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정동칼럼] 손열 | 연세대 국제대학원장
40년 후 미국과 중국은 신형대국관계란 이름으로 새롭게 만나고 있다. 중국의 빠른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란 세력전이 현상이 초래하는 상호불신과 대립을 막고 안정된 관계를 수립하려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여전히 난제이다. 아베 정권은 미국과 군사동맹을 강화하여 중국에 맞서고자 한다. 지난 3일 미·일 안전보장협의위원회(2+2)에서 미국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포함한 방위력 증강 구상을 환영한다며 아베 총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제 일본은 ‘더 큰 책임(greater responsibility)’을 수행하기 위해 군사력을 보다 자유롭게 사용할 여건을 마련했다.
재정압박에 시달리는 미국은 아시아 재균형을 외치면서도 축소정책을 취해야 하는 형편이다. 40년 전 축소정책을 펼치면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을 활용했지만, 이제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활용하고 있다. 문제는 일본에 대한 병마개 역할이다. 중국은 지난 미·일 공동선언에 대해 저우언라이가 그랬듯이 군국주의 부활이라 맹렬히 비난하고 나왔다. 아베 정권에 군사대국화를 용인하는 것은 우파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라는 것이다.
미국도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초래할 위험성을 알고 있다. 지난 만남에서 케리와 헤이글 장관은 지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에 참배하여 야스쿠니를 가는 아베 정권의 우익성향에 견제구를 던졌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중국과 북한 위협에 대한 현실주의적 대응으로 받고 있다. 이제 미·중 양국은 40년 전처럼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우경화 관계에 대한 인식의 격차를 조정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한국은 더욱 곤혹스럽다. 미국이 일본 편을 들었고 병마개는 느슨해졌다. 연말이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신설과 함께 국가안보전략서와 신방위대강이 나오면서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향한 국가전략이 실체를 드러낼 것이다. 우리의 전략적 고민은 아베 정권이 동맹 강화와 함께 군국주의는 아니더라도 조심스럽게 자주(自主)노선을 추진할 기반을 갖추어가는 데 있다. 과거 영·일동맹의 일방적 파기의 쓰라림을 기억하고 있는 아베 정권은 미·일동맹이 영원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고 미국의 쇠퇴 추세 속에서 당장은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의 힘을 빌려야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홀로서기가 필요할 것이라 믿는다.
일본이 동맹과 자주 병진노선을 본격화한다면 동북아 전략질서는 미-중-일 삼각구도로 재편될 가능성이 있고 병마개 속 일본을 상정한 한국의 전략에 중대한 수정을 가할 것이다. 한-미-일 안보협력은 동요하고,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은 출범과 동시에 풍랑을 맞을 것이다. 이제 일본 문제는 한·일관계 속에서 뜨겁게 다룰 일이 아니라 동북아 전략환경의 변화 속에서 차갑게 풀어야 할 때이다.
입력 : 2013-10-24 22:25:55ㅣ수정 : 2013-10-24 22:2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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