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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과 정책 제142호_홍경준_우리는 왜 브렉시트(Brexit)에 주목해야 하나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6-08-20 12:26:34
  • 조회수 : 2041
현안과 정책 제142호
시간이 지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브렉시트의 영향력에서 점차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브렉시트로 인한 ‘유럽연합 단일시장’의 훼손이 초래할 결과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그 후폭풍은 단기보다는 장기적으로 더 커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사회를 시장화하려는 운동의 궁극적 이상이기도 한 재화, 용역, 자본, 그리고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 또한 그를 통한 단일시장의 건설은 유럽연합이 추구한 이상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은 재화와 용역,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는 비교할 수 없는 훨씬 더 크고 복잡한 문제를 야기한다. 브렉시트는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이 초래하는 이주민 유입에 대한 원주민의 반발과 공포가 현실화된 것이다. 이러한 일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사회를 시장화하려는 운동과 시장화로부터 사회를 지켜내려는 운동, 그 이중운동의 작용과 반작용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성립한 이후 언제나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브렉시트는 ‘시장의 작용으로부터 사회를 지키려는’ 이중운동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이중운동의 결과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증진하기보다는 퇴보시키는 경우도 많았다는 데에 있다.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단절과 분리보다는 통합과 연대의 아이디어에 기초할 때, 이주민을 분리하고 격리하기보단 원주민의 정체성을 확장하여 그 경계를 넓히는 조치가 있을 때 이중운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증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브렉시트가 신자유주의 붕괴의 시발점이 될지, 아니면 그것의 정당성을 오히려 확장하는 계기가 될지, 혹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퇴보시키는 비극의 씨앗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어떻게 귀결될지는 통합의 아이디어와 확장의 조치가 설득력 있게 제시될 수 있는지, 제시될 수 있다면 누가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에 달려있다.
 
브렉시트의 후폭풍은 소멸했나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Brexit; 이하에서는 브렉시트로 씀) 직후의 대혼란은 어느 정도 수습된 것처럼 보인다. 6월 24일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 결과가 발표된 직후 세계 금융시장은 ‘검은 금요일’의 패닉상태에 잠시 빠졌었다. 영국 파운드화 가격은 장중 11.6%나 폭락하면서 1985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증권시장 또한 투표 결과가 발표된 직후에 개장한 아시아 지역부터 시작해서 차례대로 주가폭락의 소용돌이 속에 빠졌다. 반면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는 금값은 폭등했다. 6월 24일 뉴욕상품거래소에서 8월 물 금은 전날보다 59.30달러(4.7%) 상승한 온스 당 1322.40달러로 마감해 2014년 7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글로벌 안전통화에 해당하는 미국 달러화와 엔화 가치는 폭등했다. 주요 6개국 통화가치 대비 미국 달러화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전일 대비 2.10% 폭등했고, 엔화 가치는 한 때 달러 당 100엔 선이 무너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브렉시트의 영향력에서 점차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이 기준금리 인하와 국채 및 회사채 매입을 통해 수백조원 돈을 풀기로 하는 등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유동성 공급에 나서고 있을 뿐 아니라 브렉시트의 충격이 과거 글로벌 금융시장을 강타했던 금융위기나 재정위기 등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브렉시트 직후에는 주식과 원화 가치가 급락하고 채권 값은 급등하는 등 충격이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안정을 찾았다. 금융감독원이 8월 7일 내놓은 외국인 자금 동향에 따르면 지난 7월 한 달 동안 외국인들은 국내 자본시장에서 4조7,000억 원을 순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식과 채권의 순매수 규모는 각각 4조1,000억 원과 6,000억 원에 이른다는 점에서 브렉시트 이후 주요국 금융시장 불안 때문에 이탈한 자금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한국을 비롯한 이머징마켓으로 이동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7월 2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 또한 소비심리의 반등과 경제상황에 대한 가계 인식의 개선을 보여준다.

초대형급 태풍인줄 알았던 브렉시트는 잠시 호우를 뿌렸던 약한 열대성 저기압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글로벌 금융시장과 세계경제에 대한 브렉시트의 후폭풍은 단기보다는 장기적으로 더 커질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분석에 따르면 브렉시트의 심각성은 ‘유럽연합 단일시장(European Single Market)’의 훼손에 있다. 영국과 잔여 EU 국가들 사이에서 이루어질 이혼 합의서가 최선의 대안을 도출한다 해도, 단일시장 이념이 상처 입는 것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로 인해 영국과 잔여 EU 국가들 사이의 교역과 투자는 위축될 것이다. 또한 그 위축의 여파는 북미를 거쳐 전 세계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경로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게 될 교역과 투자의 위축 규모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 예측하기 어려울 뿐더러 그 위축이 세계 경제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가 극히 불확실하다는 점이 브렉시트의 진짜 문제라는 것이다.
 
결정적 문제는 ‘이주민’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유럽연합 단일시장’은 유럽연합의 전신으로 1957년 창설된 유럽경제공동체(EEC)에서부터 추구된 이념이다. 단일시장 이념은 ‘4개의 자유(four freedom)’라 일컬어지는 재화(goods), 용역(services), 자본(capital), 그리고 사람(people)의 자유로운 이동에 기초한다. 사실 유럽연합의 창설과 확대과정에서 논의, 확정하고 비준한 조약의 대부분은 ‘4개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와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4개의 자유’가 현실에서 완전히 실현된 적은 없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원리의 확장과 함께 단일시장의 이념은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멀지 않은 장래에 실현될 것으로 여겨졌다.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논란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재화와 용역, 그리고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은 그럭저럭 이루어졌다. 하지만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은 어떠했나? 당초 유럽연합에서 추구한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은 경제적 차원에 초점을 둔 것이었다. 즉 생산요소인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말한 것이다.

하지만 재화와 용역, 자본과는 달리 노동은 그것을 행하는 사람, 즉 노동자로부터 분리될 수 없기에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은 ‘노동자의 자유로운 이동(free movement of workers)’을 의미할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의 자유로운 이동’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자, 현재에는 노동을 하지 않지만 과거에 했거나 미래에 할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 즉 ‘시민의 자유로운 이동(free movement of citizen)’이 논란거리로 등장했다. 또한 ‘노동자의 자유로운 이동’이 ‘시민의 자유로운 이동’으로 전환한 순간 생산요소와 관련한 경제적 차원의 문제는 더 크고 복잡한 사회적, 정치적 차원의 문제로 확장되었다. 가령 노동자의 지위에서 파생하는 권리는 취업과 납세, 사회보장과 관련하여 정부와 고용주에 의해 행해질 수 있는 각종 차별로부터의 보호에 국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민으로서의 권리는 취업의 기회를 찾고, 투표를 비롯한 정치활동에 참여하고, 나아가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필수적인 각종 복지 급여를 받는 것까지 확대된다. 권리라는 것이 나누면 줄어드는 것은 아닐진대, 이주민이 누릴 권리들이 원주민의 몫을 축소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여러 실증적 연구결과들이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이 임금과 취업에 끼친 영향이 극히 미미하다는 것을 밝혀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독립당을 비롯한 유럽연합 각국의 극우정당은 이주민이 원주민의 취업기회와 복지 급여를 빼앗아간다는 정치적 레토릭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제도화된 주요정당들은 물론 지식인들도 이 문제에 대해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한 바는 거의 없다. 그런 와중에 무책임한 영국 정치엘리트들의 행동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고, 실업자, 빈민, 노인, 중소도시와 농촌 거주자가 기름에 불을 붙였다. 브렉시트 국민투표의 핵심 아젠다가 이주민 문제라는 점은 투표 결과를 분석한 영국 공공정책연구소 보고서의 첫 문장에도 명료하게 표현되어 있다 1) “결국 문제는 이민이야, 바보야(In the end, it was immigration, stupid)”.
 

 
브렉시트는 또 하나의 이중운동이다
 
이런 맥락에서 브렉시트를 보면 낯설지 않다. 과거에도 유사한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력을 상품으로 만들고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하는 것을 적극 옹호하는 흐름과 그것을 반대하는 흐름 사이의 대립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성립한 이후 언제나 존재해왔다. 칼 폴라니(K. Polanyi)는 <거대한 변환; 우리 시대의 정치적 경제적 기원>에서 토지와 화폐, 노동을 상품화하고 사회를 시장화하려는 운동과 그것을 저지하려는 운동 사이의 작용과 반작용이 우리 시대, 즉 자본주의의 전개과정이었다고 말한다. 또한 대립적인 이 두 개의 운동을 이중운동(double movement)으로 개념화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복지제도들에는 노동의 상품화를 둘러싼 이중운동의 흔적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현대적 공공부조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빈민법의 궤적은 이런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16세기 초 영국에서 만들어진 엘리자베스 빈민법부터 17세기 중엽의 정주법까지 대다수의 빈민법들은 ‘노동자의 자유로운 이동’ 억제를 최우선의 목표로 했다. 농촌에서 도시로의 ‘노동자의 자유로운 이동’이 초래할 기존 질서의 훼손은 그 시대 정치권력을 가진 봉건귀족들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력한 조치들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자유로운 이동’을 막기는 어려웠다. 자본주의 발전의 전제조건은 노동력의 상품화이고, 노동자의 자유로운 이동은 노동력 상품화의 필요조건 아니던가. 노동력의 상품화, 그리고 사회의 시장화를 정당화하는 규범과 가치, 그리고 제도의 확산은 자본주의 질서의 비중을 키웠다.

사회의 시장화에 대한 또 한 차례의 반격은 18세기 말 잉글랜드 남부 버크셔 주에서 농촌의 농업노동자에게 최저생활수준의 임금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전국적 차원에서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한 노동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은 도시와 농촌의 심각한 임금격차를 파생하였다. 도시에서는 임금의 상승이, 농촌에서는 실업과 빈곤의 증가가 심각해졌고 그에 따라 농촌에서는 폭동이 발발하였다. 대안은 ‘노동자의 자유로운 이동’을 전면화하거나 시장화로부터 농촌사회를 지킬 수 있는 댐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지주와 교회가 지배하는 농촌지역에서 선택한 대안은 당연히 후자였다. 스핀햄랜드법(The speenhamland Act)은 지주에게 과중한 부담을 지우지 않고, 농촌의 기반을 지키고, 전통적 권위를 강화시키고, 농촌 노동력의 도시로의 유출을 저지하고, 농촌 임금의 상승을 꾀한 반격이었다.

봉건귀족과 지주, 교회가 주도했지만 노동의 상품화와 사회의 시장화에 대한 이러한 반격이 현실화한 배경에는 그 당시 민초들의 지지가 있었다. 가문과 지역, 말과 신분, 종교에 기초하여 정체성을 획득한 그 시대의 민초들에겐 다른 가문, 다른 지역 출신으로 다른 말을 쓰고 다른 교리를 믿는 다른 신분의 사람은 낯선 이주민이었다. 그 이주민에 대한 그 당시 민초들의 감정은 오늘날 영국 원주민이 국경을 넘어 몰려온 이주민에 대해 느끼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원주민이 응당 가져야 할 것을 이주민이 빼앗고 축소할 수 있다는 두려움과 공포가 이동을 제한하고 댐을 건설하는 조치들을 현실화시킬 수 있었다면 틀린 말일까? 그보다는 이주민, 즉 이민의 문제가 21세기에 일부 영국인들만이 가지는 독특한 고립주의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큰 착각 아닐까? 그렇다면 브렉시트는 ‘시장의 작용으로부터 사회를 지키려는’ 이중운동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브렉시트가 1970년대 중반 이후 지배적 이념이 된 신자유주의 붕괴의 신호탄이라는 평가는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제출되고 있다.
 

 
브렉시트, 이후가 더 중요하다
 
‘시장의 작용으로부터 사회를 지키려는’ 운동이 특정 이념이나 세력에 의해서만 주도되는 것은 아니다. 그 운동은 여러 빈민법들처럼 봉건귀족과 지주, 교회가 주도하기도 했고, 반사회주의자, 교회 반대자, 급진적 제국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가 주도한 적도 있다. 물론 사회주의자들이 주도한 경우도 있다. ‘시장의 작용으로부터 사회를 지키려는’ 운동이 언제나 성공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스핀햄랜드의 반격은 오히려 자유주의의 승리를 앞당겼다. 스핀햄랜드법 아래에서는 임금이 법률로 정해진 일정액의 가계소득 수준에 미달한다면 고용되어 있어도 구제의 대상이 되었다. 그것이 파생한 노동규율의 파탄과 재정의 붕괴는 노동력의 상품화와 사회의 시장화가 정당할 뿐 아니라 대세라는 것을 각인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자유주의의 최종적 승리를 선언한 신빈민법이 비교적 쉽게 제정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시장의 작용으로부터 사회를 지키려는’ 운동이 언제나 바람직했던 것도 아니다. 폴라니에 따르면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은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이나 미국의 사회보장법 제정과 마찬가지로 ‘시장의 작용으로부터 사회를 지키려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파시즘과 같은 운동을 우리가 용인할 수는 없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훼손하기 때문이다.

물론 ‘시장의 작용으로부터 사회를 지키려는’ 운동 중에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증진하는데 기여한 성공적이었던 것들도 있다. 19세기 말에 이루어진 사회보험의 제도화, 1935년 미국의 사회보장법 제정, 20세기 중반부터 개화한 복지국가가 그것이다. 이것들은 다른 운동들과 어떤 차이를 가지는가? 경제 불황과 대공황, 그리고 전쟁의 참상이 시기적으로 이러한 운동에 앞섰기 때문인가? 자기조정적 시장의 허구성을 쫓다 벌어진 참상들이 어디 그것들뿐이었던가. 내가 여기에서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운동들은 단절과 분리보다는 통합과 연대의 아이디어에 기초했다는 점에 있다. 이주민을 분리하고 격리하기보단 원주민을 구성하는 정체성의 경계를 확장하는 조치를 발명하고 활용했다는 점에 있다.

가문과 지역, 말과 신분, 종교에 기초하여 정체성을 획득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다른 가문, 다른 지역의 사람, 다른 말을 쓰고 다른 교리를 믿는 다른 신분의 사람을 쫓아내야할 이주민이 아닌, 함께 살아야할 원주민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이주민과 원주민을 하나로 묶는 연대의 도구가 필요했다. 종족의 관념에 기초한 공동체(ethnie)는 국민이라는 관념에 기초한 공동체(nation)로 바뀌어야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국민국가(nation state)라는 상상된 정치적 공동체의 주춧돌은 시민권이라는 아이디어였다. 가문, 지역, 언어, 종교, 신분의 이질성은 여기에 기초하여 시민의 동질성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 시민권에 기초하여 건설한 국민국가는 훨씬 큰 범위에서 ‘자유로운 이동’의 경계를 설정할 수 있었고, 시장의 작용으로부터 지켜내야 할 사회 역시 이 경계 내에서 구체화될 수 있었다. 사회보험, 사회보장법, 그리고 복지국가는 바로 이 시민권의 원리에 기초하여 시민들 사이의 연대를 추구했다.

유럽연합에서 추구한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이나 그의 반작용으로 현실화된 브렉시트, 이 두 개의 이중운동이 가지는 한계는 바로 이와 관련된다. 21세기의 이중운동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또 한 번 증진할 수 있으려면 이민자를 이주민이 아니라 원주민으로 인식하게 할 수 있는 연대의 장치를 갖춰야한다. 시민권이라는 아이디어로는 더 이상 어렵다. 시민이라는 관념은 국민국가의 지리적 경계 내에서 작동해왔기 때문이다. 시민의 개념을 확장한 세계시민(cosmopolitan)이라는 아이디어가 존재하긴 하지만, 새롭게 상상되어야할 공동체를 현실화하기에는 여전히 어설프다. 시민에 기초한 국민국가라는 공동체의 경계보다는 훨씬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할 수 있는 통합과 연대의 아이디어, 이주민을 분리하고 격리하기보단 원주민이라는 정체성의 경계를 크게 넓히는 조치, 그런 아이디어와 조치를 갖춰야 성공할 수 있다. 브렉시트가 누구의 말마따나 신자유주의 붕괴의 시발점이 될지, 아니면 스핀햄랜드법이 그러했듯이 그것의 정당성을 오히려 확장하는 계기가 될지, 혹은 파시즘과 같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훼손하는 비극의 씨앗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어떻게 귀결될지는 그런 아이디어와 조치가 제시될 수 있는지, 제시될 수 있다면 누가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에 달려있다. 우리가 브렉시트에 주목해야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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