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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과 정책 제156호_이현재_여성혐오 대항 전략의 정교화가 필요하다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6-12-09 17:45:57
  • 조회수 : 1748
현안과 정책 제156호
통상 우리 사회에서 ‘여성혐오’는 여성을 대상화하여 멸시, 배제, 혐오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IMF이후 개인들은 어떤 물질적 토대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한경쟁과 소비문화에 따른 불안을 경험했다. 여성들은 이러한 불안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경쟁력 있는 주체로 떠올랐다. 반면 남성들은 자신의 우월적 남성성을 위협하는 이런 여성들을 공포의 비체(abject)로 간주하여 혐오함으로써 불안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경쟁력을 갖게 된 여성들은 ‘미러링’, 성폭력 폭로전, 여성비하 발언에 대한 문제제기 등을 통해 여성혐오에 대항하였다. 그러나 뉴 페미니스트들의 전략은 지지만큼이나 반발에도 부딪쳤다. 물론 페미나치즘, 해일이 오는데 조개를 줍는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검열적 시선이라는 비판은 대부분 여성 멸시와 혐오를 부차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방식, 파시즘을 철폐하기 위해 파시즘의 목소리를 모방하는 페미니즘의 전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기인한다.
그러나 페미니즘 연대를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대항 전략의 정교화가 필요하다. 이에 나는 다양한 사회적 차별의 교차를 고려하는 가운데 맥락에 적절한 페미니즘의 이슈를 개발하고 그 강도와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였다. 나아가 예술과 문화적 표현이 문제가 될 때에는 정해진 답을 제시하는 가운데 비판하는 전략 이외에도, 문제의 표현을 논쟁할 기회를 제공하거나 소수자들이 불편하지 않은 방식의 더 기발한 패러디의 방식을 개발하는 등 다양한 전략이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뉴 페미니스트의 부상
 
2016년은 ‘뉴 페미니스트(이하 뉴 페미)’의 탄생을 알리는 해였다. ‘여성시대’, ‘메갈리아’, ‘워마드’ 등은 ‘여성혐오(misogyny)’를 우리 사회의 주요 키워드로 부상시켰고 그들이 대항의 전략으로 개발했던 ‘미러링(mirroring)’은 세간의 관심사가 되었다.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이 정신 이상자의 우발적 범죄가 아니라 이 사회의 여성혐오를 드러내는 사건으로 조명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흐름이 때문이었다.
물론 메갈리안들이 처음부터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호명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성폭력 폭로전, 불법 포르노 사이트 고발운동 등으로 활동을 넓혀갔고, 빠른 속도로 페미니즘의 언어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페미당당, 강남역10번출구, 불꽃액션페미 등 페미니스트 조직도 만들어 졌다. 최근 이 조직들은 촛불집회에 참여하여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비판했을 뿐 아니라 여성비하 발언이나 성추행 등 비판의 장에서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여성혐오 문화에도 경고를 날렸다.
뉴 페미들이 세력을 확장하는 속도도 놀라웠지만 그 강도는 더욱 놀라웠다. 그러나 문제는 그 세력화만큼이나 반발도 심하다는 데 있다. 왜 사람들은 이들의 주장에 반발하는가? 이 글에서는 왜 우리 사회에서 여성혐오로의 퇴행이 나타났는가를 살펴보고, 나아가 왜 남성뿐 아니라 적지 않은 여성들까지도 현재 새로운 페미니스트들이 제기하는 주장에 반발하는지를 살펴 본 후,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전략적 정교화가 필요한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시대의 불안을 여성혐오로 달래다
 
우리사회에서 ‘여성혐오’는 여성을 대상화하고 타자화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여성에 대한 조롱, 비하, 멸시, 차별, 성희롱, 성폭력 등을 모두 아우르는 말로 이해된다. 윤보라, 「김치녀와 벌거벗은 임금님들: 온라인 공간의 여성 혐오」, 윤보라 외,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 현실문화, 2015, 14쪽. 우에노 치즈코에 따르면 여성혐오는 한 마디로 남성의 “여성멸시”2)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혐오(hate)’의 감정으로까지 치달은 우리 사회의 감정적 격돌을 설명하기 힘들다. 사전적인 의미에 따르면 ‘혐오(hate)’라는 감정은 더럽거나 공포스러워서 가까이 하기에도 꺼려지는 것인데,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를 중심으로 하는 여성혐오의 발언들은 여성을 대상화하여 멸시하는 것을 넘어 여성을 혐오하고 배제하려는 감정까지도 포함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지금 여기에 여성혐오가 가시화되게 되었는가?
국내의 논자들은 작금의 여성혐오를 IMF이후 어떤 물질적 토대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들이 무한경쟁과 소비문화에 내맡겨졌다는 사실과 연관시켜 설명한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원리에 따르는 노동시장은 노동자들에게 스스로 창의적인 자기계발을 하여 더 많은 결과를 생산할 것을 요구한다. 자격증 취득, 감정 관리, 자기 변신 등 자아를 재빨리 무한하게 계발하는 자만이 경쟁에서 살아남는다. 소비문화가 삶에 중요한 요인이 된 지점도 중요하다. 소비는 곧 능력이기에 소비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아무런 기초적인 보장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들은 결국 무한 경쟁과 무한 소비의 압력을 견디기 힘들다. 따라서 불안은 신자유주의 시대, 후기자본주의 시대의 주요 정서가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무한경쟁과 소비문화는 20~30대 여성들을 기존의 성 정체성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여성들은 살아남기 위해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이를 통해 경쟁력 있는 자아를 계발하였다. 물론 여성들 역시 무한경쟁의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여성들은 능력에도 불구하고 남성 임금의 60%밖에 받지 못한다는 사실, 강력범죄의 80%가 여성들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에 더 분노한다. 게다가 소비문화에 익숙해진 여성들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성형수술, 명품, 스타에 대한 소비의 욕망으로 인해 여성들은 ‘김치녀’, ‘된장녀’라는 욕설을 듣게 되었지만, 소비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보게 된 여성들은 더 이상 겸손하고 순종적인 여성이기를 거부한다. 이들은 남성들이 멸시하기 위해 만들었던 그 착한 ‘대상(object)’이 아니다(a). 이들은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말했듯, “동일성이나 체계와 질서를 교란시키는”3) “비체(abject)” 4)이다.
경쟁력 있는 여성, 소비하는 여성의 등장은 남성의 불안을 가중시킨다. 이 여성들은 남자들처럼 당당히 자신의 욕망과 권리의 목소리를 내는 비체들이며, 따라서 우월적 주체로서의 남성성을 지키려는 자들에게는 공포로 느껴지기도 한다. 젠더 정체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성들은 도무지 과거의 언어로 포착되지도 않으며, 따라서 질서를 어지럽히는 더러운 존재로 혐오된다. 신자유주의적 경쟁으로 인한 불안이 클수록 남성들은 재빨리 과거의 위계적 젠더 질서로 퇴행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 시대에 가시화되는 여성혐오의 기제이다.
 
뉴 페미니스트가 당면한 반발
 
온라인 페미니스트들은 ‘미러링’을 통해 여성멸시와 혐오에 대항했다. 미러링이란 남성들이 사용하는 멸시와 혐오의 논리를 그대로 남성들에게 되돌려 주는 전략이다. 가령 ‘김치녀’는 ‘한남충’으로 받아치고, 여성에 대한 외모 평가는 남성 성기의 평가로 반사해 줌으로써 여성들은 자신이 남성성을 확인시켜주는 착한 대상의 거울이 아니라 이를 뒤트는 비체의 거울임을 보여주자 했다. 뉴 페미들은 온라인을 벗어나 오프라인에서도 활약했다. 최근 촛불집회에 참여한 페미니스트 단체들은 국정농단을 비판하였지만 이와 동시에 비판의 논조가 ‘여성’ 대통령에 대한 멸시와 혐오로 전도되는 것에도 즉각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발도 거셌다. 반감은 노골화되었으며,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밝히는 여성들에 의한 비판도 고조되었다. 이러한 반발을 모두 여성멸시와 혐오의 구조에 무지한 탓으로 돌리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까? 물론 성차별을 극복할 물질적 제도적 변화를 마련하는 데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으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페미들의 주장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에게 자칫 뉴페미에 대한 비판적 분석은 먹잇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페미니즘을 지지하려 하지만 뉴페미들의 전략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과 연대하기 위해서는 전략의 정교화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에 나는 새로운 페미니스트에게 제기되었던 비판을 살펴보고자 한다.

1) 페미나치즘

‘페미나치’는 페미니스트와 나치를 합친 신조어로서 강력한 목소리를 내는 페미니스트들을 비유하는 데 사용된다. 가령 일베 유저들은 메갈리안의 미러링을 보면서 그들이 여성우월주의에 따라 역차별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나치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처음부터 미러링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반발인 경우가 많다.
미러링은 모방적 젠더 패러디이다. 젠더 패러디는 젠더가 원본이 없으며 모방의 모방일 뿐임을 보여주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가령 젠더가 원본이 아니라면 여성은 남성성도 모방할 수 있다. 미러링 역시 젠더 패러디다. 미러링은 여성 멸시와 혐오의 폭력성을 그대로 모방하여 되돌려 줌으로써 남성의 목소리를 여성 역시 그대로 모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전략이다. 이를 통해 메갈리안은 남성의 목소리는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며, 여성들은 이제 더 이상 남성의 목소리에 침묵하는 착한 대상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일베는 이것을 역차별로 보지만 미러링은 차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차별하는 목소리를 철폐시키기 위해서 사용된다. 메갈리안은 나치즘을 철폐하기 위해 나치즘의 목소리를 흉내 낸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은 메갈리안의 미러링을 불편하게 느낀다. 어떤 메갈리안의 목소리는 여성혐오의 목소리와 너무도 똑같이 느껴져서 실제로 남성을 혐오하는 것이 아닌지의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메갈리안들이 미러링의 이중적 위치, 즉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차별의 목소리를 빌려 쓰는 것임을 좀 더 분명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2) 해일이 오는데 조개 줍는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 대한 비판이 “~년”, “저잣거리의 아녀자” 등 여성 비하로 흐르자, 페미니스트들은 이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 때 돌아온 반발은 해일이 오는데 조개를 줍고 있다는 것이었다. 국정농단과 부패라는 더 큰 모순을 보지 못하고 여성비하라는 작은 모순에 대한 문제제기로 물타기 한다는 지적이다. 해일이 지나가면 조개도 줍게 해주겠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어딘가 매우 익숙한 비판이다. 본질적인 것과 부차적인 것을 구분하고 전자가 해결될 때 후자가 함께 해결된다거나 전자를 해결한 후 후자를 해결한다는 사고방식은 소위 좌파 진보 세력이 오랫동안 강조했던 것이기도 하다. 최근 10여 년간 진행되었던 적-녹-보 연대를 둘러싼 논의에서도 이는 종종 나타났다. 가령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면 가부장제의 모순도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 특정 맑시즘의 입장은 가부장제의 모순을 독립적인 것으로 봐야한다거나 양자를 함께 봐야한다고 보는 페미니스트의 입장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집회에 참여한 뉴 페미들은 조개를 주운 것이 아니다. 국정농단의 해일과 함께 들이 닥치는 여성멸시와 혐오의 해일을 경고했던 것이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라는 해일이 가부장적 젠더 권력을 등에 업은 정계-재계-법조계의 합작품임을 분명히 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연대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뉴 페미들이 이러한 반발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여성’이라는 범주가 다양한 사회적 맥락에서 구성되는 한 여성들 역시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취할 수도 있음에 주목하는 가운데 국정비판과 여성비하 비판을 효과적으로 교차시킬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하고, 그 강도와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3) 검열적 시선

한 페미니스트 단체의 문제제기로 집회 주최 측이 DJ DOC의 공연취소를 결정하자 페미니즘은 다시 한 번 도마에 오른다. 뉴 페미들이 여성비하의 표현이 무엇인지를 단독으로 확정하는 가운데 검열적 시선에 따라 정치적 시비를 가리는 행위는 차이 혹은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못하는 파시즘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페미니스트들을 남성의 ‘미스터’와 달리 여성은 결혼의 여부에 따라 ‘미스’와 ‘미스 박’으로 구분되고 있으며, 특히 ‘미스 박’은 여성을 낮추어 부르는 뉘앙스를 갖고 있음을 설명하거나, 실제로 이의제기를 받아들여 공연취소를 결정한 것은 집회 주최 측인데 화살은 이의를 제기한 페미니스트들에게만 돌아온다는 점 자체가 여성혐오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DJ DOC의 노래가 음반시장에 나오는 것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그 노래가 우리의 집회에서 불리는 것이 싫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며, 따라서 민주적 공론의 장에 자신의 주장을 표현한 뉴 페미의 행위는 사법적 검열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도 아니라는 논변도 이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논변은 특히 예술과 문화의 영역에서의 표현을 어디까지 여성비하로 볼 것인지에 대한 해석이 다른 상황에서, 페미니스트들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이 규제뿐인가 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남긴다. 공연취소 이후 DJ DOC측이 ‘미스 박’은 ‘미스테이크 박’을, ‘쌔뇨리따’는 아가씨가 아니라 새누리당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해명을 내놓은 이상, 어떤 표현을 여성비하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맥락에 따른 페미니즘의 정교화
 
결론적으로 나는 대적해야할 상대와 망설이는 상대에 대한 전략은 다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온라인에서 개발된 페미니스트들의 전략이 오프라인에서도 유효할 것인지도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 오프라인에서의 ‘맥락’은 온라인과 달리 더 다양한 입장과 위치를 포함하기 때문에 그만큼 더 많은 변수를 포함하게 된다. 그렇다면 페미니스트의 주장과 전략은 그 자체로 옳은 것이 아니라 ‘맥락’에 적합한 것일 때 비로소 반발을 줄이고 연대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맥락에 따른 대항 전략의 정교화를 위해 나는 두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그 중 하나는 교차성(intersectionality)에 대한 고려이다. ‘여성’이라는 범주는 젠더뿐 아니라 계급, 인종/민족, 장애, 섹슈얼리티 등에 따른 다양한 사회적 차별이 함께 교차하는 가운데 구성된다는 점을 보자는 것이다. 당면한 사회적 맥락에서 여성혐오와 더불어 어떤 차별과 부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보자는 것이다. 이것은 왜 여성들이 멸시와 혐오의 구조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한 목소리를 내지 않는가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이미 뉴 페미들은 여성비하와 더불어 장애인 및 성소수자 비하에 함께 대항하는 등 이미 사회적 차별의 교차성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계급 또는 부패가 중요한 차별의 원인으로 떠오를 때 여성들은 여성으로서의 모순에 둔감하게 될 수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교차성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교차성을 주장하는 강도와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나는 거부나 비판 이외의 다른 전략도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비판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특히 예술이나 문화적 수행의 맥락에서 어떤 표현이 여성비하인지 아닌지 자체가 논쟁이 될 때, 그에 대한 답을 미리 내리고 이를 거부하기보다 그 답을 찾아가는 논쟁의 장을 마련하는 것 자체가 더 중요할 수 있다. 답을 미리 내리는 행위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자유가 제한된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논쟁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페미니즘의 이슈는 더욱 확장될 수 있으며 사람들은 스스로 변화할 여지를 가질 수도 있다. 맥락에 따라 더 나은 패러디를 제안하거나, 어떻게 하면 더 좋겠다는 논조로 나가는 전략도 필요하다. 가령 DJ DOC의 노래를 거부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가사 중 문제가 되는 ‘미스 박’의 부분을 더 기발한 표현으로 개사하여 부르는 방법도 있겠다. 이것은 연대의 폭을 넓히는 방식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제안하고 있듯 혐오나 비하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패러디한 가수의 노래를 제안하는 방법도 유용하다.
 

 
  • 윤보라, 「김치녀와 벌거벗은 임금님들: 온라인 공간의 여성 혐오」, 윤보라 외,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 현실문화, 2015, 14쪽.
  • 우에노 치즈코, 나일등 옮김,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은행나무, 2010, 37쪽.
  • 줄리아 크리스테바, 서민원 옮김, 『공포의 권력』, 동문선, 2001, 25쪽.
  • “abject”는 아님을 뜻하는 접두어 “a”에 “object”를 합쳐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기존의 언어로 규정되지 않는 존재, 기존의 안팎의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 경계에 구멍이 있음을 상기키는 존재인 비체는 더러움과 공포의 대상으로서 혐오되어왔다는 것이 줄리아 크리스테바, 마사 누스바움 등의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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