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과 정책 제 272호
확장적 재정운용과 재정건전성 글 / 유종일(KDI 국제정책대학원 원정)
최근 재정확장과 재정건전성이 논란이다. 본고는 악화하는 경기 흐름에 대응한 경기부양 차원의 대응,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요증가와 소득재분배를 위해 재정확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전개한다. 그리고 재정건전성의 기준에 관해 정부가 집착하는 국가채무비율 40%가 아무런 이론적 근거도 없으며, 국가채무를 염려할 만한 상황이 전혀 아님을 살펴본다. 다음으로 건전재정주의가 오히려 경제를 어려움에 빠트리고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전가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동태적 관점에서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요구된다는 점을 설파한다. 결론으로 과감한 재정확대와 아울러 근본적인 재정개혁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ii] 많은 연구에 의해 재분배 효과는 조세보다는 지출의 규모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재정건전성의 기준 문제는 경기부양이나 재분배 등의 정책목표를 추구하면서 재정적자가 누적되어 국가채무가 커지는 경우 재정건전성을 해치게 된다는 것이다. 국가채무가 과도하게 커지면 상환능력에 대한 의구심으로 금융시장에서 대외신인도가 떨어지고 이자율이 증가하여 경제에 타격을 주게 된다. 이 문제가 심화되면 2010년 그리스의 경우처럼 재정위기에 의한 경제위기가 올 수 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강력한 긴축정책을 실행하면 디플레이션에 따른 극심한 고통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재정적자를 신중하게 관리하여 재정건전성을 유지해야 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과연 국가채무를 어느 수준에서 관리해야 하는 것이 옳은가? 잘 알려진 대로 우리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3% 이내, 국가채무비율을 40%라는 기준을 재정건전성의 마지노선처럼 여겨왔다.[i] 그런데 과연 이 기준에 무슨 근거가 있고, 그 근거는 타당한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가채무비율이 미국은 100%, 일본은 200%가 넘는데 우리 정부는 40% 안팎에서 관리하겠다는 근거가 뭐냐”고 물었다고 한다. 2017년 기준 미국의 국가채무비율은 136%, 일본은 233%다. 정부의 재정건전성 기준도 문제지만, 과연 미국이나 일본과의 평면적인 비교가 정당한 것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국가채무비율 40%라는 기준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기재부가 2016년 8월 발표한 '재정건전화법'은 국가채무비율 한도를 45%로 설정했다. 유럽연합(EU)이 1992년 가입조건으로 제시했던 한도 60%를 참고하고, 고령화, 복지지출 증가, 통일 등을 고려해 이보다 낮춰 잡았다고 한다. 이렇게 설정된 45%에 약간의 여유를 갖기 위해 40%에 집착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떠한 이론적 근거도 제시된 바 없다. 사실 이 문제에 관한 경제학계의 정설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단, 절대적 기준은 있을 수 없으며, 해당 국가의 화폐가 기축통화인지 여부, 국채의 보유자가 내국인인지 외국인인지 여부 등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국가채무비율 한도의 한 가지 기준은 조세수입으로 상환할 수 있는 최대한의 국가채무, 즉 현시점에서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국가채무의 상한(the debt limit)이며, 재정여력(fiscal space)은 현재 국가채무와 이 채무상한과의 격차를 의미한다. IMF는 한국의 재정여력을 GDP의 203%, Moody’s는 GDP의 241%로 추계하여 한국을 노르웨이, 호주 등과 함께 재정이 가장 양호한 국가로 분류하고, 이렇게 양호한 재정여력을 활용하여 내수활성화와 성장률 제고 등을 위해 확장적 재정정책을 실시할 것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국가채무상한은 극한값이며, 여기까지 이르기 전에 이자율 상승이나 조세부담 가중에 따른 성장률 하락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이와 관련 라인하트와 로고프는 국가채무비율 마지노선으로 선진국은 90%, 선진국보다 국가채무 상환 능력이 낮은 개발도상국은 60%를 제시하여 주목을 받았다. 2010년에 발표한 '부채 시대의 성장'이라는 논문에서 2차 대전 이후 선진국의 정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90% 이하일 때는 성장률이 3~4%대로 비슷하지만, 90% 문턱을 넘으면 -0.1%로 뚝 떨어진다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준 것이다. [ii] 하지만 이후 쏟아져 나온 수많은 관련 논문들은 부채비율이 90%가 넘을 때 성장률이 급락한다는 결과를 찾지 못했을 뿐더러 이 논문에 치명적인 실수들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i] 자세한 논의는 다음 참조. 유종일, "재정에 관한 열째 거짓말 | 정부부채와 후손들의 부담"https://www.huffingtonpost.kr/jongil-you/story_b_6498828.html (업데이트 2015. 3. 22. 14:12)
건전재정주의의 오류 재정건전성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건전재정주의는 역사적으로 큰 오류의 원천이었다. 균형재정에 대한 강박으로 경기하강 시에 세수감소에 맞추어 정부지출을 축소하면 경기침체가 가속화되고 오히려 세수가 더욱 줄어드는 악순환이 일어나게 된다. 대공황 발발 이후 후버 정부가 바로 이러한 오류를 범하여 상황을 악화시킨 바 있다. 이러한 역사의 교훈을 망각한 채, 글로벌 금융위기 후 남부유럽 재정위기 당시에 과도한 국가채무를 안고 있는 정부가 과감하게 긴축정책을 실시하면 시장의 신뢰가 높아져서 정부수요 축소의 직접효과를 상쇄하고도 남는 민간수요의 증가가 일어나고 결과적으로 경기가 팽창한다는 "팽창적 긴축(expansionary austerity)" 이론이 득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GDP의 15%에 달하는 긴축을 감행한 그리스의 경제성장률이 -18%로 곤두박질치고 GDP 대비 국가채무는 오히려 증가하였으며, 남부유럽 국가들이나 영국 등 긴축을 실시한 모든 나라들이 긴축의 규모에 정확하게 비례하여 경기후퇴를 겪었다는 사실에 의해 "팽창적 긴축" 이론은 완벽하게 무너졌다. 이 이론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회복이 역사상 가장 느리고 완만하게 진행되어온 중요한 이유로 비판 받고 있으며, 처음에는 이를 지지했던 IMF도 나중에는 반성문을 쓰고 입장을 선회하였다. 흔히 건정재정론자들은 국가채무의 증가는 미래세대에 채무상환부담을 물려주는 무책임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의 채무 증가는 민간의 채권 증가와 일치하여, 세대간 부 혹은 부채의 이전과는 기본적으로 무관하다.[i] 정부의 채무는 미래세대의 납세자에게 부채로 넘어가지만, 동시에 채권도 미래세대에게 상속된다. 굳이 미래세대에 대한 부담이라면, 국체에 대한 이자 부담이 클 경우 세금 징수에 따른 사중손실(dead-weight loss)이라는 작은 손실이 있을 수 있을 뿐이다. 이자는 물론 국채 보유자에게 지급되니까 세대간 이전은 아니고 미래세대 내에서의 소득 이전이다. 단, 국채가 대외채무인 경우는 미래세대에게 부담이 된다. 중요한 것은 진정 미래세대를 생각한다면 미래의 재앙에 대한 대비와 미래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를 촉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재정을 투입하면서 국가채무가 늘어나는 경우, 오히려 미래세대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후대의 부담 운운하면서 적자재정을 반대하는 이들은 대체로 기후변화나 인구절벽 등 미래 재앙을 대비하기 위한 정책에 소극적인 이율배반적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재정적자에 대한 반대가 겉으로 내세우는 이유와는 관계없이 정부의 공적 역할이 확대되는 것을 막고 사적 이윤창출의 기회를 최대화하며 그 여건을 최적화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부에게 허리띠를 졸라 매라고 하는 것은 채권자와 자산가에게는 유리한 것이지만 경기침체로 일자리를 잃거나 임금이 정체하여 고통 받는 노동자들에게는 가혹한 것이고, 이로 인해 미래를 위한 투자를 소홀히 한다면 그만큼 미래세대에 손해를 입히는 것이다.
[i]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비율은 2017년 말 기준 GDP대비 38.2%지만 국제기준에 따른 일반정부채무비율은 42.5%다. OECD 평균 110.7%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국가채무비율 40%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우리 정부는 국제기준과 다른 국가채무비율을 사용하여40% 이하를 대체로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마저도 더이상 마지노선이라고 할 수는 없다. 지난해 8월 발표한 2018~2022년 중기재정운용계획'에서 올해 국가채무비율은 39.5%로 전망했으나, 2020년 국가채무비율을 40.2%로 예상한 바 있다. 앞으로 세수 사정이 악화되는 것을 고려하면 이 비율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최근 홍남기 부총리는 국가채무비율 40% 초과는 불가피하다면서 2022년까지 국가채무비율을 40%대 초반에서 관리하겠다고 언급했다.
결론: 과감한 재정확대와 함께 근본적 재정개혁을 이상의 논의에서 정부가 과감한 재정확장의 길로 나가야 한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지출 확대는 곤란하다. 앞서 강조한 동태적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재정지출이 미래에 대한 효과적인 대비가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정개혁의 큰 방향은 과거 발전국가 재정의 잔재를 청산하고 사람중심 재정을 확립하는 것이다. 발전국가 재정의 한 특징은 재정이 할 일을 민간에게 떠넘기고 대신 정부는 통제만 하는 것이었다. 은행에게 산업 지원을 맡기고, 사학에 교육을 맡기고, 가족과 민간에 복지를 맡기는 식이었다. 또 다른 특징은 사람에 대한 보호와 지원은 취약하고 기업에 대한 보호와 지원은 과도한 구조다. 물론 이러한 특징들이 점진적으로 약화되어 왔으나, 아직도 서구 선진국에 비해 경제예산 비중이 매우 크고 복지예산 비중이 매우 작은 데서 알 수 있듯이 그 잔재가 남아 있다. 이제는 재정이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고 공적 가치를 증진하며 사람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적극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반면 기업에 대한 지원과 보호는 대폭 축소하고 경쟁을 통한 시장의 자원 재분배 기능을 제고해야 한다. 이러한 재정개혁은 혁신성장을 위해서도 필수다. 혁신성장을 강조한답시고 관련 예산을 증액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R&D 투자 등 혁신 관련 투입 지표가 매우 높은 데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혁신성장 성과가 미흡한 원인을 찾아 개혁해야 한다. 독점 대기업과 국가 개입에 의한 시장 왜곡을 최소화함으로써 경쟁에 입각한 혁신이라는 시장의 순기능을 활성화하고 교육과 기초연구 및 사회안전망 등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을 대폭 확대하는 재정의 역할 재정립이 필요하다. 특히 관료주의와 단기성과주의 등으로 인해 시장 왜곡과 자원낭비를 초래하는 기존의 기업 R&D 지원정책을 중장기 비전에 입각한 원천기술 연구와 혁신생태계 조성 위주로 바꿔야 하며, 정부가 기업구조조정에 개입하는 행위를 최소화하고, 자본시장의 작동을 활성화하여 시장중심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원활한 구조조정을 위해서도 사회안전망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강화가 필요하다. 재정사업의 추진방식도 변해야 한다. 눈앞의 성과만을 노리는 전시성 사업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주춧돌을 놓는 사업을 해야 한다. 최대한 민간 활력을 증진하고 시장기능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설계해야 한다. 재정 사업이 시장형성 및 혁신창업을 촉진하도록 하고, 민간의 자라나는 싹을 죽이거나 시장을 왜곡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사업 주체와 수혜자의 인센티브를 충분히 고려하여 관주도 사업에서 흔히 나타나는 전달체계의 문제를 극복하고 효율적인 전달체계를 확보해야 하며, 사업 추진 과정에 시민사회의 참여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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