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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기로에 선 경제민주화 / 유종일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3-08-05 15:51:18
  • 조회수 : 1397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일 언론사 간부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에 대해 “중점 법안이 7개 정도였는데 6개가 이번에 통과됐다. 거의 끝에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튿날에는 제2차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주재하면서 “투자는 일자리 창출의 핵심으로, 정부는 규제개혁을 더욱 과감하게 추진해서 투자환경을 개선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로 정부는 경제민주화 역주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모양새다. 25일에는 국세청이 세무조사 건수를 줄이고 기간을 단축하겠다고 밝히더니, 26일에는 공정위가 애초 올 하반기까지 법제화를 마치기로 했던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 과제를 뒤로 미루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제한 강화, 지주회사 전환 촉진을 위한 금융 자회사 규제 개편, 집단소송제, 사인의 금지청구제 등의 입법이 기약 없이 미뤄진 것이다. 대선공약이었던 신규 순환출자 금지마저도 예외 인정 등 후퇴 조짐을 보이고 있다.
27일에는 현오석 부총리가 직접 나섰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포럼에서 “대기업에 대해서도 일감 몰아주기 과세 요건을 완화하겠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현 부총리는 “상반기에 경제민주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과 창조경제 구축을 위한 틀 마련에 중점을 뒀다면, 하반기에는 경제정책 핵심 방향을 기업 활동 지원을 통한 경제 활성화에 맞추기로 했다”고 밝힘으로써 이제 경제민주화는 대충 끝났고 경제 살리기가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틈날 때마다 기업투자를 강조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침체된 경기가 좀처럼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오죽 답답하겠는가. 그러나 재벌에 투자를 구걸하는 순간 개혁은 끝이다. 대통령의 입에서 “투자하는 분들은 업고 다녀야”, “기업인은 국정의 중요한 동반자”, “정말 투자를 잘하는 사람은 여건이 어려울 때 투자를 하는 사람”과 같은 말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면 힘의 균형추는 재계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도 이러한 전철을 밟았다.
그래도 당장 경제가 어려우니 경제민주화보다 경제 살리기가 중요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경제민주화가 경제 살리기와 상충된다는 인식이 잘못이다. 재벌 대기업들 입장에서는 경제민주화가 규제와 속박으로 느껴지고, 그러니 경제민주화가 투자를 위축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재벌의 투자에 기대어 경기회복을 도모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지금도 한국 경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높은 투자율을 자랑한다. 특히 대기업들의 투자 비중은 갈수록 증가해 왔다. 문제는 중소기업 투자의 부진이고, 재벌 중심 투자의 비효율성이다. 재벌 대기업을 위해서 이명박 정부 이상으로 잘해줄 수 있을까? 그래도 경제성장이 매우 부진했음을 직시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는 단순히 분배구조를 개선하자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경제성장 전략의 토대이기도 하다. 갈수록 약화되어가는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고착화된 기득권 구조를 타파하여 경제의 새로운 활력을 창출하고, 과거 추격형 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제도와 시스템을 개혁하여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재벌의 불평이 늘더라도 중견기업·중소기업·벤처기업의 투자가 활성화되는 것이 중요하다. ‘갑’이 불편해지는 대신 ‘을’이 제 몫을 찾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가 거의 끝났다고 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경제민주화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따름이다. 현 부총리는 경제민주화에서 경제 활성화로의 이행을 선언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경제민주화 없이 진정한 경제 활성화는 없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