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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과 정책 제311호_임정기_ 코로나19 이후의 사회안전망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0-06-09 15:49:23
  • 조회수 : 447

현안과 정책 제 311호


코로나19 이후의 사회안전망

 

​글 / 임정기(용인대학교 교수)

 

 

 

21대 국회의원 선거는 코로나 19라는 사회적 위험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산업화 시기 사회적 위험은 노동력을 팔아 살아가야 하는 노동자의 노동력 상실이 중심에 놓여 있었다. 이 시기 만들어진 사회보장체계는 안정된 노동의 상실에 대한 보상이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군인이나 공무원 등 특수직역에 대한 보상체계로부터 시작하여 2000년 이후에 와서야 사회보장체계가 실질적으로 확대되었다. 이제 사회적 위험은 단순히 노동에 대한 위험을 넘어서 돌봄과 기후변화, 감염병 등의 전지구적 일상생활의 위험으로 넘어가고 있다. 위험의 종류는 다양해지고 범위는 확대되었지만 가장 취약한 계층이 가장 위험할 수밖에 없는 점은 여전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사회보장체계를 더욱 확대함과 동시에 새로운 보장체계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 당면 과제다. 이제 사회안전망은 다양한 영역의 노동의 의미를 더욱 확대하고, 존엄성의 기본권을 보장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사회안전망은 시민의 일상으로 내려와서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연대체계를 만들어 내야 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고 고용중심의 지원체계를 넘어서야 한다. 다양한 소득보장수단과 함께 지역사회 중심으로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시킬 수 있도록 주거, 의료, 돌봄의 영역에 공공성과 경제활동이 창출될 수 있도록 재편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코로나의 위험 속에서도 선거를 치르면서 요구하는 내용이다.

선거가 끝났다. 결과는 새로운 위험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고 방비를 마련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해준다. 전세계가 유례없는 전염병의 위험을 겪는 동안 그나마 한국은 상대적으로 탄탄한 보건의료체계와 메르스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토대로 선거를 치루어냈다. 선진적으로 코로나 19에 대응한다는 찬사를 받는 한편 이러한 제도를 만든 공을 누구에게 돌려야 할지에 대해서도 말이 많았다. 제도는 대통령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인구사회학적 변화와 함께 축적된 집단적 경험을 토대로 그 사회의 시민, 정치의식의 수준과 세계의 영향에 의해 복합적으로 만들어진다.

 

 

구사회의 위험 : 산업재해, 노령, 질병

초창기에 빈곤하고 노동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만 제공되었던 복지제도는 산업화시대를 거치면서 다수의 일하는 노동자들이 겪을 수 있는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제도로 발전해 왔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으로 생계를 이어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노동력을 상실하게 되는 경우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 20세기 복지국가들은 다수의 노동자를 설득하고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 처지에 당면했다. 산업사회에서 노동력을 상실할 위험은 노동현장에서 사고를 당하거나, 나이 들어 노동현장을 떠나게 되거나, 질병에 의해 노동을 못하게 되거나 하는 등의 순간에 상존한다. 따라서 많은 나라들이 산업화 이후 가장 먼저 도입한 것이 산업재해를 보상하는 제도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사회보장에 대한 법적 기반이 1960년대 만들어진 것이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경제적 발전과 정치적 혼란기를 함께 겪으면서 사회보장제도의 틀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법적 제도가 즉시 적절하게 실행된 것은 아니다. 산업재해 보상법도 초기 500인 이상의 대규모 사업체에만 적용했으며 정부 예산 없이 고용주와 피고용주의 갹출로 인한 보험형식으로 쉽게 설계했다는 부정적인 선례를 만들었다. 실제로 가장 사고가 잦은 영세사업장을 보호하지 못하는 산재보험이 1인 이상 사업장까지 모두 포괄하는 제도가 된 것은 2000년에 들어서이다.

노령으로 인해 더 이상 일을 못하게 되는 노인의 소득을 보전하기 위한 연금제도도 일찍이 1970년대 제정이 되었지만 전국민 연금제도로 확대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노령으로 인한 소득보전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최초의 연금제도는 공무원연금으로 이후 군인연금(1963년), 사립학교교직원연금(1975)등 특수직 연금으로 만들어 졌는데, 이러한 연금제도는 사회가 노령으로 인한 불평등 위험을 책임지기 보다는 일부 기득권계층을 위한 소득보전의 효과 밖에는 가지지 못함에 따라 진정한 사회보험의 형태라고 보기 어려웠다. 1973년에는 국민복지연금법을 공표했지만 석유파동으로 무기한 연기가 되었고 이리저리 표류하다가 1986년도가 되어서야 국민연금법을 공포, 시행하게 되었다. 국민연금제도는 국민의 생활안정과 복지증진을 위해 1988년 1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시행하였다. 그 뒤 1995년 농어촌 지역과 1999년 도시지역 주민에게까지 적용의 범위를 확대하여 전 국민 연금을 실시하고 있다. 이후 2006년에는 1인 이상 사업장에까지 확대적용이 완료됨으로써 명실상부한 전 국민 복지 제도의 실현이 이루어졌다. 코로나 19의 위기를 잘 헤쳐나갈 수 있었다고 평가받는 건강보험(구 의료보험법)은 산재보험과 같이 제정되었지만, 그 시행은 1970년대 후반까지 연기되었으며 이 역시 50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한 직장의료보험부터 실시하였다. 이후 공무원, 교원, 지역 등으로 분리되어 있던 조합을 전 국민 건강보험으로 통합된 것도 2000년에 들어서이다.

결국 제도의 명목적 도입 시기보다는 특권계층에 국한되거나 혹은 시혜적 성격의 사업을 수정하고 확대해 나감으로써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틀을 만들었던 시기와 원동력을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시민들의 정치적 투쟁과 함께 IMF라는 위기를 겪으면서 사회안전망에 대한 적극적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사회의 위험: 실업과 돌봄

산업화시대를 지나면서 노동을 하고 싶어도 노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쳤다. 이전의 복지제도는 ‘노동’을 기준으로 노동할 수 없는 아동, 노인, 장애인, 부녀자 등 비노동 인구의 빈곤에 대해서만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을 부과하고, 노동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노동을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탈산업화시대에서는 노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실업이라는 구조적 요인에 대해 사회가 함께 책임을 질 수 밖에 없었고 이에 많은 나라가 실업에 대처하기 위한 사회제도를 만들어 내었다. 우리나라의 고용보험도 이에 대한 제도로 가장 늦게 만들어졌다. 아직 한계를 많이 내포하고 있으며 실제로 가장 열악한 노동과 새로운 노동에 대해서 취약하였다. 외환위기를 경험하면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새롭게 제정되었듯이,1) 코로나 19를 경험하면서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에 대한 논의가 새로운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코로나 19를 경험하면서 가장 혼란을 겪었던 돌봄의 영역은 여전히 다시 가족의 몫으로 남겨지고, 그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덜 하다. 신사회 위험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돌봄의 위기는 그간 사적영역으로 인식되었던 돌봄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게 되었다. 노인인구 비율이 7%를 넘어서는 고령화사회로 진입하면서 노인장기요양보험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산업재해, 노령, 질병, 실업, 노인요양이라는 5가지 위험에 대한 사회보험제도를 구축하였다.

이렇듯 대부분의 틀을 2000년 이후에 갖추게 되었지만 여전히 기존제도는 유동하는 사회의 다양한 계층의 위험을 아우르지 못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기존 제도를 보완하는 공약이 대동소이하게 나오지만 지금은 대상과 혜택을 확대해 나가는 것 이상의 혁신적 체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새로운 위기대응체계: 다양한 노동의 가치와 보편적 소득보전체계, 지역사회 중심의 돌봄 뉴딜

코로나 19이후의 삶과 이전의 삶은 다를 것이라고들 논의가 분주하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위험을 겪고 있지만 새로운 위험 역시 여전히 가장 취약한 계층에 더 불평등하게 몰려 온다. 국경을 넘나드는 글로벌 경제 환경은 국경을 봉쇄하는 도전에 맞닥뜨리게 되고, 불안정한 일자리들이 가장 먼저 없어지는가 하면 가장 취약한 노동의 강도는 더 강해졌다. 치매를 책임지겠다는 국가는 집단감염이라는 위험에 직면하고 마을이 돌보겠다는 아이는 다시 가정의 책임으로 돌아왔다. 인구, 가족, 노동구조의 변화와 다른 새로운 위험이 닥쳤다. 많은 나라가 기후변화에 의한 새로운 위험을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는 시점에서 감염병의 위험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감염병의 위험이 한 지역의 위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고, 전지구적인 위험이 또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지 모두가 대비해야 한다. 이제는 인간이 개발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속도를 다시 점검하고 불평등의 심화가 결국 우리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초래한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기존의 제도가 일하는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노동의 위험에 대비하게 위해 만들어낸 안전체계였다면 이제는 이러한 축적된 제도의 역사성 속에서 불안전한 노동을 대비하고 인간의 기본권을 보다 강화할 수 있는 새로운 체계를 요구해야 한다. 고용 중심의 지원체계를 넘어서 새로운 노동의 형태와 생애주기별 다양한 일상의 위험을 지원해 줄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복지제도는 정부의 시혜정책을 넘어서서 모든 사회구성원이 일상의 소득과 안전을 위한 권리로 요구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21대 국회는 이제 코로나 이후 국민의 일상을 위한 새로운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여전히 가장 취약한 계층에 대한 취약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기존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양의무자가 있는 경우에는 최저생계비도 지원받을 수 없어 가장 먼저 최악의 상황에 떨어질 위험에 처해 있으며, 기존의 사회보험체계는 안정된 노동환경 속에서 기능을 하게 되므로 불안정한 노동조건 속에 있었던, 또는 있는 사람들을 배제하게 된다. 여전히 어떠한 사회적 위험 속에서도 노동에 매일 수밖에 없는 가장 취약계층 노동자에 대한 공적 지원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최저생계비 지원기준에서 부양의무자를 폐지하고, 소득보존지원기준에서 가구보다는 개인을 중심으로 지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다. 실업의 위험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영세사업자를 위한 고용보험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전국민고용보험제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는 점이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 내는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위험 속에서도 여전히 정당의 복지정책을 주시하고 연대의식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둘째, 새로운 위험은 고용을 조건으로 하는 경직된 제도에서 벗어나야할 필요성과 기본권을 인정하는 소득보전체계가 긴요함을 드러냈다. 재난지원금이 기본소득이냐는 논쟁을 차치하고라도 고용과 연관되지 않는 현금지원에 대한 사회적 의미를 공론의 장에 놓아야 한다. 기존의 제도적 틀에서 보호되지 못하는 유동하는 개인, 유동하는 노동을 위한 보편적 소득보전 수당이 필요하다. 노인소득보전을 위한 기초연금을 확대하고, 아파도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대처할 수 있는 상병수당도입, 주거빈곤을 예방할 수 있는 주거수당, 긴급돌봄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돌봄수당, 그리고 각 지자체에서 하고 있는 청년수당 등의 실험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재난지원금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이제 보편적 소득보전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가능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 보건의료, 사회서비스의 공공성과 공민성을 키워낼 다양한 주체의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도록 하는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이번 코로나 19를 경험하면서 그래도 우리나라의 선진 보건의료체계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공공의료서비스나 공공사회서비스의 비율은 여전히 낮은 편이다. 사실 의료나 사회서비스 모두 공적자원이 지급된다는 점에서 완전한 사적영역으로 보기도 어렵다. 전반적으로 운영주체의 공공성이 시장을 주도해 나갈 수 있는 정도의 일정비율은 보장될 필요가 있으며 한편으로는 민간의 공민성을 확보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서비스의 질은 다양한 주체들이 건강하게 역할을 할 때 보장된다. 의료서비스의 경우에는 대학병원의 공적 책임을 강화할 수 있도록 견인하는 것이 필요하며, 사회서비스의 경우에는 최대한 개인이 주체가 되는 것을 지양하고 단체 이상 단위가 주체가 되어 공민성을 견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지역사회 내 다양한 주체들의 역량을 개발해 내는 것이 공공성을 담보하는 것과 함께 필요한 부분이다. 시민들의 주체적 역량에 대한 건강성을 지원할 수 있는 체계가 함께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돌봄체계의 개편이 필요하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나 감염병 등은 돌봄을 다시 가족의 영역으로 축소 환원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는 물리적 거리두기이지 관계적 거리두기가 아니어야 할 것이다. 위기상황에서 돌봄노동은 여전히 사회적 책임으로 지속적으로 보호되어 되어야 할 영역이다. 특히 의료시스템이나 방역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사회적 돌봄체계가 굳건히 마련되어져야 한다. 사회적 돌봄체계는 단순히 전달체계의 개편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일자리, 다양한 형태의 돌봄주거시설, 주거기본선 마련 등 전반적인 체계를 지역사회에 기반하여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는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일자리를 확대해 나가는 새로운 돌봄 뉴딜정책을 마련하고, 지방자치단체는 다양한 돌봄형태와 욕구를 지원하기 위한 내용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돌봄은 물리적 거리를 크게 벗어나서는 안되며, 이는 많은 나라와 지역에서 지역화폐로서 돌봄노동을 교환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집단감염에 취약한 요양시설의 경우에도 시설의 환경적 영향이 매우 크다. 시설과 지역사회라는 이분법적인 도식을 버려야 한다. 시설을 보다 인간적인 존엄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구조적 환경을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 학교를 가지 못하는 아동의 돌봄과 교육도 빈곤아동의 경우에서 더욱 취약하다. 최저주거기준미달 가구에서 적절한 재택교육과 디지털 접근성이 보장되기 어렵다. 이렇듯 지역사회 돌봄체계의 구축은 복지서비스의 제공이라는 측면에서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의 개발과 주거의 변화, 그리고 지역사회 공동체를 확장해 나가는 다양한 활동을 포함하는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 내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돌봄을 제공하는 주체들의 목소리와 힘이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돌봄제공자들이 주체가 되어 돌봄관련 법안을 만들어갔다. 이제 코로나 19로 가장 많이 힘들었던 돌봄제공자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에 귀기울여야 할 때가 왔다.

 

 

 

<참고문헌>

1) 1997년 불어닥친 외환위기는 빈곤이 개인의 책임만이 아니라 누구든 사회구조적인 요인으로 빈곤에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하면서 인구학적 기준으로 제공되던 생활보호법을 ‘최저생계비’라는 기준으로 1차 안전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으로 바꾸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