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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는 '맘몬'에 굴복한 정치 때문!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4-05-09 13:00:34
  • 조회수 : 2009

프레시안[기고] 박근혜 물러난들 '정치'가 바뀔까?문제는 정치다. 모든 시민의 생명과 복지를 최우선시 해야 할 민주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이렇게 처참한 일들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신자유주의라는 괴물 때문에 일어난 일이고, 그 괴물은 결국 정치가 키운 것이다. 이제 그 괴물을 잘 다루고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든가, 어딘가에 가두어 놓고 통제를 하든가, 그 모두가 어렵다면 아예 죽여 버릴 때가 됐다. 어느 쪽이든,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세월호가 속한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라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이른바 '구원파' 교회에서 "기업이 곧 교회요, 기업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바로 예배"라고 설교했다고 한다. 돈을 부지런히 만들고 정성으로 섬길 때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맘몬교'의 교리를 설파한 셈이다. 맘몬은 성경에 등장하는 '돈의 신'이다. 예수가 가장 우려했던 것이 맘몬의 인간지배였을 만큼 그놈은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무시무시한 괴물이다. 그러나 예수의 우려는 적어도 한국에선 이미 현실이 돼버린 지 오래다. 어디 구원파뿐이던가. 자인하지만 않을 뿐, 많은 대형교회가 실제론 맘몬교회와 진배없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교회가 그럴진대 기업은 오죽하겠는가. 대다수 기업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돈 많이 벌기에만 몰두한다. 다수의 정부 관료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의 관심은 돈을 벌게 해주는 자리를 가급적 오래 꿰차고 있는 데에 집중돼 있다. 가능하면 그 자리가 퇴직 후의 돈벌이까지도 보장해주길 원한다. 직업이 무엇이든, 약간의 정도 차이가 있을 뿐,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이들이 이렇듯 맘몬을 숭배하며 살고 있다. 기업윤리나 직업윤리는 교과서에나 있는 얘기다. 신자유주의는 맘몬의 현대적 이름에 다름 아니다.


세월호 안에 '가만히 있던' 우리 착한 아이들을 삼켜버린 것도 따지고 보면 결국 맘몬과 그 숭배자들이다. 맘몬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에 공동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능력껏 각자도생할 뿐이다. 그러니 능력 없고 힘 딸리는 사회경제적 약자들만 죽어난다. 재벌과 대기업은 중소기업, 중소기업은 영세자영업자 위에 군림한다. 노동자도 다 같은 노동자가 아니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비정규직은 알바를 얕잡아본다. 하위 계층으로 내려갈수록 삶은 팍팍하고 불안하고, 심지어 수치스럽기조차 하다. 누구를 배려하고 챙겨줄 여유가 남아있을 리 없다. 한편, 하찮은 것이든 대단한 것이든, 권력을 쥔 자들은 대개 그 권력으로 어떻게든 돈을 좀 더 만들어보고자 온갖 짓을 다한다. 자본과 권력의 유착이 각 수준과 각 영역에 걸쳐 상존하는 까닭이다. 이러한 사회에선 청해진해운이 돈에 눈이 멀어 노후 선박을 싼값에 사들여 무리하게 증축하고, 저임금의 비정규직 선장과 선원들을 고용하여 제대로 결박도 하지 않은 채 화물 과적을 일삼았다는 것이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국선급과 한국해운조합의 선박검사 및 안전점검 소홀이나 해수부와 해경 등의 관리 및 감독 부실 문제도 그러하다. 해경과 청해진해운, 그리고 민간업체인 언딘 간의 미심쩍은 관계도 이러한 맥락에서라면 대략 추측 가능한 것이다. 총체적인 안전 불감증과 재난구조 시스템의 유명무실화는 당연한 귀결이다.


밝고 맑던 아이들이 별 도움도 받지 못하고 서서히 수장돼가는 광경을 그저 무력하게 지켜본 탓에 유난히 가슴 아픈 것이지, 사실 이러한 비극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1993년 서해훼리호도 세월호와 비슷한 원인에 의해 292명의 수몰자를 내며 침몰했다. 그 후에도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씨랜드와 대구지하철 화재, 마우나리조트 붕괴 등의 대형 참사가 이어졌다. 우리는 민주화 이후에도 늘 인간의 생명과 안전이 경시되는 맘몬의 세상, 그리고 그런 세상을 방치하거나 심지어 부추겨온 신자유주의 정부 아래에서 살아왔던 것이다. 아니 역대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성격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그리고 지금의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줄곧 강화돼왔다. 노무현 대통령의 고백처럼, 국가는 어느 샌가 그 권력을 이미 시장에 빼앗겼다. 맘몬에 맞서 사회공동체와 그 구성원들, 특히 돈 없고 힘없는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시장을 조정하고 분배와 복지 강화에 앞장서며 부자와 강자들의 횡포를 규제해야할 민주정치는 그 본래의 기능을 상실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구호처럼 외치던 이명박 정부에서는 신자유주의 기조를 노골화하며 노후선박 규제 완화를 포함한 무규제와 탈규제 정책들을 쏟아내더니, 현 정부는 아예 그나마 남은 규제를 '암덩어리'라고 공격하는 정도가 되었다. 국가와 정부는 맘몬의 하녀로, 자본의 머슴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비극은 앞으로도 계속되리라는 의미이다. 이제 신자유주의 정부의 그 이음줄을 끊어내야 한다. 무엇이 신자유주의 정부를 연속 등장케 하는지 그 요인을 찾아내 제거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국가들로 꼽히던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의 정치구조를 살펴보자. 모두가 두 거대 정당 중 어느 한 정당이 정권을 홀로 차지하는 양당제-승자독식 민주주의 국가들이다. 왜 이러한 정치구조를 가진 국가들은 신자유주의에 쉽게 포획되는가? 우선 양당제에서는 기본적으로 자본과 기업 친화적인 보수파 정당이 집권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통계연구에 의하면 그 확률은 약 75%정도이다. 이에 대한 가장 유력한 설명은 선거결과를 좌지우지하는 중산층 혹은 중도파 시민들은 일반적으로 집권 후 좌경화하여 자신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할 가능성이 있는 진보파 정당에게 표 던지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 소위 '75%의 법칙'은 한국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민주화 이후 우리는 노태우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총 6번의 정부를 만들어줬다. 그 중 노무현 정부만이 진보파 정당 하나로 구성된 정부였고, 김대중 정부는 진보파와 보수파 정당 간의 연립정부였으며, 나머지는 모두 단일 보수파 정당의 정부였다. 이는 1.5번의 진보파 정부와 4.5번의 보수파 정부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보수파 정당의 집권기간은 정확히 전체의 75%였던 것이다.


양당제에서는 설령 진보파 정당이 정권을 잡을지라도 (중도파 유권자들의 일반적 우려와는 달리) 그 정책 기조가 대단히 진보적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양당제 국가의 선거정치 결과는 통상적으로 중산층 유권자들이 보수파와 진보파 정당 중 어느 쪽에 표를 더 많이 주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저소득층의 표는 어차피 자기 것이라고 여기는 진보파 정당의 입장에선 어떻게든 중산층 표를 더 많이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 양당제 국가의 진보파 정부들이 기껏해야 중도적인 정책들을 양산해내는 까닭이다. 노무현 정부가 저소득층 혹은 진보파 시민들로부터 "좌회전 깜빡이 키고 우회전했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그 같은 일은 사실 양당제 국가에선 다반사일 뿐이다.


요컨대, 양당제 국가에선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선호와 이익을 대표하며 신자유주의에 과감히 맞설 정부의 탄생을 기대하기가 매우 어렵다. 반(反)신자유주의 기조를 분명히 하는 거대정당이 존재할 수도 없거니와, 그와 유사한 정당이 있을지라도 그 정당이 집권할 가능성은 매우 낮으며, 설령 집권할지라도 그 정부가 자본과 시장의 논리를 거스르는 획기적인 진보정책을 내놓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정치가만이 아니라 관료, 기업인, 언론인, 문화예술인, 학자, 목사 등이 모두 알고 있다. 그러니 자신감과 자만심으로 가득 찬 각계의 수구 또는 보수 엘리트들 사이에는 자연스레 '신자유주의 동맹'이 맺어진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기득권 수호와 확장을 위해 행여나 발생할 수 있는 돌연변이적인 진보정부의 탄생을 똘똘 뭉쳐 필사적으로 막아낸다. 신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이 거의 영속적으로 집권할 수 있는 이유이다.


한국은 양당제 국가들 중에서도 신자유주의가 심화․확산되기에 가장 적합한 조건을 갖춘 국가에 속한다.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등에는 양당제의 신자유주의 촉진 효과를 일정 정도 상쇄시킬 수 있는 다른 변수들이 존재한다. 비록 단일 정당 정부일지라도 그 정부의 지나친 신자유주의적 독주와 독선은 우선 제도적 장치들에 의해 견제될 수 있다. 미국만보더라도 거기엔 그 권위가 대통령에 필적할만한 상원의원들이 100명이나 있으며, 각기 상당한 자치권을 보유하고 있는 50개의 주정부들이 포진해있고, 완벽한 독립성을 갖춘 사법부가 버티고 있다. 그 외에도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중시하는 청교도 사상과 문화, 저항권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자주적 시민의식, 그리고 인간 모두의 평등한 자유를 강조하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실천 역사와 그 전통 등이 사회 깊숙이 뿌리박혀 있어 중앙정부에 의한 전면적인 신자유주의 강행 추진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에는 그러한 상쇄효과를 낼만한 여타 변수들이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에겐 양당제-승자독식 정치체제의 신자유주의 공고화 효과가 거의 고스란히 발생한다. 그러니 우리가 맘몬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면, 우리보다 좀 더 나은 조건을 갖춘 뉴질랜드조차 그러했듯, 우리도 이제 정치제도의 개혁을 통해 양당제-승자독식 체제가 아닌 다당제-합의제 민주체제로의 전환을 적극 도모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개혁 대상은 선거제도이다. 독일식 비례대표제 등과 같이 사회구성원들의 지지율에 비례하여 각 정당에 의석이 배분되는 선거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그 경우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친 우리 사회의 계층, 직능, 지향가치적 이해관계의 다양성을 감안할 때 지금의 양당제는 무너지고 정책과 이념을 중심으로 세분화된 다당제가 그 자리를 대신할 공산이 매우 크다. 상상해보라. 노동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이 2004년 총선의 민주노동당 득표율인 13%만 얻어도 당장 39석짜리 진보파 유력정당이 등장한다. 과거의 '안철수 세력'이 만약 민주당과 통합하지 않고 평소의 25%대 지지율을 유지하며 중도정당을 따로 설립했다면, 전면 비례대표제에서의 그 당은 단번에 75석 내외의 중견정당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새누리당 안팎에 존재하는 합리적 보수세력들이 하나의 정당으로 뭉쳐 10%만 득표할지라도 그것은 30석의 유력한 중도보수 정당의 탄생을 의미한다. 녹색당이 분발하여 5%만 얻게 되면 우리는 15석을 가진 만만찮은 대안적 진보세력의 제도권 진입을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청년당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식으로 진보-중도-보수에 걸쳐 셋 이상의 유력정당들이 상존하는 다당제가 구축되면 단일 정당이 의회의 다수파가 될 가능성은 희박해지고, 따라서 연립정부 구성 압력이 일상화될 것이다. 합의제 민주주의는 연립정부 형성의 제도화를 견인하는 권력구조의 개편, 즉 지금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 등으로 전환할 때 완성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의 민주주의가 그렇게 합의제형으로 발전해갈 때 우리는 맘몬의 지배로부터 서서히 벗어날 수 있다.


합의제 민주국가에서는 돈보다는 생명, 경제적 효율성보다는 사회적 형평성, 경쟁보다는 연대, 성장보다는 분배와 복지를 중시하는 중도좌파 성격의 정부가 구성될 확률이 중도우파의 경우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통계연구는 그것이 75%에 육박함을 일러준다. 또 다른 '75%의 법칙'이다. 중도정당(들)이 보수정당(들)보다는 진보정당(들)과 연립정부를 맺는 일이 훨씬 많다는 얘기이다. 중도정당의 통상적 선택이 그러한 이유는 진보파와의 연대구축이 보수정당의 지지기반인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를 수월케 함으로써 자신의 지지기반인 중산층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보편적 복지의 확대 등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더구나 선택의 폭도 진보 쪽이 훨씬 넓다. 사회구성원들의 대다수가 사회경제적 약자들인 만큼 비례대표제 국가에는 그 약자들의 선호와 이익을 대표하여 생태, 환경, 안전, 복지, 경제민주화 등을 강조하는 진보 및 중도진보 정당들이 여럿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극성기이던 1980년대와 1990년대를 돌파하여 지금까지도 의연히 안정적인 복지국가로 그 위상을 자랑하고 있는 독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의 거의 모든 유럽 선진국들은 공히 비례대표제-다당제-연립정부로 구성되는 합의제 민주국가들이다. 그 자체, 합의제 민주주의와 복지국가 간에 강한 친화성이 존재함을 웅변한다.


비례대표제의 다당제 및 연립정부 촉진효과와 상기한 두 쌍의 '75% 법칙'을 명심하며 우리도 이제 비례대표제의 획기적 강화를 통해 합의제 민주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지난 수년간 이것을 목표로 활동해온 <비례대표제포럼>의 청년위원들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지금 인터넷(http://reform2014.net)상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100만인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은 막중하다. 그러나 대통령이 바뀐들 맘몬이 물러나고 돈 중심의 신자유주의 국가가 인간 중심의 복지국가로 화하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 해법은 정치체제의 변혁이다. 한국의 정치시스템을 근원적으로 변화시켜 놓아야 한다. '한국 민주주의의 새 판짜기'는 선거제도의 개혁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부디 많은 분들이 서명에 동참해주길 바란다. 세월호의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또 전한다. 미안하다, 너무나 미안하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프레시안 기사 입력 2014.05.07 08:2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