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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과 정책 제173호_이기우_직접민주주의 도입을 위한 헌법개정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7-04-14 23:22:24
  • 조회수 : 1480
현안과 정책 제173호
직접민주주의 도입을 위한 헌법개정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게 나라냐’는 구호는 촛불집회에서 핵심적인 구호의 하나였다. 국민이 뽑은 정치인들이 국민의 안전과 복리는 뒷전이고 사익을 위해 공권력을 거래하는 것에 대한 절망적인 외침이다.
국가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수십만, 수백만의 시민이 광장에 모여 수 개월간 외칠 수는 없다. 이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권력엘리트들이 권력을 남용하여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법률이나 헌법을 제정하는 경우에는 국민들이 국민투표로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국민투표권). 권력엘리트들이 국민다수의 요구를 외면하는 경우에는 국민들이 국민발안을 통해 필요한 법률이나 헌법을 스스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국민발안권). 권력자가 국민의 의사에 따라 권력을 행사할 것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때 국민은 임기전이라도 그를 파면할 수 있어야 한다(국민소환권). 이러한 직접민주주의를 통하여 국민은 비로소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무기를 갖게 된다. 직접민주주의를 통해서 비로소 대표제도는 국민다수의 의사와 일치되는 민주성을 회복할 수 있다. 직접민주주의는 헌법개정을 통해서 도입할 수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헌법개정의 과제는 직접민주주의의 도입이다.
 
문제의 제기
 
국민들은 오랫동안 국회의원의 특권폐지를 요구한다. 공정한 검찰권의 행사가 가능하도록 검찰의 개혁을 요구한다. 죽은 표를 줄이고 소수도 대표를 낼 수 있도록 선거제도의 개정을 요구한다. 오직 주장만 있을 뿐이고 실천이 없다.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모두 국회가 법률을 제정해야 하는 사항이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국가임을 선언하고 있다. 국민다수가 지배하는 나라, 국민다수의 의사가 실현되는 국가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국민다수가 요구하는 법률이 제정되지 않고, 국민다수가 반대하는 법률이 제정되기도 한다. 과연 대한민국은 민주국가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한다. 국민다수가 최종적인 결정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국회가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법률을 제정하여도, 국민다수가 요구하는 법률을 제정하지 않고 외면하여도 국민들은 어찌할 방법이 없다. 광장에 모여서 외쳐보기도 하고 선거에서 대대적인 물갈이를 해보기도 하지만 국민의 의사가 무시되고 외면당하기는 마찬가지다. 국민다수가 권력기관의 선처를 바라고 쳐다보고만 있어야 한다면 그러한 국민을 주권자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다수의 의사가 실현되는 민주국가를 실현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 지, 주권자인 국민이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국민주권을 실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대표제도는 민주적인가?
 
민주주의는 원래 직접민주주의를 의미했다. 대표민주주의라는 말은 18세기말의 프랑스혁명과 미국의 헌법제정과정에서 대표제도와 민주주의의 결합을 시도하는 이론적 조작을 통해서 비로소 등장하였다. 국민들이 대표자를 선출하고, 선출된 엘리트가 법률을 비롯한 정책을 결정하면 대표기관의 의사는 국민의 의사와 일치하게 된다고 간주하였다. 이렇게 등장한 대표민주주의를 통하여 광범위한 지역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선거를 매개로 국민의사와 대표기관의 의사를 동일시하는 이론은 현실에서 맞지 않는 경우가 속출하였다. 1860년대 스위스에서는 대표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었다. 당시 스위스에서는 철도자본과 금융자본이 의회를 포위하여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국민다수를 이루는 노동자와 자영업자, 농민들의 의사와 이익은 외면되었고 그 생활은 비참하였다. 이에 스위스 국민들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왜 국민다수의 의사가 무시되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들은 대규모 집회를 통하여 국민이 직접 법률을 제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여 헌법에서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하게 되었다. 1900년을 전후하여 미국에서도 주의회가 금융자본과 철도자본에 포위되어 국민다수의 이익이 외면을 받았다. 미국인들은 스위스 직접 민주주의의에서 그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을 하였고 결실을 맺어서 여러 주에서 헌법을 개정하여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하였다.
대표제도는 대표기관의 의사결정이 국민다수의 의사에 합치되는 경우에만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이 확보되어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기관의 의사와 국민의 의사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는 비록 대표기관이 선거로 구성되었다고 하더라도 비민주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대표제도는 대표기관의 의사결정이 국민의 의사와 상이한 경우에 이를 시정할 수 있는 장치가 강구되어야만 대표민주제도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제도의 보완을 위한 직접민주주의
 
20세기 민주주의는 선거권을 확대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제한선거에서 보통선거로, 차등선거에서 평등선거로 선거권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선거제도만 개선하면 민주주의가 완성될 것처럼 선거권확대에 중점을 두었다. 하지만 제한선거와 차등선거를 극복하는 것만으로는 국민의 의사에 의한 권력행사가 보장되지 않았다. 선거방식의 개선노력도 있었다. 예컨대 선거구와 대표제를 개선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다.
대표민주주의는 국민은 대표자를 잘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고 보았다. 국민의 역할은 대표자를 잘 뽑는데 그쳐야 하고 정책결정은 선출된 엘리트에게 맡겨야 좋은 정치가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그래서 대표제하에서 일반국민은 주어진 선거권을 주기적으로 행사하여 권력자를 통제하는 방법 외에는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주권을 국가의사의 최종적인 결정권이다. 대표민주제하에서는 선출된 대표기관이 최종적으로 국가의사를 결정을 한다는 것은 선거를 통하여 임기동안 주권이 대표기관에게 백지 양도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선거 시에 잠깐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지만 선거가 끝나고 나면 주권은 대표자의 손에 있게 된다. 이를 두고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영국의 대표제 하에서 국민들이 자유로운 것은 선거를 할 때뿐이며 선거가 끝나면 그들은 다시 노예가 된다고 비판했다.
선거는 주권의 양도행위가 아니다. 주권은 양도될 수 없다. 대표자를 선거를 통하여 뽑더라도 주권은 여전히 주권자인 국민의 손에 있어야 한다. 대표기관이 정한 법률이 국민의사와 불일치되는 경우에 국민은 국민투표를 통하여 이를 거부하여 폐기하는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함으로써 국민의 의사와 대표기관의 의사가 합치하도록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대표기관이 국민다수의 의사를 무시하거나 외면하고 국민이 요구하는 법률을 제정하지 않는 경우에 국민은 직접 법률을 발안하여 국민투표를 통하여 이를 최종적으로 결정함으로써 양자의 불일치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발안과 국민투표와 같은 직접민주주의를 통하여 대표제도는 비로소 민주성을 회복하게 된다. 이점에서 직접민주주의는 대표민주주의를 부정하거나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제도를 민주적이 되도록 보완하는 것이며 민주주의를 실질화한다. 대표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는 상호 배척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보완적인 관계에 있게 된다.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한다고 해서 대표민주주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직접민주주의를 연간 수 십 건씩 실시하는 스위스에서도 의회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직접민주주의는 대표기관에 대한 비상통제장치가 된다. 대표제도는 국민발안이나 국민투표와 같은 직접민주적 통제장치를 갖춤으로써 오히려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 이는 마치 성능이 좋은 브레이크를 장착한 자동차를 안심하고 탈 수 있는 것과 같다.
우리 헌법 제40조는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약 입법권이 국회에 속한다면 국회가 주권자가 되고 국민은 주권자가 아니게 된다. 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국민이 입법권을 갖고 있지 않으면 입법권이 국민으로부터 나올 수 없다. 입법권이 국회에 속한다는 헌법 제40조는 국민주권을 보장하는 헌법 제1조와 모순된다. 국민주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헌법 제40조를 “입법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직접 또는 그 대표자를 통하여 입법권을 행사한다”라고 개정해야 한다.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몇 가지 오해와 진실
 
일반인은 물론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직접민주주의는 작은 나라에서나 가능하다거나, 포퓰리즘에 휩쓸려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어렵다면서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어서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 그 오해를 드러내고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다.

1. 직접민주주의는 작은 나라에서나 가능하다는 오해


흔히들 직접민주주의는 인구가 작고 면적이 좁은 국가에서나 실현가능하고 인구가 많고 면적이 넓은 국가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얘기한다. 얼핏 보면 상당히 일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직접민주주의에 대해 가장 설득력 있는 이론적 논거를 제공한 루소조차도 직접민주주의는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국가 문제를 논의하는 작은 국가에서나 가능한 것으로 생각했으며, 규모가 큰 국가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장소적인 한계는 오늘날 제도적 발전으로 인해 이미 해소되었다. 직접민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리스를 비롯한 전통적인 직접민주주의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안건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집회민주주의’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과거 아테네의 민회가 그 대표적인 형태로 꼽힌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이후 발전된 오늘날의 직접민주주의는 투표소에서 표결을 통해 안건을 결정하는 형태로 실시된다. 실제로는 투표소에도 가지 않고 우편을 통해 표결에 참여하기도 한다. 앞으로는 전자투표를 통한 표결이 보편적으로 도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발전된 현대적 직접민주주의를 ‘표결민주주의’라고 한다. 오늘날 직접민주주의가 가장 발전된 스위스에서는 작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집회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 경우에도 중요한 안건은 투표소에서 주민들이 표결로 결정하는 표결민주주의를 별도로 실시하고 있다. 규모가 큰 지방자치단체와 대부분의 칸톤(주정부)과 연방에서는 집회민주주의로서의 직접민주주의는 이미 존재하지 않고 표결민주주의 형태로만 존재한다. 이처럼 오늘날의 직접민주주의는 표결민주주의를 중심으로 한다.
표결민주주주의로서 직접민주주의는 국가의 규모와 상관없이 실현할 수 있다. 이미 스위스 연방과 같이 800만이 넘는 공동체에서도 시행되고 있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와 같이 인구가 4,000만에 가까운 곳에서도 큰 문제없이 시행되고 있다. 오히려 국민과 대표기관간의 거리가 먼 규모가 큰 국가일수록 표결민주주의 형태의 직접민주주의는 더욱 필요하게 된다. 표결민주주의는 집회민주주의의 한계인 장소적 제약을 정치제도의 발전을 통해 극복하였다. 또한 표결민주주의로서 직접민주주의는 비밀투표를 보장함으로써 표결의 비밀과 자유가 보장되고, 투표율이 집회민주주의 참여율보다 훨씬 높다. 예컨대, 집회민주주의인 스위스의 지방자치단체 마을총회의 참석률은 3~10% 정도인데 비해, 표결민주주의인 투표소의 투표율은 40~70%에 이른다.
직접민주주의는 작은 국가에서나 실시가능하다는 것은 오해이며 표결민주주의 형태의 직접민주주의는 국가의 면적이나 규모와는 상관없이 실시할 수 있다. 규모가 큰 국가에서도 직접민주주의는 실시할 수 있다.

2. 직접민주주의는 포퓰리즘에 좌우된다는 오해


직접민주주의에 비판적인 입장은 독일의 나찌 정권이나 프랑스의 나폴레옹 정권, 그 밖의 독재정권하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민주주의가 파괴되었던 경험을 얘기한다. 국민투표는 그 효과가 부정적이며 국민의 의사를 조작할 우려가 크다는 점을 든다.
국민이 실시하는 아래로부터의 국민투표가 있고, 권력자가 국민들에게 물어보는 위로부터의 국민투표가 있다. 전자를 가리켜 ‘레퍼렌덤(Referendum)’이라고 한다. 후자를 ‘플레비시트(Plebiscite)’라고 한다. 레퍼렌덤만이 여기서 말하는 직접민주주에 속한다. 플레비시트는 비민주적이고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 있다.예컨대 독일의 나찌 정권이나 한국의 유신정권에 의해 실시된 국민투표는 최고권력자에 의해 국민투표가 발의되었고, 자신에 대한 신임투표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플레스비시트는 대통령 등 권력기관에 의해 제기되고, 주된 목적이 국회나 여론에 의한 비판이나 반대를 차단하기 위해 국민에게 직접 호소함으로써 포퓰리즘적으로 통치기반을 강화하려는 데 있다. 국민들 간의 자유로운 토론도 보장되지 않는다. 이 점에서 플레비시트는 권력자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국민을 거수기로 동원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국민투표 중에서 국민이 아래에서 제기하는 국민투표인 레퍼렌덤만 직접민주제도라고 할 수 있다. 플레비시트는 민주주의의 이름을 빌렸지만 실제로는 비민주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플레비시트를 직접민주주의라고 부를 수는 없다. 직접민주주의가 포퓰리즘에 약하다는 비판은 플레비시트에 대한 것이며 국민간의 자유로운 토론을 거쳐 국민들이 결정하는 레퍼렌덤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민주주의 하에서 표를 의식한 선거공약이 더욱 포퓰리즘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직접민주주의는 이러한 대표자들의 포퓰리즘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우리 헌법 제72조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대통령이 국민투표에 회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는 전형적인 플레비시트로서 비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다. 유신헌법에 의하여 처음 도입된 이래 극복하지 못한 채 현행헌법에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이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헌법 제130조에서 대통령이 헌법개정안을 발의하는 경우에 플레비시트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통령의 헌법개정 제안권을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신 유신헌법 이전처럼 국민을 헌법개정 발안자로 추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발안은 대표기관인 국회가 헌법개정을 외면하여 헌법개정안을 제안하지 않는 경우에 하는 비상가동장치이므로 이를 다시 국회에서 심의하여 의결하도록 하는 것은 제도취지와 모순된다. 헌법개정에 대한 국민발안은 국회의 의결을 거침이 없이 국민이 직접 국민투표로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제도취지에 부합한다.
 
헌법개정의 최우선 과제로서 직접민주주의
 
촛불집회로 상징되는 광장민주주의는 위정자의 잘못을 국민이 묵과할 수 없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광장에 모여 시민들은 권력을 남용한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했고, 그 처벌을 요구했다. 이에 응하여 국회는 탄핵을 소추했고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파면을 선언했다. 많은 사람들이 촛불집회에는 헌법개정의 요구는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게 나라냐’는 구호는 촛불집회에서 핵심적인 구호의 하나였다. 국가가 국민들을 지키지 못하고 국민들의 요구를 외면하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국민이 뽑은 정치인들이 국민의 안전과 복리는 뒷전이고 사익을 위해 공권력을 거래하는 것에 대한 절망적인 외침이다. 권력자가 공권력을 남용해도 바로잡을 길이 없는 나라를 두고 하는 말이다. 권력을 남용한 권력자를 파면하고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현행 1987년 헌법체제하에서 제왕처럼 등장했던 6명의 대통령은 한결같이 식물정부로 마감하면서 초라하게 퇴장하였고, 국민들은 무력감과 절망감을 느껴야 했다. 그래서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이게 나라냐고 아픔을 호소하고 하는 것이다. 환자가 아픔을 호소할 때 유능한 의사는 병의 원인을 진단하고 그에 따른 처방을 내려야 한다. 현행 헌법체제하에서 역대정부가 모두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면 대통령 한 사람을 파면하고 처벌하는 인적청산만으로 그칠 일이 아니다. 그것은 대증적인 요법은 될지 몰라도 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하지는 못한다. 모든 정부의 정치를 실패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한다. 국가활동과 권력행사의 네비게이션인 헌법체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적신호를 읽고 헌법개정을 위한 처방을 내려야 한다.
국가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수십만, 수백만의 시민이 광장에 모여 수 개월간 외칠 수는 없다. 이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권력엘리트들이 권력을 남용하여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법률이나 헌법을 제정하는 경우에는 국민들이 국민투표로 거부할 수 있게 해야 한다(국민투표). 권력엘리트들이 국민다수의 요구를 외면하는 경우에는 국민들이 국민발안을 통해 필요한 법률이나 헌법을 스스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국민발안). 권력자가 국민의 의사에 따라 권력을 행사할 것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때 국민은 임기전이라도 그를 파면할 수 있어야 한다(국민소환). 이를 위해서는 헌법개정이 필요하다. 직접민주주의 도입을 위한 헌법개정을 통하여 국민은 비로소 주권을 실현할 수 있는 무기를 갖게 된다. 정치인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선거법개정을 거부하는 경우에 국민들이 스스로 선거법개정안을 발의하여 결정하면 된다. 실제로 스위스에서는 선거법개정이 그렇게 실현되었다. 1848년 이래 스위스에서는 다수대표제하에서 60년 이상을 자유당이 난공불락으로 의회의 절대다수의 의석을 차지하여 정치를 좌지우지했다. 비례대표제로 선거법을 개정해 달라는 국민의 목소리는 묵살되었다. 헌법개정에 관한 국민발안제도가 헌법에 도입되자 1918년에 비례대표도입을 위한 헌법개정안이 국민발안으로 제안되었고, 국민투표에서 통과되었다. 이렇게 헌법에 비례대표제도가 도입된 후 1919년에 실시된 의회선거에서 자유당의 의석은 전체 189석 중에서 종전에 절대다수인 103석이던 것이 60석으로 감소하여 1/3에도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국회의원 특권폐지도, 검찰개혁도 국회가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나서서 개혁하는 것도 기대하기 어렵다. 재벌개혁도 마찬가지이다. 이해관계가 없는 국민다수가 직접 나서서 결정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과제들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투표권, 국민발안권, 국민소환권을 헌법에 보장하기 위한 헌법개정이 있어야 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헌법개정의 과제는 국민주권을 실현하기 위한 직접민주주의의 도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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