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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증세 제대로 하기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3-08-27 10:24:45
  • 조회수 : 1757
한겨레 오피니언 [세상 읽기] 부자증세 제대로 하기
한국의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AS모나코를 알 것이다. 한때 박주영이 뛰었던 프랑스 리그 소속 팀이다. 지금 모나코의 스타는 인간계 최고라는 라다멜 팔카오다. 모나코는 올여름 약 900억원에 이르는 거액의 이적료를 주고 지난 시즌 스페인 리그에서 (신계에 속한 메시와 호날두는 논외로 하고) 최고의 활약을 펼친 팔카오를 데려왔다. 팔카오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시즌 개막부터 경기마다 골을 기록하며 모나코를 2연승으로 이끌고 있다. 그런 팔카오가 이적설에 시달리고 있으니 무슨 영문인가? 모나코의 공격적 선수영입에 위협을 느낀 프랑스 구단들이 소득세가 없는 모나코의 선수들에게도 최고세율이 75%나 되는 프랑스의 소득세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들고나왔기 때문이란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사회당 정부가 출범한 이래 부자증세는 큰 논란이 되었다. 보수언론에서는 프랑스의 부자들이 ‘세금폭탄’을 회피하기 위하여 대규모로 프랑스를 이탈한다는 보도를 해댔다. 특히 유명 배우 드파르디외가 러시아로 ‘세금망명’을 한 일은 인구에 회자되었다. 그런데도 프랑스 정부는 부자증세 정책을 굳건하게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부자들이 다 떠나서 나라가 망하기는커녕 최근 프랑스 경제는 모처럼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제로 ‘세금망명’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한국을 떠나는 이민자들에 비하면 프랑스를 떠나는 국민은 극소수다. 드파르디외의 경우도 단순한 세금회피보다는 사르코지의 친구로서 올랑드에게 정치공세를 했다고 한다.
물론 75%의 소득세는 보통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한 해에 거의 15억원 이상을 버는 극소수에게만 적용된다. 그래도 75% 세율은 너무 높지 않은가. 하지만 미국만 해도 레이건의 부자감세 전까지는 소득세 최고세율이 70%였다. 케네디의 감세 이전에는 무려 90%를 웃돌았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사실은 이런 높은 세금이 자본주의의 황금기라고 일컬어지는 고도성장을 이루는 데 방해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자들은 국가가 돈을 필요로 할 때 세금을 낼 여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로부터 가장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다. 부자에게는 하찮은 액수의 돈이라도 서민을 위해서 아주 값지게 쓰일 수 있다. 이것이 부자증세의 도덕적 정당성이다. 문제는 부자들의 세금회피다. 세율이 높아지면 소득을 국외로 빼돌리거나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신고소득을 줄이려고 하고, 아예 소득창출 활동을 그만둘 수도 있다는 점이다. 세율 인상에 따른 신고소득의 감소를 조세탄력성이라고 한다. 이것이 부자증세의 실질적 어려움이다.
그런데 실제로 조세탄력성이 얼마나 될까? 부자들은 걸핏하면 “세금을 올리면 다른 나라로 가버리겠다”고 위협하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는 거의 없으며, 세금이 높으니 차라리 일을 그만두겠다는 사람도 별로 없다. 복잡한 조세감면 제도만 없다면 조세탄력성은 별로 크지 않을 것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피터 다이아몬드와 소득양극화에 관한 가장 탁월한 연구자인 에마뉘엘 사에즈가 지난해 공동으로 발표한 논문에서는 조세탄력성에 관한 기존의 연구들을 고려하여 소득세 최고세율을 76%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라는 미망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중산층이 붕괴되고 양극화가 심화된 현실, 또한 조세의 소득재분배 기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6분의 1밖에 되지 않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과감한 부자증세가 당연한 결론이다. 소득세 최고세율 50%도 좋고 부유세도 좋다. 부자증세, 이제 제대로 해야 할 시점이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한겨레 등록 : 2013.08.19 18:41수정 : 2013.08.19 2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