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물PUBLICATION

이슈페이퍼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연구원의 발간물입니다.

현안과 정책 제224호_권순만_건강보험 보장성정책의 과제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8-05-18 14:36:30
  • 조회수 : 1174
현안과 정책 제224호
건강보험 보장성정책(문재인 케어)의 과제
권순만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문재인 정부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즉 의료비에서 환자가 직접 부담하는 비용을 낮추고, 대신 건강보험이나 정부 지원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높이는 것을 핵심 과제로 삼고 있으나, 의사협회는 이 정책에 대해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정부는 공급자와의 협상과 설득에 매달려 큰 폭으로 수가(의료서비스 가격)를 보전하겠다는 약속을 되풀이하는데, 정작 국민들이 그렇게 대폭적인 수가 인상을 수용할 용의가 있는지 논의는 부재하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OECD 국가들에 비해 그 수준이 매우 낮기 때문에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이 매우 필요하지만, 이 정책은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매우 크고 건강보험 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므로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행위별수가제(개별 의료서비스 별로 가격이 책정된 체계)에서 의사는 수입을 높이기 위해 비싸고 새로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므로 건강보험 제도권 밖의 비급여가 양산되고 환자의 의료비 부담이 증가하게 된다. 따라서 의료공급자에 대한 진료비지불제도의 개편(예, 포괄수가제)을 포함하지 않는 보장성강화 정책은 재정적 지속가능성이 낮다. 하지만 정부는 진료비지불제도의 개편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또 국민은 보험료를 부담하고 의료서비스를 직접 이용하는 주체이므로 보건의료정책에 국민의 참여가 대폭 확대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보장성강화 정책에 있어서 국민은 보이지 않고 국민의 소리는 더욱 들리지 않아서 매우 아쉽다.
 
문재인 정부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즉 의료비에서 환자가 직접 부담하는 비용을 낮추고, 대신 건강보험이나 정부 지원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높이는 것을 보건의료정책의 핵심 과제로 삼고 있으나, 의사협회는 이 정책에 대해 강력히 반대하고 있으며 회원들의 집단 행동을 불사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동안 정부나 건강보험의 통제 밖에 존재하던 높은 가격의 비급여 서비스가 급여화되면, 가격통제와 함께 의료행위에 대한 정부나 국민의 평가가 더 용이해지는 것이 공급자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것이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이 정책이 뭔가 좋은 효과가 있을 것 같다고 느끼지만, 정부는 정작 비용을 지불하고 보건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국민들에게 정책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데에는 소극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난 1년간 정부는 공급자와의 협상과 설득에 매달려 공급자에게 큰 폭으로 수가(의료서비스 가격)를 보전하겠다는 약속을 되풀이하는데, 정작 국민들이 그렇게 큰 폭의 수가 인상을 수용할 용의가 있는지 논의는 부족한 실정이다.
 
보장성 강화 정책의 의의
 
보건의료비용에 있어서 건강보험이나 예산 지원 등의 공적재원의 비중을 높이고 환자본인부담을 최소화하는 것은, 보건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의료비용 부담으로부터 가계재정을 보호하고자 하는 건강보험의 핵심적 기능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여전히 취약하여 OECD 국가들에 비해 그 수준이 매우 낮은 상황이고, 따라서 질병으로 인한 경제적 재난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건강보장 본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는 현실이다. 즉 유럽 선진국의 경우 국가 전체 보건의료비용 중 공공재원의 비중이 70-80% 수준인데 반해 우리나라의 경우 그 비중이 60%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의료비가 가계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거나, 질병과 과도한 의료비용으로 인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보장성이 낮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는 문재인 케어라는 이름의 정책을 도입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기로 하였다. 하지만 이 정책은 건강보장 뿐 아니라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매우 크고 향후 재정에 미치는 영향에 있어서 불확실성이 존재하며, 의사협회와 같은 의료공급자들의 반대도 심하다. 따라서 보장성정책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과제를 안고 있고 정책의 성공적인 집행을 위해 많은 고민이 필요한 실정이다.

그간 정부의 보건/건강보장정책에 있어서 보장성은 항상 핵심적인 이슈였고 정부와 건강보험공단은 급여를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하지만 건강보험의 보장 항목이 서서히 늘어나는 동안, 새로운 의료서비스와 기술이 시장에 진입하여 비보장항목이 빠르게 늘어난 결과, 보장성은 정체하거나 후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아가 비급여 서비스는 건강보험과 보건정책의 통제 밖에 있어서, 비급여에 대해서는 안전성, 효과성, 의료의 질 등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적극적인 급여 확대와 보장성 강화 정책이 필요한데, 조금씩 급여를 확대하기보다 획기적인 급여확대가 필요하고 더 중요하게는 비급여가 양산되는 의료공급자의 유인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 모든 의학적 비급여를 급여화하겠다고 선언하였다 (미용, 성형 등의 비의학적 서비스는 계속 비급여). 즉 설사 비용-효과성이 충분하게 높지 않더라도 일단 예비급여라는 제도를 통해 제도권 안으로 수용하고, 그러한 예비급여에 대해서는 환자의 본인부담금을 50-90%로 높게 책정하되 향후 몇 년간 지속적인 평가를 통해 급여로 들여올 것인지, 예비급여로 남겨놓을 것인지, 혹은 비급여로 다시 되돌릴 것인지 결정한다는 것이다.
 
정책 집행의 기술적 문제들과 재정 소요
 
보장성 정책의 핵심 중 하나가 예비급여 제도인데, 해당 의료서비스들을 한시적으로 급여화하되 환자 본인부담의 수준을 기존 급여서비스보다 높게 책정한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사후관리/재평가를 통해 급여로 할지 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의사결정의 절차 그리고 심사/평가는 어떻게 할 것인지, 의료서비스 빈도와 이용 경향을 어떻게 의사결정에 반영할 지, 수가를 어떻게 적정하게 책정할지, 재평가는 얼마의 주기로 누가 수행할지 등이 구체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약 3600 여 개로 조사된 의학적 비급여 즉 급여확대의 대상 역시 (그동안 제도권 밖에 있었으므로) 그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급여화 정책에 있어서 비용-효과성이 부족하더라도 급여의 대상으로 일단 정하는 것이 논란이 될 수 있다. 비용-효과성 근거가 있으나 재정 문제 때문에 그동안 비급여로 남겨둔 MRI, 초음파 등의 서비스는 급여화하는 것이 정당하다. 현장에서 의료서비스가 제공된 지 얼마되지 않아서 비용-효과성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지만 시간을 두고 근거를 축적하는 것이 필요한 서비스 역시 (비록 추후 만일 다시 비급여화하는 경우 정치적 부담이 있을 수 있지만) 일단 예비급여에 포함하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충분한 과학적 근거를 통해 비용-효과성이 부족함이 이미 밝혀진 의료서비스는 급여가 아닌 비급여로 남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예비급여에 대해 환자 본인부담률의 수준이 50-90%에서 다양하게 결정된다고 하는데 어떤 기준으로 그 수준을 정할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사후 모니터링을 통해 본인부담률을 지속적으로 조정해야 나가야한다. 비용-효과성이 부족하고 환자의 합리적 선택이 어느 정도 가능한 (응급이나 필수적이지 않은) 고가서비스의 경우 (예, 로봇수술), 예비급여화 하더라도 본인부담이 높아서 여전히 고소득자만이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그러한 의료서비스는 예비급여의 대상이 아니고 계속 비급여로 남겨놓아야 하지 않을까?

정부는 보장성강화 정책이 시행되더라도, 그 재정 소요가 통상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않아서 보험료 인상의 압박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보장성정책이 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그동안 제도권 밖에 있던 비급여서비스이므로 수요와 공급의 탄력성(급여확대가 의료서비스 수요와 공급에 미칠 영향)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다. 매우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비급여서비스로 남아있어서 그 비싼 가격 때문에 환자들이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던 의료가 급여화된다면 그러한 의료의 이용은 증가할 것이다. 반대로, 그리 필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가격통제의 대상이 아니어서 공급자의 수요유인에 의해 많이 제공되던 비급여서비스가 만일 급여화되면 그 이용은 줄어들까, 즉 의사들이 그러한 서비스의 제공을 줄일까? 그 답은 불분명하다. 더구나 지금처럼 정부가 수가의 인상을 공언하는 상황에서는, 의료적 필요성이 그리 높지 않더라도 그 의료가 급여화되고 또 책정된 수가가 원가보다 여전히 높다면 의사는 해당 의료의 공급을 계속 증가할 수도 있다. 그러한 경우, 보장성정책은 매우 큰 재정 소요를 가져올 것이다.

보장성정책을 통해 이번에 많은 비급여서비스가 급여화하더라도 의료기술의 발전에 따라 새로운 의료서비스와 신기술은 지속적으로 시장에 진입할 것이다. 현재와 같은 행위별수가제(개별 의료서비스 별로 가격이 책정된 체계)에서는 의사는 수입을 높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비싸고 새로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므로 비급여가 양산될 유인이 존재한다. 따라서 불필요한 비급여가 양산되는 공급자의 유인구조와 행위별수가제를 바꾸지 않으면, (예를 들어, 해당 질환을 치료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미리 결정하는 식의 포괄적 진료비지불제도를 도입하지 않으면), 현재의 급여확대 정책은 장기적으로 재정적 지속가능성이 지극히 낮다. 하지만 정부는 진료비지불제도의 개편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정책개혁의 정치경제
 

정부는 비록 보장성강화 정책이 보험료의 급격한 인상을 야기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획기적인 보장성 강화는 재정 소요를 야기하여 큰 폭으로 보험료가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 의료공급자에 대한 진료비지불제도를 개편하지 않으면 더욱 그러하다. 만일 질병과 의료비용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대폭 감소시키겠다는 정책의 목표가 충분히 달성된다면, 국민의 입장에서는 기꺼이 추가적인 보험료를 부담할 용의가 있을 것이다. 다만 보험료부과의 형평성을 높이고, 의료제공의 효율성을 높여서 보험료 인상의 수준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의료공급자의 경우, 비급여가 급여화되면서 수가가 기존의 (비급여일 때의) 시장가격에 비해 낮게 책정될 가능성, 나아가 급여가 대폭 확대된다면 거의 모든 의료서비스 제공 과정을 정부가 감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급여의 대폭 축소에 따른 수익의 감소와 의사 재량권의 감소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정책의 성공적인 시행을 위해 주요 이해당사자인 의료공급자의 의견을 경청하고 경제적 손실을 일정 부분 보상해 주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수가의 인상을 통해 공급자의 소득을 보전해 주더라도 일괄적인 인상이 아니라, 의료공급자가 의료의 질을 높이고 의료제공의 효율성을 높이도록 경제적 유인을 주고 또 진료성과에 대해 차별화된 수가 책정이 필요할 것이다.


급여확대의 과정에서 가격의 책정은 매우 중요하다. 의사들은 수가가 원가에 못미친다고, 그래서 의사의 소득이 낮다고 이야기 하지만, 그 근거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사들의 평균 소득은 일반 직장인의 4.5배가 넘어서 유럽의 선진국에 비해 그 차이가 더 높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비급여를 대폭 급여화하는 것이 건강보험 재정 그리고 의료제공의 효율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적정 수가의 책정에 달려있다. 진료비지불제도의 개편은 못하면서 공급자에 대한 수가 인상에만 그친다면 이번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

 
앞으로의 과제들
 
보장성 강화 정책이 과연 인구고령화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노인은 다양한 건강 문제를 가진 경우가 많아서 (multi-morbidity) 개별서비스 보다는 적재적소에서 필요한 여러 서비스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제공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료전달체계가 더욱 잘 확립되어야 하고, 의료서비스 제공의 지속성, 치료만이 아닌 예방과 건강관리, 필요한 경우 큰 병원으로의 의뢰 등의 역할을 수행할 주치의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주치의 개념조차 생소한 실정이다. 지금처럼 개별 서비스 항목별로 급여를 확대하는 것은 의료제공의 분절화를 더욱 야기할 가능성도 있다. 나아가 건강보험 만이 아니라 건강보험(예, 요양병원)과 장기요양보험(예, 요양시설)의 연계가 매우 시급한 과제이다.

보장성 강화 정책에서 주요 대상으로 하는 현재의 비급여서비스는 주로 대형병원/3차병원에서 제공하는 서비스가 많다. 따라서 이러한 의료서비스를 급여화하고 본인부담금을 인하하면 보장성이 강화되지만, 환자들이 대형병원, 수도권 중심의 3차병원으로 몰리는 현상이 더욱 강화될 우려도 크다. 따라서 보장성강화 정책과 보건의료정책(예, 1-2-3차 의료기관간 역할 분담, 1차 의료 역할의 강화 등) 간의 정 합성에 대한 고민이 매우 중요하다.

정부가 의사들에 대한 경제적 보상과 수가 인상을 강조하면서 국민들의 수용성에 대해서는 활발한 논의를 하지 않는 점은 매우 아쉽다. 나아가 진료비지불제도의 개혁을 논의하지 않으면서, 즉 행위별수가제를 고수하면서 수가를 대폭적으로 인상하는 것은 건강보험의 재정을 크게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 의약분업 때 수가를 대폭 인상하고 그 결과 건강보험의 재정이 적자로 돌아선 경험을 잊어서는 안 된다. 포괄수가제도의 경우 일부 비급여서비스 만을 정의하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포괄적으로 급여화하기 때문에, 의료비 절감과 함께 급여 확대의 효과를 동시에 누릴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수많은 의료서비스들에 대해 하나하나 급여 여부를 결정하는 복잡한 의사결정의 틀을 언제까지 끌고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앞으로 보건의료정책이나 보장성 강화 정책의 거버넌스에 있어 국민의 참여가 대폭 확대되어야 한다. 국민은 보험료를 부담하고 의료서비스를 직접 이용하는 주체이고, 보건의료정책은 많은 경우 국민들의 가치판단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얼마나 더 부담해서 어느 정도의 급여를 받을 것인지, 생애 말기치료에 있어서 몇 달의 추가적인 생명 연장을 위해 어디까지 건강보험에서 급여할지 등 보장성 강화와 보건의료정책은 궁극적으로 가치판단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전문가의 역할은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지만 수많은 근거들에 기반해 구체적으로 정책을 채택하는 것은 과학적 분석이 아닌 국민들의 숙의와 가치판단의 문제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보장성강화 정책에 있어서 국민은 보이지 않고 국민의 소리는 더욱 들리지 않아서 매우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