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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비용 2부[3] '언론 암흑기' 만든 이명박 정부 5년_"MB '언론 장악' 칼부림…목표는 따로 있었다"_프레시안_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4-12-16 17:51:07
  • 조회수 : 916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던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한 경제 정책은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왔고, 향후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한 정권이 추진한 정책에 대한 사후적 평가는 그 집권세력의 정치적 성향을 떠나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국민 혈세를 제대로 썼는지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이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과 지식 협동조합 '좋은나라'(이사장 유종일)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직전 정부인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주요 경제 정책에 대한 평가로 'MB의 비용'을 공동 기획, 연재하고 있다. 1부에서는 4대강, 자원외교, 기업 비리, 원자력 발전소 비리, 한식세계화 등 주요 정책이 끼친 손실과 관련해 구체적인 비용을 추산해봤다.

2부에서는 비용으로 추산하기는 힘들지만 명백하게 '손실'을 끼친 정책에 대해 논의한다. 경제정책 범주를 넘어서 통일외교, 정치 등 국가 시스템과 관련된 정책 의제들에 대해 전문가들이 어떤 평가를 하고 있는지 들어보고자 한다. 첫 번째 대담에선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평가한 데 이어 두 번째 대담에선 임기 내내 '낙하산'으로 점철된 인사정책에 대해 짚어봤다.

 

지난달 21일 세 번째 대담에서는 김신동 한림대 교수와 최상재 전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이 이명박 정부 임기 내내 이어진 '언론 장악' 시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회는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이 맡았다.

▲'MB의 비용' 세 번째 대담에서는 김신동 한림대 교수와 최상재 전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이 이명박 정부 임기 내내 이어진 '언론 장악' 시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프레시안(최형락)

▲'MB의 비용' 세 번째 대담에서는 김신동 한림대 교수와 최상재 전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이 이명박 정부 임기 내내 이어진 '언론 장악' 시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프레시안(최형락)


"MB에게 언론은 도구… 목표는 따로 있었다"

프레시안 : 보수 진영 입장에서 볼 때 이명박(MB) 정권의 대표 업적으로 남북관계 파탄, 부자 감세, 4대강 사업 등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언론 장악이다. 정연주 전 한국방송공사(KBS) 사장 등 다수 언론인을 해임하면서 방송의 공영성을 망가뜨렸고, 미디어산업육성을 명목으로 미디어법을 통과시켜 보수 위주의 담론 질서를 강고하게 구축했다. MB 정부 시절의 언론 정책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일단 총론적인 설명을 부탁한다.

최상재 : 단적인 예가 국제언론단체 프리덤하우스가 매년 발표하는 자유언론지수다. 노무현 정권 마지막 해였던 2007년 순위가 37위였는데 2008년 47위로 뚝 떨어졌다. 2009년에는 문화방송(MBC) PD수첩 제작진 체포건, MBC-KBS 기자·피디(PD) 해직사건으로 69위까지 내려앉았다. 이후 약간 회복했다가 지금 다시 68위로 떨어졌다. 노무현 정권 후반부 기자실 폐쇄건 전에는 해외 취재 나가서 일찍 이민 간 분들이 "한국은 언론 자유가 없다"고 하면 우리는 "옛날 이야기다. 지금 한국 언론자유도는 세계 최고수준이다. 미국도 국익 관련 보도 통제하고, 일본도 천황 기사는 통제하지 않느냐. 우리는 과도할 정도로 정부 비판을 많이 한다"고 했다. 대부분의 언론인들도 1987년 이후 언론 환경이 자유로워졌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는 못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권 바뀌는 것 자체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MB 정부는 정말 실용적인 정부가 될 거라고 예측했다. 그런데 완전히 딴판이었다. 한마디로, DJ(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며 민주화되던 언론을 그 전으로 되돌렸다. 상당한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는 걸 알면서도 그걸 감수하고라도 할 과제와 목표가 있었다. 언론 장악은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었다. 궁극적인 목표는 4대강, 자원외교, 공공부문 민영화였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언론을 손을 본 것이다. 그런데 예상보다 언론계 저항이 컸고, 그래서 언론과의 전쟁 때문에 정작 하고 싶은 걸 다 못하고 임기가 끝났다.

프레시안 : MB 정권 이후엔 언론 상태가 어떻다고 보나.

김신동 : 어떤 정권이든 퇴행을 목표로 삼지는 않을 거다. 결국 언론을 도구화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이런 퇴행적인 결과를 만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왜 언론을 도구화할 필요성을 느꼈을까. 바로 '제도의 습관(institution habit)' 때문이다. MB 정권을 리드하던 사람들이 기억하던 제도와 1987년 이후 한국 사회가 새로 개척한 제도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었다. MB 정권을 이끈 사람들은 새롭게 만들어나가고 있는 그러한 제도를 이해하지도, 공감하지 못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갖고 있는 제도의 기억이란 1970년대 관이 주도하는 지시적이고 일방적인 발전주의 모델이었다. 그러니 언론이라는 것도 정권이 경쟁적으로 설득해야 하는 그런 상대가 아닌, 정치 권력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 정도로 이해한 것이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제도도 있다. 대통령이 공영방송 사장을 다 임명하는 구조이지 않나. 제도가 걸러주지 못하니, 대통령의 선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언론을 도구화했다는 데 두 분 다 동의하는 것 같다. 그런데 MB 정부가 정연주 강제 퇴임, 미디어법 시행 등 일련의 언론 탄압을 했던 데에는 더욱 뚜렷한 동기가 있었던 것 같다. MB 정부가 집권 초기 광우병 촛불시위로 애를 먹지 않았나. 그리고 촛불시위를 촉발하게 한 게 다름 아닌 방송, MBC 'PD수첩'이었다.

최상재 : MB가 집권하기 전부터 한나라당은 앞선 두 번의 대선 패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상파 방송을 지목했다. 집권하면 가장 먼저 손댈 대상으로 간주했다. 아니나 다를까 MBC 'PD수첩' 광우병 편이 나오고 나서 4~5개월 이상은 정권이 흔들릴 정도로 위기가 왔다. 다행히 시위 도중 큰 인명 사고는 없었지만, 사망 사건이라도 나왔으면 아마 역사가 달라졌을 거다. KBS를 장악하기 조금 전에는 YTN에 구본홍 사장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냈다. 방송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된 것이다. YTN 낙하산 사장 취임 이후부터 촛불시위 진압에 성공했다고 판단하면서 MB는 그해 8~9월 정연주 해임 작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공영방송 체계를 손을 보면서 차츰 보수정권에 적합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사실 그때 난 '민주개혁진보 진영에서는 대체 두 번의 정권 동안 대체 뭐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고 해서 약간의 변화는 있었지만, 허망하게도 MB 정부 이후 단 몇 개월 만에 방송체계가 급속도로 보수화됐다.

▲김신동 한림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김신동 한림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군부 독재 시절 언론인 부역자들, 청산됐어야 했다"

프레시안 : MB 정부가 들어설 당시, '이미 우리 사회는 두 번의 수평적 정권 교체를 했기 때문에 우리 민주화가 안정적인 단계에 들어섰다. 그러니 MB 정부가 들어서도 크게 문제없을 것'이라고 한 정치학자들이 많았다. 이론적으로는 방송의 독립성이 지켜지는 게 맞았어야 했는데, 아니었다. MB가 위법임을 알면서도 언론 장악을 밀어붙인 건 정권유지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을까.

김신동 : 큰일이 없는 한 임기까지는 대통령직이 유지가 된다. 헌법을 고치지 않는 한. 결국 '계급이익의 충돌'이라고 보는 게 정답인 것 같다. 두 번의 진보정권을 지냈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뿌리내렸다고 보는 것은 굉장한 낙관주의다. 프랑스는 지금이 제5공화국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1958년 샤를 드골이 정권을 잡을 때까지 근 200년 동안 정권이 5번이 뒤바뀐 것이다.

우리도 반동의 시기를 가졌으니, MB 입장에서는 국민 여론이나 전문성과는 무관하게 최시중 씨나 김재철 씨를 낙하산 임명하는 게 큰 갈등이 없으리라고 봤을 것이다. 그전 두 정권이 정연주 사장을 내정한 것과 자기가 김재철 임명하는 것과 똑같다고 본 것이다. 정연주가 걸리적거리니까 바꾸겠다는 건 당연한 거였다.

이건 계급 차원의 문제다. 구체적인 정책이라는 건 결국 특정 섹터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다. 국민 전체의 이익도 있지만 그보단 계급적 이익을 대변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사실 우리가 다 알고도 MB를 선택했다. 2007년 대선 당시 우리는 이상한 희망적 아포리즘에 빠져있었다. '실용주의'라는 것이었다. MB는 당성을 떠나 실용적인 경제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이상한 착각 속에 모두 빠져있었다. 그러나 집권 후 백일하에 그게 잘못된 생각이란 게 드러났다. 그건 이 사회가 충분한 사회적 경험을 축적하지 못한 데서 온 결과다. 그런 현상이 다시 또 반복되지 않는다는 법도 없다.

프레시안 : MB가 자신이 최시중을 쓰는 거나 노무현이 정연주를 쓰는 거나 다름 없다고 생각했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재밌는 현상이, 노무현 정권 당시엔 언론인 해직 같은 극단적인 사례가 없었어도 이른바 '조중동'에 대한 언론 탄압이라는 담론이 유행했다. 오히려 진짜 언론 탄압 국면이었던 MB 정권 땐 언론 탄압이 사회적 의제로 나오지 않았다. 이같은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국민들의 의식의 문제인가. 야당의 문제인가. 언론의 문제인가.

김신동 : 우리 공영방송이 두 진보정권을 거치면서, 하루아침에 소위 민주주의적 공영방송이 된 것처럼 보여졌다. 그러나 사실 공영방송의 역사는 정말 오욕의 역사였다. 박정희 정권 이래 군부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했다. 그러나 과연 독재가 물러났을 때 그럼 독재 나팔수였던 공영방송도 체제개선을 했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독일은 나치 때 부역한 언론인이 전쟁 후 숙청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독재 때 나팔 불던 사람들이 처벌 받지도, 책임지고 나가지도 않았다.

민주화에 접어드니 독재 부역자들은 민주화로 노선을 갈아타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2선으로 숨었다. 소위 말해 투쟁적이었던 사람들과 자리 교대하고 2선에서 안주했다. 먼저 내부 정리가 있었어야 한다. 그런데 민주 정권의 딜레마가 있었다. 막상 집권을 했지만 정권을 돌볼 자원이 없었다. 결국 DJ가 꺼내 든 카드는 '화합'이었다. 아무도 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굉장히 현명한 판단이었다. 또 조중동의 일방사격에서 막아 줄 도구가 공영방송이기도 했다. 그래서 벌을 주거나 바로잡지 않고 오히려 상을 줬다. 그래서 방송이 무소불위의 힘,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되었다. 국회의원, 심지어 대통령조차도 눈치를 보는 공영방송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다 다시 정권이 바뀌자마자 또 반대로 바로 자리바꿈 현상이 일어났고, 민주 진보 진영이 역화살을 맞은 거다.

프레시안 : 진보 정권 스스로 쟁취한 정권이 아니기 때문이었을까.

최상재 : 언론인 독재 부역자 문제는 해방 이후 우리 사회가 친일파 청산을 못 하는 모든 문제점과 궤가 거의 같다. 당연히 독재 정권에 부역한 언론인이 청산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했다. DJ 정권 때도 합리적이라고는 하나 보수에 가까운 박권상 사장을 KBS 사장에 앉혔다. 내부 개혁이 아니라 타협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 시대정신은 과감한 청산이었어야 했다.

미디어법 투쟁할 때도 가장 대응하기 어려운 게 한나라당 의원들이 '다 지난 정권 때 발의된 것'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 이미 종편 얘기가 나왔다. 우리는 '방송계 전체를 정글로 만들 거다. 어찌 민주개혁 정권이 할 일이냐'고 물었었다. 또 차세대 성장동력이라면서 '통방 융합'을 외쳤다. 이건 기본적인 방송 기능을 무시하거나 다가올 재앙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은 탓이었다. 지금 야권은 그런 과거를 반성해야 한다.

자유무역협정(FTA)도 마찬가지다. 혹여 FTA가 필요한 상황이 오더라도, 이쪽 정부가 아니라 저쪽이 집권했을 때 할 일이었다. 그에 따른 갈등, 모순 생기면 그걸 기반으로 정권 바뀌어야 하니까. 노무현 정권 때는 탄핵 이후 과반 의석도 갖고 있었으니 민주개혁 진영이 사회 변혁할 새로운 질서에 도전해야 하는데, 이렇게 실용 정부니 대연정이니 하면서 좌회전 깜빡이 켜면서 스스로 우경화했다.

▲최상재 전 언론노조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최상재 전 언론노조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미디어법 낳은 민주 정권… 산업 이전에 '언론 퇴행' 고려했어야"

프레시안 : 자연스럽게 미디어법 얘기로 넘어가는 것 같다. 노무현 정권 때 실제로 미디어법이 논의 됐었나.

김신동 : 맞다. 그러나 종편 논의가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이 있었다. 어디 정권에서 시작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시작은 서로 동의했지만, 결론이 전혀 엉뚱하게 떨어졌다. 왜 이렇게 일이 꼬였는지를 추적하는 게 중요하다.

종편 도입은 정권이 사업으로 한 건 아니었다. 각종 뉴미디어가 등장하는 등 방송 통신 환경이 지난 20년 사이 급변하면서 산업이 재조정이 되고 있다. 한국은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언론통폐합 조치를 단행하면서 MBC-KBS 쌍두 체제를 탄생시켰다. 알다시피 언론 장악을 하면서 유럽식 공영방송이라고 뒤집어씌운 것이었다. 그러나 이건 유럽식과 관련 없는 독재 방식이었고, 그 과정에서 한국의 공영방송이 전 세계적으로 봐도 힘이 아주 센 방송이 된다. 그런 기조가 90년대로 들어오면서도 유지되고, 민주화가 되면서 돈만 많이 버는 게 아니라 이제는 민주 투사로 화관까지 뒤집어쓰게 됐다.

또 동시에 영상산업진흥을 한다, 미래산업에 도움이 된다, 이런 명분으로 외주제작제도가 도입하면서 많은 프로그램이 외주화됐다. 대형 방송사의 '갑질 관행'은 이렇게 시작했고 지금도 이어진다. 그런데 재밌는 게, 공영방송 대표라 하는 영국 BBC도 채널이 200개, 500개 생기면서 더 이상 공영성을 가져갈 수 없어서 혼영 방송으로 바꿨다. 최소한의 공영 부문을 살리면서 결국 민간 업자에게 일정 부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미국처럼 모든 걸 상업주의로 돌릴 순 없으니, 우리도 유럽식 혼영체제로 가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일정 정도 공영성은 유지하되 나머지 폭발 성장하는 부문에선 시장 경쟁 논리를 도입해서 케이블 채널을 확대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채널 인허가를 내는데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할 필요가 없었다. 기본 요건만 충족하면 알아서 하도록 놔둬도 됐다. 종편은 어차피 수많은 케이블 중 하나이니, 특별히 이상하지 않으면 알아서 하도록 해야 했다. 그런데 정부는 이게 뭐가 대단한 특권이라고 채널 승인 권한을 움켜쥐었다. 그래서 종편 심사에 시비가 붙었다.

처음이 문제가 아니다. 어느 정권에서든 변화하는 방송 통신 환경 때문에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끌고 가는 과정에서 정파 논리가 들어갔고 페어플레이가 된 게 아니라 묘한 형태로 허들을 만들어 입맛에 맞는 종편 방송을 만들도록 한 것이다.

최상재 : 그런 언론 환경의 변화는 인정한다. 그러나 저는 전 민주 정권에 분명한 실책이 있었다고 본다. 종편을 운운한 것은 나중에 정권이 바뀌어도 한국의 언론 자유가 퇴보하지 않을 거라는 ‘나이브’한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영 부문을 지킬 법적 제도적 장치부터 만드는 게 선결조건이었다. 그것부터 하지 않고 산업적인 측면만 강조하다 보니 문제가 생긴 거다.

김신동 : 그 부분은 저도 동감하는 바다.

최상재 : 지상파 방송이 전체 언론 시장에서 보면 밉상일 거다. 인정한다. 미디어법 싸움할 때 대안언론 쪽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다. 그래서 늘 이야기한 게 공영방송 포함한 전체 제도권 방송은 결국 저수지 수위 같고, 대안언론은 그 안의 물고기라는 것이다. 굉장히 밉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보고 미디어법 투쟁에 힘써달라고 설득을 했었다.

프레시안 : <프레시안>은 당시에 같이 열심히 싸웠다(웃음). 그런데 정작 야당 반응이 더 미적지근하지 않았나 싶다.

최상재 : 그때가 민주당이 2007년 대선에 지고 나서 손학규 대표 체제가 들어섰을 때였다. 정부조직법으로 MB 정부 인수위와 붙었다. 그때 여성청소년, 통일부 쪽에만 관심을 두고 방송 통신 문제에 대해선 MB가 원하는 대로 넘겨줬다. 아주 나이브하게 접근했다.140이 넘는 의석에서 나중에 90석으로 줄고 나서 미디어법 투쟁할 때, 한 번도 시위장에 얼굴을 내비치지 않은 사람이 절반이었다. 저는 그걸 보고 예견했다. 지금의 야당이 다음에 또 정권을 못 잡을 거라고. 사태 파악을 너무도 못 했다.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공영방송은 인사권 통제, 종편은 무한경쟁 속 보호… MB, 성공했다"

프레시안 : 정치적인 결과를 얘기하기 전에, 당시 미디어법이 어쨌든 고용 창출 등 산업적 필요에 의해서 한 건데 법안 통과 후 3년이 지난 지금 산업적 효과를 어떻게 보고 있나.

김신동 : 정책이 잘 되고 못 되고를 떠나 산업은 확장되고 있다. 종편 뿐 아니라 그 외 플랫폼이 다양해지고 소설미디어 같은 서비스 폭이 확장되면서 미디어 부문이 계속 성장하고 있다. 정부는 그런 성장을 더 잘 독려하기 위해 법을 만들자는 취지였는데, 지금 우리가 보는 성장이 그런 입법 취지에 잘 맞아떨어졌을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지금 큰 메가트렌드 상에서 일어나는 정도의 성장 효과를 보고 있는 거다.

좀 더 다른 각도에서 재밌는 현상이 있다. JTBC가 약진하고 MBC가 몰락하면서 무소불위의 공영방송도 하루아침에 종편화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내용 없는 종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이게 MBC를 대체할 수 있다는, 누가 기획하지 않은 역동성을 보고 있다. 학생들에게 연구 주제를 잡으라고 하면 JTBC를 지목한다. 지상파 3사가 새로 시장에 뛰어든 군소경쟁자한테 이상한 방식으로 밀리는 것이다. 지상파 3사 집단은 깨기 힘든 자기만의 패턴이 있다. 도전자들은 판을 뒤집지 않으면 자기 공간을 만들 수 없다. 그래서 종편은 훨씬 더 창의적이고, 안 좋은 경우는 엽기적인 일들을 만드는 것이다.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란 프로그램을 예로 들자. 탈북자들을 데려다가 탈북 경험이나 북한 생각에 대한 증언을 듣는데, 대부분이 전부 검증할 수 없는 '카더라'다. 물론 많은 프로그램들이 뜬소문을 가져오지만, 이를테면 아오지 탄광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검증할 수 있나. 오히려 반통일적인 방송이라는 생각이 든다.

프레시안 : MB 때 보수 대 진보의 보도 성향이 5대 5를 유지했다면 지금은 9대 1 같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세월호 참사 등 정권 민감한 사건 국면마다 종편에서는 보수 위주의 담론만을 생산하고, 그런 것들이 박근혜 정권에는 유리한, 진보 개혁 계열의 당에 불리한 여론 지형을 만든다. 이명박 정부가 만들어놓은 언론 지형이 박근혜 정부를 지탱하는 중대한 기둥의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최상재 : 그런 면에서 MB 정부가 성공했다고 봐야 한다. 우선 공영방송 체계를 낙하산 인사를 통해 장악하면서 인사권을 확실히 가지게 됐다. 그리고 무한경쟁의 시장경제를 뛰어넘어 종편을 보호했다. 경인방송(OBS) 연 매출은 불과 350억인 데 반해 종편이 네 곳 다 800~900억대 매출을 올리고 있다.

프레시안 : 방송학자들이 종편 네 개를 다 허가를 주면 하나도 못 살아남을 거라고 했다. 판단 착오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김신동 : 두 개는 살고 두 개는 손들고 나가지 않겠느냐고 했다. 근데 언론사들이 재밌는 게, <한국일보> 죽는다는 소리가 20년 전부터 나왔다. 매체 산업이 굴뚝 산업이 아니기 때문에 시작하는데 자본금이 수백, 수천억이 들어 갈 이유가 없다. 대학 방송국 정도 설비만 갖고 있으면 방송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오히려 불필요하게 허들을 높여서 대기업 아니면 못 하게 하는 게 문제다. 벽만 낮추면 <프레시안>도 <한겨레>도 다 들어갈 수 있다. 비싼 돈 들여서 출범한 TV조선이나 채널A가 지금 어떤지를 생각해보자. 정작 제작비가 없으니 이상한 토크쇼만 내보낸다. 돈 하나 안 들이고 스튜디오에서 헛소리를 해도 사람들은 재밌다고 보니까 광고 싸게 해도 유지가 되는 거다. 그래서 좀체 쉽사리 망할 일이 없다. 원자재 값이 안 들어가니.

최상재 : 종편은 제작비를 안 쓰고, ‘재방률’도 60% 가까이 된다. 그런데도 2013년 MBN이 200억, 채널A가 290억, JTBC가 1500억 적자가 났다. JTBC는 자본 잠식도 끝난 것 같은데 언제까지 버틸지 모르겠다. 물론 모기업인 신문사 뒷 배경도 있고 정치권력이 받쳐주니 유지는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버티는 과정에서 다른 매체들이, 특히 중소 매체들이 녹아난다는 게 문제다. 아마 내년부터 광고사정은 더 줄어들 것이다. 지상파 방송도 올해 다 적자일 텐데, 그러면 제작비 깎자는 얘기가 나온다. 그럼 결국 외부 제작비를 깎게 된다. 또 공익 프로그램은 기획단계에서 다 '킬(Kill)' 되고.

이런 가운데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지상파와 종편에 이중적인 규제를 하고 있다. 만약 윤창중이 지상파에 나왔으면 바로 징계를 받았을 거다. 그런데 종편에서는 아주 형식적인 징계만 간다. 지금도 종편에서는 하루에도 대여섯 시간씩 아주 정치적인 이야기, 특히 확인 안 되는 이야기들로 방송을 한다. 그럼 중장년 이상의 사람들이 종편의 논리로 20~30대를 설득한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 사회를 병들게 만들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김신동 : 종편 등장 등 다채널화는 경쟁을 조장하는데, 이는 벗어날 수 없는 특성이라고 본다. 일종의 방송의 '타블로이드화'라고 본다. 영국 같은 고급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사람이 고양이를 낳았다는 말도 안 되는 뉴스가 나오는 신문이 있지 않나. 큰 틀에서 보면, 방송산업에 대해 규제를 푸는 과정에 대해 타블로이드화 현상이 종편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보인다. 그런데 종편의 잠재적, 현재적 위협을 어디까지 입증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시청률이 1%도 안 되는 게 많은데 지나치게 위협적인 걸로 생각하는 게 아니냐, 과대평가하는 것은 아니냐 이런 생각도 든다.

▲지난달 27일 대법원은 YTN 해직기자들이 사측을 상대로 낸 해고무효소송에 대해 3명은 해직 유효, 3명은 해직 무효 판결을 내놨다. YTN은 MB 정부 들어 첫 '언론 장악' 사례로 기록됐다. ⓒ프레시안(최형락)

▲지난달 27일 대법원은 YTN 해직기자들이 사측을 상대로 낸 해고무효소송에 대해 3명은 해직 유효, 3명은 해직 무효 판결을 내놨다. YTN은 MB 정부 들어 첫 '언론 장악' 사례로 기록됐다. ⓒ프레시안(최형락)


"MB는 서툰 칼, 박근혜는 날카로운 칼… 대안 준비해야"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 언론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가 언론 정책에 있어 MB에 뒤지지 않게 퇴행시킬 거라는 얘기가 많다. 최근 여당이 KBS와 EBS를 공공기관에서 지정할 수 없다고 한 조항을 삭제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내놓아 논란이 되고 있다.

최상재 : 이 문제의 핵심은 이제 인사뿐 아니라 예산을 통해서도 공영방송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과거에 언론인들이 두세 번 정도 막았던 일인데, 이번에도 또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대통령이 대선 때 언론 기능을 원상회복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하나도 지켜진 게 없다. 특히 종편 특혜에 대해선 아무 말이 없다. 지금 상황이 유리하다고 본 것이다. 나아가 세월호 같은 경우도 보도 자제 압력이 공공연하게 들어왔다. MB 정부 때는 서툰 칼이라 피가 많이 튀었다면, 지금은 오히려 더 날카롭게 언론에 대한 압력이 들어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의 자체적 노력도 필요하지만, 야당이나 시민사회에서 공영방송의 독립성, 공영성을 담보하기 위해 내놓을 수 있는 방안이 뭐가 있을까.

최상재 : 일단 박근혜 정부는 노력을 안 할 것이다. 어떤 보수적 방송도 동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저는 JTBC 손석희 앵커의 활약에 대해 너무 좋게 보지 말라고 하고 싶다. 평가기준이 달라야 한다. KBS와 MBC는 정권을 비판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판단해야 하지만, 종편은 내외부에 오가는 자본을 비판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바라봐야 한다. 정권 비판 보도로 징계를 받으면 오히려 브랜드 지명도를 올리는 일이 될 수 있다. 현재 지상파 가운데 SBS가 그나마 낫다고 하는데, 결코 나을 게 없다. 여전히 태영 관련 보도는 하지 않는다. 결국 학계나 시민사회가 새로운 대안을 내놓는 수밖에 없다. 지금은 보수 정권에게 달콤한 시기이다. 이게 보수 정권을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지금은 변하지 않을 것 같지만 언젠간 변화의 때가 올 것이다. 문제는 그냥 기다려선 안 된다는 점이다. 언론의 자유나 공영방송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 제기해야 한다.

김신동 :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가시적으로 공영방송을 개선할 안을 기대하긴 어렵다. 더 우울한 것은 공영방송의 문제를 우려하고 대안을 모색하려는 노력 자체도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학계에서는 일종의 자기검열까지 겹쳐져서 여러 눈치를 본다. 제가 여기 나왔으니 KBS나 MBC에서 전화 오는 일은 다 없어질 거다(웃음). 그런 정도로 위협을 느낀다. 답답하지만 다른 도리가 없다.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나가야 한다.

최상재 : 여전히 양식 있는 언론인과 언론학자의 헌신이나 희생이 필요하다. 1980년대 초반에 노동운동을 한 사람은 1987년에 그렇게 빨리 세상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 못 했다. 1970~1980년대 사람들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 동력이 사반세기 가량 갔다. 그걸 생각해야 한다.
 
서어리 기자(정리)  프레시안 2014.12.01 11:4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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