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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과 정책 제162호_박태균_촛불의 역사적 의의와 한국 사회의 과제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7-01-21 12:07:27
  • 조회수 : 1713
현안과 정책 제162호
2016년 촛불시위는 과거 한국근현대사에서 나타났던 시민의 힘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독립운동으로부터 민주화운동의 맥을 잇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전과는 다른 한국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로 시민사회의 다원성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로 촛불시위를 통해 한국의 시민사회가 공정성이 보장되는 사회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셋째로 시민사회의 자신감이 표출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 민주화를 위한 시민들의 봉기가 이후 적절한 사회개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교훈을 되새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개혁의 실패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첫째로 현재의 변화된 상황에 근거한 정책 개발이 필요하다. 둘째로 공정한 규율이 필요하고, 그러한 규율을 보장할 수 있는 기구들의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러한 정책 개발과 규율의 창출, 그리고 기구들의 운영을 담당할 수 있는 당양하고 전문적인 인재들을 등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것이 촛불시위의 힘을 통해 비정상을 정상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가 보여주는 시민 사회의 힘
 
한국 사회와 정치에 대한 많은 분석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1993년 코넬대학에서 나온 “현대 한국의 국가와 사회(State and society in contemporary Korea)”는 다른 국가와 비교하여 한국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글들이 실려 있다. 그 중에서도 하버드 대학의 에컬트 교수가 쓴 “남한의 부르조아지: 헤게모니를 추구하는 계급(The South Korean Bourgeoisie: A Class in Search of Hegemony)”과 하와이 대학의 구해근 교수의 “강한 정부, 논쟁적인 사회(Strong State, Contentious Society)”는 한국 사회와 다른 사회와의 차별성을 잘 보여주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의 글은 한국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부르조아지나 자본가계급이 문화적 헤게모니를 갖지 못하는 한국 사회를 보여주고 있다. 일반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부르조아지 계급은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후자의 글은 한 사회에서 정부의 힘이 강하면 시민사회의 힘이 약한데, 한국의 경우에는 강한 정부와 강한 시민사회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한국 사회의 특징은 이번 촛불 시위를 통해서 여실히 드러났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는 약한 정부를 추구해 왔다. 이는 시민사회의 요구이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 신자유주의와 자유무역을 추구하는 국제 자본가 계급이 추구하는 바이기도 했다. 전자는 1970년대 후반 이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민주화와 자유화의 물결과 함께 전체주의의 해체로 이어졌다면, 후자는 1970년대 초 이후 국제적으로 확산된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한국 사회에도 확산되어 나타난 현상이었다. 카치아피카스는 “신자유주의와 광주항쟁(Neoliberalism and the Gwangju Uprising)”이라는 글을 통해 이미 그러한 경향이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2016년의 촛불 시위는 이 두 가지 현상이 현재까지도 한국 사회의 주요한 특징으로 계속되고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1997년 금융위기 이후 부르조아지의 헤게모니가 강화되었고, 2008년 이후 두 차례의 보수정부에 의해 정부의 사회에 대한 개입이 강화되고 시민사회가 약화되었지만, 2016년의 촛불시위는 부패한 정부의 부정한 개입과 부패한 자본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비판이 그 중심에 있었다. 대통령의 구속뿐만 아니라 재벌에 대한 비판시위대의 구호와 사회적 논의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이 이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힘은 어디로부터 나오는 것일까? 부르스 커밍스는 “한국현대사(Korea’s Place in the Sun)”를 통해 한국의 미덕(virtue)을 강조했고, 그 미덕은 의로움(義)과 차마 가만히 있지 못하는 마음(忍)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미덕은 송호근이 지적하였듯이 이미 19세기 말 의병전쟁으로부터 시작된 한국 사회의 저항은 인민과 시민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동학농민전쟁으로부터 의병운동, 3.1운동, 6.10 만세운동, 그리고 1945년 이후 4.19 혁명과 부마항쟁, 그리고 광주항쟁과 6월 항쟁은 모두 한국 시민 사회의 역동성과 그 힘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2000년 이후 탄핵 반대 촛불시위, 광우병 파동 시의 시위,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 세월호 희생자 추모 사위, 그리고 2016년 촛불시위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사에서 이어져 온 시민 사회의 미덕과 역동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많은 외국 언론들은 2016년의 촛불시위가 평화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에 대해 주목했다. 백 여 만 명의 시민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시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적 충돌이 없이 질서 있게 진행되었다는 것은 다른 나라와 다르며,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했던 과거의 시위와도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3.1운동에서부터 평화적인 대규모 시위를 경험했던 한국 사회는 4.19 혁명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시위에서 폭력적 성향을 보인 적이 없었다. 경찰이나 군대의 진압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한 경우는 있지만, 대규모 시위대가 폭력적으로 경찰이나 군대에 대항한 적은 없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한다면, 2016년의 촛불시위는 한국 근현대사의 전통으로부터 그 맥을 잇고 있다는 연속성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2016 촛불시위의 의미 1: 한국 사회의 다원화
 
그렇다고 해서 2016년 촛불시위에서 과거 시위와의 공통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2016년 촛불시위에서는 과거의 시위와 비교해서 여러 가지 차이점과 특징이 드러나는데, 무엇보다도 다양한 깃발과 구호가 등장했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시위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인터넷에 올렸던 깃발 사진에서 잘 나타나듯이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깃발들이 나타났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아래와 같다.

얼룩말 연구회, 한국 고산지 발기부전 연구회, 독거총각결혼추진회, 노처녀 연대, 트 잉여 운동연합, 혼자온 사람들, 사립돌연사박물관, 행성연합 지구본부 한국지부, 대한민국 아제연합, 전국 집순이 집돌이 연합, 먹사랑, 오버워치 심해유저 연합회, 범야옹연대, 장수퐁뎅이 연구회, 각종 야구팀 팬 깃발, 아이돌 팬 깃발, 덕후에게 덕질만 걱정할 자유를, 응원봉 연대, 덕후의 덕질이 보장되는 사회,


<사진 1>

2000년 이전처럼 시위에 자신을 정체성을 나타내는 깃발이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2008년 광우병 파동 집회에서는 자제되었던 깃발이 다시 등장한 것이다. 또한 주목되는 점은 2000년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깃발들이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2000년 이전의 시위에 등장한 깃발들은 대부분 정치, 사회운동, 시민 단체 관련 깃발들이었다. 2016년 촛불시위에 등장한 깃발에는 전국적 단위의 사회운동, 지역 단위의 시민운동 깃발들도 있었지만,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의 개인적 취향에 따른 깃발들이 다수 등장했다. 위에서 언급된 깃발들의 대부분은 매우 생소한 이름이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로 온라인을 통해 형성된 집단의 오프라인 모임이 촛불시위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사립돌연사박물관’(개복치 키우는 게임), 그리고 ‘오버워치 심해유저 연합회’와 같이 게임과 관련된 모임의 깃발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응원봉 연대’나 ‘덕후’, ‘덕질’과 같은 경우 팬클럽 회원들이 트위터나 팬클럽을 통해 일정한 그룹을 형성한 후 오프라인을 통해 시위에 참여한 경우이다. 이전에는 공개적으로 오프라인으로 나오지 못했던 동호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면서 나왔으며, ‘응원봉 연대’의 경우 <사진 1>과 같이 특정 팬클럽을 상징하는 응원봉을 갖고 나와서 집단적 정체성과 개인의 정체성을 동시에 보여주고자 했다. 시민들 개개인이 파편화되는 것이 아니라 공통된 관심을 통해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연대를 형성하였고, 그러한 연대를 당당하게 표출시키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특정한 조직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참여하는 시민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독거총각결혼추진회, 혼자 온 사람들 등이 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깃발을 대표하는 조직의 실체가 있는가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독거자들이 많이 참여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번 촛불시위에서 가족단위로 참여한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는 것도 중요한 특징이었지만, 혼자 참여한 사람들 역시 적지 않았고, 식당에서 혼자 나온 사람들끼리 만나서 촛불이라는 공통 관심사항을 주제로 얘기하는 장면도 적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셋째로 깃발에서 보이는 유머이다. 얼룩말 연구회, 한국 고산지 발기부전 연구회, 대한민국 아제연합, 노처녀 연대, 전국 집순이 집돌이 연합 등이 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헬조선’이나 ‘금수저’ 같은 용어들을 통해서 한국 사회의 문제가 이미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는 상황에서 당사자들은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유머가 섞인 표현을 통해서 자신을 좀 더 부담감 없이 표현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비정상화되어 있는 심각한 사회적 상황을 조금이라도 즐겁게 표현하려는 시민들의 노력이며, 이러한 노력은 이미 인터넷 공간을 통해서 네티즌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촛불시위 깃발을 통해 드러난 특징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보여준다. 첫째로 한국 사회의 다원화 정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원화의 문제는 외국인 노동자에 집중되었지만, 이제는 외국인 문제를 포함한 한국 사회 구성원 자체의 다원화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거인이 많아졌다는 것 역시 다원화의 한 부분이다. 최근 일코노미나 혼밥, 혼술과 관련된 드라마나 논의가 많아지는 것 역시 이를 반영하고 있다.

둘째로 인터넷 공간의 다양화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이다. 인터넷 공간은 이전에도 토론의 장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졌고, 이로 인해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인터넷에 대한 검열은 물론, 인터넷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런데 이번 시위에 나타난 현상은 인터넷을 통해 형성된 공감대의 다양성이며, 이러한 다양한 현상을 오프라인으로 확대하는 노력이 드러났다.

셋째로 한국 사회에서 개인주의(individualism)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역사상 대부분의 철학과 가치관은 ‘공동체주의’에 기초하고 있었다.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것에서부터 촛불시위에 지속적으로 참여해 온 대부분의 깃발 역시 공동체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함께 나타나고 있는 개인주의적 성향 역시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을 이번 촛불시위가 잘 보여주고 있다. 개인주의는 ‘이기주의’가 아니라 모든 인간은 하나의 ‘개인’으로서 서로 존중받을 수 있는 권리와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라는 개인의 권리가 침해받아서도 안 되지만, 다른 ‘개인’들의 권한도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적극적인 표현 속에서는 이런 개인주의의 성향이 강하게 내재되어 있다고 판단된다.
 
2016 촛불시위의 의미 2: 공정한 사회
 
촛불시위 초기에 초중고등학생들의 참여는 사회적 화제가 되었다. 이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긍, 부정으로 나뉘기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청소년들의 참여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이들이 시위에 참여했다는 사실 자체이다. 물론 초중고등학생들의 시위 참여는 한국 역사에서 오래된 전통을 갖고 있다. 3.1운동이나 6.10 만세운동, 그리고 광주학생운동의 중요한 참여층은 중고등학생들이었다. 4.19 혁명 역시 대구와 마산의 고등학생들 시위가 그 촉발제가 되었다. 마산에서 희생된 김주열 군은 전라북도 남원 출신으로 마산상고 시험을 보기 위해 마산에 와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는 합격 발표 다음 날 시위 도중 사망했다.

이러한 중고등학생들의 시위 참여는 1960년대 이후 2008년 광우병 파동 시위 때까지 활성화되지 않았다. 이는 1960년대 말부터 국민교육헌장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된 정부에 의한 교육 통제에 의한 것이었으며, 학생들의 사회참여는 급격하게 감소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전교조 선생님들의 영향과 함께 학생들의 자율적 토론을 통해 스팩을 쌓는 과정에서 사회적 참여가 늘어나면서 이들은 다시금 사회적 이슈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광우병 파동 시위 때에는 주도적인 그룹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2008년 이후에 있었던 평화적 시위에서 중고등학생들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은 현실이 되었다.

이번 시위에는 특히 초중고등학생들이 많이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집회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뜻을 표출하기 시작했다는 특징이 있다. 집회 진행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발언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자신들의 의견을 나타내기 위한 다양한 팻말을 갖고 나오기도 했다. 이들의 구호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헬조선인줄 알았는데, 고조선이네”, “이래도 개돼지입니까?”, “저희도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국정교과서 싫어요”, “이럴려고 공부한 게 아닙니다” 등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박근혜 정부 시기에 있었던 다양한 사건들 중 청소년들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슈를 이번 시위를 통해 한꺼번에 표출한 것이다.

한 고등학생은 아래와 같은 풍자 팻말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구조를 하라니까 구경을 하고 / 보도를 하라니까 오보를 하고 / 조사를 하라니까 조작을 하고 / 조문을 하라니까 연기를 하고 / 사과를 하라니까 대본을 읽고 / 책임을 지라니까 남탓을 하고 / 하지를 않으려면 하야를 해라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이화여대 사태에 대한 학생들의 실망감이었다. JTBC 뉴스(2016년 11월5일)의 인터뷰에 나온 한 학생은 “정유라씨 최순실씨 사태를 보면서 되게 큰 배신감을 느껴서 집회에 나오게 됐습니다”라고 발언했는데, 이는 “이럴려고 공부한 것이 아니다”라는 팻말과 함께 이번 시위에 참여한 청소년들의 감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멘트였다.

청소년들이 원하는 것은 공정한 사회였다. 공정한 규칙에 의해서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는 조건이다. 교육과정에서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고, 1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지만, 실제 사회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훈련병보다 일찍 자대배치를 받았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아들 문제, 그리고 정유라가 ‘부모님에게 돈이 있는 것도 실력이다’라고 언급했던 것은 청소년들의 이러한 실망과 분노를 더 크게 만들었다. 이들에게는 ‘헬조선’이나 ‘금수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철이 없는 행동이라는 대중매체의 언급을 전혀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공정한 사회’에 대한 청소년들의 희망은 기성세대 역시 동일하게 느끼는 것이었기에 청소년들의 촛불시위는 그 만큼 더 강조되었고, 더 주목받았다. 기성세대들 역시 이러한 사회적 조건에 노출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불공정한 규칙이 작동하고 있는 사회에서 기성세대들이 미래 세대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지난 70여년의 불공정한 사회에서 살아온 기성세대들에 비해 인터넷을 통해 많은 정보를 투명하게 접할 수 있는 미래 세대들이 느끼는 절망감은 훨씬 더 컸을 것이다.
 
2016 촛불시위의 의미 3: 국민의 힘에 대한 자신감
 
2016 촛불 시위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시민들의 자심감이 표출되었다는 것이다. 1997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사회는 패배주의와 회의주의에 젖어 있었다. 1997년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고, 금융위기 역시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지만, 그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는 시민들이 희망을 갖기 어려운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도 비정규직의 양산으로 인해 삶 속에서 개인의 안보(individual security)를 보장할 수 없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후 시민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선택한 진보 정부가 개인들의 안보에 어느 정도의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10년 동안 시민들의 이러한 기대를 전혀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이 진보 정부의 무능 때문인지, 아니면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었는가에 대한 또 다른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겠지만, 시민들은 진보 정부에 실망했고, 그 대안으로 박정희 방식의 경제성장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두 차례에 걸쳐 보수 정부를 선택했다.

또 다시 박정희 시대를 열어줄 것으로 기대했던 보수정부 역시 시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민주주의의 후퇴 및 굴욕적인 외교 행태를 보이면서 이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은 2008년 광우병 파동 시위와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 2014년 세월호 희생자 추모 시위, 그리고 몇 차례에 걸친 민중총궐기 시위 등으로 표출되었다.

시민들의 이러한 실망감은 선거를 통해 풀 수 없었다. 2008년 이후의 대통령 선거, 총선, 그리고 지방자치단체 선거 결과는 대부분 보수 정당의 승리였다. 2010년 천안함 사건에 대한 역풍이 불었던 지방자치단체 선거와 2011년 4.27 보궐선거 분당 지역에서 야당이 승리한 것을 제외하고는 집권 여당이 승리했다. 이러한 결과로 인해 시민들은 패배감과 회의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집권 여당의 언론 장악과 관권 선거가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대안이 되지 못하는 야당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6년 4.13 총선 결과는 시민들에게 큰 자신감을 주었다. 집권여당을 비판하고자 하는 자신들이 기대했던 결과가 성취된 것이다. 게다가 야당이 분열되어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결과라 시민들은 더 큰 기대감을 가질 수 있었다. 야당은 분열된 상태에서 단일 후보를 내지 못했지만, 단일 후보를 내기 위한 특별한 캠페인이 없었음에도 투표 과정에서 유권자들은 스스로 후보를 단일화하면서 야당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국회의 변화는 사회적 이슈가 국회를 통해서 공론화되는 계기를 가져왔고, 이는 2016년 촛불시위의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시민들은 이러한 기반을 잘 알고 있었고, 국회를 통해서 탄핵안을 통과시키는데 모든 힘을 집중시켰다. 1978년 12월 총선에서 야당의 승리가 1979년 유신체제의 몰락으로 가는 일련의 과정을 배태했고, 1985년 2월 총선에서의 황색돌풍이 1987년 6월 항쟁으로 가는 계기를 마련하였듯이, 2016년 총선거를 통해서 유권자들은 자신감과 학습효과를 얻었고, 그 자신감은 2017년의 대통령 선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더하여 한국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박정희 시대의 유산이 청산될 가능성도 보이고 있다. 민주화 이후에도 강력하게 남아 있는 박정희 시대의 유산은 민주화를 주도한 시민들에게 패배감을 주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 현재까지 박정희 시대에 대한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연구 없이 박정희 시대의 유산은 정치적으로 평가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평가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 싶어하는 많은 시민들에게 큰 절망감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016년 촛불시위를 통한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판은 박정희 시대에 대한 정치적 평가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박정희 시대에 대한 성급한 비판보다는 이에 대한 객관적, 실증적 연구를 통해 그 정치적 유산으로부터 벗어난다면 시민사회는 더 큰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2016년 촛불시위를 통해서 2017년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면, 한국 현대사는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 것이다. 1945년 이후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은 시민들의 힘으로 정권을 바꾼 경험을 갖고 있다. 1999년 영국의 BBC 방송이 20세기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인민의 세기(People’s century)’라는 제목을 붙인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처럼 지난 70년 간 네 번에 걸쳐서 시민의 힘으로 정권을 바꾼 나라는 없었다. 1960년 4.19 혁명으로부터 1979년 부마항쟁, 1987년 6월 항쟁, 그리고 2016년 촛불시위에 이르기까지.

문제는 2016년 이전 세 차례에 걸친 시민항쟁이 정권 교체나 정권 몰락, 또는 헌법 개정에 성공했지만, 그 이후의 과정이 반드시 시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4.19 혁명 이후 민주당 정부의 실패와 5.16 쿠데타, 1979년 부마항쟁 이후 서울의 봄과 광주학살 그리고 신군부의 등장, 아울러 1987년 6월 항쟁 이후 후보단일화 실패와 보수연합으로서 민주자유당의 탄생 등이 그 사례였다. 시민의 힘이 승리했다는 사실에 환호했지만, 정작 그 결과와 과실은 정권을 바꾼 시민들이 원하지 않는 세력들에게 돌아간 것이다.

현재의 상황 역시 이전의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러 가지 가능성이 놓여있고, 미래는 불확실하다. 일부에서는 시위과정에서부터 조직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2000년 이후의 과정에서 나타나듯이 시위의 조직화는 오히려 그 동력의 상실을 초래할 수 없다. 시민들은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그리고 개인과 친구,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축제 같은 시위를 원하고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전의 시위와는 다른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 역시 이러한 시민들의 바람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촛불시위의 동력은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을 인용하거나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물론 그 전제는 시민들이 더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촛불시위의 동력이 줄어든다면, 한국 사회의 비정상화를 정상화시키려는 노력은 실패할 것이다. 그래서 시민단체들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조심스럽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촛불시위의 힘을 지속시키고 있으며, 헌재의 탄핵안 인용이 있을 때까지 촛불시위의 동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제 위에서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정권 교체 후의 실패는 준비와 소통의 부족 때문이었다. 과거 진보정부의 실패 원인 중 하나도 치밀한 준비와 소통의 부재에 있었다. 야당과 진보세력들은 정권 교체를 위해 지나치게 ‘단일화’에 집중하였다.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단일화’가 되어야만 정권 교체가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야당과 진보세력은 정책 공약은 물론 정권 교체 이후를 준비하지 못했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지키지도 못할 ‘경제민주화’의 담론을 ‘선점’한 것도 이러한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단일화에 몰두하던 야당은 여당의 경제민주화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정책과 인재의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로 준비된 정책들은 무엇보다도 촛불시위에서 나타난 한국 사회의 변화에 기반하여 만들어져야 한다. 다원화된 한국 사회는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원하고 있다. 전통시대부터 계속되어 온 공동체 담론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이제 한국 사회에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공동체의 담론 역시 ‘자발성’에 근거하지 않을 경우 시민들의 동의를 얻기 힘들다. 여기에 더하여 개개인의 다양한 성향은 이들 스스로가 ‘소수자’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는 정책을 요구한다.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다양한 그룹들이 사회적으로 소외될 때 이들은 ‘소수자’로 전락할 것이며, 이들은 다시 관망자의 자리로 갈 것이다. 개인주의의 근간이 될 수 있는 시민 개개인에 대한 ‘안보’를 보장해야 한다.

이러한 한국 사회 현실을 정치에 반영시키는데 있어서는 현재보다 선거 가능 연령을 낮추어야 한다. 이를 통해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정치와 사회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사회의 소수자로 여겨지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통로도 마련되어야 한다. 성공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시민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깃발을 들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축제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가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이는 시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자신감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장이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국가안보’에 대한 새로운 인식도 필요하다. ‘국가’가 무조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중요하며, 개인이 스스로의 안보를 위해 국가 안보를 지켜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는 곧 시민사회의 개개인이 국가가 지켜야만 할 가치가 있는 조직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새로운 가치 하에서 새로운 국가관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둘째로 공정한 사회를 원하는 청소년과 기성세대를 만족시킬 수 있는 시스템 역시 필요하다. 한국의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사회주의적 계획 경제 시스템이 아니며, 단순한 복지도 아니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시민들은 자신들이 노력한 만큼 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공정한 경쟁 시스템을 원하고 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시장의 정상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바람은 공정한 경쟁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법적 조치를 통해 가능할 것이다. 합리적인 시행을 위한 각각의 조항에 대한 재검토가 이루어진다면 김영란 법이 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며, 공정한 경쟁 위에서 시장이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필요할 것이다.

공정한 시스템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강한 규율과 함께 권력으로부터 철저하게 독립된 감사, 정보 및 견제기관이 필요하다. 현 시스템 하에서도 감사원과 국가인권위원회, 그리고 국민권익위원회 등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기관이 있지만, 실제로 지난 10여 년 동안 이러한 독립성은 전혀 보장되지 못했다. 오히려 이런 기관들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예가 적지 않았다.

국가정보원이나 검찰, 그리고 경찰 역시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 물론 물리력을 사용하는 기관들이 독자적 힘을 가질 경우, 미국의 FBI의 사례처럼 그 자체로서 또 다른 권력이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를 막기 위하여 독립된 감사, 정보 및 견제기관의 기관장에 대한 선거제도의 도입, 또는 일부 기관의 경우 중앙 정부로부터 지방 정부로 감독 기관 이전 역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문적인 인적 자원을 적절하게 배치할 수 있는 인사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민주화는 과거와 달리 많은 전문가들이 자유롭게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준 반면, 후보자들은 선거를 위해 캠프를 만들었고, 그 캠프는 권력자가 동원되는 인적 자원의 유일한 기반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회전문 인사는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나타난 용어였다.

인적 자원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사정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광범위한 인재 풀을 확보해야 하고, 이들이 적절한 위치에 임명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리고 임명된 이들에게는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임기’를 보장함으로써 자신들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하면서, 반대로 임기 동안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책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10여 년 간 그 중요성이 약화되었던 ‘기록’과 ‘보존’의 원칙을 다시 확고히 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인재의 적절한 등용은 규율이나 시스템 못지않게 ‘다원성’의 보장, ‘개인의 안보’ 보장, 그리고 ‘공정성의 보장’을 위해 가장 핵심적 내용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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