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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세상 읽기] 세계경제의 먹구름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4-02-05 12:14:56
  • 조회수 : 1870

반세기 전에 전미자동차노조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월터 루서의 얘기다. 포드자동차회사의 간부가 자동화된 생산설비를 보여주며 “위원장, 앞으로 이놈들에게 어떻게 조합비를 받아낼 작정이오?” 하고 빈정거렸다. 그는 곧바로 “이놈들에게 어떻게 차를 팔아먹을 작정이오?” 하고 되물었다. 임금은 미시적으로는 비용으로만 인식되지만 거시적으로는 수요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일화다. 세계적으로 노동분배율, 그러니까 전체 소득에서 임금으로 분배되는 몫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어서 세계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세계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신흥시장국가들 사이에 금융위기가 번지고 있다. 몇몇 나라에 국한된 국지적인 문제에 그칠지, 아니면 1997년도의 아시아 금융위기처럼 세계 금융시스템을 뒤흔드는 대형 위기가 될지는 아직 지켜보아야겠지만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따지고 보면 2008년에 발발한 글로벌 금융위기도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고, 유로존 위기도 이제 겨우 한숨 돌리려고 하는 참인데, 정말 세계경제에 바람 잘 날이 없다. 

 

물론 신흥국 위기의 직접적인 계기는 미국 연방준비은행의 양적완화 정책 선회다. 금융위기로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막대한 자산매입을 통해 돈을 풀어온 연준이 자산매입 규모를 축소하기 시작하자, 더 높은 수익을 좇아 신흥국으로 몰려갔던 돈이 유턴을 하면서 환율이 치솟고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제자본의 유출입에 따른 금융위기는 단지 표면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많은 신흥국들이 과거의 쓰라린 경험을 배경으로 자본 유출입에 일정한 통제를 하면서 주의를 기울였지만 선진국들의 초저금리와 양적완화로 인해 자본 유입의 압력은 너무나 컸다. 

 

그렇다고 미국을 비롯해서 선진국 경기가 온전하게 회복된 것은 아니다.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상대적으로 양호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미국의 경우에도 고용의 침체는 심각하며 현재진행형이다. 실업률은 내려가고 있지만 이는 실망실업자의 증가 때문이며, 고용률은 아직도 금융위기 이후 대침체 당시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 과거의 경기회복기와 비교하면 회복 속도는 너무나 느리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미국 경제의 장기침체론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금융위기 이전부터 민간수요의 부족현상은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닷컴 버블이나 서브프라임 버블 등 버블이 없이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초저금리 및 양적완화 정책은 경기회복에 도움은 되지만 약효도 신통치 않을뿐더러 또다른 버블과 이어지는 금융위기를 배태한다는 것이다. 지금 전개되는 신흥국 위기는 그 시작일 따름이다.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경제의 장기침체로 인하여 세계경제는 저성장의 고통과 금융불안의 위험 사이를 줄타기하는 모양이 되고 말았다. 만성적 수요부족의 원인으로는 인구증가율의 감소나 기술발전의 영향력 저하를 거론하기도 하지만 근거가 확실하지 않은 주장들이며, 오히려 노동분배율 저하가 수요부족의 원인임을 보여주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이 물건을 충분히 살 만큼 돈을 받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문제라는 것이다. 

 

노동분배율의 저하는 소득불평등과 사회갈등을 심화시키는 것도 문제지만 만성적 수요부족이라는 먹구름을 드리운다. 뒤늦게나마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캐머런 영국 총리도, 아베 일본 총리도 모두 임금인상을 지지하고 나섰다. 물론 임금인상이 정치인의 말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최저임금제 내실화와 노동조합의 협상력 강화가 필요하다. 경제민주화는 내팽개치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외치는 한국 정부는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원장

 

한겨레신문 등록 : 2014.02.03 18:47수정 : 2014.02.03 2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