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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과 정책 제361호_진시원_학교와 사회에서 민주시민교육이 필요하다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2-02-25 11:40:33
  • 조회수 : 196

현안과 정책 제 361호


학교와 사회에서 민주시민교육이 필요하다


​글 / 진시원 (부산대학교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정치학​)



요 약 문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관심과 실천이 확산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시민교육이 무엇이고 민주시민교육의 내용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우리 사회와 교육계의 합의가 부재하다. 작금의 상황은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국가 차원에서 합의된 명확한 교육과정이 부재한 상황에서 각 교육청이나 시민사회단체 혹은 전문가나 교사 개인에 의해서 민주시민교육이 각개약진 식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시민교육을 하고 있는데, 민주시민교육이 무엇이고 그것의 내용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다원주의 사회에서 민주시민교육의 정의와 내용은 다양할 수 있고 다양해야 한다. 오히려 민주시민교육의 정의와 내용을 이래야 한다며 정부가 일방적으로 교육과정을 지정하는 것이 민주시민교육과는 거리가 멀고 반민주적이고 반다원주의적인 교육으로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다양성이 모든 것을 정당화해 주지는 않는다. 다양성도 그 다양성을 묶어주는 공통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 글은 각개약진 식으로 펼쳐지고 있는 현 단계 민주시민교육의 다양성을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의 내용을 탐색하기 위한 선행 작업으로 민주시민교육의 정의와 목적과 필요성을 살펴본다. 이런 작업은 민주시민교육의 내용상의 다양성을 묶어주는 공통성을 찾는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시민교육의 필요성

그러면 이러한 민주시민교육은 왜 필요한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우리 정치의 문제 때문이다. 정치는 다양한 이해관계의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고 최종결정을 내리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이런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고 최종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고 최종결정을 미루는 양상을 보여 온 것이다. 이 결과 우리 정치는 국가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오히려 퇴행적으로 국가와 사회발전의 발목을 잡으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1987년 절차적 민주화 이후 아시아에서 가장 좋은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었지만, 우리의 민주주의가 문제에 봉착해 있는 것이다. 특히 절차적 민주주의 제도는 어느 정도 갖추어졌으나, 존중과 배려 그리고 대화와 타협을 실천하는 생활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대의 정치인이나 국민들에게 체화되어 있지 않다. 배제의 정치와 갈등의 정치가 팽배하지만 합의의 정치와 포함의 정치는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절차적 민주주의 외에 실질적 민주주의를 위한 불평등 해소 등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 사회는 전혀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우리의 민주주의 제도를 더욱 민주적으로 공고히 하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실질적 민주주의로 업그레이드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과 국민들의 가치와 태도와 신념을 민주적으로 만드는 민주시민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우리 교육의 문제 때문이다. 즉, 민주시민교육의 필요성은 우리 정치의 문제뿐 아니라 우리 교육의 문제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정치 즉 우리 정치인과 국민들이 존중, 이해, 배려, 대화, 설득, 타협, 절충, 합의, 다수결과 소수자 보호 등과 같은 민주적 생활태도를 지니지 못하고 있는 근본원인은 다름 아닌 민주시민교육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기간 동안 사회과교육과 일반사회교육, 윤리교육이 좋은 시민을 만들기 위한 교육을 제대로 수행해오지 못한 것이다. 민주시민교육을 어릴 때부터 배우고 체화했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지금과는 다른 보다 성숙한 모습을 보였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민주시민교육을 어린 나이부터 배우고 익히고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요구와 합의가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적 생활태도를 지닌 정치인과 국민들이 운영하는 한국 민주주의는 한 단계 더 좋은 방향으로 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기존의 우리 정치교육이 간과하기 어려운 문제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정치교육이 지닌 문제점은 새로운 민주시민교육으로 극복해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기존의 정치교육이 지닌 문제점과 새로운 민주시민교육이 추구해야 할 개선방안을 정리하면 <표1>과 같다.

 

<표1> 기존 정치교육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기존 정치교육의 문제점

- 특정 정치세력의 지배의 도구로 활용된 정치교육

- 국가 주도의 정치교육

-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중심의 정치교육

- 강요된 애국심을 키우는 정치교육

- 정권의 입맛에 맞는 정치교육

- 반공과 보수 일변도 정치교육

- 반공교육, 국민윤리교육 등으로 운영된 정치교육

- 진보와 보수의 갈등으로 진보와 보수를 통합하고 좌우를 아우르는 정치교육의 부재

- 수동적이고 동원 가능한 국민을 만드는 정치교육

- 사회과교육과 일반사회교육의 작은 일부분으로 축소된 정치교육

- 독립교과목이 아니고 수업시간도 부족한 정치교육

개선방안

- 기존 정치교육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이 바로 민주시민교육을 제대로 활성화하는 것

- 특정 세력의 도구나 수단이 아닌 민주시민 양성을 목적 그 자체로 추구하는 민주시민교육

- 민주적이고 다원주의적인 민주시민교육

- 자발적인 애국심을 키워주는 민주시민교육

- 사회적 합의로 정부가 바뀌어도 지속되는 민주시민교육

- 보수와 진보를 통합하고 좌우를 아우르는 민주시민교육

- 다양하고 균형감 있는 정치 이데올로기 교육을 수행하는 민주시민교육

- 적극적인 주인의식을 지닌 주권자 시민을 만드는 민주시민교육

- 독립교과목으로 충분한 수업시간도 확보하는 민주시민교육

민주시민교육의 새로운 정의와 목적

이렇듯 민주시민교육의 필요성은 명확하고 당연하다. 그렇다면 민주시민교육이란 무엇일까? 민주시민교육에 대해 국내적으로 통용되는 우리가 익숙한 정의는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의는 동어반복이고 애매모호하다.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기존의 정의는 이것 말고도 또 존재한다. 민주시민교육은 ‘민주시민의 자질인 시민성을 육성하는 교육’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의도 동어반복이고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런데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기존의 정의가 모두 동의반복이고 애매한 것은 아니다. 기존의 정의 중에서 구체적이고 유용한 것은 학습자의 역량(competency)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민주시민교육은 ‘민주시민이 지녀야 할 역량을 개발하는 교육’이라는 정의다. 달리 표현하면 민주시민교육은 민주주의와 관련된 역량 즉, 지식, 기술, 태도, 가치, 신념을 키우는 교육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지식을 지니고 민주적인 기술과 가치와 태도를 체화하는 동시에 민주주의를 향한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는 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역량 중심으로 민주시민교육을 정의하고 이해하면, 민주시민교육의 내용은 역량의 유형에 따라 몇 가지로 구분 가능하다. 첫째, 먼저 ‘지식’과 관련해서 민주시민교육은 정부형태(민주주의, 권위주의, 전제주의, 전체주의 등), 민주주의의 정의와 유형, 민주주의 제도(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정당, 언론, 이익집단, 선거 등), 민주주의 운영원리(국민주권, 권력분립, 법에 의한 지배, 정교분립 등), 헌정주의와 법치주의, 시민의 기본권과 의무 등을 교육해야 한다. 둘째, 민주적 ‘기술’과 관련해서 민주시민교육은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관용하는 기술,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잘 파악하고 주장하는 기술, 소통하고 토론하고 합의하는 기술, 차이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기술 등을 교육해야 한다. 셋째, 민주적 ‘태도’와 관련해서 민주시민교육은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토론하고 설득하고 타협하고 절충하고 합의하는 민주적 생활태도를 지닌 시민을 육성해야 한다. 넷째, 민주적 ‘가치’와 ‘신념’과 관련해서 민주시민교육은 자유, 평등, 인권, 정의 등의 가치를 체화하고 신념화하여 이를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시민을 양성해야 한다.

이렇듯 학습자의 역량 개발 중심으로 민주시민교육을 정의하는 노력은 민주시민교육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의 교육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하지만 이런 역량 중심의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정의 역시 충분한 것은 아니다. 이 글이 주장하는 새로운 민주시민교육의 정의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점에서 기존의 정의보다 더 시대적 요구에 적합하고 구체적이다.

첫째, 민주시민교육은 ‘주권자 의식과 태도를 지닌 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에서 말하는 민주시민은 단순한 유권자가 아니다. 민주시민은 선거철에만 유권자로서 자신의 참정권을 행사하는 단순한 유권자가 아니라, 주권의 명백한 소지자이자 주권의 실질적인 행사자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의식하고 행동하는 시민이어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대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주권은 국민에게 있는 것이고, 선출된 정치인은 자신의 임기 동안 주권자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주권을 행사할 뿐이다. 그런데 우리 대의 민주주의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주권자 국민은 단순한 유권자로 전락하고, 주권은 선출된 정치인들이 실질적이고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이상한 현상이 자리 잡았다. 이런 상황은 좋은 민주주의의 모습이 아니고 비민주적이다.

따라서 민주시민교육은 단순한 유권자 교육이 아니라 실질적인 주권자 교육이어야 한다는 점이 이 글의 핵심 주장이다. 민주시민교육은 수동적이고 무관심한 시민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시민을 키우는 교육이고, 시민 개개인이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게 만드는 교육이다. 민주시민교육은 공동체 공동의 일에 적극 참여하고, 공공선(公共善)을 실현하기 위해 주인의식을 지니고 노력하는 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인 것이다. 자신의 주권을 대의 정치인에게 위임하기도 하지만, 실질적인 주권자로서 자신의 주권을 직접 행사하기도 하는 능동적인 주인의식을 지닌 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이 바로 민주시민교육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권자 시민이 자신의 주권을 직접 행사하는 경우는 직접 민주주의, 참여 민주주의, 심의 민주주의, 광장 민주주의, 풀뿌리 민주주의 등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민주시민교육이 유권자가 아니라 주권의 명백한 소유자이자 실질적인 행사자로서의 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이라는 주장은 주권이론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을 필요로 한다. 국민주권론과 인민주권론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주권론은 대의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주권이론으로 주권은 국민에게 있지만 주권의 행사는 국민의 대리인인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치인이 한다는 이론이다. 간접 민주주의 즉 대의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주권이론인 것이다. 반면, 인민주권론은 직접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주권이론으로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주권의 행사도 국민이 직접 행사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직접 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 광장 민주주의, 풀뿌리 민주주의 등을 떠받치는 주권이론 것이다.

민주시민교육은 국민주권론과 인민주권론을 균형감 있게 양자 공히 추구하는 교육이다. 민주시민은 주권의 명백한 소유자이며 주권의 간접 행사자뿐 아니라 주권의 직접 행사자도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민주시민교육에서 간접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 간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고, 엘리트 민주주의와 대중 민주주의 간의 견제와 균형도 필요하다는 주장과 연계된다. 인구가 많고 영토가 그리스 도시국가보다 넓은 대다수 현대 국가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수행하기는 어렵다. 현대 국가에서 대의 민주주의는 불가피한 측면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의 민주주의의 문제는 주권자 국민을 단순한 유권자로 제한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대의 민주주의의 문제점인 주권자의 유권자로의 등치와 동일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의 민주주의에 직접 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 심의 민주주의, 광장 민주주의, 풀뿌리 민주주의 등을 보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의 민주주의가 오작동하여 국민이 단순한 유권자로 전락할 경우 직접 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 등이 대의 민주주의를 보완하고 견제하여 주권자 국민을 명백한 주권의 소지자이자 실질적인 행사자로 다시 자리매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민주시민교육은 이러한 인식과 태도를 지닌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에서 국민주권론과 인민주권론을 함께 균형감 있게 가르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둘째, 민주시민교육은 시민을 ‘치자(治者)이자 피치자(被治者)로 만드는 교육’이어야 한다. 민주시민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수동적인 피치자로 규정하지 않는다. 민주시민은 자신을 자신 스스로의 주인이자 공동체의 주인이라는 주권자 의식을 지닌 시민이다. 또 민주시민은 공동체 공동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으로 정책결정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이다. 민주시민은 주권의 소지자이면서 주권의 직간접적인 행사자여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시민교육은 시민을 단순한 피치자로 만드는 교육이 아니며 일방적인 치자로 만드는 교육도 아니다. 민주시민교육은 치자이자 피치자로서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주권자 시민을 만드는 교육인 것이다.

셋째, 모든 시민은 공동체 공동의 일에 ‘치자이자 피치자’로서 참여해야 하지만, 치자로서 참여할 때도 ‘비지배적 지배’를 견지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은 지배에 있어서 ‘지배적 지배’가 아닌 ‘비지배적 지배’를 지향하는 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이어야 하는 것이다. 만인은 똑같은 인권을 지닌 존재로서 동등하게 소중하다. 따라서 사람 위에 사람이 있을 수 없고 사람 아래 사람이 있을 수 없다. 민주시민은 시민 간의 동등성을 그 무엇보다 중시하는 시민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민 간의 동등성은 자신이 치자로서 지배에 참여하는 경우에도 절대 침해되어서는 안 되는 가치다. 따라서 시민 누군가에 의해서 지배가 이루어지더라도 시민들이 모두 동등한 가운데 그 지배가 이루어져야 한다. 치자든 피치자든 간에 시민들 간의 특권과 기득권을 배제한 동등성 확보를 공동체 운영의 핵심 준칙으로 삼아야 하고, 시민들은 이 핵심 준칙을 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 간에 서로 합의하고 반드시 지키고 따라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비지배적 지배’의 개념이다.

비지배적 지배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 앞 평등과 경제적 평등, 그리고 기회의 평등 등에 의해서 확보될 수 있다. 법 앞 평등이 무너지고 경제적 불평등이 강하게 존재하며 기회의 불평등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공동체에서는 ‘지배적 지배’가 팽배하고 ‘비지배적 지배’는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비민주적인 사회가 되는 것이다. 동등하게 소중한 시민은 인권의 동등성과 함께 법 앞 평등과 경제적 평등 그리고 기회의 평등이 확보될 때 비로소 만들어질 수 있다. 특권층과 기득권층이 경제적 우위와 법적 특권 그리고 기회의 독점을 지니고 이것들을 자신들의 사익을 위해 사용할 때 시민들 간의 동등성은 무너지고 민주사회는 붕괴된다. 그리고 이런 사회에서 민주시민교육은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따라서 민주시민교육은 동등하게 소중한 시민들 간의 비지배적 지배가 이루어지는 사회를 만드는 교육이어야 한다.

넷째, 민주시민교육은 ‘민주적인 공동체를 만드는 교육’이기도 해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은 민주시민만을 양성하는 교육이 아니다. 민주시민교육은 위에서 살펴본 대로 주권자 의식을 시민과 치자이자 피치자로서의 정체성을 지닌 시민, 시민 간의 비지배적 지배를 지향하는 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공동체 내에서 살아간다. 따라서 민주시민교육은 민주시민뿐 아니라 민주적인 사회 즉 민주 공동체를 만드는 교육이기도 해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민주시민교육은 ‘민주적인 시민뿐 아니라 민주적인 공동체를 만드는 교육’이기도 한 것이다.

 

민주시민교육, 우리 사회의 돌파구

우리 정치의 질이 좋지 않다. 우리 정치는 정치 본연의 기능인 차이를 표출하고 차이를 조정하고 최종결정을 내리는 일에 소홀한 정도가 아니라 무능하기까지 하다. 차이를 표출하는 일에는 과도하게 열정적이지만, 차이를 조정하고 최종결정을 내리는 일에는 순기능이 아니라 역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의 비정성적인 기능은 우리 정치가 우리 공동체의 현재와 미래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훼손하는 근본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공동체의 밝은 현재와 미래를 위해 정치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의 해법은 다름 아닌 우리의 결손 민주주의를 온전한 민주주의로 만드는 일이다.

민주주의는 하나가 아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경쟁적인 해석과 열망이 존재한다. 예컨대,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 그리고 최소주의적 민주주의와 최대주의적 민주주의 간의 경쟁이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 민주주의가 몇 가지 해결과제를 지니고 있고, 이를 해결할 경우 좋은 민주주의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첫째, 우리의 대의 민주주의를 개선하기 위해 직접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의 대의 민주주의는 문제가 많다. 특히 선출된 정치인과 고장 난 정당정치에 대한 주권자 국민들의 효과적인 통제가 불가능하다. 주기적인 선거만으로는 정치인과 정당을 주권자 국민들이 제대로 통제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국민들이 단순한 유권자가 아니라 실질적인 주권자가 되어야 한다. 예컨대, 국민소환제와 국민발안제를 도입하고 현행 국민투표제를 개선해야 한다. 함량 미달인 정치인은 주권자 국민들이 선거를 통하지 않고서도 직접 소환할 수 있어야 하고, 주권자 국민들이 필요하다고 합의한 정책은 국민들이 직접 국회에 제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헌법개정안과 국가의 주요정책에 대한 국민투표를 대통령이나 국회를 거치지 않고 국민들이 직접 부칠 수 있도록 지금의 반족짜리 국민투표제를 개선해야 한다. 또한 엘리트 중심의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기 위해 일반 국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참여민주주의, 심의민주주의, 풀뿌리민주주의, 광장민주주의 등을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주권자 국민들의 정치참여와 엘리트들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제도화해야 한다.

둘째, 망가진 정당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거대 양당이 보수와 진보로 나뉘고 다시 지역으로 나뉘어 서로 승자독식을 위한 죽기살기식의 경쟁을 펼치는 작금의 정당정치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소선거구 단순다수결 총선제도는 양당제를 공고화하고, 양당은 승자독식을 위해 서로 배제의 정치와 갈등의 정치만을 수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총선제도를 제대로 된 비례대표제로 바꾸어 다당제를 도입하고, 다당제 하에서 포함의 정치와 합의의 정치가 이루어지게 만들어야 한다. 죽기살기식 정당경쟁은 이제 협력과 상생의 정당정치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위성정당을 만든 거대양당은 부끄러운지 알고, 21대 국회에서 온전한 비례대표제 도입에 나서야 한다.

셋째, 하지만 비례대표제와 다당제를 도입한다고 해서 한국 정치가 하루아침에 포함의 정치와 상생의 정치로 바뀌기는 어렵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민주시민교육이다. 우리 국민들이 학생이든 성인이든 모두 나와 타인은 인권과 기본권을 지닌 동등하게 소중한 국민이라는 인식 하에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고 이해하고 토론하고 설득하고 합의하고 절충하는 민주적 생활태도를 지니는 게 중요하다. 국민들이 이렇게 민주시민으로서의 생활태도를 지니고 생활한다면 우리 정치와 민주주의는 좋은 방향으로 바뀌지 않을 수 없다. 민주시민교육이 학교교육과 평생교육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