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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개혁입법의 골든타임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7-01-18 10:41:34
  • 조회수 : 1210

경향신문 오피니언[유종일의 경제 새판짜기]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좋은 일 할 거라고 말하면서 지금 좋은 일 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후일 돈을 벌게 되었을 때 실제로 좋은 일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럴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능력껏 좋은 일을 행하기 마련이다.

 

나에게 권력을 주면 좋은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정치인들의 화려한 약속을 함부로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직무정지된 대통령 박근혜는 국민행복 시대를 약속했지만 자신과 최순실의 행복 시대를 위해 국민을 우롱하고 국가를 능멸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약속하고서는 재벌과 정경유착에 빠져 역주행을 했다. 문제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박근혜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이다. 재벌개혁과 부정부패 퇴치를 약속하지 않은 대통령이 있었던가? 국민을 섬기겠다고 맹세하지 않은 국회의원이 있었던가?  

 
유권자가 조금이라도 덜 속으려면 정치인들의 말과 이미지를 볼 게 아니라 그들의 행동과 이력을 봐야 한다. 성공한 사람, 유명한 사람, 돈을 많이 번 사람,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이 아니라 돈과 권력과 영향력이 부족해도 그들이 약속하는 가치와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분투해온 사람, 그 과정에서 역량을 발휘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 내가 이렇게 성공하고 출세했으니 내게 권력을 주면 잘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아선 안 된다. 성공하고 출세한 자들일수록 공적 가치에 대한 헌신보다는 이기적인 욕망의 충족을 위해 살아온 사람들 아니던가?


조기 대선이 거의 확실해짐에 따라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우리는 이들의 세련된 말과 만들어진 이미지에 현혹되지 말고, 과거 행적을 구체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이들이 아무런 권력을 가지지 못했을 때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도 중요하고, 특히 대권주자 정도 되면 상당한 권력을 이미 행사했거나 하고 있을 것이기에 권력을 가졌을 때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를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 국회에서는 어떤 입법을 했고 어떤 법안에 반대했는지, 지자체의 장이라면 어떤 정책을 폈고 어떤 리더십을 발휘했는지, 소속 정당에서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 모두 따져봐야 한다.


박근혜와 최태민 일가의 사악하고 뒤틀린 얽힘이 최근 많이 보도되었지만, 사실 그 상당 부분은 과거부터 알려져 있던 것들이었다. 철저한 검증을 외면한 정치권과 언론의 책임이 막중하다. 그런데 아직도 경마식 보도에 열을 올리는 언론을 보면서 불안감이 드는 건 필자뿐일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정치인의 도덕성에 대한 요구가 강렬한데도 부정부패로 얼룩진 사람이 버젓이 대권주자 행세를 하고 언론은 아무런 문제도 삼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대권주자들은 지금 이 순간이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최적의 시기다. 더 큰 권력을 달라고 요청하기 전에 지금 가진 권력으로 무얼 하는지 보여줘야 한다. 국회의원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대권주자들은 모두 국회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입장에 있다. 그 영향력으로 당장 개혁입법에 나서야 한다. 이제 국회 구성이 1여4야 체제로 되었고 모든 야당은 개혁을 내세우고 있으니, 상대가 발목을 잡아 못한다고 핑계를 댈 수도 없다.


지금부터 헌재의 탄핵심판 종료 시점까지가 개혁입법의 골든타임이다. 개혁입법에 총력을 기울이라는 것이 촛불민심이다. 개혁입법의 내용을 가지고 시간을 끌고 어영부영하면 촛불민심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대다수 국민이 시급한 과제로 꼽는 개혁은 재벌개혁, 검찰개혁, 언론개혁, 정치개혁이다. 재벌, 검찰, 언론, 정치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주범 혹은 종범들임이 명백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개혁의 방법론, 심지어 통과시켜야 할 법안의 내용까지도 충분히 준비되어 있다. 개혁입법은 의지의 문제일 뿐이다.


물론 각 정당 간에, 각 정파 간에, 개혁입법의 우선순위나 구체적인 법안 내용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우선 신속한 합의가 가능한 것들만이라도 빨리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대권주자들은 조속히 분야별 개혁입법 리스트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바란다. 여기서 대다수 주자가 공통으로 제시한 것들은 각 정당이 협의하여 즉각 입법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견해가 갈리는 부분들이 있으면, 이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의 장을 마련하자. 본격적인 대선이 시작된 후 선관위에서 주관하는 토론은 백화점식, 수박 겉핥기식 토론에 불과하지만, 지금 개혁입법에 관한 입장 차이를 가지고 토론은 벌이게 되면 각 주자의 진정성과 개혁성은 물론 이들이 얼마나 사려 깊고 잘 준비된 후보인지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토론을 통해 의견이 좁혀지는 부분이 있으면 그만큼 더 입법에 나서도록 하자.


개헌이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물론 개헌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개혁과제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좋은 개헌을 빨리할 수 있다면 그 이상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개헌의 시기와 내용에 관해서는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 사이에서도 입장이 갈리고 있다. 그러니 신속한 합의를 이루고 즉각 개헌 절차에 들어가는 것은 난망이다. 단, 다른 개혁과제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대권주자들이 개헌의 내용과 방향, 절차와 시기 등에 관해 구체적인 견해를 제출하고, 이를 토대로 심층적인 토론에 들어가기 바란다. 개헌 논의에 국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개혁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민주정부 10년을 겪었지만 재벌, 검찰, 언론, 정치, 뭐 하나 제대로 개혁하지 못했다. 위대한 촛불시민혁명의 힘만이 개혁의 희망이다. 정치권은, 특히 대권주자들은 촛불시민혁명의 뜻을 어떻게 잘 수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촛불을 횃불로 만드는 것은 박근혜의 가증스러운 거짓말만이 아니다. 촛불시민은 혁명의 대의는 뒷전이고 자신의 권력욕을 앞세우는 자를 식별해낼 수 있는 지혜를 갖추고 있을 것이다.

유종일(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경향신문 입력 : 2017.01.05 21:12:00 수정 : 2017.01.05 21: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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