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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과 정책 제117호_김유선_한국의 노동 2016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6-02-20 00: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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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과 정책 제117호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고용률 70% 달성, 상시·지속적 업무 정규직 고용관행 정착, 2020년까지 연평균 노동시간 OECD 수준으로 단축, 최저임금 수준 개선과 근로감독 강화, 정리해고 요건과 절차 강화’ 등을 공약했다. 그러나 얼마안가 ‘고용률 70% 달성’ 이외의 공약은 실종되었고, 그 빈자리는 공약에 없던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창출’이 대신했다.

2014년 말에는 최경환 부총리의 ‘정규직 과보호’ 발언을 시작으로, ‘노동시장 유연화’가 다시 노동정책 제1의 과제로 부활하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경제정책 방향’과 ‘비정규직 종합대책’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하향평준화를 공식 천명했다. 2015년 9월에 있은 이른바 ‘노사정 대타협(?)’ 직후 여당이 입법 발의한 노동법 개정안은 ‘쉬운 해고, 평생 비정규직’으로 요약되듯이 재벌의 이해관계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경과
 
1974년 석유파동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30여년은, 전 세계 곳곳에서 신자유주의가 맹렬하게 위세를 떨치고, 노동시장 유연화가 마치 글로벌 표준(global standard)이라도 되는 양 행세하던 시장근본주의 시기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뒤 사정은 크게 달라져, 국제노동기구(ILO)와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신자유주의와 노동시장 유연화에 대한 비판과 재검토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국제노동기구(ILO)의 임금주도 성장모델(wage-led growth model)과 피케티(Piketty)의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열풍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반전의 주체와 계기를 마련하지는 못 하고 있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확산되고 노동시장 유연화가 추진된 것은 1994년 김영삼 정부 때부터다. 그 뒤 20년 가까이 노동시장 유연화는 한국 사회에서 지배적 담론으로 자리 잡았다.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바뀌어도, 노동시장 유연화는 제1의 노동정책 과제로 흔들림 없이 추진되었고, 고용불안정, 소득불평등 등 노동시장 양극화의 부정적 폐해는 갈수록 확대되었다.

2012년 총선과 대선 땐 재벌개혁과 골목상권 보호 등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가 핵심 이슈로 떠올랐지만, 정작 그 뿌리인 노동시장과 노사관계 개혁은 주요 이슈가 되지 못 했다. 그러나 여야 모두 대선 공약에서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용어 자체를 찾아볼 수 없었고, 과거보다 전향적인 노동시장(일자리) 공약을 제시했다. 이는 지난 20여 년 동안 추진된 노동시장 유연화가 노동시장 양극화(고용불안정, 소득불평등)로 이어지면서, 대중적 반감이 확산된 저간의 사정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된 박근혜 후보는 대선 때 ‘고용률 70% 달성, 상시·지속적 업무 정규직 고용관행 정착, 2020년까지 연평균 노동시간 OECD 수준으로 단축, 최저임금 수준 개선과 근로감독 강화, 정리해고 요건과 절차 강화’ 등을 공약했다. 그러나 얼마안가 ‘고용률 70% 달성’ 이외의 공약은 실종되었고, 그 빈자리는 공약에 없던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창출’이 대신했다.

2014년 말에는 최경환 부총리의 ‘정규직 과보호’ 발언을 시작으로, ‘노동시장 유연화’가 다시 노동정책 제1의 과제로 부활하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경제정책 방향’과 ‘비정규직 종합대책’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하향평준화를 공식 천명했다. 2015년 9월에 있은 이른바 ‘노사정 대타협(?)’ 직후 여당이 입법 발의한 노동법 개정안은 ‘쉬운 해고, 평생 비정규직’으로 요약되듯이 재벌의 이해관계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진단
 
한국의 노동시장은 고용불안정, 소득불평등, 노사관계 파편화로 특징지을 수 있다. 첫째, 한국은 고용이 매우 불안정한 초단기근속의 나라다. 근속년수가 1년 미만인 단기근속자가 전체 노동자의 32%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고, 근속년수가 10년 이상인 장기근속자는 20%로 가장 적다. 고용보험 가입자 1,157만명 중 2013년 한 해 직장을 그만 둔 사람이 562만명(48.5%)이고,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 직장을 그만 둔 사람이 114만명(35.4%)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고용이 매우 불안정하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2015년 8월)에서 비정규직은 868만명(45.0%)이다. 기간제는 286만명(14.8%)이고, 시간제는 224만명(11.6%), 파견근로(용역포함)는 87만명(4.5%)이다. 노동부 고용형태공시제(2015년 3월)에서 300인 이상 대기업 비정규직은 182만명(39.5%)이고,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92만명(20.0%)이다. 10대 재벌 비정규직은 49만명(37.7%)이고,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40만명(30.7%)이다.

둘째, 외환위기 전 한국은 상대적으로 소득분배가 평등한 나라였다. 외환위기 이후 임금인상은 성장에 못 미쳤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임금 없는 성장’이 계속되고 있다. 2000~14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4.4%인데, 실질임금인상률은 1.4%(한은)~2.6%(노동부)다. 성장에 못 미치는 임금인상으로 노동소득분배율은 하락했고,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불평등이 심하고 저임금계층이 많은 나라가 되었다.

10대 재벌 사내유보금(잉여금)은 2009년 288조원에서 2013년 522조원으로 4년만에 234조원(81%) 증가했다. 이것은 중소영세업체 비정규직의 저임금과 고용불안, 성장에 못 미치는 정규직 임금인상, 골목상권 붕괴와 자영업자 몰락, 하도급단가 후려치기, 재벌 감세, 원화 환율 인상 등으로 거둬들인 초과이윤을 몇몇 거대 재벌이 빨아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문제는 정규직 과보호가 아니라 재벌 과보호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 World Bank(2002), OECD(2004), ILO(2004)에 따르면, 노조 조직률이 높거나 단체협약 적용률이 높을수록, 임금교섭이 전국이나 산업으로 집중되고 상하 조직 간에 조정이 원활할수록 임금불평등이 낮다. 한국은 노조 조직률이 11%로 OECD 34개국 중 31위고, 단체협약 적용률은 가장 낮다. 단체교섭은 기업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상하 조직 간에 조정은 원활하지 않다. 한국에서 임금불평등이 극심한 것은 경제정책, 산업정책, 노동시장정책에서 비롯된 측면도 크지만, 노사관계 파편화에서 비롯된 측면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노동시장 개혁의 실상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노동시장 개혁(?)은 ①기간제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②55세 이상 고령자와 고소득 관리전문직, 뿌리산업에 파견근로를 허용하고, ③주52시간 상한제를 주60시간 상한제로 연장하고, ④저성과자 일반해고 제도를 도입하고, ⑤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을 완화하는 것이었다. 이건 노동시장 개혁(改革)이 아니라, ‘해고를 쉽게 하고, 비정규직을 늘리고, 노동조건을 쉽게 깎는’ 노동시장 개악(改惡)일 뿐이다. ‘쉬운 해고, 평생 비정규직’이란 슬로건으로 집약되는 또 하나의 ‘재벌 퍼주기’일 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을까? 해답은 “쉬운 해고 노동개혁안, 전경련 민원사항이었다”는 미디어오늘(2015년 9월 15일) 기사에서 찾을 수 있다. 2014년 7월 전경련은 ‘2014 규제개혁 종합건의’를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에 제출했고, 11월에는 전경련 등 8개 경영자단체가 ‘규제기요틴(단두대)과제’ 153건을 정부에 제출했다. 12월 28일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열린 ‘규제기요틴 민관합동회의’에서는 153건 가운데 수용 114건, 수용곤란 16건이었고, 문제의 일반해고,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 등은 ‘추가논의 필요’ 사항으로 분류되어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추진키로 결정됐다.

‘추가논의 필요사항’에 포함된 소관부처 고용부 관련 항목들을 살펴보면 ①기간제 사용기간 규제 완화 ②파견 업종 및 기간 규제 완화 ③근로시간 단축 규제 유연화 ④업무성과 부진자에 대한 해고 요건 확대 ⑤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⑥통상임금 부담 완화 등으로 그 주요 내용이 완전히 동일하다(<그림1> 참조).

<그림1> 2014년 12월말 규제기요틴 민관합동 회의 자료
 

 
노동시장 개혁과제
 
노동시장 개혁과제를 일자리 정책, 임금정책, 3대 불법 일소 순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경제 환경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일자리를 늘리려면 실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의료·복지 등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확대해야 한다. 현행법대로 주52시간 상한제만 지켜도 일자리를 33.4~57.9만개 늘릴 수 있다.

상시·지속적 일자리는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해야 한다. 사내하청은 대부분 상시·지속적 일자리이자 불법파견이다. 법대로 10대 재벌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좋은 일자리를 40만개 늘릴 수 있다. 실직자 생계유지를 위해서는 고령자 연금을 확대하고, 청년 구직촉진수당을 도입하고, 실업급여를 확대해야 한다.

둘째, 임금불평등과 저임금계층을 축소하려면, 최저임금 수준을 현실화하고 최저임금과 연동해서 최고임금제를 실시해야 한다. 지금처럼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임금을 정하거나 기업별로 교섭을 한다면, 임금불평등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산업이든 지역이든 그룹이든 초기업 수준에서 단체교섭을 확대하고, 단체협약 효력확장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프랑스는 한국보다 노조 조직률은 낮아도 단체협약 적용률은 90%가 넘는다.

셋째, 법정 최저임금 미달 자가 222만명(전체 노동자의 11.5%)이고, 법정 초과근로 한도인 주52시간을 초과해서 탈법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하는 노동자가 357만명(19.0%)이고, 10대 재벌 불법 파견근로자가 40만명(30.7%)이다. 3대 불법만 일소해도 노동자들의 삶은 개선될 수 있다. 최저임금 미달 자들이 못 받은 돈만 받아내도 연간 5조원이 넘는다.

<그림2>는 지금까지 살펴본 노동시장 개혁과제를 요약한 것이다. 2020년까지 OECD 수준으로 노동시간 단축, 상시·지속적 일자리는 정규직 직접고용, 기초연금과 실업급여 확대, 최저임금 수준 현실화 등은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박근혜 정부가 공약한 사항이기도 하다. 있는 법과 대선 공약만 잘 지켜도 우리나라 노동시장 문제는 크게 개선될 수 있다.

<그림2> 노동시장 개혁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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