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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남 검찰총장께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6-11-29 11:04:25
  • 조회수 : 1301

경향신문 오피니언 [유종일의 경제 새판짜기]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자리에서 수고하시는 총장님께 우선 노고를 치하하고 격려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십년 전쯤 스치듯이 인사 한두 번 했을 뿐이지만, 그래도 지인이랄 수 있는 총장님께서 살아있는 권력,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맞서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실규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사실이 반갑습니다. 저는 당신이 우연히 서 있게 된 촛불혁명의 중심부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 책무를 최선을 다해 감당해주길 바랍니다.  

 
촛불을 켜 든 100만여 시민들의 의지와 이를 응원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염원은 단순합니다. 법을 어기고 나쁜 짓을 하면 제아무리 지위가 높고 돈이 많은 자라고 하더라도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검찰 권력을 포함해서 모든 정부 부처의 공권력은 민주적으로 결정된 공익을 위해서 행사되어야 하며 결코 어느 누구의 사익을 위해서도 사용되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공권력은 국민의 인권과 자유를 보호하고 정의를 세우기 위해 사용되어야 하며 결코 우리가 선출한 공복이 지배자로 둔갑하여 국민 위에 군림하고 국민을 협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국민이 주권자이고,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주권재민의 원칙을 실현하자는 것입니다. 촛불혁명은 곧 시민혁명입니다.


사실 작년 말 김수남 검찰총장 임명을 언론보도로 접하면서 기분이 별로였습니다. 솔직히 박근혜 정권에서 고위직에 오른 어떤 누구도 좋게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정권은 이미 실정을 넘어 폭정으로 치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몰랐다고요? 이미 정부 운영과 정책 결정 방식에서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3년이나 지속되지 않았던가요? 정윤회 문건 파동 이후 시중에는 이미 온갖 소문들이 나돌고 있지 않았던가요?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과연 당신은 지금 살아있는 권력에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일까요? 언론에서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박근혜·최순실 일당의 온갖 낯부끄러운 비리에 이미 ‘벌거벗은 임금님’이 되어버린 대통령,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광장에 모여든 100만 촛불의 분노와 국정지지율 5%라는 싸늘하게 돌아선 민심 때문에 이미 힘이 빠져버린 대통령은 더 이상 살아있는 권력이 아니기에 수사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이미 권력의 치부가 드러날 대로 드러난 상황에서도 최순실의 귀국 후 즉시 체포 대신 31시간 동안 돈을 찾고 수사 대응책을 궁리하도록 해준 것은 무슨 까닭이었나요?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오죽하면 검찰이 진짜 최순실은 빼돌리고 가짜 최순실을 데려와서 쇼를 한다는 주장이 인터넷을 달구었을까요? 지난여름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의 비리가 수도 없이 터져 나올 때도 수수방관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가 ‘팔짱 낀 채 웃으며 조사받는’ 사진은 또 뭔가요?


모두가 힘의 논리와 조직의 관행을 뒤집을 수는 없고, 모두가 영웅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지휘 아래 검찰이 보여주었던 실망스러운 모습들, 어느 정도는 이해합니다. 가이드라인 수사, 꼬리 자르기 수사, 기획수사, 이런 것들을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많이 봐왔습니다. 설사 개혁 의지가 있더라도 하루아침에 이걸 당신이 바꿀 수는 없었겠지요. 채동욱 전 총장만 해도 정권의 가이드라인을 거부한 후에 망신을 당하고 쫓겨났으니까요.


이제라도 진실과 정의, 민심과 법의 편에 서서 분투하는 것을 높이 평가합니다. 만약 검찰이 끝까지 대통령의 편에 섰다면 나라의 혼란과 국민의 희생은 훨씬 더 컸을 것입니다. 지금 검찰은 오욕의 역사를 명예의 역사로 전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났습니다. 검사라는 직위는 뛰어난 능력과 각고의 노력을 바탕으로 얻는 각별한 것입니다. 당신의 지휘 아래서 대한민국 검사가 더 이상 비리와 출세욕의 대명사가 아니고 정의감과 자부심의 표상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곧 특검이 출범하겠지만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주십시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권력이 죽을 때까지 눈치를 보면서 좌고우면하지 않고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정의의 칼을 빼 드는 검찰로 변신하는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 살아있는 최고의 권력은 누구일까요? 박근혜·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 사건 와중에 최고의 이익을 거둔 자는 누구일까요? 지난번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재벌들이 사실은 엄청난 특혜를 챙겼습니다. 특히 국민연금의 의심스러운 도움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성공한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면서 8조원 가까운 돈을 절약했습니다. 중간수사 결과 발표에 재벌기업들의 뇌물공여가 적시되지 않아 실망했던 저는 엊그제 검찰이 삼성그룹과 국민연금 등을 압수수색했다는 소식에 다시 기대를 품게 되었습니다. 또한 국회의 국정조사 특위가 국민연금 관계자를 소환하지 않기로 했다는 황당한 소식을 접하면서, 검찰에 더욱 기대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래서 경제칼럼인 이 지면에 당신께 보내는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은 것입니다.


정치권력 이상으로 대한민국 사회를 주무르는 게 재벌권력입니다. “서로 구린 놈끼리 가야지 냄새를 풍겨도 개안치 않겠나. 이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더노.”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영화 <내부자들>에서 재벌회장이 한 말입니다. 삼성X파일 사건에서 드러나기로는 삼성그룹에서 검찰간부들에게 정기적으로 뇌물을 줬다고 했지요. 그래서인가요? 과거 검찰은 재벌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명백한 범죄를 불기소 처분하기도 하고, 압수수색 전에 미리 통보해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재벌권력에 대해 추상같은 검찰을 보고 싶습니다. 기존의 법만 정확하게 지켜도 경제민주화의 반 이상은 이루어집니다.


촛불혁명은 타락한 정치권력에 대항해서 시민주권을 세우려고 일어났지만, 이 혁명이 완성되려면 반드시 타락한 재벌권력을 해체하고 투명한 경영, 공정한 경쟁의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촛불혁명 이후에도 헬조선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코 완성된 혁명일 수 없습니다.

 

건투를 기원합니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경향신문 입력 : 2016.11.24 20:32:01 수정 : 2016.11.24 20:35:16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1242032015&code=990100#csidx3d42d837ceeef05a5b8f2f7b6b4795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