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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과 정책 제234호_조기숙_장벽사회 대한민국_문화예술분야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8-08-03 19:04:48
  • 조회수 : 1102
현안과 정책 제234호
한도 끝도 없이 빠지는 절망의 늪
조기숙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교수)
우리나라는 고등교육기관에 예술 관련 학과와 고학력 예술가가 아주 많은 나라다. 어림잡아도 400개 이상의 예술관련 학과에서 매년 16,000명 이상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 그 졸업생들은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이들이 예술분야에서 작품을 하면서 그들이 꿈꾸던 생활을 하고 있을까? 몇 년 전, 안타깝게도 예술대학 출신이 생활고로 자살한 사건이 있었듯이 예술로는 제 밥벌이하기도 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는 과도하게 많은 예술 전공자를 양성한 것과 예술계의 철옹성 같은 진입장벽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의 예술분야 진입장벽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예술대학의 구조조정, 예술계 주류들의 기득권 내려놓기, 국가의 정책 등 다양하고 구체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예술계와 정부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예술계 상황
 
예술은 인간의 영혼을 건드려 감동을 자아내게 한다. 그래서 좋은 예술작품을 감상한 사람들은 스스로 아름다워지고 이 세상의 변화에 기여하게 된다. 예술은 경쟁을 할 필요가 없으므로 점수를 매기는 것이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예술 활동이 실제로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성장하게 하는데 기여하고 또한 예술가들은 행복하게 그 작업을 하고 있는가? 3년 전, 40세 연극배우가 생활고와 지병으로 사망한 후 열흘 후에 발견된 일이 있었다.1)
그 사건 덕분에 가난한 예술인의 삶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 사건이 한두 명 배고픈 예술가의 특별한 경우는 아닐 것이다. 예술대학을 나오고 열심히 작업을 해도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 아니 열심히 작업을 해보고 싶어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사회라고 다수가 말한다. 오죽하면 지병과 생활고로 그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해야 했을까? 하지만 이 사건은 곧 세간의 관심 밖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한동안 들끓던 국회에서도 예술인 복지와 복지법의 제정에 대한 내용은 아주 빨리 잊혀졌고, 스스로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예술계 사람들의 뇌리에서도 바로 사라져 버렸다.

우리나라는 고등교육기관에 공연예술, 음악, 미술 등 예술계열이 가장 많이 개설되어 있고 예술 전공자를 아주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무용계열 학과 약 44개2), 연예연기학과 20개3), 연극영화과 48개4), 뮤지컬학과 4년제 15개, 2년제 11개5), 영상영화학과 11개6) 등 공연예술 관련 학과가 약 150개 개설되어 있다. 음악 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전문대 포함)은 서울에 20개, 부산광역시에 10개, 기타지역에 80개 등 약 110개에 이른다.7)

미술 분야는 더 넓고 크다. 회화, 조형 등의 순수미술 계열과 디자인 등을 다루는 응용미술 계열 학과를 모두 합치면 약 139개나 된다. 학과의 종류도 회화과, 조소과, 서양화과, 동양화과, 시각디자인, 패션디자인, 산업디자인, 애니메이션 등 다양하다. 미술대학이 아니더라도 학과의 단위에서 전공자를 배출하기 때문에 미술대학이 아닌 미술계열 학과들까지 포함하면 상당히 많은 대학에서 미술 관련 교육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고등 교육기관에 예술분야의 대학과 학과가 이렇게 많은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민족성에서 찾아야 할지 아니면 학벌 중심의 사회에서 대학을 가기 위한 방편이라고 정리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한국에서 예술분야의 대학을 나와서 예술가가 되고 그 분야의 일을 해서 먹고 사는 것이 가능할까? 무용과의 예를 들자면, 30살 정도 되면 무용분야에서 계속 활동을 하는 사람은 한 학년 졸업생 중에 한두 명 정도 밖에 없다. 그 많던 무용 전공자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전공을 포기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나머지는 무용학원의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하여 생계를 꾸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전공포기가 가장 많은 분야가 예술분야이다. 과연 그들이 예술에 대한 열정이 없어서 전공을 포기하는 것일까? 그것보다는 예술계의 주류(mainstream)세력으로 진입하는 데에 존재하는 두터운 진입장벽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즉 대학을 졸업했다고 그 장벽을 뚫고 진입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주류세력으로의 진입은커녕 대학을 졸업하고도 자신의 전공으로 먹고 살기 힘드니 전공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게 되는 것이다.
 
예술 배우는 비용이 가장 비싼 나라, 대한민국
 
위에서 열거했듯이 우리나라 대학에는 예술관련 학과가 그 어느 나라보다 많다. 고등학생들이 좋은 예술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학교에서의 공식 수업뿐만이 아니라 고액의 특별 레슨을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예술을 배우는데 고액을 지불하는 나라도 없다. 이 레슨비는 일반적인 학생들이 공부하기 위해 학원에 내는 사교육비에 비해 훨씬 더 큰 금액이다. 특히 대학 입시레슨은 대부분 비공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비용은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할 수 있다. 고등학생들의 대학 진학을 책임지고 있는 입시레슨 선생들은 대학의 교수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학생 유치에 유리하다. 이런 구조 때문에 많은 돈이 들어가는 대학 입시시장이 암묵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그래서 흔히들 좋은 대학 음대나 미대 들어가려면 순간에 집 한 채를 날려야 하고 무용과 들어가려면 서서히 집안 기둥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말이 돌기도 한다. 보통의 경우 어린나이부터 예술 레슨을 받고 그중에 우수한 학생들이 예술 중·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된다. 물론 예술 중·고등학교를 가지 않고도 학원에서 레슨을 받고 대학에 가는 경우도 많다. 두 경우 모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기간 내내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야 유명 예술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학생들은 예술정신과 예술에 대한 즐거움을 배우는 대신 점수를 매기고 서열을 정하며 경쟁을 부추기는 환경에 처하게 된다.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 예술활동까지 점수를 매기고 경쟁하게 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예술계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경우는 불가능하게 된지 오래고, 부모의 경제력이 자식의 대학입학과 성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분야가 되었다. 즉 예술분야는 계층이동이 다른 영역보다 훨씬 어려운 분야가 된 셈이다.


<그림 1> 조기숙 뉴발레단, “백조의 호수 사랑에 통하다”
그렇게 투자해서 좋은 대학에 입학했는데 입학의 기쁨은 잠시뿐이고, 바로 학부를 졸업하고 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대학을 졸업한다고 예술가로서의 길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예술 활동을 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다. 따라서 대학을 졸업하고 예술가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게 된다. 대학원은 예술에 대한 연구와 보다 본격적인 창작 작업을 배우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학생들의 경우는 사회에 진출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세상에 나가는 것을 연기하기 위해서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학부를 졸업해도 그때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돈을 들여서 예술을 공부해야 하고 개인의 열정과 지속적인 부모의 지원이 요구되는 상황이 된다. 석사를 마쳤어도 상황은 마찬가지이고 다시 똑같은 이유로 박사과정 진학까지도 고민하게 된다(물론 대학원의 뜻과 의미를 알고 진학해서 공부하고 성장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석사와 박사를 마쳐도 지도교수에게 인정받고 잘 보여야만 대학에서 강사라도 할 수 있게 된다. 대학 강사 생활을 하다가 그 중에 아주 극소수만 교수가 된다. 예술계에서 교수가 되는 것은 당나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는 것만큼 어렵다고들 한다. 그 과정에서 잡음도 적지 않다. 아무리 예술이 평생을 해야 하는 멀고 험난한 길이지만 대학을 졸업하고도 자신의 밥벌이는커녕 계속 예술이 늪이 되어 돈을 들여야 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주류 예술계의 진입장벽
 
진입장벽이라는 말은 그 어떤 분야에 주류가 형성되어 있어서 그곳에 진입하는 것이 너무도 힘들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다. 각 영역마다 그 특성과 내용 구성이 다르지만 주로 그 분야에서 조직, 지위, 기회 등의 기득권을 갖고 있는 세력들을 주류라고 할 수 있다. 예술계 주류의 특징은 주로 몇 십년간 예술을 하면서 그 분야에 최고의 예술가로 인정받아서 자신이 주류세력에 편승하고 또 주류세력이 된 사람들이다. 예술계의 진입장벽이 다른 분야보다 높은 주요 원인은 핵심 권력을 차지하는 주류세력의 카르텔이다. 이 카르텔은 주로 대학교수들과 명망가 중심의 예술계 권력자들이다. 그러니 대학이나 대학원을 졸업한 것으로는 감히 그 언저리에 가기도 힘들다.

어느 사회나 주류세력은 존재할 수 있다. 단지 그것이 철옹성이 되어서 진입을 차단하고 자신들만의 성을 쌓는 것과 주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집단과의 위계적인 관계를 만드는 것은 심각한 사회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주류사회가 유연해서 열심히 하면 누구라도 들어갈 수 있어야 하고 역으로 지속가능하게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 위치에서 탈락할 수도 있어야 한다. 사실은 주류이냐 주변이냐 라는 생각과 표현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 예술가들이 자존감을 가지고 각자 다른 방식으로 예술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으로 생계가 해결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진입장벽이 없어지고 예술이 평등한 사랑의 사회를 만드는데 역할을 하게 된다. 그래야 예술과 예술가가 이 사회에서 존중받게 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고등교육기관에서 예술전공자를 세계 최대로 많이 양성하는 대한민국에서 예술전공 졸업자들은 전공에 맞는 직업을 갖거나 그 분야의 일을 하기 어렵다. 예술계 졸업자들이 돈을 버는 구조는 주로 대학입시를 위한 교육시장을 통해서이다. 레슨을 통해 예술을 배워서 대학에 가고 졸업자들은 다시 대학 입시레슨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구조가 된 것인데 이것이 문제이다. 대학에 예술관련 학과가 많아서 입시 시장이 견고하게 형성되어 있고 그것에 종사하는 직업군이 생긴 것이다.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레슨 받고(돈 쓰고) 레슨 하는(돈 별고)일에 너무 의존적이라서 그 이외의 다른 창조적인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다들 원해서 입시레슨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활동 기회의 장벽이 높고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제시된 것이 별로 없어서 다른 길을 모르는 것이다. 세상에 나가서 창조적인 작업을 하고 일도 하고 싶은데 철옹성 같은 장벽으로 인해서 자신의 꿈을 포기하기 십상이다.

예술을 평생의 ‘업’으로 받아들여서 수입과 일을 창출하는 것이 안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은 예술교육의 문제로 예술 중·고등학교 때부터 따라 하기 식의 기술인 양성교육을 받아 왔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예술정신에 기반한 창의적인 작업을 창조하는 능력이 향상되기 힘들다. 다음은 학생들도 예술적이고 도전적인 정신으로 새로운 일을 창출하기 보다는 기존의 직업 예술단체에 들어가서 편안하게 활동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 예술단체는 이미 정원이 차 있어서 결원이 생기기 전에는 자리가 없다. 물론 이 두 가지 요인보다 더 본질적인 이유는 예술계 장벽이 높아서 웬만해서는 그 안에 진입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아무리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예술가로서 활동을 하려해도 그 장벽을 깬다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림 2> 조기숙 뉴발레단, <몰라요>
 
장벽 허물기
 
예술은 사랑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불평등과 장벽이 다른 분야보다 더 높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과도하게 많은 예술분야의 학과를 어떻게 해야 할까? 이는 예술분야 뿐만이 아니라 대학전체가 처한 문제이기도 하다. 절대적으로 인구는 줄어드는데 대학을 너무 많이 만들어 놓아서 진학 학생숫자 보다 대학의 수용인원이 더 많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한 대대적이고 단계적인 구조 조정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음주가무를 즐기는 민족에게 예술에 대한 욕구에 의해서 전공하고 싶은 사람이 많은 것은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사실 따져보면 예술전공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 그렇다면 기성세대가 이 전략을 제대로 만들고 길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이 분야를 잘 키워서 전공자들이 이 세상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 고급예술을 하는 그들만의 장벽이 아니라 예술을 구체적인 삶과 연결하고 창조적인 산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그래서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하고 나라의 품격도 격상시켜야 한다.

예술계의 장벽 허물기는 예술가(계)와 정부가 다 책임을 갖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우선 예술가와 예술계가 이 세상만을 탓 할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해야 할 일이 막중하다. 예술로 평등하면서도 먹고 살 수 있는 새 길을 주체적으로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은 기득권 세력부터 ‘예술’에 대한 개념과 생각을 바꿔야 한다. 그리고 예술계의 책임 있는 자들이 자기 성찰과 반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첫째, 예술계가 예술을 가두어 둔 것은 아닌지 반성적 성찰을 해야 한다. 예술은 예술계나 예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 모두를 위한 것이다. 그런데 늘 예술인 몇 명이 모여서 발표하고 자축하고 자만한 것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둘째, 예술가들의 예술 활동이 진정한 예술의 정신(사랑, 배려, 나눔)을 실현시키고 있는 것인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예술을 점수를 매기고 예술가를 줄 세운다면 이 사회에서 예술의 존재 의미는 지극히 축소될 것이다.
셋째, 예술이 세상의 변화를 인도하기는커녕 변화를 따라가지도 못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본다. 역사의 초기에 제사장이나 공동체의 장은 예술가가 했었다. 예술은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기반으로 그 위에 정신적이고 영적인 것을 포함해서 인간과 사회의 성장을 인도하는 거대한 지성이다. 우리의 예술이 과연 이 사회에서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자문해 봐야 한다.

예술계의 이러한 문제는 예술가가 아무리 노력해도 다 해결할 수 없다. 정부의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현재의 예술계는 그 지형의 변화가 필요하고 이는 예술인뿐만이 아니라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을 해야 될 정부의 몫이다.
첫째, 교수 예술가 또는 명망 있는 예술가 중심의 단선 지형에서 활동가 중심의 다양한 지형으로 힘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젊은 예술가들이 주체적이고 보다 적극적으로 작업에 임해야 하고 이들에게 다양한 지원 정책이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4차 산업혁명시대에 맞는 예술과 IT등이 융합되는 새로운 일거리가 탐구되고 제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자생력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지원해 주어야 한다. 예를 들면 <PRAME 이화아카데미>처럼 처럼 문화예술 교육을 하고 업을 찾게 도와주고 직장과 연결시켜 주는 일을 하는 대학도 있다. 하지만 이 하나만으로는 너무도 부족하다.
셋째, 현재의 주류 세력이 후배들을 위해서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예를 들자면 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작품 지원사업에서 교수들의 선정을 30% 이내로 제한하는 등의 기준이 필요하다. 그 외에도 젊은 예술인들을 위한 복지정책 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이렇게 예술계와 정부가 힘을 합쳐서 예술계의 진입장벽을 허물고 젊은 예술인들이 예술 활동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터 주어야 한다. 그래서 예술이 인간을 변화시키고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데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