 최근 법원 판례는 100% 지급 노동시간 단축의 의미가 축소되는 문제 발생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출퇴근재해 대중교통은 2017년 시행, 자가용은 2020년 시행 출퇴근재해 보상, 감정노동의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 등 산재보험제도 개선방안은 노사정위 논의를 거쳐 마련하기로 함
첫째, 일반해고의 도입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를 금지하고 있다. 즉, 근기법 제23조(해고 등의 제한)는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懲罰)을 하지 못한다.”고 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행법상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는 방법은 ‘정리해고’와 ‘징계해고’ 두 가지 밖에 없다. 그런데 정부와 경영계는 저성과자 퇴출 방안으로 일반해고(공정해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합의문에는 “근로계약해지 등의 기준과 절차 명확화”가 필요하며 “노사정은 인력운영과정에서의 근로관행 개선을 위하여 노사 및 관련 전문가의 참여 하에 근로계약 전반에 관한 제도개선방안을 마련한다. 제도개선 시까지의 분쟁예방과 오․남용 방지를 위하여 노사정은 공정한 평가체계를 구축하고, 근로계약 체결 및 해지의 기준과 절차를 법과 판례에 따라 명확히 한다.”고 하였다. 이른바 ‘근로계약 체결 및 해지의 기준과 절차를 법과 판례에 따라 명확히 한다’는 문구를 통해, 정부가 공언한 ‘일반해고 가이드라인’의 제정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상시적인 고용불안 요인이 될 것이다. 합의이후 많은 사업장에서 저성과자는 해고할 수 있다는 시그널로 알려져 악용 사례가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는 쌍용차 사태의 교훈에 역행하는 일이며, 정리해고 요건 강화를 통해 고용안정성을 강화하겠다는 대통령의 공약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둘째, 비정규직 사용 기간 연장이다. 노동개혁의 목표 중 하나는 비정규직의 남용과 차별 완화였다. 노사정간 의견 불일치로 추후 논의 과제로 설정하였던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기간 2년 연장이 새누리당 기간제법 개정안으로 제출되어 있다. 개정안을 보면 “35세 이상(신청 당시 나이를 말한다)인 기간제 근로자가 2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근로계약기간의 연장을 신청하는 경우. 이 경우 다시 연장된 기간을 포함한 총 근로계약기간은 4년을 초과하지 못한다.”고 하고 있다. 이는 기간제 사용기간을 현행 최장 2년에서 4년으로 늘리자는 것으로 2년이 지나도 계속 필요한 업무라면 상시·지속업무로 간주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현행 기간제법의 입법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기간제노동자의 사용기간을 연장하자는 것은 비정규직의 축소가 아닌 확대로 귀결될 것이다.

정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80%가 기간연장에 찬성한다고 말하나 이는 설문문항의 오독 결과이다. 정부가 인용한 설문 문항을 보면 “한 사업장에서 기간제 근로자로 일할 수 있는 기한을 최대 몇 년까지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고 묻는다. 답변 결과는 “①1년(3.8%) ②2년(11.0%) ③3년(12.2%) ④4년(4.3%) ⑤5년(14.8%) ⑥기간제한 필요 없음(53.0%)”이다. 만약 설문 문항을 “기간제 근로자로 일하다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할 기간이 얼마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묻고, 답변이 주어졌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2)? 백보를 양보하여 4년 동안 기간제노동자로 일한 노동자들은 4년 뒤에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인가? 연장기간의 10% 정도의 이직수당을 지급하면 사용자는 모든 책임에서 벗어난다.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2015.08)’ 결과는 우리에게 비정규직의 실상을 다시 한 번 고발한다. 비정규직 근로자는 1년 전보다 19만4,000명(3.2%) 증가한 627만1,000명이었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은 정규직근로자의 54%에 불과하며, 비자발적 사유로 비정규직을 선택했다는 사람은 50.7%였다. 그 이유는 ‘당장 수입이 필요해서’가 75.5%로 가장 많았다. 비정규직의 해법은 나쁜 일자리의 연장이 아닌 상시지속적 일자리의 정규직 전환을 통해 그 해법을 찾아야 한다.

셋째, 파견 허용 확대이다. 노사정은 합의문에서 “파견근로 대상 업무, 파견과 도급 구분기준의 명확화 방안, 근로소득 상위 10% 근로자에 대한 파견규제 미적용 등”을 공동실태조사, 전문가 의견수렴 등을 진행하여 대안을 마련하도록 하였다. 노사 간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린 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합의문의 잉크도 마르기도 전에 제조업 공정에서 뿌리산업(주조·금형·용접·표면처리·소성가공·열처리)의 파견을 전면 허용하는 ‘파견법’ 개정안을 제출하였다. 이는 공단지역에 만연한 불법파견을 합법화하는 방안으로 중소제조업의 숙련노동자의 양성을 막아 장기적으로 산업 경쟁력 악화의 원인이 될 것이다. 또한, 파견과 도급을 구별하겠다면서 원청의 공동안전보건조치, 직업훈련, 고충처리 지원 등을 파견의 지표로 보지 않겠다는 입장은 현재 재벌대기업에 만연해 있는 불법파견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요약하면, 정부여당은 사내하도급법 개정이 난관에 부딪치자, 파견도급 구분 기준을 갖고 사내하도급을 파견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채택했다고 할 수 있다.

넷째, 임금피크제를 포함한 성과형 임금체계 도입이다. 정부는 60세 정년연장과 연계하여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제화하고 있으며, 연공형 임금체계를 직무·성과형 임금체계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는 노사정의 합의사항이라고 강변한다. 정부와 경영계는 임금피크제가 고령자의 임금삭감이 아니며 청년고용을 늘리는 세대 간 상생 정책이라 말한다. 경총은 “모든 기업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경우 여기서 발생하는 재원으로 ’16년에서 ’19년까지 18만2000여개의 청년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가정은 전제부터 엉터리다. 노동자의 평균근속연수가 5.3년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짧고, 100대 대기업의 근속연수가 12년에 불과한 현실을 고의적으로 왜곡한 결과이다. 또한 임금피크제 도입은 근로조건의 불이익 변경이 아니므로 과반수 노조나 과반수 근로자의 동의 없이도 취업규칙을 변경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부가 주장하는 이른바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은 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 단서와 같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대해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얻도록 하는 명문의 규정이 없는 일본에서 판례를 통해 확립된 것으로, 근로기준법 94조의 집단적 동의 절차를 강제화하고 있는 우리나라 법체계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합의문은 임금체계 개편을 약속하고, 그 개편 방향은 ‘직무, 숙련 등을 기준으로 하여 노사 자율’로 추진한다고 하였다. 노사자율이라는 꼬리를 달고 있지만 현행 연공형 임금체계를 직무숙련, 성과를 중심으로 바꿔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직무와 성과형 임금체계 도입의 열쇠는 평가기준에 대한 노사 간 합의 및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노사의 공동결정제도가 확립되어 있지 않은 현실 속에서 성과형 임금체계 도입은 저성과자 퇴출제로 악용될 위험이 크다.
 
 
9. 15 노사정 합의는 한국 고용체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기에는 그 진단도 해법도 잘못되어 있다. 이른바 ‘정규직 과보호’가 고용창출의 걸림돌이며 그 해법은 유연성 확대를 위한 성과형 임금체계 및 저성과자 퇴출제 도입으로 연계된다. 초기 정책 목표와는 거꾸로 비정규직의 사용기간을 연장하고, 파견용역노동자의 확대 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와 반대로 노동시장 이중구조화를 만든 재벌대기업에는 어떤 책임도 부과하지 않고 있다. 재벌 대기업의 횡포를 규제하기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 골목상권 보호·중소영세자영업자 보호를 위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원하청 불공정거래 개선을 위한 하도급법 개정 등 경제민주화 관련 법·제도 개선 사항은 반영하지 않고 있다. 기업에게 기울어져 있는 고용노사관계의 무게 중심을 바로 잡는 정책이 아니라 이를 더욱 고착시키는 방안이다.

이제 노사정위원회의 역할은 끝났고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가 민의의 전당으로서 노동개혁을 위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 나갈 책임을 부여 받고 있다. 향후 논의 방향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노사정 논의 과정에서 배제되었던 민주노총, 청년·여성·비정규직 등 취약계층노동자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을 허리에서 메어 쓸 수는 없다. 노동시장 이중구조화의 피해자인 청년·여성·비정규직이 수용할 수 없는 노동개혁은 노동개악일 수밖에 없다. 둘째, 노동 개혁의 목표와 방향에 대한 합의이다. 18대 대선 당시 여야 후보는 국민에게 노동개혁을 약속하였는데, 그 내용이 개혁의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 여야 모두 국민들에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대폭인상, 노동시간의 단축, 영세중소기업 근로자의 사회보험 적용 확대” 등을 약속하였다. 노사정 합의 결과와 새누리당의 5대 노동법안을 이 기준을 토대로 심의하면 여야 간 법제화를 위한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노동개혁 방안은 조세정책, 산업정책, 재벌정책 등 경제민주화와 연계하여 추진하여야 한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와 비정규직의 권리 부재는 노동 문제로 외화되지만 재벌의 독점적 지배체제, 약탈적 원·하청구조 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국 경제의 불균형성을 타파할 수 있는 획기적 경제민주화 정책과 함께하지 않는 노동개혁은 연목구어(緣木求魚)가 될 수밖에 없다.
 
1)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의 공동성명서(2015.10.06.) “박근혜정부는 노동개악 중단하라-한국노총은 노사정 합의 즉각 파기하고 투쟁전선 복귀하라”

2) 박점규, “ ‘금수저’ 아니라면, 국민투표 합시다!”, 프레시안 칼럼(2015.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