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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과 정책 제28호_이혜정_오바마가 서울에 오는 까닭은?9/15시대 미국의 아시아 정책과 한국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4-04-14 10:09:32
  • 조회수 : 3029
 
2008년 9월 15일 국제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전 세계는 미국 발 금융위기의 블랙홀로 빠져 들어갔다. 9/15는 미국에 대한 테러(9/11)와 베를린 장벽의 붕괴(11/9)를 뛰어넘는, 새로운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미국 국내적으로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은 공화당 부시 정부 집권 8년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대테러전쟁의 정치적 파산 선고였다. 그 해 11월 대통령 선거에서는 “담대한 희망”을 선거 구호로 내세운 민주당 후보 오바마가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다. 오바마는 대외적으로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 종식, 대내적으로는 대침체로 명명된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동시에 금융 규제와 건강보험과 같은 개혁을 동시에 추구했다. 우선순위는 분명하게 국내 정책에 있었다. 2010년 미국의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서 최우선적 목표로 설정된 것은 미국의 국가재건이었다.

대침체는 정파적 분열을 넘어 통합된 미국을 만들겠다는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을 앗아갔다. 막대한 규모의 구제 금융과 경기부양책에도 실업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오히려 건강보험 개혁에 대한 반대가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에 대한 우려와 맞물리면서, 2010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참패했다. 2010년 말 의회의 초당파적 위원회는 “진실의 순간”이라는 제목의, 증세와 더불어 사회복지는 물론 국방비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재정지출의 삭감이 불가피하다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2010년 선거에서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증세에는 절대적으로 반대하면서 부채 감축을 주장하는 티파티 세력에 의해 ‘포획’되었다.

2011년 8월 미국의 신용등급이 역사상 최초로 강등되었다. 미국의 경제적 능력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부채 상한 증액을 둘러싼 극심한 정치적 분열 때문이었다. 타협책은 재정절벽의 배수진이었다. 2011년 예산관리법은 양당 동수의 상하 양원 의원으로 구성된 슈퍼 위원회가 부채 감축안을 마련하도록 하고, 만약 이에 실패할 때는 회계연도(10월-9월) 2012년부터 2021년까지 10년에 걸쳐 최소한 1조2천억 달러의 부채를 감축할 것을, 그 연간 적자 상한선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분야에서 일률적으로 재정지출을 삭감하는 자동예산삭감(sequester)을 명령하였다. 2011년 11월 슈퍼 위원회는 합의안 도출에 실패했다. 미국의 (재정 지출의 차원에서) 9/15시대는 2022년까지 끝나지 않게 되었다.

2013년 오바마 정부 2기가 출범했고, 미 합참의장 뎀시가 지적하듯, 논리적으로 말도 안 되지만 지켜야 할 법률인 자동예산삭감이 시작되었다. 2012년 대선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념적 분열에 따른 선거구 획정으로 안정적 지역구를 보유한) 공화당의 티파티 세력은 정부 부채와 건강보험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티파티 세력이 끝내 건강보험 시행을 위한 예산 배정을 거부하면서 의회의 2014년 예산처리가 실패했고, 2013년 10월 연방정부가 폐쇄되었다.
 
 
9/15 이후 중국의 부상은 가속화되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위기는 심화되었다. 중국은 리먼 브러더스가 무너지던 2008년 9월 이후 일본을 제치고 미국 국채의 최대 보유국이 되었다. 2009년부터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 및 경제대화가 시작되었고, 2010년 중국은 일본을 추월하여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하였다. 1989년 냉전이 무너지던 와중에 역사의 종언을 주장했던 후쿠야마는 9/15 이후 2011년에는 금융자유화의 위험, 국가의 산업 정책과 사회안전망의 필요성에 대한 포스트-워싱턴 컨센서스의 부상을 지적하더니, 2012년에는 지구화에 의한 중산층의 쇠퇴와 그에 따른 민주주의의 위기를 “역사의 미래”로 명명했다.

역사가 돌아온 것이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쇠퇴 혹은 오마바 정부의 개입축소정책과 맞물린,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위기는 전 지구적인 혼돈을 초래했다. 동아시아에서는 미국의 힘에 의해서 봉인되었던,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1951년)이 미제로 남겨놓은 일본 제국주의의 과거사 및 영토분쟁의 역사가 되살아났다.

중국의 부상을 관리하기 위해 오바마 정부는 2011년부터 아시아로의 회귀(이후의 용어는 재균형)를 추진했다. 그 전제는 기존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을 조기에 종결하고 그 전력과 외교적 관심을 아시아로 집중하는 것이었다. 이는 국내정치와 중동의 혼돈으로 실현되지 않았다. 2010년 오바마의 인도네시아와 호주 방문은 건강보험 입법 과정의 진통과 멕시코만 기름 유출 사고로 두 번이나 연기되었다. 2011년 11월 오바마가 호주 의회에서 아시아 회귀를 선언한 직후에는, 미 의회의 슈퍼 위원회가 부채 감축안에 실패하면서, 미 국방부는 국방비 운용의 기조 자체를 바꿔야만 했다. 2012년 1월에 발표된, 2020년까지 미 군사력의 60퍼센트를 아시아태평양에 배치한다는, 국방전략은 이러한 재정적 한계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것이었다. 중동에서 이라크의 약화는 이란의 부상으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안보불안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이 리비아와 시리아의 내전, 그리고 이집트의 (민주화 운동, 이슬람세력의 집권, 다시 군부 쿠데타의) 정국 불안으로 이어졌다. 오바마 정부는, 국제사회의 리비아나 시리아에 대한 직접적 군사 개입 요청을 거부했지만, 중동에서 외교적 노력과 관심을 거둘 수는 없었다.

2012년을 전환점으로 동아시아에 새로운 정권들이 탄생했다. 러시아에서는 푸틴이 다시 대통령으로 집권하면서 소련의 영화를 재현하고자 했고, 일본의 아베 수상은 경기침체의 읽어버린 20년을 넘어 근대화에 성공한 제국주의 일본의 과거를 복원하고자 했다. 중국의 시진핑 체제는 최근의 경제적 부상과 공산주의 혁명, 그리고 중국제국의 역사를 새롭게 중국 민족주의로 통합하는 한편, 이러한 경제, 정치,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미국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국제적 규범의 연성권력에 도전하는, 대안적인 질서의 기획을 중국의 꿈으로 선전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물론, 중견국을 자부하는 한국과 김정일의 사망으로 급작스럽게 출범한, 핵무장과 경제발전의 병진노선을 천명한 북한의 김정은 정권까지도 모두, 기존 동아시아 질서의 대안을 요구하는 ‘수정주의’ 국가들이다. 이들의 경쟁은 새로운 세려균형이나 지역 질서뿐 아니라 과거사와 영토문제에도 걸쳐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아세안 국가들과, 동중국해에서는 일본과 해상 영유권 분쟁으로 벌이면서, 과거사에서는 한국과 연합하여 일본과 대치하고 있다.
 
 
2013년 오바마 정부는 재균형의 이름으로, 그리고 군사동맹과 자유무역협정(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TPP), 지역 제도의 망을 통해서, 중국의 부상을 관리하고자 했다. 세 개의 S(sequester, Snowden, shutdown)가 2013년 미국의 재균형 정책, 아니 대외정책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자동예산삭감이 시작된데 이어서, 7월의 미중 정상회담 직전에 스노든의 미국 정보국의 첩보활동에 대한 폭로가 터져 나왔다. 환율조작이나 해킹, 사이버 절도는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주요한 수단이었다. 미국은 이미 9/15 이후 대규모 양적 완화를 시행한데다, 미국 정보기관이 유엔사무총장이나 독일 수상, 중국의 주요 국영기업, 미국 정부나 기업에 맞서는 변호사들에 이르기까지 무차별적으로 도청과 해킹을 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미국이 법치와 사이버 범죄, 인권보호의 측면에서 오히려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2013년 8월에는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공격에 대한 국제적 조사와 비난이 이어졌다. 아시아로의 회귀 혹은 재균형에 대한 관심은 다시 희석되었고, 제한적인 군사개입을 추진하다가 러시아의 중재안(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포기)을 받아들인 오바마 정부의 외교적 리더십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오바마는 9월 유엔 연설을 통해 반전을 시도했다. 이란 핵 협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이란 야심찬 대 중동 외교를 시작한 것이다. 한편 10월에는 APEC과 동아시아정상회담(EAS)에 참석하고 중국과 해상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필리핀과 말레이시아를 방문함으로써, 미국의 개입 의지를 천명하고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할 계획이었다. 한미 동맹 60주년 기념 및 연례 국방장관 회담을 위해 한국을 방문 중이었던 헤이글 국방장관은 한일의 협력을 촉구하고 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미일 외교, 국방장관(2+2) 회담을 통해서 미일 동맹의 강화를 추진할 예정이었다. 미국은 한국과 전작권 환수 시기의 재조정을 협의해나가고 북한에 대한 맞춤형 억지를 강화하기로, 일본과는 1997년의 방위협력지침의 개정과 집단자위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등 미일동맹의 전면적인 전환에, 합의하였다. 하지만, 아베 수상과의 협력을 촉구한 헤이글 장관은 냉랭한 표정의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일본의 제국주의 역사 부정에 대한 강의를 들어야 했다고 한다.

10월 1일 연방정부가 폐쇄되면서, 오바마의 필리핀, 말레이시아 방문이 우선 취소되고, 이후 인도네시아(APEC)와 브루나이(EAS) 방문까지 취소되었다. 미국 대통령이 APEC에 불참한 것은 1995년 연방정부 폐쇄로 인한 클린턴 대통령의 불참 이후 처음이었고, 중국 견제의 주요한 제도적 장치로 여겨진 EAS에 오바마가 불참한 것은 특히 큰 타격이었다. 오바마의 부재로 이들 포럼은 시진핑의 독무대가 되었다. (미국이 TPP와 함께 새로운 미국 중심의 경제 질서의 기축으로 삼고 있는) 유럽과의 무역협정 협상을 위한 무역대표부 대표의 유럽 출장도, 인력과 비용이 없어서, 무산되었다. 오마마를 대신한 케리 국무장관은 10월 24일 오바마의 대선 당선을 도운 씽크 탱크, 미국진보센터에서 행한 연설에서, 미국의 개입 의지와 민주주의의 실패에 대한 우려를 들어야 했던 자신의 곤혹스러움을 통탄하며, 민주주의의 모범이라는 미국의 외교적 자산이 철저히 파괴된 이런 사태가 절대로 재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2013년 10월 1일 시작된 연방정부 폐쇄는, 공화당 지도부가 정부 부채 상한의 증액마저 봉쇄하려는 티파티 세력을 마침내 통제하고 민주당과 협상에 나서면서, 16일 만에 끝났다. 오바마의 정치적 반격이 시작되었다. 10월 17일의 연설에서 재정 건전성과 경제 성장을 균형적으로 추구하는 예산, 이민 개혁, 농촌지원법의 연내 입법을 촉구한 것을 시작으로, 오바마는 건강보험의 시행, 교육과 연구개발, 인프라 투자, 실업급여 지급 기간의 연장 등을 연이어 주창하였다. 이 정치적 캠페인의 정점은 12월 4일의, 레이건 시기 이후 미국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사회적 유동성의 정체를 세밀하게 분석하고, 그 해결을 아메리칸 드림의 회복을 위한 시대적 과제로 규정한 연설이었다.

대외관계에서의 타격을 만회하려는 시도도 이루어졌다. 11월 4일, 상원 외교위원장 출신으로 오바마를 대신해서 주요한 외교문제의 해결사 역할을 해온, 그리고 시진핑과 각별한 친분을 쌓아온, 바이든 부통령이 12월 초에 한, 중, 일 삼국을 순방한다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11월 24일에는 국가안보보좌관 라이스가 조지타운 대학에서의 연설을 통해서 2014년 4월 오바마의 아시아 순방 계획을 밝혔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미래”란 제목의 이 연설에서 라이스는 현재가 21세기 아시아의 미래가 만들어지는 결정적 순간임을 강조하며, 안보와 경제,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의 측면에서 재균형 정책의 청사진을 펼치고 있다.

라이스가 밝히는 안보정책의 핵심은 세 가지이다. 첫째, 미국의 군사력 운용으로 2020년까지 해군력의 60퍼센트를 아시아 지역에 배치한다. 둘째, 동맹과 관련해서는 미일동맹을, 1990년대의 동맹조정을 뛰어넘어 21세기의 현실에 맞게 전폭적으로 개편하고, 한미동맹의 억지력을 높이며, 한미일 삼각 군사협력을 강화한다. 셋째, 중국에 대해서는, 불가피한 경쟁은 관리하고 협력은 확대, 강화하여, 신형대국관계를 조작화(operationalize)한다. 경제정책의 핵심은 포괄적이고 (지재권 보호, 환경, 노동 규정, 정부의 조달 체계 등에서) 역사상 유례없는 수준의 자유무역협정(TPP)을 통해서 2016년까지는 미국과 아시아의 경제관계를 전면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12월 초 바이든의 한, 중, 일 순방은 11월 말 중국의 일방적인 방공식별구별 선포를 배경으로 이루어졌다. 바이든은 중국의 일방적인 조치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했지만 동시에 미국과 중국의 새로운 관계에서 경쟁은 불가피하지만 갈등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첫 방문지 일본에서의 아베와의 공동성명 발표 자리에서 그는 후텐마 기지의 이전, TPP 협상의 진전, 그리고 한일관계의 개선을 압박하며, 착오와 의도하지 않은 갈등의 대가는 너무나 크다고 경고했다. 중국에서 미국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는, 양국의 새로운 관계를 협력과 경쟁, 그리고 21세기의 새롭게 합의된 국제규범의 틀로 정의하고, 그 주요한 수단으로 (자신과 시진핑의 4시간 반에 걸친 회담처럼) 각국의 입장과 차이를 직접적으로 솔직하게 소통하는, 양국 지도자들의 ‘신뢰외교’를 들었다. 중국의 부상으로, 경제는 물론 안보의 영역에서도 너무도 커져 버린 양국의 공동이익이 지니는 현실의 구속력이 이러한 정책 처방의 근거였다. 중국 부상의 현실이나 미중관계에서 갈등이 불가피하지 않다는 점에 대한 강조는 한국에서도 이어졌다. 동맹들 간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압박도 반복되었다. 한국에서 바이든의 새로운 메시지라면, 중국으로의 편승이나 경제적 의존(구체적인 사안은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의 한국 시장 진출)을 경고하는, 미국의 편에 서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다.
 
 
 
오바마 정부의 새로운, 중국의 부상을 신형대국관계의 미국적 조작으로 관리하고자 하는, 재균형 정책은 대단히 복잡하고 불안정한 프로그램이다. 경쟁과 갈등의 임계점도 불분명하고, 경쟁을 건설적으로 관리할 기제나 (‘신뢰외교’의) 리더십의 구축도 어려운 작업이고, 경쟁과 협력의 변주의 기반이 되는 공동의 이익과 규범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미국이 중국의 어떤 이익을 어디까지 수용할지, 중국을 공동의 규범 제정자로 인정할지 등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존의 (재정의 제약, 여타 지역의 갈등, 동아시아의 수정주의, 역사와 영토 갈등 등) 대내외적 장애가 여전한 상태에서, 새로운 재균형 정책의 추진은 미국의 외교적 곡예로 이어지는 한편, 박근혜 정부의 용어를 빌리자면, 경제와 안보의 단층에 이어서 역사문제까지 교착되는 아시아 패러독스의 심화를 초래했다.

바이든 순방 이후 재균형 정책은, 역내에서는 아베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격화된 한일의 불화, 그리고 역외에서는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으로 귀결된 우크라이나 사태의 역풍을 맞았다. 바이든의 한일관계 개선 압박에도 불구하고, 아베는 12월 26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한국과 중국의 격렬한 비판이 이어졌고, 2014년 1월의 다보스 세계경제 포럼은 한, 중, 일의 경제적 성장의 선전장과 동시에 역사 전쟁의 무대가 되어버렸다. 아베는 일본의 부활을 가져온 아베노믹스의 비법을 선전하고, 중국을 1차 세계대전의 독일에 비유했다. 그는 창조경제와 ‘통일대박’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강연을 경청하며 한일관계 개선의 의지를 ‘연기’했지만, 박 대통령은 그에게 예의 차가운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중국의 경제적 부상을 과거로는 중화제국의 영화와, 미래로는 중국의 꿈과 연결시켜 선전하는 한편,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여느 국가의 정치인이 국립묘지를 참배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아베의 변론을, 일본 제국주의와 나치의 역사에 대한 일장 훈계로 비판했다.

한일의 불화는 미국으로서는 곤혹스럽기 그지없다. 미국은 일본에게 군사기지와 주둔비용은 물론, 집단자위권을 통해서는 북한과 중국의 잠재적 위협의 견제를 넘어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군사적 기여를, TPP를 통해서는 경제적 부흥을, 그리고 공동의 가치를 통해서는 역시 아시아는 물론 전 지구적인 일본의 기여를, 기대하고 압박하고 있다. 중국이 국방비를 10퍼센트 이상 늘리고 있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도 향상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군사적 시각에서 보면, 한미일 군사협력의 강화 역시 시급한 과제이다. 한국과 일본은, 대내적으로 자동예산삭감이 2022년까지 걸려있고, 유로존의 실업률이 여전히 10퍼센트를 상회하고, 아세안 국가 중 강국인 태국마저 정치적 불안정을 겪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미국이 전 지구적 차원에서 병력과 자원의 책임 분담을 요구하며, 손을 벌릴 수 있는 거의 ‘유이한’ 국가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특히 바이든의 입장에서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한 아베의 행위는 미국에 대한 ‘배신’이다. 아베의 입장에서, 보다 넓게는 집단자위권을 통해서 일본의 군사대국화, 보통국가화를 추구하는 일본의 보수 민족주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이 일본에게 집단자위권의 추진을 압박하면서, 그를 추진하는 자신들의 이념적, 역사적 인식을 비판하는 것은 모순이다. 일본의 집단자위권은 근본적으로 기존의 미일동맹, 평화헌법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아베는 ‘해석 개헌’을 통해 집단자위권을 추진하고 있고, 이를 지지하는 일본의 보수 민족주의는 일본 제국주의 전반에 대한 도덕적 단죄를 이른바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하며, 거부한다. 친미 보수와 극우 반미의 경계, 일본의 ‘망언’이 반한, 반중에서 반미로 넘어가는 경계는 무너져가고 있다. 아베가 임명한 NHK 경영위원 햐쿠타 나오미는 최근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부인하는 것을 넘어, 도쿄 전범 재판을 미국의 도쿄 공습과 원폭 투하의 대량학살을 은폐하기 위한 음모로 비판했다. 미국 언론의 집중적인 햐쿠타 ‘망언’ 비판에도 불구하고 아베가 햐쿠타를 감싸고 돈 것이, 어쩌면 오바마 정부가 4월 아시아 순방에서 일본만 방문하려는 원래 계획을 수정하여 박근혜 정부의 요청대로 한국도 방문하기로 결정한 이유 중 하나일 지도 모른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오바마가 직접 3월 6일 아베에게 전화를 걸어 한일 정상의 화해를 압박하게 된 배경이다. 군사력과 외교적 관심의 아시아로의 재균형이 결코 쉽게 허락되지 않음을, 그에 따라 중국과의 경쟁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그래서 동맹의 협력의 필요성은 늘어가는 걸 절실히 깨닫는 ‘진실의 순간’이 온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삼일절 기념사에서 식민 지배, 특히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했다. 오바마의 직접적인 압박 이후 아베 정부는 재검토를 천명했었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과를 담은 고노 담화를 인정한다고 물러섰다. 오바마는 시진핑에게 친서를 보내고, 아내를 친선사절로 중국에 보냈다. 3월 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핵 안보 정상회담 참석을 계기로 한미일 정상 회담이 성사되었다.

헤이그에서 중국의 부상이 새삼 확인되었다. 러시아는 크림 반도를 합병했지만 G-8에서 축출되었다. 미국은 냉전 이후 나토의 무리한 동진의 역사적 ‘후과’를 감수하고, 스노든 폭로의 여파로 메르켈 독일 총리와 최악의 관계가 된 걸을 후회하며, 우크라이나 사태를 배경으로 팔레스타인-이슬라엘 평화 협상이 좌초되어 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막대한 투자 자금을 뿌리며 유럽을 순방한 시진핑이 진정하고 유일한 ‘승자’였다. 25일 한미일 정상회담에 앞서 23일 한중 정상회담이 열렸고, 24일에는 미중 정상회담이 열렸다. 박근혜 정부는 ‘통일대박’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선전했지만, 중국의 입장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평화적 자주적 통일과 6자회담 재개의 기본 입장에 대한 재확인, 달리 말하자면, 통일의 방법론에 대한 환기 혹은 그 부재에 대한 경고였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앞서 시진핑은, 중국을 여행 중인 미셀 오바마가 자신에게 오바마를 만나면 안부를 전해달라고 했다는 농담으로 좌중을 웃겼다. 이어서 그는 신형대국관계에 대한 오바마의 친서 내용을 소개했다. 공동이익을 추구하고, 공동의 도전을 실용적으로 처리해나가자는 제안에 감사를 표하면서, 그는 대립과 갈등을 지양하고, 상호존중과 상호이익를 추구하는 신형대국관계의 건설을 위해 노력하자고 화답했다.

오바마는 핵 안보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중국, 시리아, 이집트, 그리고 러시아를 사례로 들며 미국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있는데, 이를 우려하느냐는, 또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공화당 후보 롬니가 주장했던 것처럼, 러시아가 미국의 최대 지정학적 위협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 후자에 대한 그의 대답은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은 냉전 시대의 세계적 강대국 러시아가 이제는 인접국에 대해서도 군사력을 동원해야만 하는 지역 세력으로 전락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독설’이었다. 전자에 대해서는, 질문의 전제에 대한 반론을 펼쳤다. 미국이 원치 않은 일이 일어난다고, 미국이 원하는 바를 다른 국가가 즉각 행하지 않는다고, 미국의 영향력이 쇠퇴한다고는 볼 수 없고, 그런 기준이라면, 20세기 전체 역사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렇게 반론을 끝맺었다. “진실은 세상이 항상 엉망진창이라는 것이다.”
 
 
 
3월 25일 핵 안보 정상회담에 이어서, 백악관이 재균형 정책에 대한 미국의 의지를 보여주는 대단히 중요한 회담으로 규정한, 한미일 삼각 정상회담이 열렸다. 핵 안보 정상회담을 창설하고 또한 삼각 정상회담을 주최한 미국 측에 대한 ‘성의’ 표시로, 회담 직전에 일본은 사용 후 핵연료의 일부를 미국이 보관하도록 넘겨주었고, 핵연료 재처리 문제로 기존의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에 실패한 한국은 F-35와 무인정찰기 구매 결정을 발표했다. 언론에 공개된 인사말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재균형 정책에서 동맹의 중요성, 북핵 문제에 대한 삼국의 공동 대응 및 연합 군사 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서 박근혜 대통령은 예의 차가운 표정으로, 예의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를 북한에 촉구하며 북핵에 대한 공동대응을, 아베 수상은 두 정상에게 정상회담 성사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삼국 합동 군사훈련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미 해병은 2월에는 일본과 캘리포니아에서 중국의 센카쿠 점령을 격퇴하는 모의 상륙 (무쇠주먹) 훈련을 실시하였고, 3월 27일부터는 한국과 93년 이래 최대 규모의 상륙 작전 (쌍용) 훈련을 실시할 예정이었다. 3월 26일 북한은 노동 미사일을 발사하였고, 중국 외교부는 6자회담의 재개 및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행위를 하지 말 것을 촉구하였다. 3월 28일 박근혜 대통령은 드레스덴에서 북한에 통일 3대 제안을 발표하였다. 북한은 박 대통령의 진정성을 믿지 않고, 드레스덴 제안은 체제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난했다. 30일 북한은 새롭고 다종한 핵실험을 경고했고, 31일 남북은 서해에서 포격을 주고받았다. 4월 4일 한국 외무부는 일본 정부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교과서를 검정한 데 대해서 주한 일본 대사를 불러서 항의했다. 일본의, 아베의 ‘진정성’에 대한 비난이 한국의 조야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르지 않고, 터져 나왔다. 4월 7일 지난 달 삼국 정상회담의 후속 조치로 삼국의 6자회담 대표가 모여 북한의 노동 미사일 발사가 유엔의 제제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북한은, 지난 달 한국의 사거리 500Km 미사일 발사를 비난하며, 반발했다.

한국의 중국과의 무역규모는 일본, 미국과의 그것보다 크다. 그러면서, 한미일 삼각 동맹의 연합성 강화를 논의하는 한국은, 아시아 패러독스의 표본이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내세우며 북한의 진정성을, 동북아평화구상을 내세우며 역사전쟁에서 중국과 연합하여 일본의 진정성을 요구하지만, ‘통일 대박’을 외치면서 기존의 남북 합의를 존중하지 않는 박근혜 정부는, 아시아 패러독스를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켰다. 달력에는 이 패러독스를 재생산할 남북의 군사적 충돌의 기념일들, 한미, 미일 군사훈련과 일본의 교과서 검정과 야스쿠니 신사의 일정, 일제의 기념일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작년에 합의한 쌍용훈련을 밀어붙인 것이, 특히 2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한미 군사훈련의 수위를 조절했던 것과 비교하면, 드레스덴 제안을 좌초시킨 건 아닐까? 싸늘한 눈길과 진정성으로 이 패러독스를 극복할 수 있을까? 일본이 진정 과거사를 사과하면, 같이 북한으로, 센카쿠로 갈 것인가? 이러한 훈련을 주도하는 것은 미국이지만, 미국의 ‘신뢰외교’는 적어도 중국과의 군사적 의사소통의 채널을 개발하고 있다. 교전 수칙은 강화하면서, 진정성의 이름으로 북한과의 모든 채널을 끊어놓으면, 우발적 사고는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
 
 
 
한미동맹의 기점은 조약의 서명을 기준으로 1953년으로 인식되지만, 실제 발효를 기준으로 보면 1954년이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북진을 주장하고 일본과의 경제적 통합을 요구하는 미국과 대립했다. 미국은 이승만 제거 작전은 마지막 순간에 포기했지만, 원조의 전면적 중단을 위협하고, 실제 석유의 공급을 끊었다. 이승만 정부가 1954년 11월 ‘백기투항’하여 한미합의의사록에 서명하면서, 조약 발효의 조건이었던 양국 의회의 한미 상호방위조약 비준서가 교환되고, 한미동맹은 시작되었다. 1954년 봄 미국은 한국과의 비준서 교환을 거부하고 있었다.

2014년 봄, 한미동맹 60주년의 잔치는 끝났다. 돌이켜 보면, 작년 10월은 미국의 새로운 아시아 정책, 동맹정책의 기점이었다. 물론 그 출발은 연방정부 폐쇄로 유예되었다. 그래서 이 달 말 오바마가 온다. 일본을 거쳐서다. 1997년 이래 최대의 미일동맹 전환이 추진되고 있다. 그 해 한국은 ‘IMF 위기’를 맞았다. 당시 일본은 한국의 단기외채 ‘돌려막기’를 도와주려 했지만, 미국이 말려서 그럴 수 없었다. 1997년의 조정은 냉전의 종언에 따른 것이었다. 그 기간을 최대한 길게, 1989년부터로 잡으면 8년이 걸렸다. 지금의 미일동맹 조정은 2008년 9/15의 충격에 대한 대응이다. 그로부터 8년을 잡으면, 오바마 2기의 임기가 끝나가는 2016년이다. 오바마 정부는 2016년까지는 TPP를 통해서 아시아의 경제 지도를 통재로 바꿔놓겠다고 벼르고 있다. 아베 정권도 그 때까지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오바마가 떠나면, 곧 시진핑이 올 것이다. 그리고 올 해 APEC은 중국이 개최한다. 미국은 2011년 APEC을 하와이에서 개최하면서, 미국의 태평양 세기와 아시아 회귀를 선언했었다. 중국은 이미 미국에 대해서는 신형대국관계의 건설을 요구했고,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서는 주변국외교의 원칙도 천명했다. 올 해 APEC은 중국이 신형대국관계와 주변국외교를 바탕으로 미국의 재균형에 대응하는 보다 정교한, 그리고 보다 야심적인 아태 지역 정책을 내놓는 자리가 될 것이다. 중국은 또한, 미래 중국의 꿈을,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2021년까지 전면적 소강사회를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2021년은 미국의 자동예산삭감이 끝날 무렵이다. 그 때 쯤 중국은 비상할 수 있을까? 미국은 현재의 상대적 쇠퇴를 극복하고 부활할 것인가? 중국과 미국의 꿈이 서로 부딪히거나 혹은 결탁할 때, 일본의 부활과 보통국가화는, 한국의 신뢰외교와 평화구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아니, 한국은 어떤 삶을 원하는가? 숙제는 던져졌다. 일례로, 미국이 추진하는 TPP는 단순한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다. 경제의 거버넌스를 송두리째 바꿀 수도 있다. 9/15 시대를 헤쳐갈 수 있는 새로운 정치경제체제에 대한, 동아시아의 포스트 샌프란시스코 체제에서 한국의 위상과 좌표에 대한 청사진과 그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아시아 패러독스의 심화로는, 신자유주의의 파탄을 가져온 무조건적인 탈규제로는 이들 도전에 맞설 수 없다. 국민은 청와대 비서관이 아니다. 청와대 비서관 회의의 모두 발언으로는, 청와대 민원을 밤낮 없이 읽는다고, 국민적 합의를 이룰 수 없다. 박근혜 정부는 2018년까지 집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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