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물PUBLICATION

이슈페이퍼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연구원의 발간물입니다.

현안과 정책 제376호_윤순진_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의 의미와 시사점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2-02-25 12:27:50
  • 조회수 : 178

현안과 정책 제 376호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의 의미와 시사점

 

​글 /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2050 탄소중립위원회 민간공동위원)



요 약 문

 

지난 8월 5일 2050 탄소중립위원회(이하 탄중위)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발발표하였다. 이 시나리오 초안에 대해 다양한, 아니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사회적 반응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에 탄중위 민간공동위원장인 윤순진 서울대 교수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의 의미와 시사점”이란 글을 보내왔다.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 어떤 의미를 담고 있으며 어떤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는 것일까?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 발표까지의 경과 

 

지난 8월 5일, 2050 탄소중립위원회(이하 탄중위)가 출범 후 두 달 간의 작업 끝에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발표하였다. 시나리오 초안이라고 하는 이유는 초안 발표 이후 이해관계자들과 일반시민의 의견 수렴을 거쳐 수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수립 작업은 탄중위가 출범하기 이전부터 시작된 것이다. 작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이 탄소중립을 선언한 이후 정부는 2050 탄소중립 미래상을 구체화하고 전 사회적인 구조전환에 필요한 정책 방향 또한 구체화하기 위해 시나리오를 마련할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후 각 부처 추천으로 10개 분과 72명의 전문가로 기술작업반을 구성하고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가 총괄 역할을 맡아 2021년 1월부터 6월 초까지 약 5개월 동안 시나리오 실무작업을 진행했다.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는 기술작업반 작업 결과를 바탕으로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치면서 감축 수단별 쟁점 등을 조정하여 마련한 기술작업반 시나리오(안)을 지난 6월 초에 탄중위에 보고·제출하였다.

탄중위는 기술작업반의 탄소중립 시나리오(안)에 대하여 총 54차례의 회의(총괄기획위 4회, 분과위원회 30회, 전문위원회 20회)를 통해 약 2개월이라는 넉넉하지 않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압축적이고 심도있게 검토하여 수정 보완한 후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발표하였다. 참고로 탄중위에는 기후변화/에너지혁신/경제산업/녹색생활/과학기술/공정전환/국민참여/국제협력의 8개 분과가 있다. 탄중위는 지난 5월 29일 대통령 소속 민관합동 자문위원회로 탄소중립 정책의 관제탑(control tower)이자 참여·소통의 구심점인 사회적 대화기구로 출범하였다. 출범 당시에는 관련 법이 아직 마련되지 않아 “2050 탄소중립위원회 설치와 운영규정”이라는 대통령령에 의해 출범하였는데 18명의 장관들이 당연직 위원이고 77명의 위촉직 민간위원들과 국무총리와 민간공동위원장 2인으로 1기 탄중위는 총 97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77명의 민간위원들은 앞서 언급한 8개 분과에 소속되어 있다. 분과위원회는 보다 심층적이고 전문적인 사안을 검토하고 논의하기 위해 작업 파트너로 전문위원회를 둘 수 있다. 시나리오 초안 작업을 위해 에너지, 건물ㆍ도시ㆍ국토, 농림수산, 수송, 폐기물, CCUS 등을 다루기 위해 구성하여 운영하였다.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의 비전과 원칙, 내용 

탄중위는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탄소중립 사회”라는 비전을 설정하고, 책임성, 포용성, 공정성, 합리성, 혁신성이라는 5가지 원칙에 입각해서 시나리오를 검토·수립하여 총 세 가지 시나리오 초안을 제시하였다. 시나리오란 탄소중립이 실현되었을 때의 미래상과 부문별 전환내용을 전망한 것이다. 가정과 전제가 다를 경우 미래사회가 어떻게 다른 모습일지 보여줌으로써 사회적으로 합의한 바람직한 미래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오늘의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의 조건과 상황에서, 어떤 방식을 통해 어떤 탄소중립이 가능할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시나리오를 통해 부문별 세부 정책 방향과 전환 속도 등을 가늠할 수 있기에 정책 방향 전환의 나침반 역할을 하게 된다.

1안은 기존의 체계와 구조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기술발전과 원・연료의 전환을 고려한 것이다. 2안은 1안에서 석탄화력발전을 중단하고 LNG 발전을 긴급 수요에 대응하는 유연성 전원으로 활용하는 등 화석연료 소비를 더욱 줄이고 생활양식 변화를 통해 온실가스를 추가로 감축하는 안이다. 3안은 석탄발전은 물론 LNG 발전조차 중단하여 화석연료를 과감히 줄이고 수소공급을 전량 그린수소로 전환하는 등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감축하는 안이다. 각각 2018년 배출량 대비 96.3%와 97.3%를 줄임에도 불구하고 1,2안에는 화력발전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 국내 잔여 배출량이 있고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각각 전체 배출량의 3.3%와 2.3%를 해외(재)조림이나 국제탄소시장으로 처리해야 하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방법에 차이가 있지만, 세 가지 안 모두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로서 탄소중립을 지향한다. 지세한 내용은 <표 1>에 제시되어 있다.

<표 1>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

주: CCUS는 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의 약어로 탄소포집저장이용기술을 말하며 CCS는 Carbon Capture and Storage로 탄소포집저장을, CCU는 Carbon Capture and Utilization으로 탄소포집이용을 말함

출처: 2050 탄소중립위원회, 2021,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 재구성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의 86.9%(2018년 기준)는 에너지 부문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에너지부문은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을 좌우하는 가장 핵심적인 부문이다. 각 시나리오에 따르면 국내 온실기체 배출 감축 노력 후 부문별 최종에너지 수요는 <그림 1>과 같다. 2018년 225.8백만 TOE였는데 2050년의 경우 시나리오 1안에서는 225.0백만 TOE, 2안에서는 220.9백만 TOE, 3안에서는 219.3백만 TOE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림 2>는 시나리오별 온실가스 배출량 전망을 보여준다. 2018년 온실가스 총 배출량은 727.6백만tCO2eq이었는데, 시나리오 3안에서는 국내 배출량이 0으로 국내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한다. 그에 비해 화력발전이 잔존하는 시나리오는 1, 2안에서는 여전히 각각 25.4백만tCO2eq와 18.7백만tCO2eq의 국내 잔여 배출량이 남게 되어, 앞서 언급한 해외 (재)조림과 국제탄소시장을 활용하여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것으로 제시되었다.

 

<그림 1> 시나리오별 2050년 감축 후 부문별 최종에너지 수요  

<그림 2> 시나리오별 2050년 감축 후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

 

시나리오 초안에 대한 사회 반응 

이러한 시나리오 초안에 대한 사회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 극과 극이었다. 한 쪽에서는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아니라 탄소중립 포기 시나리오라는 비난이 제기되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너무나 빠른 변화라 실현할 수 없는 이상적인 안이라 비판했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생각과 처한 입장이 저마다 다르니 이런 반응은 당연한 것이다. 보다 많은 시민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저마다의 관점에서, 또 우리 공동의 미래란 관점에서, 시나리오 초안에 대해 토론하고 소통하며 더 나은 대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고 필요하기에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시나리오 초안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반응과 대화, 소통을 거쳐 수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시나리오의 의미에 대한 이해가 달라서 비판이 생산적인 논의로 모아지지 않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은 시나리오 내용 대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보다 탄소중립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 2050년 미래 탄소중립 사회의 가능한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여러 비판 가운데 하나는 1안과 2안이 탄소중립을 포기했다는 비판이다. 1안과 2안의 온실가스 순배출량이 각각 2540만 톤과 1870만 톤으로 국내 잔여배출량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기술했듯이 세 안 중 어느 것도 탄소중립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모두 탄소중립을 지향한다. 그렇지 않다면 왜 탄소중립 시나리오라 부르겠는가? 차이는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방법에 있다. 3안은 온전히 국내에서 달성하고 1·2안은 비판의 여지가 있지만 파리협정이 허용하는 해외조림이나 국제 탄소시장을 활용한다는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다른 모습을 띠게 되는 걸까? 우리가 원하는 바람직한 미래상은 무엇이고 어떻게 실현해야 할까?

 

 

세 가지 시나리오 초안의 의미와 시사점 

세부적으로도 다소 차이가 있지만 세 안의 가장 큰 차이는 전환부문에서 발생한다. 전환부문 배출량에 따라 탄소포집이용저장(CCUS)으로 해결하는 양이 달라지고 국내 잔여배출량이 달라진다. 1안은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3년 2월 22일에 심의 확정된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건설이 확정된 7기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를 30년인 설계수명을 유지해서 가동하는 안이다. 이 경우 전환부문에서 4620만 톤이 배출되어 CCUS 처리량이 9500만 톤인데도 국내 잔여 배출량이 2540만 톤이나 된다. 석탄발전사업자들은 합법적인 인허가 과정을 거쳐 사업권을 획득했고 고용이나 지역경제와 연결되어 있기에 건설이나 가동 중단을 위해서는 법과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보상이 필요하다. 1안은 석탄발전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1안의 사회는 어떤 사회인지, 1안으로 가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결해야 할지 보여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 2안의 경우 석탄발전은 모두 중단하나 LNG 발전을 유지하기 때문에 전환부문 배출량이 3120만 톤으로 1안보다는 다소 줄지만 CCUS로 8500만 톤을 처리해도 1870만 톤이 남는다. 결국 국내 잔여 배출량이 없고 과학적 경제적 불확실성이 높은 CCUS 이용을 줄이려면 3안으로 가야 한다. 3안이 실현되려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70.8%로 늘리고 전기·수소차 비중을 97%로 늘려야 하며, 건물부문 재생에너지 열 이용 확대로 도시가스 이용을 추가적으로 줄이면서 식생활이나 건축 양식 등 생활양식을 바꿔야 한다. 게다가 3안에서조차 CCUS로 5790만 톤을 처리해야 한다. 산림 흡수역량이 2018년에 비해 40% 이상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 가지 시나리오의 함의는 명확하다. 화석연료 발전이 지속되어서는 국내 탄소중립이 어렵고, 배출량을 최대로 줄이지 않으면, 더군다나 탄소 흡수원을 충분히 늘리지 못하면, 아직은 불확실성이 높은 CCUS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배출량을 거의 0에 가깝게 줄이지 못한다면 대기 중 배출된 이산화탄소 흡수원 확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산림 경영과 함께 CCUS 이용 확대는 불가피한 선택지가 될 수밖에 없다. CCUS는 실용가능성이나 경제성, 환경성 등에서 여전히 불확실성이 높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전환부문을 넘어 모든 영역에 걸쳐 배출 자체가 0이 되지 않는 한, 아울러 (재)조림이 과감하고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혁신적인 기술 변화에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CCUS의 적용을 되도록 줄이기 위해서는 배출량을 ‘최대한’ 줄이면서 자연 기반 흡수원을 늘려야 한다. 게다가 1,2안에서는 CCUS를 3안보다 훨씬 더 많이 적용함에도 불구하고 국내 배출량을 0으로 만들지는 못해 해외 조림이나 국제탄소시장 등을 활용해야만 한다. 오염자 부담 또는 배출자 부담 원칙에 따르면 해외에서 감축기회를 찾기보다는 국내에서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 기후변화협약과 피리협정으로 인정되는, 개도국의 산림파괴로 인한 탄소 배출을 줄이는 활동인 REDD+(Reducing Emissions from Deforestation and Degradation Plus) 사업으로 해외(재)조림을 수행할 수도 있지만 개도국 원주민의 생존권과 수종 선택권을 존중하고 해당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원칙이 현장에서 실제로 잘 구현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CCUS의 활용을 줄이고 나아가 해외(재)조림사업을 활용하지 않거나 최소화하려면 국내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이 핵심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중요한 것은 국내 화력발전을 중지해가면서 재생에너지 이용을 늘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1안의 사회로 가지 않으려면 석탄화력발전을 중지하기 위해 필요한 대책을 마련해야만 한다. 3안의 사회로 나아가려면 주요 발전원인 재생에너지를 70% 이상으로 늘려야 하고 전기·수소차 비중을 97%로 높여야 한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둘러싼 지역주민 수용성 문제나 입지 애로,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의 경제성, 재생에너지 기술의 혁신성 강화와 산업생태계 조성, 재생에너지 연계 전력망 확충, 전기수소차 충전시설 확보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안된다. 국내에서 재생에너지 확대과정에서 오는 사회갈등이나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에너지 효율 개선과 절약을 통해 에너지 수요 자체를 줄이려는 노력이 선행되거나 적어도 병행되어야만 한다. 배출을 최소화하지 않으면 그만큼 흡수원이나 CCUS의 역할이 커져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3안조차도 2018년 대비 3%밖에 줄이지 못한 최종 에너지 수요를 더 줄이면서 재생에너지 전력이 70% 이상이 되도록 어떻게 빠르게 늘릴지, 생활양식을 얼마나 획기적으로 변화시킬지, 흡수원으로서의 산림을 어떻게 늘려갈지가 관건이다. 에너지부문만 해결된다고 온실가스 배출이 0이 될 수 없다. 에너지부문 외 산업공정 상의 온실가스 배출을 현저히 줄여야 하고 농림축산어업의 배출도 줄여야 하며 폐기물로부터의 배출도 줄여야 한다. 결국 우리 삶 전체가 바뀌어야만 한다.

사실 1안과 2안도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각각 96.3%와 97.3%를 30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급격히 줄여야 해서 실현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얼마나’를 넘어 ‘어떻게’까지로 나아가야만 하고, 전환의 방법이 모두의 생계를 위협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의로운 전환은 구호를 넘어 실질적인 내용을 가져야만 한다.

3안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탄소 감축 목표가 너무 높아서 산업경쟁력이 약화될 우려가 있고 비용이나 기술 측면에서 실현가능성이 부족하다는 의견이다. 재생에너지가 3안처럼 확대되려면 서울시 면적의 5배가 필요하다거나 서울시 면적의 10배나 되는 땅을 태양광으로 뒤덮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기요금이 수 배 오르고 천문학적 비용이 투입되어야 한다고 질타한다. 그러면서 원전 비중을 너무 낮게 잡은 것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2050년 탄소중립은 이미 137개국이 2050년 선언한 시대적 목표이자 세계적 규범이다. 세계 경제질서가 바뀌고 있다. 국내 목표를 미룰 게 아니라 탄소중립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목표를 수용하고 혁신하는 것만이 산업계가 택할 수 있는 생존의 길이다. 변화된 환경을 새로운 혁신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재생에너지는 연료비가 공짜인 국산 에너지원이다. 이용 기술이 국산화되면 그야말로 에너지 독립을 이룰 수 있고 그간의 에너지 수입 비용으로 다른 경제활동에 투자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 기술 발전과 양산, 규모의 경제를 통해 일정한 과도기를 지나면 오히려 재생에너지 전기요금은 떨어질 수 있다. 시나리오 수립에서 “혁신성”이란 원칙을 제시한 이유다. 재생에너지 설비 설치 공간은 기존 건물이나 주차장, 유휴지, 농토나 목초지, 공장시설 등 다른 용도와 병행할 수 있어 재생에너지 설치로 국토 이용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원전의 경우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안전성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깊고 사회적 수용성이 낮아져서 2017년 19대 대선에서 유력 대선 후보 다섯 명 가운데 단계적 탈원전을 약속하지 않은 후보는 한 명밖에 없었을 정도로 일정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국정과제로 제시된 단계적 탈원전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뒤집을 상황 변화가 없었기에 시나리오 구성 시 해당 전제를 번복할 수는 없었다.

 

 

탄중위의 시나리오 초안과 2019년 영국 시나리오 보고서 참고의 이해

최근 몇몇 언론 보도를 통해 탄중위가 “유통기한이 지난” 영국의 2019년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기초로 함으로써, 온전한 탄소 중립 시나리오에 기초한 제6차 탄소예산 보고서를 간과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영국 사례는 단지 시나리오 구성을 위한 참고 자료였을 뿐이었다. 시나리오란 다른 가정에 기초할 경우 어떤 다른 결과가 야기되는지를 보는 방법이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단수로 구성하지 않고 복수로 구성하는 건 흔한 일이다. 다만 영국의 2019년 시나리오엔 국내 잔여 배출량을 포함한 경우가 있었던 데 비해, 2020년 말 제6차 탄소예산 보고서의 새로운 복수 시나리오는 모두가 국내 탄소중립을 지향하면서 세부 내용이 다르다는 차이점이 있기는 하다. 영국은 2019년 6월 기후변화법을 개정하여 2050 탄소중립 목표를 법제화했다. 그 근간이 된 보고서는 잔여배출량 시나리오를 포함한 2019년 5월 보고서였다. 탄중위 작업 이전 올 상반기에 기술작업반이 시나리오를 수립할 당시 해당 보고서의 접근 방식을 참고로 해서 완전한 국내 탄소중립이 아닌 복수 안을 수립한 것은 사실이다.

시나리오 초안 수립 작업 당시 한국은 2050 탄소중립을 법제화하기 이전이었기에, 영국의 법제화 이전 2019년 시나리오 수립 상황에 가까웠다. 영국도 2050 탄소 중립 목표를 명시한 기후변화법 개정 이전에는 국내 잔여량이 있는 시나리오를 포함해서 발표했고 2050 탄소중립 법제화 완료 후 국내 잔여배출량이 없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6차 탄소예산 보고서에 담았다. 그리고 1990년 대비 78% 감축으로 2030년 국가감축목표(NDC)를 상향할 때 이를 활용하였다. 시나리오 초안 수립 당시는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이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하기 이전, 즉 2050 탄소중립 목표 법제화가 가시적인 궤도에 들어서기 이전으로, 다양한 복수의 시나리오 작업이 가능하며 시나리오 내용 구성을 통해 어떤 다른 전제 아래 어떤 다른 미래가 가능할지 가늠해볼 수 있었다. 사실 2050년의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탄소중립을 어떻게 다른 방법으로 구현할 수 있을지 이런 식의 시나리오를 수립해본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영국과 우리는 같은 조건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영국은 산업혁명이 최초로 일어난 국가로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산업화를 추진해 오면서 오랜 기간 온실가스를 배출해왔다. 기후변화협약 상 2000년까지 1990년 수준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안정화시켜야 하는 특별의무를 지닌 부속서 I 국가였으며 교토의정서를 통해 당시 EU의 일원으로서 19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을 8% 감축해야 하는 의무를 부여받은 부속서 I 국가의 부속서 B 국가였다. 그 결과 1990년 배출량이 정점에 도달한 후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기에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더 긴 기간 동안 탄소중립을 향해 점진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상황에 있다. “공통적이지만 차별화된 책임 원칙”에 따르자면 오히려 보다 짧은 기간에 압축적으로 성장하면서 제조업 기반의 산업구조를 가진 우리와 동일하게 2050년을 탄소중립 목표연도로 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선진국들 가운데서 핀란드는 2035년을, 오스트리아와 아이슬랜드는 2040년을, 독일과 스웨덴은 2045년을 탄소중립 목표연도로 하고 있다. 기후변화협약상 부속서 I 국가로 분류되었던 국가들은 보다 빠른 탄소중립 달성에 나설 필요가 있다.

빠르게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것은 힘들긴 하지만 해당 국가에게도 보다 빠른 혁신과 전환을 통해 탈탄소경제 질서에서 더 많은 사회경제적 기회를 선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도 하기에 반드시 부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탄소중립이 피할 수 없는 과제인 세상에서는 보다 빠른 전환이 자국에게도 더 많은 기회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인류의 생존을 위해 탄소중립이란 움직일 수 없는 목표를 달성해야 할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이러한 전환에 뒤처질 경우 발생할 경제위기를 생각할 때 윤리와 책임의 차원을 넘어 실용적인 차원에서도 탄소중립과 이를 위한 사회의 녹색전환은 반드시 이뤄야 할 목표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이하 탄소중립기본법)이 제정되었다. 제26차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에서 상향된 2030 국가감축목표(NDC)를 발표하기로 되어 있는데 탄소중립기본법에서는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최소 35% 이상을 목표로 제시하였다. 현재 국제사회에 약속한 목표는 2017년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24.4%로 이는 2018년 배출량 대비 26.3%를 감축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런 목표치는 국회가 법으로 정한 하한치로 탄중위와 정부가 다양한 논의를 거쳐 10월 말에 최종안을 제출하게 될 것이다.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또한 10월 멀에 최종안을 발표하게 될 것이다.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최종안 수립을 위해 남은 과정과 과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시나리오 초안 발표에 미숙한 점이 없지 않아 제대로 된 의미 전달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상당히 아쉽고 안타깝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방역수칙을 따르기 위해 e-브리핑으로 시나리오 초안을 발표하면서 제대로 된 소통을 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배포된 발표자료를 좀 더 시민 눈높이에 맞게 친절하게 표현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애초에 3안에만 넷제로라 표기한 것이 문제였다. 3안에만 넷제로라 써뒀으니 1,2안은 넷 제로가 아니란 걸로 읽혀진 거였다. 앞서 이 원고의 <표 1>로 수정해서 제시한 것처럼, “순배출량”을 “국내 순배출량”으로 표기하고 해외 감축을 포함해서 제시했더라면 3가지 시나리오 안 모두 넷 제로를 지향한다는 의미가 보다 분명했을 것이다. 각 시나리오 안의 감축률도 표 안에 포함해서 함께 제시함으로써 1,2안조차도 얼마나 깊은 감축인지 보다 명확히 알 수 있도록 해야 했다. 단순히 감축률로 표기할 게 아니라 국내 감축률이라 적으면서 해외조림이나 국제탄소시장 이용을 통해 줄이는 양과 비율을 넣어서 총합이 모두 탄소중립을 지향한다는 사실을 보다 분명히 했어야 했다. 더 친절하게는 이러한 시나리오의 의미와 시사점에 대해 보다 친절하게 설명했어야 했다. 시나리오 1,2안은 국제 협력 없이는 탄소중립을 달성하지 못하는데 과학적 불확실성이 높은 CCUS 처리량이 많아도 국내 재생에너지 비중이 충분히 높지 않고 여전히 전환부문에 화석연료 이용이 남아 있을 때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국내 탄소중립을 이루려면 핵심은 재생에너지 이용을 어떻게 빠르게 늘려나가야에 있다는 사실을 보다 확실하게 알렸어야 했다. 세심하지 못한 발표 자료로 인해 불필요한 오해를 만듦으로써 우리 사회의 에너지가 보다 생산적인 논의로 모이기보다 비생산적인 논쟁으로 소진되는 느낌이 든다.앞으로 발표자료 작성에 좀 더 신중을 기하고 경위나 내용을 잘 모른 채 자료를 보게 되는 시민 눈높이에서 자료를 표현하도록 보다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만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시행착오에 대한 성찰이 앞으로의 보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밑거름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탄중위 시나리오 초안은 말 그대로 초안이어서 수정될 수 있다. 폭넓은 사회적 대화를 통해 수정하고 보완해서 더 나은 대안 시나리오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야 할 탄소중립사회를 위해 현재의 무엇을 어떻게 바꿔가야 할지에 대해 꾸준히 토론하고 소통하여 사회적 공감대를 넓혀 가면서 합의의 분모를 키워가야 한다. 이를 위해 탄중위는 시나리오 발표 후 산업계와 노동계, 청년, 시민사회(환경단체, 종교단체, 소비자단체, 교육단체 등), 지자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 집단들과 협의체를 구성해서 간담회를 진행하며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많은 기관이나 단체들과 대화를 진행해오고 있다. 탄소중립을 향한 과정에서 낙오되거나 배제되거나 소외되는 이들 없이, 다 함께 갈 수 있는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방안도 이러한 이해당사자들과의 대화와 소통을 통해 마련해가야 하기에 지금도 관련 당사자들과 대화하고 있지만 보다 많은 단체나 개인들과 만나야 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정책에 반영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사실은 직접적인 이해관계집단을 넘어 일반시민 또한 기후위기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기후위기가 야기하는 영향은 모두에게 동일하지 않고 소득과 직업, 거주지역, 성, 연령, 건강 상태 등 다양한 요소들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누구도 기후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고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또한 기후위기 대응,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조세체계와 요금체계 등을 바꿔야 하고 공정한 전환에 필요한 비용 또한 마련해야 한다. 세금의 납부자인 일반시민은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는 긴밀한 이해당사자들이기도 하다. 또한 기후위기를 야기하는 온실가스는 시민생활 전반에서 배출된다. 최종에너지 소비부문으로 표시된 가정부문 배출만이 일반시민 배출이라 할 수는 없다. 상업부문 배출도 결국은 상업부문 서비스를 누리는 일반시민의 삶과 연결되어 있고 산업부문 배출도 산업부문에서 만들어진 생산품을 소비하는 일반시민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일본의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총 온실가스 배출량의 60% 이상이 가구 배출활동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다른 환경오염과 달리 기후위기는 그만큼 일반시민의 사회경제활동 전반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뤄볼 때 기후위기 대응에 일반시민 역할이 자못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탄중위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대표성을 가진 일반시민 목소리를 담기 위해 지역, 연령, 성을 주요 변수로 하여 전국에서 무작위로 추출하였다. 대표성을 가진 530명 가량(최종적으로 500명 이상이 되도록 하기 위해 혹시나 있을 수 있는 중간 이탈자를 고려하여 조금 넉넉히 선발)의 참여시민들을 탄소중립시민회의(국민정책참여단)를 구성해서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에 관한 학습과 토론, 숙의의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탄소중립시민회의 참가자들은 참여시민으로 지칭하고 있는데 다른 공론화과정 참가자들과 달리 만 19세 이상의 성인들만이 아니라 만 15세 이상의 청소년부터 참여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청(소)년 세대, 미래세대에게 보다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이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서이다.

탄소중립회의 참여시민들은 직관이나 자신들이 기존에 가진 생각을 넘어 정보에 입각한 판단(informed-decision)을 내리게 된다. 제공된 합리적인 정보를 기반으로 전문가들과의 질의 응답을 통해 학습하면서 참여시민들간의 토론과 숙의를 통해 기후위기를 이해하고 탄소중립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지 고민하면서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참여시민들은 일반시민 대표들로 학습과 토론, 숙의를 통해 공론화의 주체가 된다. 지난 8월 7일 출범식과 오리엔테이션을 가진 후 사전학습자료를 배포하였다. 그리고 이미 제작되어 있는, 내용이 좋아서 사회적 호응이 높았던 영상물을 이러닝 자료로 제공하였다. 그리고 8월 28일에는 전문가들이 2050 시나리오와 시나리오 구성의 핵심 쟁점에 대해 강의하고 시민들과 질의응답을 하는 시민탄소교실을 열었다. 코로나 상황이라 온라인으로 진행하였는데 코로나 상황이 길어진 상황이라 참여시민들의 온라인 이용에는 다행히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오는 9월 11일과 12일에는 탄소중립 시민회의 시민대토론회가 열릴 예정이다. 시민대토론회에서는 다시 한 번 전문가들의 의제에 대한 발표가 있고 참여시민들은 분임토론과 질의 응답 시간을 가지게 된다.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질문을 취합해서 주제별로 분류한 후 분야별 전문위원이 답변을 한다. 이런 공론화과정에서 참여시민을 대상으로 출범식 직전, 시민탄소교실 개최 직전, 시민대토론회 개전 직전과 직후 등 네 차례에 걸쳐 설문조사가 이뤄져 학습과 토론, 숙의의 효과를 측정하게 되며 최종 설문조사 결과는 시나리오 초안 수정 작업에 반영된다.

이제 우리 사회는 탄소중립을 향한 출발선을 넘어 겨우 첫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다. 가야 할 길이 험하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해서는 안된다. 우리 모두의 지속가능한 삶은 기후위기의 파국을 막을 수 있는 탄소중립이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현 세대는 기후위기를 경험하는 첫 세대이자 기후위기의 파국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라 칭해진다. 우리 세대의 탄소중립을 향한 다짐과 실천은 우리세대와 함께 미래세대의 생존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현실로 진행 중인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중립, 지금 여기 나부터, 그리고 우리 함께, 만들어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